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夜雨中(추야우중)
2018.12.14 14:21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괴롭게 시를 읊으나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한밤중 창밖엔 비가 내리는데
등불 앞에 있는 마음은 만 리 밖을 달린다
통일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시 “秋夜雨中(추야우중)”이다.
최치원은 골품제 때문에 꿈이 좌절된 대표적인 6두품 지식인이었다. 능력 있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변방의 수령으로 떠돌다가 끝내는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조용한 곳에서 홀로 은거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이 시에는 최치원의 바로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어느 가을날 밤이 깊었다. 이미 삼경(三更.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이다. 최치원은 잠을 못 이루고 등불 아래서 책을 뒤적이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젖는다.
‘내 나이 열두 살에 중국 유학길에 올랐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스물여덟 살에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돌아온 지 어언 스무 해가 지났구나. 그 스무 해 동안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구나. 지방 수령 자리만 맡아 변방을 떠돈 게 얼마이던가.’
품은 뜻은 만 리 밖 큰 꿈을 향해 내달리는데, 현실은 골품제의 벽을 넘을 수 없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그리고 그의 호가 ‘孤雲(고운)’ 즉 ‘외로운 구름’인 이유이다.
*2012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