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심(放下心)
2017.09.26 10:42
지난 토요일이 추분(秋分)이었다.
정유년 올 한 해도 어느덧 3/4이 지나갔다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밤이 낮보다 길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낮 기온이 영상 25도를 넘어 30도 가까이 맴돌기는 하지만,
푸른 하늘과 황금빛 벌판이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섰음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게 금당천변 우거의 울안에도 가을꽃이 만발하였다.
그런데
한껏 자태를 뽐내는 이들 가을꽃보다
동방(洞房)에서 깊은 수심(愁心)을 자아내게 우는 실솔(蟋蟀)이나,
먼 데 소식 전해오는 창공의 홍안성(鴻雁聲)이
촌부에게는 한결 가을의 전령사로 다가오고,
더 나아가
밤하늘의 아미(蛾眉)를 연상케 하는 초승달이
촌부의 시절 감각을 새삼 일깨우니 무슨 조화일까.
도연명이 그의 시 ‘사계(四季)’에서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
라고 노래한 것도 그런 연유이런가.
아마도 그는 보름달을 보고 그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촌부는 오히려 초승달에서 가을 모습을 읽고 있다.
그나저나,
실솔이나 초승달이 자아내는 수심(愁心)의 정체를 애써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어,
하릴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귀를 씻고 세상사를 듣지 않으니, 푸른 소나무가 벗이 되고 사슴이 친구가 된다.”
(洗耳人間事不聞, 靑松爲友鹿爲群)
그러고 보니 정체 모를 수심(愁心)이 귀를 안 씻고 세상사에 매달리는 병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비록 수심(愁心)의 ‘수(愁)’라는 글자 자체가 ‘가을(秋)의 마음(心)’을 뜻하기는 하지만,
내 삶의 영역 밖에 있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세상사에 애면글면하지만 않아도 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방하심(放下心)’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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