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居(촌거)(이숭인)
2021.07.05 10:32
赤葉明村逕(적엽명촌경)
淸泉漱石根(청천수석근)
地僻車馬少(지벽거마소)
山氣自黃昏(산기자황혼)
붉은 단풍은 마을 길을 밝히고
맑은 샘물이 돌부리에 부딪혀 돌아가는데,
외진 촌구석이라 오가는 이 적고
산 기운에는 황혼이 저절로 찾아드누나
여말선초의 문신 李崇仁(이숭인. 1347-1392)이 지은 시 村居(촌거)이다.
서체는 금문(金文)
마을이 환해질 정도로 붉은 나뭇잎이 온통 길을 덮었다.
맑은 시냇물이 마을 옆으로 흐르다가 그만 돌부리에 부딪혀 돌아간다.
그 모습이 꼭 돌을 양치질하는 것 같다.
물이 줄어 바위의 아랫부분이 드러난 까닭이다.
촌부가 머무는 이곳은 외진 촌구석이라, 사람을 태운 수레나 말이 다닐 일이 거의 없다.
그러자니 산이 몹시 심심했나 보다. 저절로 황혼에 젖어 든다.
이 시를 그냥 그대로 감상하면 그야말로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런데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끌어들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시인은 고려말을 살았다.
외진 촌구석의 쓸쓸함이 마치 기울어가는 고려의 사직 같기만 하다.
이 시를 읊을 때 시인의 본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1392년 시인은 45세의 나이에 정도전의 부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2021년 작(제33회 국전 입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