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不阿貴(법불아귀)
2020.05.16 20:44
法不阿貴(법불아귀)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법은 공정하게 집행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편에 나오는 말이다.
글씨체는 행서.
중국 법원의 앞마당에는 뿔이 달린 해태(獬豸) 상(像)이 놓여 있다. 우리나라 해태에는 뿔이 없지만 중국 신화 속 해태는 뿔이 있다. 이 해태가 중국 법원의 마당에 웅크리고 있는 이유는 한자 ‘법(法)’과 관계 있다.
전설상의 해태는 시비(是非)·선악(善惡)을 가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바르지 못한 사람이나 죄인을 보면 뿔로 치받는다. 한자 ‘法’의 원래 글자는 ‘灋’로, 글자 속의 '치(廌)' 가 바로 해태의 또 다른 명칭이다. ‘해태(廌)가 뿔로 악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뜻과 물(水)이 합쳐져 ‘灋’가 됐고, 훗날 쓰기 복잡한 ‘廌’가 빠지면서 현재의 ‘法’으로 변했다. 법원의 앞마당에 '정의의 여신' 대신 뿔 달린 해태 상이 등장한 이유이다.
법가(法家)를 열었던 상앙(商鞅· ?~BC338)은 법을 치국(治國)의 방책으로 삼았다. 상앙은 진(秦)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강력한 법치를 실현해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법으로 반대파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쫓기다 죽게 된다. 위나라로 도망가기 위해 밤중에 국경을 넘으려고 했으나, 새벽달이 울기 전에는 관문을 열지 못하게 되어 있는 법(상앙이 만든 법이다) 때문에 넘지 못하고, 여관에 들으려고 했으나 여행증이 없으면 안 된다는 법(이 또한 상앙이 만든 법이다) 때문에 거절당한다. 상앙은 “내가 만든 법으로 인해 내가 죽는구나”라고 탄식했다.
법가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BC280∼233)에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엄격한 잣대였다. 그의 사상이 집대성된 책『한비자』의 ‘유도(有度)’편에서는 “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이는 (목수가 쓰는) 먹줄이 나무를 따라 굽지 않는 것과 같다(法不阿貴, 繩不繞曲)”고 갈파한다. 또 “법의 재제를 받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똑똑해도 말로 피해갈 수 없고(智者弗能辞), 힘이 있어도 감히 맞설 수 없다(勇者弗敢争)”고 강조한다. 법의 엄정함을 나타내는 글귀이다.
*2020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