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열

  퇴임사 

  법원 가족 여러분,

  32년 6개월간의 법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여러분의 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 그 세월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으로부터 갚을 길이 없는, 많은 은덕을 입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어느 모임에서 저의 소회를 짧은 글로 적어 말씀드리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글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 대한 인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대법원장님과 새로 구성된 대법관들의 지도 아래 우리 사법부를 더욱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한껏 받는 법원으로 가꾸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7월  11일

                                        손   지   열   올림
                                        
                                          ********************


  저는 어제로 32년 6개월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였습니다. 27세 약관의 나이로 법관에 임명되어 평생을 몸 바쳐 온 법원을 떠나려 하니 감회가 무량합니다. 그 동안 여러 법원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루면서 큰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또한 여러분의 협조와 성원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송사를 재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경우 특히 형사재판이 어려웠습니다. 젊은 시절 형사단독 재판을 할 때에는 쉽게 쉽게 사건을 잘 처리했는데, 나이 오십이 되어 고등법원 재판장을 할 때에는 정말로 법정에 드나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기록에 적힌 사건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인생 자체가 심판의 대상으로 보이고  방청석에서 목을 빼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법이라는 이름의 칼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대법관으로 6년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좀더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고 좀더 좋은 판결을 남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궁극적 정의를 논의하고 선언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은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이었습니다.

  법관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못내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좀더 당사자들의 말을 많이 듣고 친절하게 대하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앞에 서 있는 이들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어려움을 겪는 이웃으로 보고 사랑으로 그들의 고통을 나눈다는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더 겸손하게 섬겼어야 한다는 자책이 법복을 벗는 홀가분함의 한 구석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제 법관의 자리를 물러나서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제 길을 어떻게 인도하여 주실지 생각하면 마음이 설렙니다. 마음도 몸도 넉넉해 진만큼 좀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동안 이웃으로부터 진 빚을 갚아 나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굴이 가르치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기도를 드리며 저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언 30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