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
2010.02.16 14:05
퇴 임 사
저의 정년퇴임을 맞이하여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용훈 대법원장님과 바쁘신 가운데도 참석해 주신 동료 대법관 및 법관 그리고 일반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1970년에 법원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20년 가까이 법관으로 재직하다가, 법원을 떠난 후부터는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고향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고향 대구에서 변호사로 일하였습니다. 10년 넘게 변호사로 일하면서 저는 법원 문턱을 넘나드는 서민들의 숨결과 애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 석상에서 저는, 서민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그들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그들의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 줄 수 있어야만 법관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신뢰가 얻어질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제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체득한 생생한 삶의 현장의 목소리들을 이 땅의 최고법원에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 여의 세월을 돌아보니 이러한 포부와 다짐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법관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 모두 과중한 업무 속에서 밤 늦게까지 때로는 휴일도 잊은 채 진실과 정의를 찾아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 원인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재야시절 느꼈던 한 가지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재판 간섭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이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형사재판이나 국회의원의 신분이 걸린 재판 등에서 특정사건이 다른 유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균형을 잃은 것으로 국민의 눈에 비쳐질 때, 국민들은 담당재판부가 필시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거나 그에 영합한 결과일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이것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오해한다고 한탄하거나 언론의 보도가 부정확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재판절차와 결론의 양면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하여야 합니다.
어느 분이 법원에는 칼도, 지갑도 없고 오직 공정한 판단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라고 하였습니다만, 법원이 부자의 돈지갑과 권력자의 칼 앞에서나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 앞에서나 똑같이 공평하다고 많은 사람이 느낄 때,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화답할 것입니다.
늘 음지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는 일반 직원 여러분, 여러분이 국민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법원을 위해 쏟은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각별한 애정과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법원을 떠나면서 법원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대법관의 임명과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대법원의 구성이 종래의 서열인사에서 벗어나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이는 또 정책법원으로서의 대법원 기능에 비추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 대법원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사회 일각에서 진보적, 개혁적 인물이 대법원에 대거 포진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이데올로기 대결 시대가 오래 전에 종언을 고한 마당에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섣불리 법관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단편적인 몇 개의 판결만으로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법철학을 쉽게 재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어느 자리에서 밝히신 것처럼 법관이 가장 우선하여야 할 가치기준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있을 대법관 임명에서도, 일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내세우는 몇 몇 법관들이,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여타 법관들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법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일할 의욕과 열의를 잃게 할 뿐 아니라, 법관들로 하여금 사건의 실체에서 벗어나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불릴 만한 판결을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여, 종국에는 사법권의 독립이 침해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저의 우려가 한갖 기우로 그쳤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흔히들 대법관을 선망의 자리라고 하지만, 그 화려해 보이는 커튼 뒤에서 저는 지난 5년여 동안 신이 아닌 인간이란 엄연한 한계를 지닌 저의 판단이 최종적인 법의 선언이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휴가는커녕 퇴근 후나 공휴일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 채 오로지 기록 속에만 파묻혀 일한 저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저의 부족한 능력과 식견으로, 과연 그 많은 사건을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처리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막상 법원을 떠나려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혹시라도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 정들었던 법원을 뒤로 하고 여러분과 작별을 해야겠습니다. 법원은 저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을 온통 쏟아 부었던 일터였고, 저의 고된 땀방울과 진한 추억이 녹아 있는 보금자리였기에 비록 몸은 떠나더라도 마음만은 늘 여러분 곁에 있고 싶습니다. 사법부의 무궁한 발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5. 11. 30.
대 법 관 배 기 원
저의 정년퇴임을 맞이하여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용훈 대법원장님과 바쁘신 가운데도 참석해 주신 동료 대법관 및 법관 그리고 일반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1970년에 법원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20년 가까이 법관으로 재직하다가, 법원을 떠난 후부터는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고향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고향 대구에서 변호사로 일하였습니다. 10년 넘게 변호사로 일하면서 저는 법원 문턱을 넘나드는 서민들의 숨결과 애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 석상에서 저는, 서민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그들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그들의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 줄 수 있어야만 법관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신뢰가 얻어질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제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체득한 생생한 삶의 현장의 목소리들을 이 땅의 최고법원에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 여의 세월을 돌아보니 이러한 포부와 다짐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법관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 모두 과중한 업무 속에서 밤 늦게까지 때로는 휴일도 잊은 채 진실과 정의를 찾아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 원인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재야시절 느꼈던 한 가지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재판 간섭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이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형사재판이나 국회의원의 신분이 걸린 재판 등에서 특정사건이 다른 유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균형을 잃은 것으로 국민의 눈에 비쳐질 때, 국민들은 담당재판부가 필시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거나 그에 영합한 결과일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이것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오해한다고 한탄하거나 언론의 보도가 부정확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재판절차와 결론의 양면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하여야 합니다.
어느 분이 법원에는 칼도, 지갑도 없고 오직 공정한 판단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라고 하였습니다만, 법원이 부자의 돈지갑과 권력자의 칼 앞에서나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 앞에서나 똑같이 공평하다고 많은 사람이 느낄 때,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화답할 것입니다.
늘 음지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는 일반 직원 여러분, 여러분이 국민을 위해 흘린 땀방울과 법원을 위해 쏟은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각별한 애정과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법원을 떠나면서 법원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대법관의 임명과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대법원의 구성이 종래의 서열인사에서 벗어나 다양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이는 또 정책법원으로서의 대법원 기능에 비추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 대법원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사회 일각에서 진보적, 개혁적 인물이 대법원에 대거 포진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이데올로기 대결 시대가 오래 전에 종언을 고한 마당에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섣불리 법관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단편적인 몇 개의 판결만으로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법철학을 쉽게 재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어느 자리에서 밝히신 것처럼 법관이 가장 우선하여야 할 가치기준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있을 대법관 임명에서도, 일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내세우는 몇 몇 법관들이,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여타 법관들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법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일할 의욕과 열의를 잃게 할 뿐 아니라, 법관들로 하여금 사건의 실체에서 벗어나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불릴 만한 판결을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여, 종국에는 사법권의 독립이 침해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저의 우려가 한갖 기우로 그쳤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흔히들 대법관을 선망의 자리라고 하지만, 그 화려해 보이는 커튼 뒤에서 저는 지난 5년여 동안 신이 아닌 인간이란 엄연한 한계를 지닌 저의 판단이 최종적인 법의 선언이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휴가는커녕 퇴근 후나 공휴일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 채 오로지 기록 속에만 파묻혀 일한 저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저의 부족한 능력과 식견으로, 과연 그 많은 사건을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처리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막상 법원을 떠나려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혹시라도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 정들었던 법원을 뒤로 하고 여러분과 작별을 해야겠습니다. 법원은 저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을 온통 쏟아 부었던 일터였고, 저의 고된 땀방울과 진한 추억이 녹아 있는 보금자리였기에 비록 몸은 떠나더라도 마음만은 늘 여러분 곁에 있고 싶습니다. 사법부의 무궁한 발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5. 11. 30.
대 법 관 배 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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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5년 여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쓴소리(?)라고들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