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고기는 남길지언정 죽은 남기지 말라
                 (此肉可殘 此粥不可殘)


    2018년 무술년을 맞아 1월 7일 계방산을 오른 것을 필두로 3월 3일 함백산을 오르기까지 올 겨울에 남한의 1,500m 이상 되는 아홉 개 고산 중 다섯 개를 올랐다. 날짜별로 차례로 적으면,

       1.7.  계방산(1,577m)(5위)
       1.13. 오대산(1,563m)(8위)
       2.3.  태백산(1,567m)(7위)
       2.10. 덕유산(1,614m)(4위)
       3.3.  함백산(1,573m)(6위)
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순위 삼총사인 1위 한라산(1,950m), 2위 지리산(1.915m), 3위 설악산(1,708m)은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에는 벅차고, 9위 가리왕산(1,561m)은 중봉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알파인스키 활강경기가 열려 이번 설산등반의 대상에서 뺐다.


정상.jpg

           (2018. 1. 7. 계방산)      


비로봉.jpg

           (2018. 1. 13. 오대산)



천제단.jpg

              (2018. 2. 3. 태백산)


덕유산3.jpg                          (2018. 2. 10. 덕유산)


      이번에 오른 다섯 개의 산들이 모두 초행이 아닌 익숙한 곳이지만, 이번처럼 짧은 기간에 몰아서 연이어 오른 것은 처음이었고, 그 산들이 주는 느낌이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감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만일 그러하다면 다소 서글픈 일이다. 


     함백산은 2011. 12. 10.에 처음 오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당시에는 법원산악회원들과  두문동재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거쳐 만항재로 하산하려고 계획했다가, 많은 눈으로 두문동재가 막혀 그 역순으로 만항재에서 출발했었다.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번만큼은 두문동재에서부터 오르리라고 마음먹고 호기 있게 두문동재로 갔다. 사실 고개 이름에 얽힌 유래가 흥미를 끌었던 것도 이곳을 시발점으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고려의 유신들이 이곳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와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이로부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본래 두문불출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杜門洞의 원조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이다. 이성계는 이들을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으나 그 안에 있던 72명의 고려 유신 모두 불에 타죽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고려의 많은 유신들이 이처럼 산골에 은거함에 따라 두문동이라고 부르는 곳이 여럿 생겨났고, 정선의 이곳도 그 중 하나이다).


      그나저나 폼을 잡고 두문동재로 가긴 했는데... 동행한 복석회 도반들(춘수, 문규, 병욱)에게 그만 머쓱해 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두문동터널.jpg

            [두문동재 터널]


      춘수가 운전한 차로 두문동재 터널 앞의 공터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행장을 꾸려 산행을 시작한 것이 오전 10시 30분. 터널 앞의 도로표지판에는 이곳이 두문동재의 정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두문동재에 뚫린 터널로 이 고개를 넘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터널이 생기기 전의 구 도로를 따라 고갯마루에 다다르려면 이곳에서부터 굽이굽이 걸어서 한 시간 더 올라가야 한다.

    그 길도 자동차가 다닐 수는 있는데, 이 날은 눈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쌓여 있어 차량통행이 불가능했고, 결국 속절없이 걸어가야 했다(이곳은 눈이 많이 와 겨울만 되면 거의 늘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해발 1,268m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친 촌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길.jpg

       [두문동재 정상으로 올라가는 눈길]


      마침 앞서 간 일행들이 눈 위에 길을 내놔 그 자국을 따라 걸었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걸었으면 헷갈렸을 텐데 다행히 일직선으로 걸어가 따라가기가 쉬웠다. 조선 후기의 문신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이 읊은 그대로이다(이 시는 왕왕 서산대사가 지은 것으로 인용되곤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두문동재의 진짜 정상까지는 500m 정도밖에 안 되고, 빨리 가려고 도로를 벗어나 질러가기도 했는데도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헤치고 나간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도착한 고갯마루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백두대간 두문동재 해발 1,268m’라고 씌어 있다). 표지석을 경계로 이제껏 올라온 쪽은 정선군, 반대편은 태백시에 속한다.


두문동재.jpg

          [두문동재 정상]


     숨이 가쁘게 올라왔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함백산 정상을 향해 등정을 시작한다는 설렘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등산로 입구로 갔는데, 아뿔싸, 다리가 탁 풀리게 하는 플래카드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 3월 2일부로 입산을 통제한다는 것이다(5.15.까지 산불방지기간이다). 
“아악 어제부터~~”
플래카드 뒤로 눈이 하얗게 덮인 등산로에는 발자국 하나 없다. 겨우내인지, 아니면 며칠 전 대설이 내린 이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무도 안 다닌 것이다.


입산통제.jpg


     한숨을 내쉬며 낙담해 있는데, 고갯마루에 있는 간이식당 겸 찻집의 주인아저씨가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위로하며 가로되,


“입산통제가 아니더라도 눈이 너무 많이 쌓인 데다, 바람으로 그 눈들이 이동을 하여 어디가 등산로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 어차피 등산이 힘들어요. 앞서 간 사람들이 있어 길을 내놓았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지금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것은 무리예요. 차라리 맞은편의 금대봉(1,418m)으로 가세요. 그쪽은 조금 전에 30 명이 올라가서 길이 나 있을 거예요.”


      이 친절한 아저씨의 식당 겸 찻집 앞에는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봉고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과연 깊고 깊은 산골의 두문동재다웠다. 자의든 타의든 말 그대로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그리운 듯 이 아저씨는 이런저런 산행정보를 들려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찻집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쁜 탓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설왕설래 끝에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 두문동재 터널 앞에 세워 둔 자동차로 갔다. 만항재로 이동하여 그쪽에서 오르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 앞으로도 눈이 많은 겨울에 두문동재에서 출발하여 함백산 정상으로 오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듯하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지라 만항재 가는 길에 길옆 식당에서 “곤드레밥+고등어찜”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만항재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등산로 입구에 주차를 하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만항재의 높이가 해발 1,330m나 되는지라(남한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이다) 함백산 정상과는 표고차가 243m밖에 안 된다. 그래서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이 빤히 보인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 치고는 참으로 넉넉하게 생겼다. 마치 엄마의 젖가슴처럼 푸근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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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항재에서 바라본 함백산 정상]

 

      이 빤히 보이는 정상까지 가는데 2시간 남짓 걸린다. 그것도 숨이 가쁘게 몰아쉬면서 가야 한다. 처음부터 이쪽으로 왔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쉬엄쉬엄 올라가련만 두문동재 쪽에서 시간을 허비한 죄가 크다. 그나마 이곳이 초행인 도반들이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제대로 된 설산등반을 해 본다고 좋아해 다행이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중간에 기원단(祈願壇)이 있어 산객의 발검을 멈추게 한다. 태백산 천제단이 임금님이 국태민안을 빌며 천제를 지내던 곳이라면, 이 함백산 기원단은 일반 백성들이 소박하게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 탄광이 많기로 유명했던 함백산에서 석탄을 캐던 시절에는 광부 가족들이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안녕을 빌던 곳이기도 하다. 그 시절 도시인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말없이 스러져 간 광부들의 혼백이 서린 듯하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기원단.jpg                      [기원단]


       두문동재 쪽은 북사면이라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만항재 쪽은 남사면이라 정상으로 오를수록 눈이 많이 녹아 길이 질퍽했다. 더구나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진 오후라 더욱 그러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0.6도씩 내려간다고 배웠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눈이 더 녹은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게다가 올라갈수록 바람까지 세차게 부는데...

  

      오후 3시 30분 정상에 도착했다. 3월 초에 함백산 같은 높은 산에서는 상당히 늦은 시각이다. 그래서인지 등산객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번 겨울에 올라갔던 산들마다 정상이 시장바닥 같았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덕분에 인증사진을 여유 있게 찍고, 주변 경치를 찬찬히 즐길 수 있었다. 다만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데다 함백산의 유명한 거친 바람으로 추위가 엄습해 와(정상에 오르며 흘린 땀으로 속옷이 축축한데 바람이 강하게 부니 한기가 금방 몰려왔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하산을 재촉해야 했다.


정상1.jpg                  [함백산 정상]

 

       산에 자주 다니다 보면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가는 것만큼은 피하려는 게 산객들의 속성인데, 이날은 어쩔 수가 없었다. 2011년 12월의 초행 때처럼 북사면으로 내려가다 적조암으로 빠지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시간이 없다는 도반들의 반대에 묻혀버렸다.  


       만항재까지의 하산길은 1시간 30분 걸렸다. 못골찜질방에 들러 목욕을 하고, 만항할매닭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이후의 일정은 초행 때의 반복이었다. 이 식당의 백숙(닭이든 오리이든)은 가히 일품이다. 이번에는 녹두오리백숙으로 포식을 하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당부하듯 강조하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고기는 남겨도 좋으니 죽은 남기지 말고 꼭 다 드세요. 죽이 영양의 보고예요!”


구한말인 1895년에 단발령(斷髮令)이 발령되었을 때 유생들이 이에 반대하며 외친 구호인 “此頭可斷 此髮不可斷(차두가단 차발불가단. 내 목은 자를지언정 내 두발은 자를 수 없다)”을 연상케 한다. 어찌 이를 원용하지 않으리오.


“此肉可殘 此粥不可殘(차육가잔 차죽불가잔. 고기는 남길지언정 죽은 남기지 말라)”


(끝) 






댓글 '1'

권광중

2018.03.11 11:27:15
*.239.127.57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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