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예찬(관악산 육봉능선)

2017.05.02 22:52

우민거사 조회 수:9425


벗 구암에게,

 

벗이여,

 

작년 가을에 한 조각 글을 띄운 후 이제야 다시 소식을 전함을 용서하시게.

그대가 이제는 바퀴의자(휠체어)를 탄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네.
그렇게도 건강하여 나의 부러움을 사던 그대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렀나?
지리산, 월출산, 오대산 등반 시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범부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네. 
기력이 회복되면 다시 함께 산에 가자고 했던 약속 잊지 않았겠지?
그 전까지는 범부가 그대의 몫까지 해야 할까 보이.
그나마 전화 속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가웠네.

 

벗이여,

 

촌자는 지난 주말(2017. 4. 29.)에 관악산 육봉(六峰)능선을 다녀왔다네. 관악산의 여러 등산로 중 가장 험한 암릉(암봉이 이어지는 능선)이어서 찾는 이가 적은 곳이지. 촌자도 그동안 벼르기만 하였지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마음을 크게(?) 냈다네.
우리나라 산 중 이름깨나 알려진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암릉이 있기 마련이고, 그 암릉에는 등산객의 편의 및 안전을 위하여 대개 철제 계단이나 밧줄을 설치하여 놓는데, 관악산 육봉능선에는 그런 시설물이 일체 없다네.
그래서 바위의 돌출부위나 틈새를 이용하여, 온전히 두 손과 두 발로 오르고 내려야 한다네. 이따금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있어 커다란 도움을 받기도 하지. 깎아지른 암벽과 씨름하느라 수시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을 빼야 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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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험한 등산로가 바로 관악산 육봉능선인데, 그렇게 힘들게 오르는 만큼 정말 아름다운 비경을 즐길 수 있다네.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 핀 매화가 더욱 아름답고,

풍상이 섞어 친 날에 절개를 굽히지 않고 핀 황국이 우리네 눈길을 사로잡듯,

힘든 고비를 넘기고 넘길수록 그 후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법 아니겠나.

실제로도 멋지지만,

고생 끝에 찾아오는 즐거움이 안도의 한숨에 배가되어 더욱 절경으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을 떠올리며 그야말로 ‘신록(新綠)’을 만끽했다네.

 

   나날이 푸러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중략)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慾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주객 일체(主客一體), 물심 일여(物心一如)라 할까, (이양하의 신록예찬 중에서)

 

돌이켜 보면, 대학입시 공부에 매달리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위 글을 읽으면서 단어풀이하고 문장구조나 분석했지, 신록의 참다운 의미를 알기나 했었겠나. 세월이 흘러 이순(耳順)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온몸으로 느끼는 것을...      

아무튼 이제는 가을의 단풍보다는 봄의 신록을 더 좋아하니 이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조의 하나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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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육봉능선을 지나 연주암(戀主庵)에 도착했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찾은 연주암은 과거의 연주암이 아니었네.

풍수상으로 연소형(燕巢形. 제비집 형국)의 작고 소박한 암자였던 지난 날 연주암의 모습은 간 데 없고, 그야말로 거찰(巨刹)로 변해 있더군. 대웅전 앞의 마당에는 곧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연등이 무수히 걸려 있었네. 그 옛날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와 작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얻어먹던 절 떡이 참으로 맛있었는데...


江山千年主요 人生百年客이라 했던가. 변하지 않는 강산이야 천년을 두고 주인노릇을 하지만, 인간은 고작 백년도 못 채우고 가는 나그네이거늘, 관악산 정상에 자리한 절집을 굳이 그렇게 크고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있었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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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암]

  
연주암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내려갔으니 사실상 관악산을 종주한 셈인데, 사당역 방향으로 난 등산로는 예상대로 인파로 붐비더군. 주말 관악산 등산로의 보통모습이라고나 할까. 힘이 들어서 그렇지 역시 육봉능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네.

건강을 회복한 그대와 함께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하네.

물론 백동선생과 담허선사도 동행해야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