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점이라도 보러 갈까

조회 수 97 추천 수 0 2020.05.25 15:56:34

  

  경자년 윤사월의 초하루(2020. 5. 23.)이다.

 

   윤사월이 되어 해가 길어졌다고 꾀꼬리가 울어대면,

   산지기 외딴집의 눈먼 처녀는 문설주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엿듣는다고 했던가.

 

   봄이 왔나 했더니 5월 초에 벌써 낮 최고기온이 전국적으로 28도를 웃돌아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계속되는 바람에 한반도에서 마침내 봄이 사라졌구나 했다.

그런데 웬걸, 5월 중순이 되면서 오히려 기온이 낮아져 입하(立夏)는 물론 소만(小滿)이 지나도록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하고, 22일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16-25도를 기록해 평년(1981-2010) 이맘때보다 1-5도 낮은 색다른 이상기후(?)가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봄이 물러가려다 되돌아온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더하여 미세 먼지도 크게 줄고, 봄의 불청객인 황사도 찾아오지 않아 마치 청명한 가을인 듯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서 하늘이 축복을 내려 주는 걸까.

 

   신문기사를 보니 기상전문가들은 이런 날씨가 이어지는 원인으로,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 차가운 베링해에서 시작되는 저기압으로 밀려 내려온 찬 공기와 변덕스러운 기단(공기 덩어리)의 움직임, 내몽골의 황사 발생 감소, 코로나 사태로 인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오염물질 배출 감소 등 세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3/2020052300041.html). 아래가 그 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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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의 분석이야 그렇다 치고, 범부의 입장에서는 아무튼 청명하고 선선한 날씨가 반갑기만 하다. 덕분에 아침 우면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한강 너머 남산은 물론 북한산까지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서울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서는 한낮에 북으로 북악산과 그 산밑에 자리한 경복궁, 동으로 청계천, 남으로 시청 등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선명한 자태를 뽐내는 풍경을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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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기 외딴집의 눈먼 처녀는 꾀꼬리 울음소리를 엿듣고 가슴이 설레지만, 그동안 온갖 공해에 찌든 도심 속에서 살아온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예기치 못한 날씨의 축복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일찍이 이런 봄날 풍경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작년 12월에 처음 발생한 지 6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53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생기고 사망자가 34만 명에 이르고 있다. 최초 발생 원인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구과잉, 환경 오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가 자정(自淨)작용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는 것이다. 15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유럽 인구의 30% 사망),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전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 사망), 그리고 작금의 코로나19 모두 지구가 더이상 못 참겠다고 비명을 지를 때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공장이 멈춰서고, 비행기와 자동차가 안 다니고, 사람들이 집 밖을 안 나가다 보니 공기가 깨끗해져, 서울의 우면산에서 북한산이 보이듯이, 인도에서는 히말라야가 보이고, 중국에서는 천산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껏 BC(Before Christ)AD(Anno Domini)로 해 온 시대구분을 이제는 BC(Before Corona)AC(After Corona)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코로나 발생 원인에 관한 지구자정설(地球自淨說)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매사 엉클어지고 망가지다 보면 막판에 가서는 복원을 위한 자정기능이 발동하며, 그것이 세상사라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의 정치판에서는 한때 폐족임을 자인했던 정당이 부활하여 집권당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한때 집권당의 위세를 내세우며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으스대던 정당은 거의 궤멸 수준으로 전락하였는데, 이 또한 앞으로 자정기능이 발동하여 재기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게 마련이고, 그 바퀴를 누가 얼마나 잘 굴리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정해질 것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극복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벌써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범부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 나라의 모습은 그 와중에 어떻게 달라질까 못내 궁금하다. 그 그림을 그릴 능력이 전혀 없는 촌부는 점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걸까?

   하늘은 청명한데, 윤미향 사태에 더하여 한명숙 사건을 전하는 신문기사를 접하는 촌부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촌부만 그런 건가.         


(후기) 이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난 2020. 5. 28. 한양대학교의 정민 교수가 신문에 쓴 '우수운산(雨收雲散)'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7/2020052704698.html).  극히 공감이 가는 글인지라 여기에 그 일부를 옮긴다.   

  

(前略) ...원나라 무명씨의 '벽도화(碧桃花)'에도 이런 시가 나온다.

"우렛소리 크게 울려 산천을 진동하니, 이때 누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길 기다려선, 흉도(凶徒)와 악당들은 또 앞서와 똑같으리(雷聲響亮振山川, 此際何人不怕天? 剛待雨收雲散後, 凶徒惡黨又依然)."

악당들이 천둥 번개가 꽝꽝 칠 때는 하늘이 두려워 쩔쩔매다가, 잠시 후 비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말짱하게 온갖 못된 짓을 계속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원경하(元景夏)는 '영성월(詠星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에 뜬 밝은 별 반짝반짝 빛나다가, 흐린 구름 문득 덮자 어두워 별도 없네. 나그네 방 삼경에 빗기운 캄캄해서, 숲 끝에 보이느니 반딧불이 몇 개뿐. 비 걷히고 구름 흩어지자 별이 다시 나와서는, 반디 불빛 스러지고 산 달만 환하더라(明星出天光炯炯, 陰雲忽蔽暗無星. 客堂三更雨冥冥, 林梢唯看數點螢. 雨收雲散星復出, 螢光自滅山月明)."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의 별을 지웠다. 어두운 숲에는 반딧불이 몇 마리만 보인다. 이윽고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자 가렸 던 달이 제 빛을 찾아, 천지는 광명한 본래 모습을 문득 되찾았다.

(中略)...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면 가렸던 달빛이 다시 환해질까? 아니면 못된 무리가 면죄부를 받고서 다시 횡행하는 세상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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