우민거사

 

범의(凡衣)에서 우민(又民)으로

 

2015. 9. 16. 3216일 동안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고 범의거사(凡衣居士)에서 우민거사(又民居士)로 변신하였다.

 

촌부의 법조 생활 시작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9. 1. 사법연수원에 들어감으로써(10) 법조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1980. 9. 1부터 3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후 1983. 9. 1. 서울민사지방법원(당시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서울민사지방법원과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판사로 임명됨으로써 비로소 법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장(1994.7.-1997.2.)으로 재직하던 시절 재야(서예계의 재야임)의 소석(素石) 정재현 선생님으로부터 서예를 배운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서예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호가 범의(凡衣)이다. ‘현재는 비록 법복을 입고 있으나, 마음가짐만은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의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그 당시 선생님께서 촌부가 훗날 법복을 벗게 되면 사용하라고 또 하나의 호를 지어주셨는바, 그게 바로 우민(又民)이다. ‘공직에서 벗어나 다시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공직에 종사하다 퇴임한 많은 분들이 퇴임에 즈음하여, 그동안 대과(大過) 없이 근무하며 공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전에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실감이 나지 않고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촌부가 3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까 그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곳곳에 놓여있는 지뢰밭을 용케도 잘 피해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에 촌부 역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매사에 숨이 막힐 정도로 조심스러웠던 범의거사에서 이제는 다소 숨통이 트일 우민거사로 변신하면서, 예전의 어느 초콜릿 광고처럼

 

나는 자유인이다

 

를 외쳐볼거나.

 

 

 

(2015.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