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도 말 아니 하니

2017.11.04 23:28

우민거사 조회 수:9955

 

 아직은 만추(晩秋)를 더 즐겨야 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하긴 사흘 후면 입동(立冬)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가을이 점점 짧아져 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아열대화 되어 가는 기후변화로 종국에는 가을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반갑지 않은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대신

“초여름 -> 한여름 -> 늦여름 -> 초겨울 -> 한겨울 -> 늦겨울”의 6계절이 일상화될 거라니 어찌 해야 하나.

인간이 자초한 변화이니 그에 맞추어 살아갈밖에.

 

어제 오늘 한가위 때보다 더 크고 밝은 달이 떴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달이다.

날씨가 쌀쌀하니까 그 달이 더욱 정겹다. 역시 달의 백미(白眉)는 가을달인가 보다.

 

보름달.jpg


그런데 그런 달이 떴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게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달이 참 밝구나!” 하는 단편적이고 소박한 감정을 잠시라도 품을 수 있는 삶이 그렇게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분초를 다투면서 사는 생활에는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허황되기만 한 것일까.

 

옛날에 고산(孤山) 선생은 그 달을 보며 노래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중략)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 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가을밤의 하늘에 높이 뜬 달,

그 달은 세상을 환히 비추어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알련만,

말을 아니 하니 오히려 그 달을 친구로 삼겠노라는 선생의 높은 뜻을 알 듯 말 듯 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사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한반도의 정세는 여전히 안팎으로 불안하기만 하다.

중천에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는 보름달이야말로 온 천지에 광명을 가져다주며 다 내려다 볼 터인즉, 가련한 중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달래 줄 메시지 한 마디를 전해 줄 수 있으련만,

보고도 말 아니 하니 그 심중을 알 길이 없다.

 

어지러운 마음에 마당을 거닐며 하염없이 달을 바라보는데,

추위에 놀란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조(曹操)가 읊은 대로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달이 밝으니 별빛은 희미한 가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가누나)"이런가?


다시 조선 숙종 때의 문인 김두성(金斗性)의 흉내를 내 본다.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 슬피 우는 저 기럭아
상풍(霜風)이 몰아치면 돌아가기 어려운데
어찌타 한밤 중천에서 깊은 수심(愁心) 자아내나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임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김용덕, 박보영 두 대법관의 후임자 인선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부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철하신 분이 천거되고 임명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올바른 사법부,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미래를 위하여 말이다.

동산에 떠오른 저 달은 답을 알고 있을까?

알아도 여전히 말 아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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