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현명한 여자

2010.02.16 13:26

범의거사 조회 수:15947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은 주례입니다.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10월의 화창한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 신부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김태균군은, 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후 청운의 꿈을 품고 부모님 곁을 떠나, 물 설고 낯선 타향땅 서울에서 외로움을 달래가며 형설의 공을 쌓아, 마침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다음,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현재는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인재이고,
  신부 이승은양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하여 기업구조조정 시장의 선두회사인 KDB-Lone Sstar에서 자산관리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재원입니다.

  신랑 김태균군과 신부 이승은양이 처음 만난 것은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이었습니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것에 괜스레 허전해지는 마음을 달래려고 마주 앉은 만남의 시작이, 그로부터 10개월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오늘의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소위 말하는 촌놈 남자 김태균군과 서울 여자 이승은양에게 있어 그 10개월은 남들의 10년에 버금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랑 김태균군은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신부 이승은양은 자기의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느라 모두 바쁘다 보니 데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신랑 김태균군이 퇴근 후 10년 된 엘란트라를 몰고 멀리 포천에서 서울로 달려오면, 퇴근시각 종이 울림과 동시에 총알처럼 튀어나가 약속장소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신부 이승은양의 모습, 그런 모습이 260일에 210회 연출되었다면 누가 쉽게 믿겠습니까? 그러기에 신랑에게는 "체력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신부 역시 "기다림의 여왕"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에 콩깍지가 씌워 마침내 아무 것도 안 보이게 될 무렵, 두 사람을 태우고 다니던 승용차가 두 사람의 연애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한강 다리 위에서 흰 연기를 뿜으면서 장렬하게 산화할 정도였으니, 두 사람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신랑 김태균군이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훈장으로서 가르친 인연에 더하여,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데 가교역할을 한 데서 비롯됩니다. 제가 사법연수원 교수시절 이래 30여 회에 걸쳐 제자들을 중매하였지만 그것이 성사되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비록 이렇듯 두 사람의 만남에 조그만 역할을 하였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든 서로 만나서 부부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여자를 보기를 돌같이 하던 남자, 그러기에 동료들로부터 심인성 여인기피증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까지 받던 남자, 신랑 김태균군,
  연세대학교 재학중에 퀸으로 뽑힐 정도여서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자, 그러면서도 여간해서는 남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여자, 신부 이승은양,

  이 두 사람에게 도대체 상대방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길래 그 굳건했던 소신들을 접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대답이 뜻밖에도 일치하였습니다. 아니 명쾌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착한 마음씨가 무엇보다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신랑 김태균군을 사법연수원 이래 지금까지 보아 오면서 느낀 모습은 "착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때는 "부처님의 현신이 아닌가"하고 감탄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김태균군에서 그런 착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반한 신부 이승은양이야말로 진정으로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착함과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이승은양의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착하고 슬기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착한 남자, 착한 여자의 표상인 신랑 김태균군과 신부 이승은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두 사람의 궁합에도 나와 있듯이,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믿지만, 두 사람의 만남에 가교역할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법조문을 분석하듯, 회계장부를 뒤지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부탁하고 싶습니다.

  셋째로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