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법관이 바로서야 사법신뢰 바로선다(퍼온 글) + 퇴임사
2015.09.18 10:24
허욱 기자
▲민일영 대법관이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일선 법관의 노력이 사법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2층 중앙 홀에서 민일영(60·사법연수원10기) 대법관의 퇴임식이 열렸다. ‘사법 불신(不信)’을 고민하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32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는 사법부 최고 어른의 퇴임식 분위기는 다소 무겁고 엄숙했다.
오전 11시 정각. 옅은 미소를 머금은 민 대법관의 입장과 함께 퇴임식이 시작됐다. 민 대법관의 부인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도 남편 옆자리에 앉았다.
“최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신뢰도를 둘러 싸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가 처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으로 시작된 민 대법관의 퇴임사는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사법부 종사자 뿐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일선 법관이 당사자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결론을 내린 뒤 판결을 선고해 당사자를 승복하게 하는 것이 지름길”이란 애정 어린 충고로 이어졌다.
민 대법관은 “법관은 당사자가 법정에 섰을 때 느끼는 엄숙함, 재판장을 마주했을 때의 온화함, 논리정연한 진행 뒤에 내리는 합리적 결론, 이 세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며 “선배에겐 편안함, 동료에게는 믿음, 후배에게는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법관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대법원 중앙 홀의 높은 천장을 타고 조용히 울려 퍼졌다.
퇴임식에 참석한 양승태(67·2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 서울고법, 중앙지법원장 등 서울지역 각급 법원장의 얼굴에도 고민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민 대법관은 2009년 대법관 취임 때 밝혔던 다짐에 비춰 지난 6년을 돌아봤다. 그는 “국민이 대법관에게 부여한 소명과 책무를 열과 성을 다해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스스로 물어 보니 약속을 잘 지켰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고 했다.
민 대법관은 사법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고법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 연 말까지 대법원에 4만2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법관 12명과 재판연구관들이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벅찬 살인적인 수치다. 현재 상황으론 사법 신뢰를 언급하는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민 대법관은 “상고를 엄격히 제한하는 상고제한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상고법원이라도 도입해야 한다.직역 이기주의를 내세워 반대할 때가 아니다”며 국회에 계류중인 ‘상고법원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 대법관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첫 구절로 퇴임사를 마무리 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풀에 덮여 무성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그는 대법관 전원과 일일이 악수한 뒤 30여 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했다. 한 자리에 모인 최고 법관들은 민 대법관이 차량에 오를 때까지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 민일영 대법관이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동료 대법관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민 대법관은 6년 임기 동안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상고심 사건 주심을 여러 차례 맡았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파기 환송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 증거로 인정한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 등이 담긴 이 파일들은 원심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는 결정적 증거로 삼았다.
민 대법관은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도청이 문제된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 사건’ 전원합의체 주심을 맡아 유죄를 확정했고, 2012년 7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건에서 기지 건설을 반대한 일부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 들인 원심을 파기했다.
지난 6월에는 ‘외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여부를 묻는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노조를 설립할 권리가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민 대법관은 1983년 서울 민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고법 부장판사, 청주지법원장을 지낸 뒤 대법관에 올랐다.
‘대법관 민일영’은 ‘대쪽’같은 판사의 표상으로 꼽혔다. 법원 관계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도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을 관철한 분”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전원 합의 과정에서도 자신이 도출한 결론이나 과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꼿꼿한 법관이었다”고 했다.
법원 안팎에서 민 대법관은 민사집행법의 대가로 꼽힌다. 법원도서관장 시절 법원의 민사집행법 커뮤니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직 판사와 변호사들의 실무 교본격인 민법주해 발행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퇴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난 달 22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민사집행법 학회 세미나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민 대법관은 앞으로 2년 간 사법연수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사법 연구를 맡는 사법연수원 석좌 교수로 일할 예정이다. 후임인 이기택 후보자는 17일 오후 대법관에 취임한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6/20150916031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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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5. 9. 17.자)
“대법관 업무량 살인적…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처리못해”
민일영 대법관 퇴임… “상고법원 빨리 처리돼야”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이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민일영 대법관(<<60>>·사법연수원 10기·사진)은 1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대법관의 업무량을 ‘살인적’이라고 표현했다. 2009년 9월 취임한 민 대법관은 “현재 대법원 체제로는 사법 신뢰를 언급하는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대법관 생활 6년의 소회를 털어놨다. 올해 말까지 대법원에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 수는 4만2000여 건. 대법관 12명이 휴일 없이 일해도 1인당 1년에 350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민 대법관은 독일 미국 등 사법 선진국처럼 대법원 상고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이 최선이지만 상고 제한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 현실에서 상고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을 따로 담당하는 상고법원을 차선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상고법원 설치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민 대법관은 최근 1년 동안 하루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고 한다. 민 대법관의 집무실 책상에는 의자에 앉으면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사건 서류가 쌓여 있다. 그는 퇴임사에서 “직역이기주의를 내세워 반대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민 대법관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첫 구절인 “자, 이제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풀에 덮여 무성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를 인용하는 것으로 퇴임사를 마치고 3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임 후에는 2년 임기인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할 예정이다.
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50917/73674611/1#reply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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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 2015. 9. 17.자)
퇴임 민일영 대법관 `귀거래사`
"취미생활하고 베풀라" 후배법관들에게 당부
민일영 대법관(60·사법연수원 10기·사진)이 3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동안 두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홀가분하게 법원 문을 나서며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귀거래혜(歸去來兮·자, 이제 돌아가자) 전원장무호불귀(田園將蕪胡不歸·고향 전원이 풀에 덮여 무성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고 언급하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인용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이 공직을 떠나는 마음을 밝힌 것이다.
민 대법관은 대법관 임기 6년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 대해 주변에 감사의 뜻도 전했다. 그는 "지난 1월 1일 양승태 대법원장(67·2기)을 모시고 대관령 능경봉으로 신년 일출산행을 갔을 때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동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천지신명께 '9월 16일까지 대법관으로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영광스럽게 퇴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민 대법관은 후배들에게 "무미건조함에서 탈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창극, 오페라, 뮤지컬, 음악회, 발레, 전시회, 영화, 연극, 박물관 탐방, 여행 등 무엇이든 좋으니 1주일에 두 시간만 투자해 취미생활을 하라"고 했다. 또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조금이나마 베풀 줄도 아는 훈훈함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 대법관은 지난 6년간 매달 한 번씩 서울 종로구 원각사에서 무의탁·노숙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해왔다.
민 대법관은 "국회에 계류 중인 '상고법원안'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대법원에 대략 4만2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가히 살인적"이라며 "대법관들과 재판연구관들이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길을 찾아야 한다"며 상고법원안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민 대법관은 퇴임 후 2년 임기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연구와 후배 법조인 양성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김세웅 기자]
출처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895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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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5. 9. 17.자)
퇴임 민일영 대법관 "판사는 당사자 말 성심껏 들어야"
재판연구관, 비서관 이름 일일이 부르며 고마움 표시 '신선'
“당사자의 말을 성심을 다하여 들을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신(神)이 아닌 이상 설사 100% 적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민일영(60·사진) 대법관이 후배 판사들에게 ‘청송(聽訟)’의 자세를 주문했다. 청송이란 다산 정약용이 “송사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은 성의를 다하는 데 있다(聽訟之本 在於誠意)”라고 말한 것에서 인용한 표현으로, 재판의 핵심은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란 뜻을 담고 있다.
민 대법관은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림 퇴임식에서 “일선에서 재판에 임하는 법관들로서는 성의를 다하여 당사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결론을 내린 후 어법에 맞고 알기 쉽게 작성한 판결문으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승복케 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들 얘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 내린 판결만이 당사자들의 승복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무릇 판사는 재판장을 처음 보았을 때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 재판장을 마주하였을 때 피부로 느끼는 온화함, 논리정연한 진행 후에 내리는 합리적인 결론,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추고 법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덕목을 갖춤으로써 모름지기 ‘선배에게는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는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는 본보기가 되는 법조인’이 되길 바란다”고 젊은 법관들에게 당부했다.
민 대법관은 후배 법조인들에게 다양한 취미를 갖고 즐길 것도 조언했다. “‘법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무미건조함’이 아닐까 합니다. … 저는 등산도 하고, 판소리도 배우고, 서예도 배우고 하였지만 이런 것에 국한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창극, 오페라, 뮤지컬, 음악회, 발레, 전시회, 영화, 연극, 박물관 탐방, 여행 등등 우리 주변에는 무미건조한 법조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널려 있습니다. 1주일에 두 시간만 투자를 하십시오.”
대법관으로 재직한 6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재판연구관과 비서관의 이름까지 일일이 거명하며 고마움을 표시한 것은 매우 신선했다는 평이다. 민 대법관은 “저의 머리와 손과 발이 되어 충심으로 저를 도와주신 신동훈 부장판사님 등 연구관님들, 김인숙 비서관님을 비롯한 비서실 식구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각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해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민 대법관은 지난 2월 신영철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 7개월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에 이은 대법원의 ‘2인자’ 역할을 하면서 사법부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주심을 맡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3대 0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혼의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쟁점이 사건 상고심에서는 전원합의체 표결이 7대 6으로 엇갈린 상황에서 파탄주의를 지지하는 소수의견에 가담했다. 이 사건 선고는 민 대법관이 대법원에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선고가 됐다.
경기 여주가 고향인 민 대법관은 경복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78년 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판사로 임용된 뒤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법원장을 거쳐 2009년 대법관에 취임했다. 탈북자 인권운동으로 유명한 박선영(59) 동국대 교수가 부인이다. 민 대법관은 퇴임 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옮겨 2년간 예비 법조인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출처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9/16/20150916002373.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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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민일영 전 대법관 청조근정훈장 서훈
(서울=뉴스1) -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퇴임대법관 서훈 및 신임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청와대에서 민일영 전 대법관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서훈하고 있다. (청와대) 2015.9.17/뉴스1
민일영 전 대법관과 기념촬영하는 박근혜 대통령 | |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퇴임대법관 서훈 및 신임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청와대에서 민일영 전 대법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09.17.
이 신임 대법관은 민 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됐으나 지난달 28일 정부 특수활동비 공개 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국회 본회의 소집이 무산되면서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다 지난 8일 본회의에서야 통과됐다.
이날 행사에는 신임 및 퇴임 대법관의 부인도 참석했으며, 박 대통령은 행사 후 이들과 잠시 환담했다.
민 전 대법관의 부인은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선영 전 의원으로, 박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때는 박 대통령의 북한인권 특보를 맡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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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 임 사
지난 1월 1일 새벽 대법원장님을 모시고 법원산악회에서 대관령 능경봉으로 신년 일출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동해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9월 16일까지 대법관으로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영광스럽게 퇴임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말입니다. 그 기도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오늘 저는 지난 32년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러한 영광스럽고 귀한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해 주신 존경하는 대법원장님과 여러 대법관님을 비롯한 법원 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진심 어린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6년간 대법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지근거리에서 저의 머리와 손과 발이 되어 충심으로 저를 도와주신 신동훈 부장판사님을 비롯한 전속조와 공동조의 재판연구관님들, 김인숙 비서관님을 비롯한 비서실 식구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각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아울러, 처음 법관으로 임용된 이래 지금까지 오랜 기간 묵묵히 저를 믿고 따라준 가족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진정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가족들의 후원이야말로 저의 법관생활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목이었습니다.
저는 6년 전인 2009. 9. 17. 대법관으로 취임하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송사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은 성의를 다하는 데 있다(聽訟之本 在於誠意)’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국민이 대법관에게 부여한 소명과 책무를 열과 성을 다하여 수행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취임 당시의 약속을 잘 지켰냐고 스스로에게 자문할 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람풍(風)자를 놓고 나이 든 훈장님은 ‘바담풍’이라고 읽더라도 어린 학동은 ‘바람풍’이라고 읽어야 하듯이, 저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청송지본은 재어성의’라는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드리고자 합니다.
무릇 재판은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 핵심이어서 청송(聽訟)이라고 하였고, 그 청송을 함에 있어서는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의 말을 성심을 다하여 들을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신(神)이 아닌 이상 설사 100% 적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이처럼 성심을 다하여 들은 후 판단을 옳게 함에 있어서는 ‘공자명강(公慈明剛)’이 요구됩니다. 공정함, 자애로움, 명백함, 그리고 굳셈이 그것입니다. 공정하면 치우치지 않고, 자애로우면 모질지 않으며, 명백하면 능히 환히 밝힐 수 있고, 굳세면 단안을 내릴 수 있습니다(公則不偏 慈則不刻 明則能照 剛則能斷). 공정을 잃은 자애는 봐주기나 편들기가 되고, 명백하지도 않은 채 굳세기만 하면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게 됩니다. 실로 법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할 것입니다.
근래 우리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하여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일선에서 재판에 임하는 법관들이 성의를 다하여 당사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결론을 내린 후, 어법에 맞고 알기 쉽게 작성한 판결문으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승복케 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당사자들이 재판을 받기 위하여 법정에 들어서서 재판장을 처음 보았을 때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 법대 앞에서 재판장을 마주하였을 때 피부로 느끼는 온화함, 논리정연한 진행 후에 내리는 합리적인 결론(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慮), 무릇 법대 위에 앉은 판관은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추고 법정을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덕목을 갖춤으로써 모름지기 ‘선배에게는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는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는 본보기가 되는(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법조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 이처럼 법관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 못지 않게 사법제도 또한 이를 뒷받침하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법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하급심 심리강화방안은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사건 증가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대법원에 대략 42,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대법관 12인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수치입니다. 가히 살인적입니다. 대법관들과 재판연구관들이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해도 이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사법 신뢰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고 국민의 권리를 적정하게 구제하기 위하여는 선진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상고제한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딱한 현실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고법원안’만이라도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 제기하듯이 직역이기주의를 내세워 반대할 때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길을 찾아야 합니다.
존경하는 법원가족 여러분,
‘법조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무미건조함’이 아닐까 합니다.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사건기록과 씨름하고 늦게 퇴근해서는 TV나 보다가 잠을 청하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무미건조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취미생활을 할 것을 권해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등산도 하고, 판소리도 배우고, 서예도 배우고 하였지만, 이런 것에 국한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창극, 오페라, 뮤지컬, 음악회, 발레, 전시회, 영화, 연극, 박물관 탐방, 여행... 등등 우리 주변에는 무미건조한 법조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널려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1주일에 두 시간만 투자를 하십시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취미생활과 아울러, 우리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가 나날이 각박해지면서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조금이나마 베풀 줄도 아는 훈훈함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는 바뀐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는 현재의 위치에서 재발견되고 재해석되며 재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돌이켜 본 저의 지난 32년은, 법정 안에서는 헌법따라 법률따라 양심따라, 법정 밖에서는 산따라 길따라 마음따라 지내온 여정으로 떠오릅니다. 저의 지나온 법원생활이 보람 있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재해석되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것은 제가 법관으로서 최고의 영예로운 지위인 대법관이라는 자리에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두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홀가분하게 법원 문을 나서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자, 이제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풀에 덮여 무성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그동안 저를 아껴 주신 법원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5. 9. 16.
대법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