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덮인 봉우리()는 어디에

 

      2022. 1. 15. 히말라야산악회에서 임인년(壬寅年) 시산제를 겸하여 이천에 있는 설봉산에 다녀왔다. 설봉산은 진즉부터 김용안님의 제안으로 히말라야산악회의 산행 후보지로 언급되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다가 마침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산이 높지 않은데다(해발 394m) 서울에서 가까운 곳(서초동에서 자동차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것이 그동안 산행순서에서 밀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번 겨울 들어 이상하리만치 주중에는 온화한 날씨가 주말이 되면 추워지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이번 주는 특이하게도 주중에 춥고 주말에 푸근해졌는지라 시산제를 겸한 산행지로 설봉산이 제격이었다.

     산행 도반으로는 고정멤버인 오강원님, 박재송님 외에 김용안님과 최동진님이 오랜만에 참여하였고, 대신 고정 멤버 중 한 분인 박영극님이 같은 날 백두대간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빠졌다. 아무튼 이 도반들은 모두 에베레스트를 함께 다녀온 맹장들이다. 

 

03.jpg[설봉산의 위치]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鎭山)이다.

     이천시를 수호하는 산으로 이천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다. 해발 394m의 높이가 단적으로 말해 주듯이 험준하지 않은데, 그래도 산세가 오밀조밀하여 나름 운치가 있고 숲이 울창한 편이며,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한다.

 

     이 산은 삼국시대 격전장의 역사를 담은 설봉산성, 이천의 성현을 모신 설봉서원, 불교문화의 산실 영월암, 시민의 안식처 설봉공원 등이 있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이천의 상징적인 산이다. 그런즉, 말 그대로 이천의 진산(鎭山)이라 능히 불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01.jpg[설봉산 능선 종주 조감도]

 

     설봉산 능선 종주 등산로는 설봉호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빙 도는 형태로 이어진다. 총거리는 대략 7km이고, 완주하는데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3-4시간 걸린다.

     설봉호(둘레 1.05km, 수심 12m. 면적 32,730)는 관개 및 관광개발을 목적으로 1970년에 완공된 저수지이다(그래서 설봉저수지나 동네 이름을 딴 관고저수지로도 불린다). 호수 가운데 음악분수대가 있고, 호수 주변의 설봉공원에는 각종 시설물이 많은데,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날 등산은, 아침 9시에 설봉공원 제1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고(시절이 한겨울이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의 영향인지 주차장에 여유가 있었다), 설봉호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입구에서 출발하여 희망능선을 향해 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등산로는 설봉산성에 다다르기까지는 그야말로 잘 닦인 평탄한 길이다. 그냥 숲속을 산책하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02.jpg[희망능선의 평탄한 등산로]

 

     도중에 호암약수터가 나오는데, ‘虎岩藥水라는 거창한 이름에 이끌려 혹시 호랑이바위 밑으로 약수가 솟아나나 하는 호기심에 이끌려 들렀다가 실망만 했다. 차라리 안 갔으면 그냥 산에 약수터도 있구나 하고 지났을 것을...

 

     호랑이바위는 눈 씻고 보아도 안 보이고, 약수가 솟아날 것으로 보이는 곳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 밑으로 땅속으로 흘러내리는 물(가물어서 그런지 극소량이다)을 받는 곳은 마치 커다란 변기를 설치하여 놓은 듯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설을 해 놓은 걸까.

     그 옛날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도를 깨쳤다더니, 21세기 범부(凡夫)들은 변기의 물을 마시고 해탈을 하라는 걸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니 생각하기 나름이라면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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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약수터]

 

      약수터를 지나 산책로 같은 등산로를 따라 희망능선을 계속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산성이 나타나 길을 막는다(돌의 색깔로 보아 근래에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설봉산성(雪峰山城. 사적 제423)이다. 이 산성은 설봉산의 7~8부 능선 칼바위를 중심으로 3만여 평의 고원지대에 있다.

 

      이천은 고대로부터 동서남북 교통의 요충지였기에, 역사적으로 백제·고구려·신라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설봉산을 제외하면 근처에 높은 산이 없다. 때문에 설봉산에서는 이천뿐만 아니라 장호원, 양평, 안성 등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천혜의 관측기지라 할 이 산에 성을 쌓은 것이다. 그것도 주성(主城) 외에 부성(副城) 두 개를 더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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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봉산성은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4세기 후반 백제에 의해 축성된 석성으로 판명되었고,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최고조에 달한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의 요새로 이용되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한 북진 때는 신라의 중요한 군사기지 역할을 하였다.

 

          칼바위 부근의 산성 일대에는 봉수대제단(사직단), 석축은 물론정면 9m, 측면 6.3m의 건물터임을 알리는 주춧돌 9개가 배치되어 있는 곳도 있어이곳이 상당한 규모의 산성지였음을 짐작케 한. 그런 만큼 이 산성은 설봉산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가장 큰 유적지의 하나로 불린다.

 07.jpg[칼바위]

 

08.jpg[봉수대]

 

09.jpg[사직단]

 

      그러나 아무리 역사적인 의미가 큰들 무엇하랴.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사직단과 근래에 복원한 듯한 성곽 일부와 봉수대, 그리고 주춧돌이 전부인지라, 이곳을 지나는 과객의 눈에는 그저 세월의 무상함으로 다가올 뿐이고, 이에 시름겨워 시 한 수를 흥얼거릴 따름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설봉성(雪峰城)도 추초(秋草)로다.

삼국(三國)의 성쇠가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덧없이 지나는  객이 시름겨워 하노라.

 

      설봉산성을 지나면 연자봉(硏子峰)이 바로 나온다. 왜 특별히 이런 이름을 붙여 봉우리라고 부르는지 아리송하다. 설봉산에는 연자봉 외에도 이처럼 정체불명인 봉우리들이 많다.

      해발 394m에 지나지 않는 산을 무언가 있어 보이게 하려다 보니, 조금만 오르막이 나와도 무슨 무슨 봉우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이천에 저명한 작명가가 많은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 연자봉을 지나면 곧이어서 서희봉(徐熙峰)이 나오는데, 이 서희봉은 제법 경사가 있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동산로다운 등산로이다.

 

10.jpg[서희봉 올라가는 계단]

 

      서희봉을 통과하면 바로 설봉산의 정상인 희망봉에 도달하는데, 그 바로 밑에 재미있는 돌무덤이 하나 있다.

      웬만한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성황당 비슷한 돌무덤인데, 특이하게도 꼭대기에 사과를 하나 얹고 그 위에 다시 작은 돌을 세 개 올려놓았다. 산신령께 바치는 제물이 아닐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옆구리를 새가 파먹은 흔적이 있다. 아마도 산신령의 전령(傳令)이 먼저 맛을 본 모양이다.

 

11.jpg[사과를 얹은 성황당]

 

     오전 1020.

     설봉산의 정상인 희망봉에 도착했다. 커다란 표지석이 나그네를 반긴다. 표지석에는 설봉산을 소개하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그 끝에는 희망봉이라는 봉우리의 이름에 걸맞게,

 

앞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한복판 노른자위로 통일과 번영의 심장부가 될 것이다. 2000. 7. 1. 이천시장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산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큰 표지석이나, 이천시장의 거창한 구호나, 모두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비치는 것은 촌부만의 느낌일까.

 

     그나저나 설봉산(雪峯山)이 그 이름값을 하려면, 시절이 바야흐로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의 중간인 한겨울인 만큼 눈이 하얗게 덮여 있어야 하건만, 사위(四圍)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나빠서인가.

     눈은 고사하고, 설봉산의 정상 부분에는 며칠 전(2022. 1. 10. 오후)에 발생했던 화재로 나무들이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남아 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2.jpg[설봉산 정상]

 

      설봉산의 정상 밑에 영월암(映月庵)이 자리하고 있다. 종주 능선상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 있지만, 유서 깊은 절로 설봉산의 명소로 소개되는지라 일부러 들렀다.

      다만 능선에서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경사가 매우 급한 것이 신경쓰였다. 그런데, 지공(地空)선사의 반열에 들어선 지 여러해 되었음에도 무릎이 여전히 튼튼한 오강원님이 이제야 비로소 몸이 풀리는 것 같다고 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영월암은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된다.

      대웅전, 아미타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가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거대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말에 나옹선사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13.jpg[영월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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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jpg[은행나무]

 

     영월암에 있는 전각들은 여느 절과 다름없어 별다른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반면, 두 개의 석조상은 볼 만하다.

 

      그 첫째가 대웅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보물 제822호 마애여래입상이다.

      지그시 감은 눈, 넓적한 코, 두툼한 입술, 목까지 길게 내려온 귀 등이 온화한 인상을 준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맞대고 있는데, 밖을 향해 편 형태의 오른손 손바닥의 큰 대()자가 선명하다. 시선은 이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안내문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 당시에는 명칭이 마애여래입상으로 되었지만, 정작 머리 형태나 걸친 가사의 형식으로 볼 때 나한(羅漢)이나 조사(祖師)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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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암에서 볼 만한 두 번째 석상은 절의 윗부분인 삼성각(三聖閣)의 뒤에 있는 나반존자(那畔尊者)상이다.

 

      나반존자는 홀로 정진하여(獨修禪定. 독수선정)하여 도를 깨달은 성자로 독성존자(獨聖尊者)라고도 한다(그래서 절에서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을 독성각이라고 한다).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말세에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는 믿음)은 인도나 중국의 불교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영월암에서는 이 나반존자상을 삼성각의 뒤편 바위에 굴을 파서 조성하여 놓고(1981년 조성), 삼성각 안에서는 통창을 통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삼성각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직접 대면할 수도 있다.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16.jpg[삼성각 뒤의 나반존자상]

 

      영월암은 한자로 映月庵이라고 쓴다. 달을 환영하거나(迎月) 달그림자가 비치는(影月) 절이 아니라, 달빛이 빛나는(映月) 곳이라는 이야기이다. 달이 뜬 밤에 와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이름에 비추어 볼 진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을 때면 맑고 은은한 산사 풍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삼매경에 빠져들게 할 것만 같다 그런 광경을 보는 것은 도리없이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절 아래쪽에 있다는 삼형제바위는 생략하고, 다시 능선길로 올라섰다능선길에서 10여 분 더 가면 부학봉(浮鶴峰)과 그곳에 있는 부학루(浮鶴樓)를 만나게 된다.

      안내문에 따르면, 봉우리가 학처럼 날개를 펼치고 이천을 굽어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부학봉이라고 하고, 그곳에 세운 정자여서 부학루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이천 시내가 잘 내려다보인다. 정자를 세운 것은 20008월인데, 어딘가 모르게 중국무협영화 속 세트장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게 영 어색하다.  아무튼 이천년대를 맞이하여 이천이 설봉산에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펼친 듯하다.

 

19.jpg[부학루]

 

      부학루에 마침 사람이 없어 쉬어가기로 했다. 비록 날씨가 푸근하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한겨울이고, 게다가 산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준비해온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따뜻한 차로 몸을 녹였다. 특히 최동진님이 준비해 온 계란말이가 일품이었다.

      전원이 이구동성으로 한 아래의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에 대한 최동진님의 대답에 모두 할 말을 잊었다.

 

      “유사 이래 이제껏 이런 계란말이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사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나 봅니다!”

      “아니 가장이 산에 가는데 집에서 그 정도도 안 해 줍니까?”

 

20.jpg[부학루에서 본 이천 전경]

 

     부학봉을 지나면 또다시 야트막한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섭봉(利涉峰)에 도착하고, 여기서 이섭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설봉호에 이르러 능선 종주 산행이 끝난다.

     그 도중에 화두재 365계단이라는 곳이 있다. 설봉산 정상에서 대략 1km 떨어진 곳이다. 화두재(火頭. 불머리고개)는 옛날에 이천시 마장면에서 이천읍내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사신이 효양산(부발읍 소재)에서 금송아지를 찾기 위해 오던 중 오천리에 이르러 어느 노인에게 길을 물으니, 오천역(五千驛)을 지나 화두재를 넘어 이천읍(二千邑)을 거쳐 억억다리(億億橋)를 건너 구만리뜰(九萬里)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자, 그 사신이 너무 멀다며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노인은 바로 효양산을 지키는 산신령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전설이 깃든 화두재에 1년을 상징하는 365계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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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두재 365계단]

 

       ‘전설 따라 삼천리를 가는 기분이 들게 하는 설봉산 능선 종주 산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봉우리가 이섭봉(利涉峰)이다. 이 봉우리는 이천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다그 사연인즉 이렇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위해 후백제와 마지막 일전을 치르려고 출정길에 올랐는데, 장마로 물이 불어난 복하천(福河川. 용인에서 시작하여 이천을 관통한 후 여주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을 건너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 이때 서목이라는 이천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하천을 건너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은 서목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주역에 나오는 '利涉大川(큰 내를 건너 천하를 이롭게 한다)'에서 따다가 이 지역에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22.jpg[이섭봉]

 

       이천의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해서 이섭봉 자체가 의미가 있는 봉우리인 것은 아니다. 이 역시 다른 봉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봉우리라고 하니까 봉우리라고 여길 뿐이다. 아마도 설봉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마다 이름을 붙여나가다가 마지막 남은(역순으로 하면 첫 번째) 봉우리에 그냥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섭봉에서 설봉호로 내려가는 길(이섭능선)은 의외로 경사가 급한 곳이 제법 있다. 그래서 돌이켜 보니 설봉산 능선 종주는 차라리 이제까지 온 길의 역순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면 설봉산성이나, 영월암 등의 유적지를 후반부에 만나게 되는 문제가 있으나, 어차피 전체 산행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무릎에 부담을 덜 주려면 이쪽이 권할 만하다.

 

      설봉호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숫가에 조성한 공원에도 볼거리가 많다는데,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제껏 자연 속에 있었는데, 굳이 찾아서 인공 속으로 들어갈 일은 아니다.

 23.jpg[얼금과 눈으로 덮힌 설봉호]

 

그런데 유일한 예외 하나!

공원 안쪽에 하얀 벚꽃이 만개해 있는 게 눈에 들어 왔다. 아니, 이 겨울에!  호기심 천국의 촌부가 그냥 지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본 즉, 아뿔싸, 사진처럼 나무에 조화를 만들어 붙여 놓은 것이다. , 그것참, ‘사철벚꽃나무일세. 덕분에 1년 내내 벚꽃이 피겠네그려!

 

24.jpg[설봉공원의 사철벚꽃나무]

 

     설봉산,

     산행이라면 가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는 사람들, 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다.

     이 글을 맺으며 히말라야산악회의 도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올해도 함께 즐거운 산행을 계속하길 기원한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킬리만자로와 로키산맥 트레킹을 할 텐데... ()

 

 04-비발디 - 사계 중 겨울_ 라르고.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