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신호등

2010.02.16 13:12

범의거사 조회 수:14952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은 주례입니다.

  먼저, 오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와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날씨가 차가운 한 겨울의 주말에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권태일군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년 간의 사법연수원 교육을 마친 후, 현재 세경법무법인에서 해상사건 분야의 전문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인재이고,
  신부 김영미양은, 상명여대 음대와 이화여대 음대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첼로연주자로 활동하는 재원입니다. 특히 신부 김영미양의 언니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남동생은 비올라를 연주하는 말 그대로 음악가족입니다.

  신랑 권태일군과 신부 김영미양이 처음 만난 것은 작년 9월 30일이었습니다. 비록 서로 만난 지 5개월 정도밖에 안 된 상태에서 오늘 이 결혼식을 올리기는 하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그 5개월은 남들의 5년에 버금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랑, 신부 모두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느라 바쁘다 보니 데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신랑 권태일군이 밤 10시가 넘어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광화문의 사무실 문을 나설 때, 그 곳에서 기다려 주고 있는 신부 김영미양의 모습,
  광화문에서 신림동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잔을 가운데 놓고 창가에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미소로 바라보는 모습,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신림동의 호프집 "신호등"의 불빛은 두 사람이 있을 때는 항상 희망의 색깔인 푸른빛을 발했고, 오고가는 폭탄주를 비추느라 새벽 3시가 넘도록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나날이 익어갔고, 마침내 그 신호등의 불빛을 신림동의 호프집에서 동부이촌동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기기로 굳은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신랑 권태일군이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지도교수로서 권태일군을 가르친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지난 해 연말,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신부 김영미양에게 물었습니다. 신랑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부 김영미양은 신랑의 착한 마음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2년 동안 신랑 권태일군을 지도하면서 보고 느낀 신랑의 모습은 "착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권태일군에서 그런 착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반한 신부 김영미양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김영미양의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착한 남자의 표상 권태일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상징 김영미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커다란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신랑 권태일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고, 때로는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을 거닐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현실로 돌아온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은 관심에서 잉태되어 느낌으로 발육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알아야 사랑도 깊어집니다. 이해의 바탕 위에 감정을 쌓고 관계를 튼튼히 해 나갈 때 사랑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식의 단독행위나, 마주 보고 달리는 계약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낳고 길러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신랑 권태일군과 신부 김영미양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하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 1. 12.

                                 주례      閔 日 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