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올 사람은 넘쳐난다(2)

 

 

폼페이(Pompeii), 소렌토(Sorrento), 카프리(Capri), 나폴리(Napoli)

 

2017. 1. 10.
    아침을 일찍 먹고 7시에 호텔을 출발해 비운의 도시 폼페이로 향했다. 대략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날씨가 더 추워져 옷을 두둑하게 입어야 했다. 10년 만에 눈까지 내려 베수비오 화산이 설산으로 변신했다.


    제정로마시대 귀족들의 휴양지로 인구가 2만 명이나 되었던 도시가 베수비오화산의 대폭발로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서기 79. 8. 24.의 일이다. 화산재가 5-6m 두께로 도시 전체를 덮었다고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 도시가 다시 알려진 것은 1748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중국 서안에 있는 진시황의 병마용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하였다고 하더니 고대의 거대 유적 발견에는 무슨 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농부와 우물이 등장하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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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 뒤로 흰 눈이 덮인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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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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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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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 시설]

 

    폼페이는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의 발굴 결과로 법원, 공중목욕탕, 원형극장, 시장, 술집, 윤락가, 상하수도 시설 등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만큼 분명 화려한 도시였을 터인데,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찾은 동방나그네의 눈앞에는 허물어진 건물들의 잔해만이 앙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흉내를 냈다.

 

   폼페이 유적지를 발품 팔아 돌아드니
   인걸은 간 데 없고 잔해만 남았구나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앙상한 잔해만 남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 화산이 폭발할 때 동풍이 불었다면 화산 서쪽에 있는 나폴리가 폼페이의 운명이 되었으리라.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힌다는 나폴리의 시민들과 ‘아얏~’ 소리 한번 못하고 땅 속에 묻혀 버린 폼페이의 시민들의 운명이 그렇게 갈렸으니...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고 북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을 누가 막을 것이며, 도시의 운명이 한순간에 갈리는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랴. 대자연 앞에 인간은 아무리 용을 써도 이불 밑에서 활개 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폼페이 유적지 인근에 자리한 하얀 색 건물의 식당이 눈 덮인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징어튀김과 홍합스파게티가 입맛을 돋운다. 어제 로마에서 일행들의 분노가 폭발한 후로 식사의 질이 계속 좋아진다. 진작 그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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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의 식당]

 

   폼페이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가면 소렌토이다. 유명한 이탈리아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의 바로 그 고장이다.

   그런데 소렌토로 가는 이 기차가 가관이다. 우리나라 6-70년 대 쯤에나 다녔을 정도로 낡았다. 굴러가는 게 용하다 싶다. 차창에 어리는 풍경은 또 어찌도 그리 궁기가 흐르는지... 빨래가 주렁주렁 널린 낡은 연립주택이 계속 이어지는 풍경은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의 경제력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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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 행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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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차창에 비친 거리 모습]

 

   독일에서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면 국경을 넘는 순간 도로변의 도시나 마을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알프스 북쪽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는 산골마을에서조차도 그림 같은 집에 창가에 꽃 화분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서는 순간 그 그림 같은 집이나 꽃 화분은 간 데 없고, 궁기가 흐르는 엉성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래도 남쪽으로 로마까지 가는 동안에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런데 로마를 벗어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경제가 어려워 한 때 유럽의 골칫덩어리 국가들 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 중 하나로 지목된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소렌토역에서 내려 역사를 벗어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작곡한 잠바티스타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 1860~1926)의 흉상을 바로 만난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의 광장을 지나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면 부두가 나온다. 카프리로 가는 배가 떠나는 곳이다.

   부두에서 시가지 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한껏 멋을 낸 집들을 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1박에 100만 원 이상 받는 호텔들이다. 코발트색 지중해를 바로 바라 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 자리 잡은 덕분에 그렇게 비싼 호텔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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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티스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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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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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와 바닷가 호텔들]

 

    소렌토에서 카프리 섬까지는 배로 30분 걸린다. 뱃전에 서면 눈 덮인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나폴리,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섬... 이들 모두 나폴리만(灣)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람? 이제까지 춥기는 할망정 하늘은 쾌청했는데, 갑자기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예로부터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로 인하여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별장을 지을 정도였고,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신혼여행을 간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기대가 컸는데, 비라니.... 그러면서도 춥기는 또 왜 그리 추운지.

 

    카프리 섬의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항구에 내리자 카프리 섬을 찾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밴이 대기하고 있었다. 비수기여서 그렇지 성수기에는 워낙 사람이 많이 몰려 타기가 어렵다고 한다.  

 

   카프리 섬에는 '카프리'와 '아나 카프리'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관광객들은 주로 카프리 마을을 둘러본다. 오락가락 하는 빗속에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다녔다.

   비록 비구름으로 인해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풍광은 과연 아름다웠다. 하얀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 오염되지 않은 푸른 바다, 깨끗한 거리와 상점들. 절로 투숙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예쁜 호텔들... 카프리에는 부(富)티가 넘치고 있었다. 관광수입만으로도 얼마든지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난개발을 절제하였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문득 울릉도가 떠올랐다. 풍광 하나만 놓고 보자면 울릉도가 훨씬 더 낫다. 백령도는 또 어떤가. 그런데도 이들 섬은 왜 카프리에 견줄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일까. 답은 간단명료하다. 난개발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이다. 카프리처럼 꾸미고 홍보만 제대로 한다면... 공상소설 같은 요원한 이야기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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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의 이모저모]

 

    카프리마을을 둘러 본 후 다시 밴을 타고 아나 카프리 마을로 갔다. 절벽 위로 난 길을 곡예운전 하듯 간다. 이곳에 가면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러려면 길가에 차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것도 모자라 이날따라 경찰차가 지키고 있어 길가에 차를 세울 수가 없다. 눈물을 머금고 그냥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카프리에서 오후 4시 30분에 배를 타고 나폴리로 갔다. 소요시간은 45분으로 오후 5시 15분에 도착한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각이다. 배를 타고 접근하면서 보니 휘황찬란한 나폴리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고 하는데 정작 낮에 보면 크게 실망한다는 나폴리에 밤에 입항하는 것이 다행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자고 하는 여행에서 굳이 실망하고 갈 일이 무엇이겠는가. 

 

    로마, 밀라노에 이어서 이탈리아의 세 번째 큰  도시인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빈민들이 몰려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로마까지 돌아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나폴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걷는 게 안 된다면 여기까지 왔는데 하다못해 버스를 탄 채 잠깐만이라도 시내 구경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가이드 왈, “나폴리 시내는 교통체증이 죽음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2시간은 걸려야 나올 수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닷가의 누오보 성(Castel Nuovo)과 부근 거리 모습을 렌즈에 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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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본 나폴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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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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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보 성 부근 거리의 모습]

 

    로마로 돌아오니 밤 8시 30분이다. 처음 로마에 왔을 때 저녁을 먹었던 한식당에 가서 된장찌개, 돼지고기 볶음, 김치전 등으로 배를 불렸다. 

 

피렌체(Firenze)

 

2017. 1. 11.
     아침 7시 30분 로마를 출발하여 3시간 30분 걸려 피렌체에 도착하였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이자 중심지로 많은 예술가, 학자들이 활동한 무대이다.

 

   르네상스가 이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메디치(Medici) 가문의 후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 가문은 300여 년에 걸쳐 피렌체와 그 일대 토스카나 지방을 다스리는 동안 교황 넷을 배출했고 프랑스 왕비 둘을 포함해 수많은 유럽 왕조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통치자로서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 문예부흥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이를 통해 시대를 지배했다.

   이 가문의 뛰어난 인물들은 으스대며 예술가를 후원한 게 아니라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 이러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부상한 피렌체는 수백 년 후의 오늘날까지 그 후광에 힘입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피렌체는 그 명성에 걸맞게 시내 곳곳에 조각과 동상이 즐비하여 시가지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조각들은 대부분 복제품이다. 도난 우려 때문이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피렌체의 전경을 다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곧바로 갔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 복제품이 한복판에 세워져 있다. 도심을 흐르는 아르노(Arno)강 건너로 붉은 벽돌색 지붕들로 가득한 고풍스런 분위기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석양에 물든 모습이 더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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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피렌체의 전경]

 

   아르노강은 수심이 6m 정도 되고 폭도 제법 넓다.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다. 강변을 따라 난 길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광객들도 그 안에 섞여 있다. 서양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인지 관광객인지 잘 구별이 안 되었지만,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맑은 날씨에 햇빛이 나서 모처럼 포근하다. 이번 이탈리아 일정에서 처음이다. 그늘에 들어가면 여전히 쌀쌀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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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

 

   아르노강에는 다리가 여럿 있는데, 그중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가 유명하다.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1345년에 건설). 2차 세계대전 당시 패퇴하던 독일군이 아르노강의 다른 모든 다리는 파괴하였으면서도 이 다리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남겨 두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소음과 악취로 1593년에 모두 쫓겨나고 그 자리에 금세공업자들이 들어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금세공 상점들이 다양한 보석과 수공예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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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

 

   점심식사를 위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식당(Torcicoda)에 갔다. 미슐랭 별을 받은 곳이란다. 과자 위에 얹은 토마토, 살라미, 하몽, 피자 그리고 L-본 스테이크 등 음식이 풍성했고, 명성에 걸맞게 맛도 좋았다.  L-본 스테이크는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직화(直火)로 굽는다. 이 식당에는 안에 별도의 포도주매장도 있고, 선술집 비슷한 공간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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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식당 Torcicoda]

 

   로마에는 미치지 못해도 피렌체 역시 유서 깊은 곳이라 볼 만한 건축물들이 많다. 피렌체공화국의 정부청사였고 현재는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피렌체의 상징으로 높이 106m의 거대한 돔과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성당), 그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성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이다),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등 유명인사들의 묘가 있고 ‘피렌체의 판테온’이라고도 불리는 산타 크로체 성당(Chiesa di Santa Croce. 십자가 성당), 단테의 생가를 복원하여 놓은 단테의 집 등과 피렌체공화국 당시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메디치의 동상과 다비드상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복제품들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등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보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한 화려한 건축물들과 많은 조각들, 중심가 광장과 그 주위의 정돈된 상가들, 햇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아르노강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이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탈리아가 자랑할 만한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단편적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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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성모 성당 외부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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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반니 세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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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로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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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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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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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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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궁전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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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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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집 앞 바닥에 새긴 단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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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국립도서관]

 

   피렌체 관광을 마친 후 베네치아로 이동했다.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Apogia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모짜렐라 치즈와 그릴에 구운 야채의 맛이 좋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과 오후에 각 3시간 30분씩 합계 7시간이나 버스를 탄 탓에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다.

 

베네치아(Venezia), 베로나(Verona)

 

2017. 1. 12.
    갈 곳, 볼거리를 많은데 날은 춥고 주어진 시간은 짧아 분주한 날이다.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와 베네치아의 인공섬(구시가지가 이곳에 있다)으로 들어가는 배(Ferry)를 타기 위해 베네치아 대안(對岸)의 마르게라(베네치아가 확장되면서 섬의 대안 육지에 건설한 신시가지 공업항. 행정구역상으로 베네치아시에 속한다)의 선착장으로 갔다. 30여분 배를 타고 가 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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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전도]

 

   베네치아의 역사는 서기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의 작은 섬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그 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섬이 좁아지고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자 인공섬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었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지금 같으면 매립지에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지반을 튼튼히 하겠지만, 이 섬들을 조성할 당시에는 콘크리트라는 것이 없었으니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역사적 배경이다. 그 나무가 썩지 않고 이제껏 섬을 받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현재 베네치아는 S자 모양의 대운하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여기서 갈라진 작은 운하들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시가지는 118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섬들 사이의 운하 위로 400여 개의 다리가 놓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가지 중심가에는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과 그 앞의 산 마르코 광장,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등 볼거리가 많다.
   산 마르코 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성당으로 2층 테라스에 올라가니까 바다가 보였다. 성당 옆의 높은 종탑에 올라가면 더 잘 보일 텐데 아쉽게도 수리 중이었다.

   성당 앞의 산 마르코 광장은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다는 곳이다. 그런데 광장은 해수면보다 아래여서 툭하면 물이 찬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도 처음에는 바닥이 건조했는데 잠깐 머무는 동안에 광장 군데군데 물이 고이는 모습이 보였다.

 

   광장 옆의 흰 대리석 열주가 줄지어 있는 회랑에는 상가가 조성되어 있는데, 1720년에 문을 열었다는 카페 ‘플로리안(Florian)’은 수리 중이었고(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이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그 맞은편에 있는 다른 카페(Quadri Gran Cafe)에 들어가 핫초코를 주문하였다. 서울에서 마시던 핫초코를 생각하고 주문한 것인데, 마실 게 아니라 떠먹어야 할 판이었다. 한 마디로 다크 초콜렛을 뜨겁게 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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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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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성당 2층 난간에서 본 산 마르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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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성당 2층 난간에서 본 바닷가. 왼쪽 건물이 두칼레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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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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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리 그랑 카페]

 

   흰 색의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부청사였고 지금은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딕양식의 백미이다.

   두칼레 궁전과 운하를 사이에 두고 감옥이 있는데, 두 건물을 잇는 다리가 탄식의 다리이다.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죄수가 이 다리의 창을 통해 밖을 보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탄식하며 다리를 건너갔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다리를 건너는 죄인을 바라보는 그의 가족들의 탄식 또한 섬이 꺼져라 나왔으리라.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이 다리를 건너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가 이 감옥에서 탈출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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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칼레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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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의 다리]

 

   베네치아는 이런 건축물이나 시설보다는 역시 수상관광이 별미이고 일품이다. 곤돌라(사공이 노를 저어 이동)로 30분, 수상택시(모터보트)로 40분 동안 섬 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일반도시의 골목길에 해당하는 곳이 이곳은 대부분 크고 작은 운하이다. 007 영화 등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운하에 접한 집의 현관 위로 물이 넘치는 곳도 있다. 운하 위로 구름다리도 많이 놓여 있다. 마치 동화 속의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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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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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위의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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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운하]

 

   베네치아는 유난히 추웠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올 때 옷을 단단히 입느라고 무려 여섯 가지나 겹쳐 입고 목도리까지 둘러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추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습기를 머금은 음습한 추위가 뼛속을 파고들어 더 춥게 느껴졌다. 더구나 곤돌라와 수상택시를 탔을 때는 바람까지 맞아야 해 더욱 추위에 몸을 떨었다. 모르긴 해도 베네치아에는 관절염 환자가 많을 것 같다. 

 

   추위에 떨면서 관광을 마치고 베네치아 근교의 한식당으로 이동하여 비빔밥과 불고기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꿀맛이다. 입맛을 돋우는 데 추위가 한몫했다. 우리말을 너무나 잘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종업원의 재치와 익살이 돋보이는 식당이었다.
 
   베로나(Verona)는 베네치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작은 도시이지만 부유한 곳이다. 피렌체처럼 도심에 강(Adige 아디제강)이 흐르고 중심가인 마치니(Mazzini) 거리는 대도시 못지않게 화려하다. 확실히 이탈리아의 북부도시들은 남부에 비하여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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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마치니 거리]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델이 되었다는 여성의 생가가 줄리엣의 집이다. 이 집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베로나를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안마당에 줄리엣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오른쪽 젖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안마당까지는 무료입장인데,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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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동상]

 

    베로나 중심에 있는 시뇨리(Signori) 광장에는 노점이 발달하여 있다. 다른 도시의 광장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다.
   베로나의 상징은 원형경기장(Arena di Verona)이다. 서기 1세기에 건립된 것인데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25,000 명 정도 들어가는 야외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7월 초순부터 9월 초순까지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세계 3대 야외공연장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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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기장]

 
   유럽 관광의 90%는 성당관광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는 곳마다 성당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당의 존폐 문제로 직결되어 적지 않은 성당들이 도서관이나 미술관, 식당 등으로 개조되고 있다.


   베로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베로나 시내에서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이 바로 성당을 개조한 곳이다. 선입견 때문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아서 그런가, 입구부터 멋져 보인 이 식당은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저녁 6시 30분이 되어야 문을 여는 것이다.

   베로나 시내 관광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고 춥기도 하여 5시 40분쯤 식당에 도착하였더니 문이 닫혀 있다. 여행사에서 19명이 간다고 미리 예약을 했는데도 닫힌 문이 열릴 줄 모른다. 속절없이 주위의 상가골목길을 배회하여야 했다. 추위에 떨면서 말이다.

   그 대신 추위에 떤 보람은 있었다. 식사 종류를 각자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번 여정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리조토, 피자, 라자니아를 먹고 후식으로 티라미슈까지 곁들였다. 모처럼 흡족한 만찬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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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개조한 식당]

 

   이번 일정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한 가지가 좋으면 한 가지가 나쁜 게 뒤따른다. 만찬을 즐기고 투숙한 베로나의 SHG 호텔은 방에 전기 소켓이 여럿 있는데, 하나만 제외하고는 모두 구식(옛 유럽식)이라 휴대전화 충전에 애를 먹었다. TV코드를 뽑고 충전기를 꽂으려고도 시도해 보았으나 안 되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호텔의 시계만 멈춰 서 있는 듯하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 아쉬울 게 없다는 것인가. 굳이 돈 들여 소위 말하는 ‘세계의 보편적 기준(Gloval Standard)’에 맞게 고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 나라의 관광산업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이런 상태로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속된다면 또 하나의 불가사의가 아닐는지. 피사의 사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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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G 호텔]      

 

시르미오네(Sirmione), 밀라노(Milano)

 

2017. 1. 13.
    이탈리아 일주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다. 베로나의 호텔에서 아침 8시 40분에 출발하여 1시간 30분 걸려 시르미오네(Sirmione)로 갔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가장 큰 호수인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의 호반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가르다 호수는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크고, 이 호수 주위에 여러 개의 작은 도시(마을)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시르미오네이다.


   시르미오네는 고대 로마의 유적이 남아 있는 중세도시로 유서 깊은데다 풍광이 아름다워 괴테, 릴케, 바이런 같은 문호들이 이곳을 찾았고,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이 날은 다행히(?) 비수기인 한겨울인데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했고, 문을 안 연 상점, 호텔들도 있고, 호숫가의 요트들은 계류장에 매여 있었다. 덕분에 여유 있게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한 정갈한 카페에 들러 핫초코로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마리아 칼라스가 머물던 집(별장으로 보인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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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다 호수와 시르미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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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가 머물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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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집 앞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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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미오네의 카페에서]

 

   시르메오네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스칼리제로 성(Castello Scaligero)이다. 구시가지를 방어하기 위하여 베로나의 명문가인 스칼리제로 가문이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사면이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에 올라가면 호수와 시르미오네의 시가지가 다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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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리제로 성]

 

   시르미오네에서 밀라노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 부근에서 하차하여 시가지 구경을 하면서 밀라노 성당까지 걸어갔다. 도중에 스칼라 극장과 그 앞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을 보고 비토리오 엠마뉴엘(Vittorio Emanuele) 2세 갤러리아 쇼핑센터를 지났다.

    이 쇼핑센터야말로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도시인 밀라노의 부(富)의 상징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품전문점들이 줄을 지어 있다. 천장을 유리로 하여 자연채광을 하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가거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높이 47m의 중앙 돔은 지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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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르체스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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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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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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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갤러리아 쇼핑센터]

 

   밀라노 성당은 135개의 첨탑이 솟아 있는 고딕양식의 걸작이다.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줄이 꽤 길다. 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상업도시 밀라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성당 내부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로 무척 화려하다. 마침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으나, 관객은 별로 없었다. 관광객들이나 기웃거릴 뿐이었다.


   성당 앞 광장은 비둘기의 천국이다. 팔을 뻗으면 날아와 앉는다. 웬 서양인이 옥수수 가루를 한 줌 주길래 손바닥에 펼쳤더니 비둘기가 떼를 지어 덤벼든다. 그 서양인이 또 옥수수 가루를 주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세 번 옥수수 가루를 비둘기 먹이로 주었다.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손을 내민다. 옥수수가루 값 3유로를 내란다. 헉! 옥수수가루 한 줌당 1 유로라니~! 어리숙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꾼들이었던 것이다. 속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아예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1유로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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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설당의 전면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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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성당 앞의 비둘기]

   

    광장 끝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공짜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끝으로 밀라노 관광을 마쳤다. 동시에 이탈리아 일주 관광도 막을 내렸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멀리 알프스의 설산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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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설산 풍경]


귀국
 
   인천공항에서 밀라노공항까지 갈 때는 11시간 걸렸는데, 밀라노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때는 9시간 걸렸다. 바람의 영향으로 2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그 바람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갈 때도 9시간에 가련만. 21세기의 제갈공명은 어디에 있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