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2023.12.16 22:47

우민거사 조회 수:108

 

일주일 후면 동지(冬至)이다. 

한겨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상 20도에 달하는 이상 난동으로 개나리가 피고,

12일 강원도에는 기상관측 이래 12월 최대의 비가 내리더니

강릉은 하루 동안에 91.2.mm가 내리고, 

삼척에는 사흘 동안에 234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강원 산지에는 70cm가 넘는 폭설이 내려, 대설특보와 호우특보가 동시에 발령되는 기묘한 일까지 벌어졌다. 

 

   주중에 내린 비가 그친 서울은 일요일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로 급락하고 강한 바람마저 부는 한파가 몰아친다.

한 마디로 날씨가 춤을 춘다.

“미친년 널 뛰듯 한다”는 속담이 딱 어울리는 날씨다. 

 

    중국 쪽에 자리한 저기압이 어떻고, 북극한파가 어떻고, 엘리뇨가 어떻고...

기상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원인 분석을 내놓지만,

범부는 헷갈리는 날씨에 그저 하늘을 원망하면서,

인간이 지구환경을 망쳐 놓은 자업자득의 업보가 아닐까 하고 자탄(自歎)을 한다. 

 

    지난 주말에 봄날을 방불케 하는 포근한 날씨에 함백산(해발 1,573m)을 쉽게 다녀와,

이번 주말에는 예정된 북한산행도 쉽게 하려나 했는데, 겨울비와 눈이 겹쳐 내려 단념해야 했다.

꿩 대신 봉황이라고 했던가,

마침 세원, 정원, 두 손자가 대구에서 올라와 재롱을 떨어 산행을 못 한 아쉬움을 잊게 했다.

두 손자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오후 늦게 여주로 향했다. 

 

    눈이 적지 않게 온 덕분에 차창에 어리는 도로변 풍경이 덜 삭막하다.

하얀 설산과 석양빛을 받아 빛나는 구름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갑자기 그 산이 오르고 싶어지지만, 어쩌랴, 이미 물 건너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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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천에 도착하자 겨울 손님인 물오리떼가 놀고 있다.

무슨 먹을 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겨울만 되면 금당천의 물 위에서 무리 지어 논다.

분명 동장군(冬將軍)을 피해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찾아온 것일 텐데,

‘저 오리들은 이 추위에 차가운 냇물 위에 떠 있으니 얼마나 추울까’하고 촌부는 주제넘은 걱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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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긴 촌부의 주제넘은 걱정의 대상이 어디 물오리뿐이랴.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고 한다. “이로움을 보고는 의로움을 잊었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 논어에 나오는 말인 ‘견리사의(見利思義.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를 비틀어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올 한 해 내내 국리민복은 팽개치고, 오로지 당리당략(黨利黨略), 아니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매몰되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위정자(僞政者)들 때문에 백성이 얼마나 피곤했던가. 

 

    조선시대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이 그린 삽살개 그림에 영조임금이 직접 쓴 아래 글을 작금의 위정자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

(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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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조선시대 영정조 때의 여항시인(閭巷詩人)이었던 서명인(徐命寅. 1725-1802)은

1792년 4월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사건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발에는 신발 두 짝 질질 끌고, 손에는 지팡이 하나 잡고 놀러 다니는데, 세상은 왜 이리 소란하고 흉흉할까. 오직 나만 호젓한 곳을 찾아가누나”

 

하는 시를 남겼다[안대희 지음. 한양의 도시인(2022). 72쪽에서 인용]. 

나라가 어수선한 게 시인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 그러니 놀러나 다녀야겠다는 것이다.

명문가의 후손이면서도 서얼 신분이라 사회 참여의 길이 막혔던 시인은 자신의 주제를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촌부는 일전에 늦은 밤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이 시를 발견하고 무릎을 탁 쳤다. 벽촌에 머물며 전국 또는 해외의 산을 즐겨 찾는 한낱 촌부에게도 딱 어울렸기 때문이다. 마치 촌부를 두고 읊은 시 같다. 

 

     다만, 시인이 살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 민의(民意)를 반영할 수 있으니,

     민생은 외면한 채 싸움으로 일관하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정상배(政商輩)들은 올바른 투표로써 응징할 일이다. 

     물론 그러려면 백성이 깨어 있어야 한다. 촌부의 주제넘은 걱정은 여기까지가 전부이다. 

 

각설하고,

지난 12월 11일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했다.

취임 제1성으로 재판 지연의 심각성을 언급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임한 지난 6년, 사법부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부디 재판 지연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법부,

정의로운 사법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

 

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04-비발디 - 사계 중 겨울_ 라르고.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