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담박영정(澹泊寧靜)

조회 수 4851 추천 수 0 2014.06.06 14:48:04

 

    세월호의 참사와 지방선거의 열풍 때문인가, 그런 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지난 2일에 단오가 지나갔다. 한 해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하고 아름다운 때라 해서 예로부터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라고 불렸는데, 그 말이 그만 무색해졌다.

    전 같으면 각종 언론에서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고, 수리떡을 해 먹고... 등등 세시풍속이 어떻다며 기사를 내보내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에 관한 사진도 올렸을 텐데, 올해는 완전히 세인의 관심 밖으로 내밀린 형상이다.

    앞으로 4년간 지방정부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뽑는 선거가 확실히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투표율은 60%를 넘지 못하니, 이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제갈량.jpg

 

    삼국지를 보면 촉나라 황제 유선에게 두 번째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를 정벌하러 나선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오장원(五丈原)에서 위나라의 사마중달과 전투를 벌이다 병이 들어 생을 마감한다. 서기 234년, 그의 나이 53세 때이다. 그는 죽기 전에 어린 아들(8세)을 훈계하기 위하여 총 86자의 편지를 쓴다. 그것이 바로 계자서(誡子書)이다. 여기에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무릇 군자의 길은

    고요함으로 수신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쌓는 것이다.

    마음이 맑고 담백하지 않으면 큰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펼칠 수 없다.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박대통령이 작년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청화대에서 연설하면서 인용하여 유명해진 말인 ‘담박영정(澹泊寧靜)’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인간이 100년을 산다고 해도 길고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결국 한 점에 불과하므로, 모름지기 바르고 진실 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온(?) 국민의 관심사였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를 놓고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손익계산서 뽑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향후의 정국구도를 전망하면서 벌써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을 나열하고 있다. 6개월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판에 참으로 성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누구든지 큰 뜻을 밝히고 원대한 이상을 펼치고자 한다면 제갈공명이 설파한 ‘담박영정(澹泊寧靜)’의 정신을 늘 간직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지원.jpg

 

    문득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아들에게 적어 주었다는 여덟 글자가 생각난다.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이 바로 그것이다. 박지원은 아들에게 이 여덟 글자를 적어 보이면서 “세상만사가 이 여덟 글자로부터 잘못된다”고 하였다. 인순(因循)은 내키지 않아 머뭇거림을 말하고, 고식(姑息)은 낡은 습관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차(苟且)는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함을 가리키고, 미봉(彌縫)은 임시변통으로 잘못을 덮는 것을 일컫는다.


    한양대 국문과의 정민 교수는 이 여덟 글자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세상일은 쉬 변한다. 사람들은 해오던 대로만 하려 든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다가 오늘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상황을 낙관해서 그저 지나가겠지, 별일 없겠지 방심해서 하던 대로 계속하다 일을 자꾸 키운다. 이것이 인순고식(因循姑息)이다. 당면한 상황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인순고식의 방심이 누적된 결과다. 차근차근 원인을 분석해서 정면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없던 일로 하고 대충 넘기려 든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어쩔 수 없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것이 구차(苟且)이고, 그때그때 대충 꿰매 모면해서 넘어가는 것이 미봉(彌縫)이다.


    ‘담박영정(澹泊寧靜)’의 정신으로 큰 뜻을 밝히고 원대한 이상을 펼치려고 하는데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도 대성사 부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올리는 기도가 간절하다.


    “부처님, 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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