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兮
2015.09.13 13:50
백로(白露)가 지나면서 나날이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옴을 피부로 느낀다.
이른 아침 우면산 등산로에는 흰 이슬을 머금은 가을꽃들이 만발하여 길손의 발걸음을 상쾌하게 한다.
지난 여름 그리도 찌는 듯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 저녁 불어오는 금풍(金風)에 옷깃을 여미면서 계절의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
이렇게
때가 되면 갈 것은 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것이 메우게 되니,
이야말로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섭리이고, 또한 인간사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32년 전 1983. 9. 1.에 시작하였던 필부의 법관생활도 이제 때가 되어 곧 막을 내린다.
그래서 정들었던 서리풀을 떠나려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흐르는 세월의 수레바퀴에 당랑거철(螳螂拒轍)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도연명의 싯귀 일부를 떠올린다.
歸去來兮(귀거래혜)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자, 이제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류게)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곳에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 후.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술단지 끌어안고 나 홀로 자작하다
뜰 안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지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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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凡衣)에서 우민(又民)으로
2015. 9. 16. 32년 16일 동안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고 범의거사(凡衣居士)에서 우민거사(又民居士)로 변신하였다.
촌부의 법조 생활 시작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9. 1. 사법연수원에 들어감으로써(제10기) 법조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1980. 9. 1부터 3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후 1983. 9. 1. 서울민사지방법원(당시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서울민사지방법원과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판사로 임명됨으로써 비로소 법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장(1994.7.-1997.2.)으로 재직하던 시절 재야(서예계의 재야임)의 소석(素石) 정재현 선생님으로부터 서예를 배운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서예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호가 범의(凡衣)이다. ‘현재는 비록 법복을 입고 있으나, 마음가짐만은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의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그 당시 선생님께서 촌부가 훗날 법복을 벗게 되면 사용하라고 또 하나의 호를 지어주셨는바, 그게 바로 우민(又民)이다. ‘공직에서 벗어나 다시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공직에 종사하다 퇴임한 많은 분들이 퇴임에 즈음하여, 그동안 대과(大過) 없이 근무하며 공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전에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실감이 나지 않고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촌부가 3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까 그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곳곳에 놓여있는 지뢰밭을 용케도 잘 피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에 촌부 역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매사에 숨이 막힐 정도로 조심스러웠던 범의거사에서 이제는 다소 숨통이 트일 우민거사로 변신하면서, 예전의 어느 초콜릿 광고처럼
‘나는 자유인이다’
를 외쳐볼거나.
(2015.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