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겨울 소백산)
2014.01.14 19:08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2004. 2. 8. 눈 덮인 소백산에 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겨울산행이다. 2000. 2. 9. 황병산을 다녀온 후 처음이니 꼭 4년만이다. 명색이 등산을 취미의 하나로 써놓은 사람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직무유기였던 셈이다.
이번 산행의 동반자는 충주지원장 시절부터 山友愛를 돈독히 해온 어제의 용사들이다. 다름 아닌 金'조~과(본인은 '비뇨기과'를 줄여서 이렇게 부른다)' 院長과 이병찬상무(그 사이 삼성생명에서 신한생명으로 옮겼다).
등반 전날 수안보온천에서 만나 일차 회포를 풀었다.
새벽 5시부터 서둘렀지만 단양의 가곡면 어의곡리 새밭(을전 : 乙田) 마을 버스종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산의 첫발을 내디딘 시각은 아침 8시 30분. 결코 빠른 시각이라고 할 수 없으나, 주차장에는 아직 차들이 안 보이고, 소백산 국립공원매표소를 통과하도록 등산객도 매표소 직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출발지의 고도가 해발 300m인 이 소백산 등산코스가 다른 유명한 코스들보다 늦게 개발되어 덜 알려진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새밭 마을에서 비로봉을 오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왼쪽으로 벌바위골을 타고 올라 국망봉을 거쳐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명기리골을 지나 곧장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심 벌바위골로 올라가서 국망봉, 비로봉을 거쳐 명기리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형 코스가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金원장의 助言에 따라 명기리골을 지나 바로 비로봉으로 오른 후 천동(다리안)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였다. 벌바위골이 너무 험하여 겨울 산행으로는 위험다는 것이다.
매표소를 공짜(입장료가 1,600원이다)로 통과하면 비로봉까지 4.7Km(주차장부터 계산하면 5.1Km)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등산로가 소백산의 북쪽 斜面에 위치한 까닭에 그늘이 져서 겨우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때문에 출발지부터 아이젠을 차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을 앞길을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마침 일단의 사람들이 앞서 가고 있다. 구성원의 面面을 보니 한 가족 같다. 아들들은 그렇다 치고 벌써부터 처지는 딸들이 과연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들을 앞질러 30분 동안 부지런히 걸었다. 初入부터 대략 1k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등산로로서는 신작로나 다름없기 때문에 눈길임에도 빠르게 걸을 수 있다. 속도를 낸 김에 숨을 휘휘 몰아쉬며 걷다 보니 1 시간만에 3km를 주파했다. 그런데 이정표에 씌어 있는 남은 거리는 2.7km란다. 그렇다면 지나온 길을 합치면 5.7Km라는 이야기이니 앞뒤가 안 맞는다. 산에 가면 늘 겪는 일이건만 오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물과 귤로 힘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후 능선에 다다를 때까지 30분 동안은 소위 “깔딱고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래 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인데 지금은 눈에 덮여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역시 힘이 든다. 오늘의 등반코스 중 경사가 가장 급하고 험한 곳답게 등에서는 땀이 나고 입에서는 헉헉 거친 숨이 절로 나온다.
해발 1,080m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나고 마침내 어의곡에서 主능선으로 이어지는 支능선이 시작된다. 능선답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좌우를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멀리 오른쪽으로 비로봉으로 생각되는 높은 봉우리도 보인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국망봉도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옆으로 쌓인 눈은 그 높이가 무릎 위로 올라오고, 좌우의 나무에 내린 눈이 눈꽃터널을 이루고 있는 멋진 오솔길이 이어진다.

눈과 달라서 나무의 가지만이 아니라 줄기에도 똑같이 내려앉기 때문에 상고대가 발생한 숲은 그야말로 은빛 천국이다. 높은 산(대략 해발 1,000m 이상)에서만, 그것도 조건이 맞아야만 드물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도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실제 광경을 마주하였는데, 참으로 壯觀이다.
상고대와 눈꽃에 눈길을 주며 30분간 微吟緩步하다 보면 느닷없이 발이 푹 빠지는 곳을 만난다. 대략 산의 8부 능선쯤 되는 지점인데, 등산객들이 많지 않아 길이 그대로 눈에 덮인 것이다. 앞사람 발자국을 겨우 찾아 밟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을 피할 재간이 없다. 그만큼 걷기도 수월치 않다. 이렇게 되면 아이젠도 소용이 없다.
대신 분위기가 낭만적이어서 좋기는 하나, 그것도 잠시이지 30분을 눈 속에서 헤매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기를 30분, 마침내 눈 속에서 빠져 나오면 왼쪽으로는 국망봉, 오른쪽으로는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나라 겨울의 북서풍의 진수를 보여 주려는 것일까, 매섭게 부는 칼바람에 몸이 휘둘릴 지경이다. 자칫 그 바람에 멀리 풍기 쪽으로 날려갈까 겁난다. 하도 바람이 세게 부는 탓에 주능선에는 눈도 쌓일 겨를이 없다.
산을 오르느라 등은 땀으로 젖었어도 고어텍스 등산복과 핫패드(Hot Pad) 덕택에 추위를 못 느끼는데,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옷깃을 여미려고 장갑이라도 벗을라치면 금방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영하 15도는 족히 될 듯하다.

우리 일행이 올라온 쪽은 등산객이 거의 없었으니대부분 죽령의 희방사쪽이나 단양의 다리안(천동)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리라.
정상에 서면 영월, 단양, 영주, 풍기 등 동서남북으로 뻗은 소백산의 장엄한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눈 속에 찬 明月에 비추어 본다면 말 그대로 ‘月白雪白天地白’이리라. 나무 끝에 부는 삭풍과 天地를 뒤덮은 흰 눈, 겨울 小白山의 모습이다.
아직은 점심 먹기에 이른 시각일까, 사람이 붐비지 않아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를 꺼냈다. 본래 빵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金원장이 등산의 베테랑답게 뜨거운 물과 함께 준비한 것이다. 이런 높은 산과 추위 속에서 따끈한 컵라면이면 점심으로는 과분하다. 거기에 韓方茶까지 곁들였으니 그렇게까지 챙겨 주신 金원장 내외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휴대폰으로 정상 정복(!) 사실을 알리고 12시 10분 下山을 시작했다. 방향은 천동(다리안)쪽이다. 朱木群落地를 끼고 내려가는 멋이 있고, 길도 평탄하기 때문에 각 방향에서 비로봉에 오른 사람들이 애용하는 하산코스이다. 다만 정상부터 시작하면 6.8Km나 되어 다소 길고 지루한 것이 흠이다.
주목군락지에는 올라오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가는 朱木들, 그 중 멋지게 생긴 나무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이다.
가능한 한 빨리 내려가 단양온천에서 목욕을 해보자며 金원장이 독촉하는 통에 사타구니에 불이 나도록 걸었더니 다리안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35분. 본래 바위와 돌이 많은 길인지라 하산 때도 3시간 정도 걸리는 게 보통인데, 그 바위와 돌이 모두 눈에 덮여 길이 푹신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덕분에 무릎에도 큰 무리가 안 되었다.
하산 시간을 단축한 덕에 시간이 충분하니 온천욕은 當然之事. 다리안에서 택시를 타고 새밭 마을의 주차장으로 이동(요금 13,500원)하여 金원장의 愛馬 “테라칸”을 타고 단양온천(‘소백산온천’으로도 불린다. 요금은 1인당 5,000원)으로 갔다.
본래 내가 충주지원장 시절 처음 문을 연 이 온천은 당시 유황냄새가 코를 진동하여 한국 제일의 유황온천임을 자랑했었다. 그런데 뒷날 그것이 유황을 태워 목욕물에 푼 사기극으로 밝혀져 폐쇄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작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金원장이 가보자고 해서 온 것인데, 소문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유황냄새는 물론 없었지만, 그래도 미미하나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등산도 했고, 하산 후 온천욕까지 했으니 남은 것은 집에 돌아가는 일뿐이다. 金원장의 손에 이끌려 충주호반과 송계계곡의 멋진 드리이브길을 거쳐 다시 수안보로 가서 영화식당에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충주에서 여주까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에서 호법까지는 영동고속도로, 그 후는 중부고속도로. 이렇게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일요일 저녁인데도 어느 하나 밀리는 곳이 없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의 반영이 아니면 좋을 텐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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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6. 9. 소백산을 첫 등정하고 8년이 지나 2004. 2. 8. 두 번째 등정을 했다. 그리고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세월이 한참 흘러 22년이 지난 2026. 6. 13.에 세 번째 올랐다.
첫째 등정 때는 영주시 풍기읍 희방사에서 출발하여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에 올랐다가 천동(다리안)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였는데, 둘째 등정과 이번 셋째 등정은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비로봉으로 발로 올랐다가 단양읍 천동(다리안) 탐방안내소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였다.
소백산의 장대한 능선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첫째 코스가 좋지만, 전체 거리가 너무 길어 등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까닭에 겨울 산행에는 부적절하고, 이제는 비록 철이 초여름일지라도 고희를 넘긴 처지에는 힘에 부친다.
소백산 비로봉은 여러 방면에서 오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짧은 코스가 어의곡탐방지원센터 쪽에서 오르는 길이다. 총연장 5.2km(산의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 기준)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짧은 코스가 천동 탐방지원센터 쪽에서 오르는 길로 총연장 6.6km(산의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 기준)이다. 결국 이번 소백산 비로봉 등정은 가장 짧은 코스로 올랐다가 두 번째로 짧은 코스로 내려온 셈이다.
어의곡탐방지원센터 출발 시각은 오전 7시 15분, 비로봉 정상 도착 시각은 오전 10시 45분, 휴식 후 하산하여 천동 탐방지원센터 도착 시각은 오후 2시 30분으로 총 7시간 15분 걸렸다.
올해 일찍 찾아온 더위(이날 단양의 낮 최고기온이 30도였다)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일기예보가 계속되었지만, 소백산 등산로는 어의곡삼거리(아곳에서 비로봉 가는 길과 국망봉 가는 길이 갈린다)에 이르기 전까지는 녹음이 우거진 데다 이른 시각에 등산을 시작해서 그런지 더위를 모르고 올랐다.
촌부 일행은 나름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중간에 이미 비로봉에서 내려오고 있는 산객들을 만나 놀랐다. 새벽 2~3시에 출발하여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한다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산행할 때면 종종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세상에는 이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이날 등산로에는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해발 1,439m나 되는 높은 산임에도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비교적 오르내리기가 쉬워 소요시간이 짧은 게 한 이유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더운 여름 날씨답게 반팔, 반바지 차림이 적지 않았는데, 시원해 보이면서도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더구나 등산로에는 돌길의 너덜길구간도 있는데 운동화를 신고 가는 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개성을 발휘하여 젊음을 표출하는 것은 좋으나, 높은 산의 등정 시에는 무엇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케케묵은 공자님 말씀이려나.
정상인 비로봉 주변은 나무가 없는 초원지대다. 하늘이 청명하여 사방의 풍광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초원지대 가운데로 정상을 향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걷기도 편하다. 햇볕이 강하기는 했지만 바람이 적당히 불어 덥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