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李賀)의 시 '청영사금가(聽穎師琴歌)
2026.06.09 20:58

竺僧前立當吾門(축승전립당오문)
梵宮真相眉棱尊(범궁진상미릉존)
古琴大軫長八尺(고금대진장팔척)
嶧陽老樹非桐孫(역양노수비동손)
천축(=인도)의 고승이 문 앞에 서 있는 듯하고
불국토의 존귀한 불상처럼 눈썹뼈가 위엄 있고 숭고하네
이 오래된 거문고는 길이가 팔 척이나 되는데
역양의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지 어린 나무로 만든 게 아니다
이 시는 이하(李賀. 791~817)가 지은 '청영사금가(聽穎師琴歌. 영사스님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중 네 구절을 명말청초(明末靑初)의 서화가 왕탁(王鐸. 1592~1652)이 행서로 쓴 것을 다시 임서(臨書)한 것이다.
글씨체는 행서
이하(李賀. 791~817)는 당나라의 시인으로 기이한 상상력과 강렬한 이미지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사용된 적이 없고 쉽게 연상하기 어려운 비유를 들거나 새로운 말을 지어내 시에 즐겨 썼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까닭에 ‘이하(李賀)의 시는 주(注)가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위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감상해 본다.
別浦雲歸桂花渚(별포운귀계화저) 이별하는 포구의 구름은 계수나무 물가로 돌아가고,
蜀國弦中雙鳳語(촉국현중쌍봉어) 촉나라 거문고 줄 위에서는 한 쌍의 봉황이 속삭이듯 하네.
芙蓉葉落秋鸞離(부용엽락추란리) 연잎 지는 가을날 외로운 난새가 떠나가는 듯하더니,
越王夜起遊天姥(월왕야기유천모) 월왕(=구천 勾踐)이 밤중에 일어나 천모산을 거니는 듯하네.
暗珮清臣敲水玉(암패청신고수옥) 허리 장식을 숨긴 청렴한 신하가 옥을 두드리는 듯하고
渡海蛾眉牽白鹿(도해아미견백록) 바다를 건너는 미인이 흰 사슴을 이끌고 가는 듯하다
誰看挾劒赴長橋(수간협검부장교) 그 누가 보았는가, 칼을 품고 장교로 달려가 악룡을 베던 주처(周處)의 용맹함을.
誰看浸髮題春竹(수간침발제춘죽) 그 누가 보았는가, 머리카락을 적셔 봄 대나무에 피눈물로 시를 쓰던 아황과 여영의 슬픔을.
竺僧前立當吾門(축승전립당오문) 정신을 차려보니 인도 고승(영사 스님)이 내 문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고,
梵宮真相眉稜尊(범궁진상미릉존) 사찰에 모신 진짜 법상처럼 눈썹뼈가 위엄차고 숭고하구나.
古琴大軫長八尺(고금대진장팔척) 스님이 타고 있는 이 거문고는 그 길이가 여덟 자나 되고,
嶧陽老樹非桐孫(역양노수비동손) 역양의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지 그 어린 자손 나무가 아니라네.
涼館聞弦驚病客(양관문현경병객) 서늘한 객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은 병든 나그네가 깜짝 놀라,
藥囊暫別龍鬚席(약낭잠별룡수석) 약주머니도 잠시 잊은 채 용수초 돗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네.
請歌直請卿相歌(청가직청경상가) 이 위대한 연주는 모름지기 재상쯤 되어야 청해 들을 수 있는데
奉禮官卑復何益(봉례관비부하익) 나처럼 낮은 봉례관 따위가 감상의 시를 지어 올린들 무슨 보탬이 되랴
시인은 영사(穎師) 스님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찬탄해 마지않는다. 시인은 고승(竺僧), 불상(梵宮真相). 명품 나무(嶧陽老樹)를 동원하여 스님의 거문고와 그 연주를 신비하고 성스런 존재로 묘사한다.
‘역양노수비동손(嶧陽老樹非桐孫)’은 거문고와 관련된 유명한 글귀로, 훌륭한 거문고는 평범한 재목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딘 명품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나무는 산동 지방의 역산(嶧山) 일대에서 나는 오동나무가 특히 유명한데, 영사 스님이 지금 연주하고 시인이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거문고는 그중에서도 천년 영기를 품은 고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최고의 거문고이기에, 이를 연주하는 영사 스님의 거문고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인간 세계와 신선 세계를 잇는 소리여서, 연주를 함에 따라 소리가 미묘하게 변하여, 때로는 바람 같고, 때로는 용이 울부짖는 것 같고, 때로는 맑은 샘물이 흐르는 것 같고, 때로는 봉황의 울음소리 같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다 보니 마치 서역에서 온 고승이 집 앞에 서 있는 것 같고, 숭고한 불상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시공을 넘나드는 시인의 감상이 불현듯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서늘한 객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은 병든 나그네(=시인)는 그만 그 소리에 매혹되어 병을 잊은 채 약봉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새삼 감탄한다. 고관대작이나 청해 들을 수 있는 이 멋진 소리를 미관말직의 하찮은 나그네가 듣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2026년 작










근디 저런 감성으로 어찌 오월의 유혹을 떨치고 스님이 됐을까?
송도 삼절이라던 서경덕도
절세 미인 황진이를 그려
마음이 어린후니 하난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내님 오리 마라난
지난닢 부난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ㅡ서경덕 ㅡ
라며 오월의 속살을 그리워 하든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