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海)(수성동계곡)

2017.10.22 18:54

우민거사 조회 수:10000

 

 

               상전벽해(桑田碧海)

 

 

옛날에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십년은 고사하고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렇게 빠르고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45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면 무슨 봉창 뜯는 소리냐고 질책받기 십상일지 모르겠다.

 

범부가 다니던(1971년-1974년) 경복고등학교는 자리한 곳이 종로구 청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교련시간에 M1 소총을 들고 종종 자하문이 있는 세검정 고갯마루까지 구보를 하곤 했다.

더운 여름에 그 무거운 소총을 들고 그곳까지 뛰어 가려면 입에 단내가 나곤 했지만,

서슬 퍼런 교관 선생님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힘들여 세검정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왼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보였으니,

바로 옥인동 시범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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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의 옥인동 시범아파트]

 

이 아파트는 인왕산 중턱에 자리한 까닭에 전망이 좋은데다 당시로서는 첨단을 걷는 현대식의 멋진 주거지였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서울에 넘쳐나지만 당시에는 아직 아파트 붐이 일어나기 전이라 희소성까지 있었다. 그랬던 이 아파트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마침내 철거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일이 일어난다.

 

먼저 아래 사진의 안내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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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위 안내문에 나오는 정선의 수성동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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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 그림 수성동 모습]

 

정선의 위와 같은 그림이 아닌 현재의 아래와 같은 실제 모습을 보면 상전벽해가 더욱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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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4일의 수성동 계곡]
 
이 수성동 계곡에 불과 5년 전인 2012년까지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직접 그 아파트를 보았던 촌부도 지난 주말(14일)에 직접 가서 보고 제 눈을 의심했는데, 하물며 이곳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하기 십상이다.

 
촌부가 이곳을 찾기 며칠 전 비가 내린 후 이어진 청명한 날씨 덕에 가을 하늘이 파랗게 열린 가운데,

높은 산, 맑은 물, 흰 구름이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계곡을 찾은 즐거움의 표현을 문득 떠오른 옛시조 한 수로 갈음하여 본다.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물이 하 맑으니 고기를 헤리로다
     백운이 내 벗이라 오락가락 하누나 


이야기가 길어졌다.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이 본래의 모습을 자꾸 잃어가고 있던 차에

그 역발상으로 행하여진 ‘옛모습 찾기’가 실로 반가워서 자세히 쓰다 보니 그리 되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수성동 계곡을 되찾은 것을 서울시민의 홍복(洪福)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일세를 풍미하던 인걸(人傑)은 간 데 없어도 산천은 여전히 의구(依舊)하여야 하는 건데,

인걸 따라 산천이 변모하고 심하게 훼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성동 계곡의 변모야말로 더 없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참고로 이곳을 가려면, 경복궁의 서쪽인 서촌에 가서 박노수미술관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