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서울둘레길 중 봉산-가양역 길)
2017.05.15 10:37
존경하는 옥봉선사님께,
한 해의 나머지 열한 달을 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겠다는 5월입니다.
그만큼 신록을 자랑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5월인데, 정작 요새는 툭하면 하늘이 황사와 미세먼지로 뒤덮여 외출을 자제하라는 신문 방송의 보도를 접해야 하니 이 무슨 변괴입니까? 그 하늘이 어제 내린 비로 오늘(14일)은 모처럼 맑아져 다행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맑아진 것이 다행’이라고 표현하고 보니 어째 본말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하늘이 맑은 것은 ‘다행’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금수강산에 사는 것을 자랑하던 우리가 어쩌다 ‘맑은 하늘’을 ‘다행’으로 받아들이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나요?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사태로 인하여 갑자기 치러진 선거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어 취임하는 것에 맞추기라도 하듯 맑아진 하늘을 보면서, 새로 출범하는 정권에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이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하는 데 역량을 쏟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선사님,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촌부가 속해 있는 소오름산우회에서 2014년 2월부터 서울들레길을 걷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로부터 두세 달에 한번 씩 걸었지요.
그리고 지난 대통령선거일(9일)에 투표를 마친 후 서오릉 입구 벌고개에서 출발하여 13km를 걸어 가양역에 도착함으로써 총 157km에 이르는 둘레길을 마침내 완주하였답니다.
벌고개는 은평구 갈현동 서쪽 끝의 궁말에서 고양시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는 풍수지리상 덕종(성종임금의 아버지)과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의 우청룡에 해당하는데, 지반이 낮고 약하여 사람이 다니면 더욱 낮아질 염려가 있다 하여 통행을 금지하고 만일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큰 벌을 주었기 때문에 벌(罰)고개라고 불렸다는군요.
또 다른 이야기로는, 숙종이 별세하자 능 자리를 서오릉으로 정하고 지관이 하관 담당자에게 이 고개를 넘어 하관을 하라고 하였으나, 하관 담당자가 이를 어기고 고개를 넘기 전에 하관을 하자 하늘이 노하여 천둥번개가 치고 무수한 벌떼가 나타나 하관 담당자를 쏘아 죽였다 해서 벌(蜂)고개라고 한다고 한답니다. 벌(蜂)에 쏘이는 벌(罰)을 받았으니 이래저래 벌고개가 맞네요.
벌고개를 출발하면 이내 봉산입니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산(烽山)이라고 불리지요. 이 산에서 봉화가 올라가면 무악재에서 이를 받아 다시 봉화를 올렸다고 하네요. 산이 높지는 않은데(해발 208m) 품이 제법 넓더군요.
그런데 환갑이 넘도록 5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 그동안 산을 수도 없이 다녔으면서, 이 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서울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랍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가 따로 없지요.
[봉산 정상의 봉수대]
봉산의 능선에 서면 북한산이 지척에 빤히 보이는데,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로 윤곽만 눈에 들어오더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산행 시작 전에 약국에서 3,000원 주고 산 황사마스크를 착용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산에 오르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이젠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습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북한산]
[산에 가서 마스크라니...]
봉산에서 내려와 증산역 부근 불광천 쪽으로 가려는데 비가 쏟아졌습니다. 정말 반가운 비였지요. 깔끔하게 정비된 불광천을 따라 길을 낸 산책로(이 길도 서울둘레길의 일부입니다)가 비를 맞으니까 신록에 감싸여 운치가 있었습니다.
불광천에 사는 커다란 잉어들도 비를 반기는 듯 힘차게 헤엄치더군요. 비록 솔개는 없어도 연비어약(鳶飛魚躍) 그 자체였지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는 빗방울이 더욱 굵어져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하였지만, 그럴수록 기분은 좋았습니다. 미세먼지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 공기가 맑아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미세먼지농도가 봉산에서 280μg/m3(우리나라 기준치는 100μg/m3)이나 되었던 것이 비가 오는 월드컵경기장에서는 120μg/m3까지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든지 휴대폰으로 미세먼지농도를 확인할 수 있답니다. 좋은 세상이지요. 그에 비례하여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월드컴공원 앞으로 해서 난지도에 이르니까 메타세콰이어길이 객을 맞이하더이다.
쓰레기매립장이었던 난지도를 공원화하면서 심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이 길은 봄비 속에서 싱그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오니까 비포장임에도 먼지도 안 나 걷기에 안성맞춤이었지요. 거기에 그 비로 인해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는 호젓함은 덤으로 주어진 즐거움이었답니다.
[난지도 메타세콰이어길]
서울둘레길은 난지도에서 가양대교로 이어집니다.
다리 아래 한강둔치에서 다리 상판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더군요. 한강에 놓인 다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보기는 처음입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가양대교에서 바라보이는 한강의 풍경이 물안개(구름?) 속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더이다.
[비 오는 가양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하류의 모습]
사법연수원으로의 출퇴근 시에 운전하여 이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그 때마다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들이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나?’ 하고 의아해했지요. 그런 다리를 정작 소생이 비를 맞으며 걸어서 건널 줄은 몰랐네요.
차를 타고 소생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소생 일행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니 저 사람들은 이 비를 맞으며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고 있네. 정신 나간 거 아냐?’하고 되뇌지는 않았을까요?
오후 5시경 가양역에 도착하여 함께 서울둘레길 걷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손뼉맞장구(하이파이브)를 쳤습니다.
[가양역]
돌이켜보면 157km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소오름산우회의 약속된 날짜에 피치 못할 일이 생겨 빠지게 되면 혼자서라도 그 구간을 보충해야했지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없거나, 있어도 제 구실을 못하는 이정표는 왜 그리도 많은지요. 그에 더하여 도중에 주택가를 지나야 하는 구간까지 나오면 짜증이 나, 좀 더 세심하게 둘레길을 조성하지 않은 서울시 관계자들을 원망하기도 했지요. 흔히 하는 말로 ‘2% 부족’이 적지 않았습니다.
복지경에 땀을 뻘뻘 흘리거나 엄동설한에 곱은 손을 호호 불며 걸으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같은 법조인들로서 우연히 한 동네(방배동) 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마음이 통해 산에서 오랜 기간 고락을 함께 한다는 데 방점을 찍는 순간,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 것이랍니다.
그러기에 그 길은 술 익는 마을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길이었고, 그 길을 가는 길손들은 너나없이 도반(道伴)이 되었지요.
소오름산우회의 도반으로 서울둘레길을 동행하신 목연대공(박태종), 성산대형(손기식), 예산대사(홍경식), 일청선생(구욱서), 원봉선사(노환균), 운문선사(박성재)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네요.
이제 그 도반들과 함께 새로운 꿈을 꿀 때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서 말입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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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생각날때면 살따라 길따라가 있어서 좋아요,
저도 14일 마침 하늘공원산책하고, 난지도 메타세콰이어길은 맨발로 걷기도 했습니다.
157km 이르는 서울 둘레길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저도 서울 둘레길 새로운 목표로 무조건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 안부인사 자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고 싶은 곳 좋은 정보들이 이곳 " 산따라 길따라 " 창고에서 하나 하나 열어볼것입니다.
교수님 계속적으로 건강관리도 잘하시면서 지금처럼 멋진모습 오래 오래 보여주셔요 ^^
차분 경쾌 기운솟게 하는 음악도 잘 듣고 퇴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