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48
교수님, 오랫만입니다.
교수님은 적어도 아래와 같은 분은 아니시겠지요?
그냥 웃으시라고 시 한 수 놓고 갑니다.
***
서방을 팝니다
-이향봉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하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육척에 조금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직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 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 맞춤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 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 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끈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 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벙어리, 자린고비에다가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부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함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르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
교수님은 적어도 아래와 같은 분은 아니시겠지요?
그냥 웃으시라고 시 한 수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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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을 팝니다
-이향봉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하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육척에 조금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직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 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 맞춤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 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 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끈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 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벙어리, 자린고비에다가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부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함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르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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