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남도 사찰길)

2012.08.17 10:52

범의거사 조회 수:11797

 

구암대사 보시게.

 

   하루하루 쌓여 가는 업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조금이라도 덜어 볼까 하고 남도길 순례를 해 보았지만, 그것이 범부의 마음 먹은 대로 될 리 없어, 몸부림의 연속으로 우중(雨中)에 영동지방엘 더 다녀왔다네.  불일암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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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엔  당신의 맏상좌인 덕조스님이 나홀로 정진중이셨지.

그 스님이 몸소 끓여 주신 누룽지 반 그릇과 단무지 한 접시,그리고 직접 키우신 방울토마토, 그게 식탁의 전부였지만, 한양나그네에겐 그 어떤 진수성찬과도 바꿀 수 없는 공양시간이었다네.

 

    법정스님이 머무시던 불일암의 별채(덕조스님은 "토굴"이라 표현하셨네)에서 오직 숲과 별, 그리고 맑은 공기와 함께 지낸 어둠의 시간,

불일암2.jpg 당신이 생전에 쓰시던 나무의자, 라디오, 책상 등 손때 묻은 무소유의 소유물이 있었기에 산심수심객수심을 선사들의 할로 베어 낼 수 있었지.

 

    불일암에서 나와 찾아간 승보사찰 송광사에서는 그동안 몇 번을 갔으면서도 보지 못하였던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를 덕조스님의 안내로 친견하였다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더군.

  대웅전 앞 배롱나무의 자태가 유난히 붉고 아름다운 것은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탓이라니, 비록 그 아름다운 모습을 못 볼지언정 비가 와야 하지 않겠나.

 

    전통 야생차의 보급에 진력하시는 지허스님이 계신 금둔사. 순천 금전산 기슭에 자리한 제법 큰 사찰이건만(태고종 소속이라네), 행자 구하기가 어려워 고희를 넘긴 노스님이 혼자 지키고 계신다네. 반농반선(半農半禪)의 고된 수행길을 따라 할 젊은이가 과연 이 시대에 있으려나? 노스님이 건네 주시는 전통차 한 통을 받는 손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강진 백련사의 여연스님께는 범부가 늘 백년손님이라네. 내집 같이 편안한 절집이건만 몸둘 바를 모르게 환대하여 주시는 통에 이따금 안절부절일세. 이곳 역시 고목의 배롱나무가 한껏 자태를 뽑내더군.백련사.jpg

 

  추사가 난그림에 화제로 쓴 글인

 

"積雪滿山 江氷 指下春風 乃見天心"(적설만산 강빙난간 지하춘풍 내견천심. 산에는 눈이 가득하고 강에는 얼음이 난간을 이루는데, 손가락 밑에 봄바람 부니 하늘의 뜻을 알겠구나)

 

을 못 쓰는 글씨로나마 족자에 담아 스님께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시더군. "指下春風 乃見天心"(지하춘풍 내견천심)으로 법문을 하신 적도 있다시더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산길로 800m, 쉬엄쉬엄 걸으면 30분 걸리지. 푸근한 강진만과 후덕한 만덕산의 기운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일세)과 차나무밭,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의 아침엔 새소리, 벌레소리만이 손님을 맞이하더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오면 녹음방초승화시라..."

 백련사 산길.jpg

사철가를 흥얼거리며 다산초당을 찾았다네.

시간이 일러서인가 아직 찾는 이가 없어 툇마루에 혼자 걸터 앉으니 다산과 혜장선사, 초의, 범의가 아우러져 노닐더군. 과거는 언제이며 현재 또한 언제인가.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 땅을 스쳐갔거나 지금 호흡하고 있는 수많은 군상들, 결국 삼라만상 가운데 한낱 티끌인 것을...

 

    해남 미황사는 언제나 각종 법회와 행사가 끊이질 않지. 템플스테이 역시 연중 내내 이어지고. 마침 앞의 행사와 뒤의 행사 사이에 생긴 단 하루의 여유, 가는 날이 장날이런가, 절묘하게 그 여유의 공간에 필부가 찾아들었네.

그에 더하여 대웅보전 아미타불 복장 유물 중 능엄신주 다라니를 탁본한 액자가 도착하여 졸지에 촌자의 품에 안겼다네.  그 황송함이라니...

 

승소(僧笑)국수로 점심공양을 포식하고, 미황사 부도밭1.jpg

금강스님을 따라 새로 참선공간을 마련할 숲속의 터를 둘러보고,

내친 걸음에 부도터를 거쳐 그 옆의 부도암 차실에 앉으니 진도 앞바다의 하늘이 구름으로 덮인 게 보이더군.   

찻잔을 앞에 놓고 스님과 산중한담을 즐기던 중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가 처마를 적시며 낙수가 되어 절마당을 수놓았다네. 내 비록 한양까지 갈 길이 멀다마는 제발 왕창 쏟아지거라!

 

    비가 다소 긋는 듯하여 귀경길 마지막으로 대흥사를 들렸다네.

1999년 2월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1주일 동안 머물렀던 곳이지.

물론 그 이후로도 몇 번 찾았지만, 빗속에 주지스님과 함께 찻잔을 기울이긴 실로 오랜만일세.

1999년 당시 총무스님이셨던 범각스님이 지금 주지스님이라네. 그러고 보니 13년의 세월이 흘렀네그려. 그동안 무엇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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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길 순례 후 광복절에 찾은 양양 낙산사는 불타기 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네. 이번에도 또 빗속이었네만,

주지 무문스님의 안내로 둘러 본 낙산사는 언제 화마에 휩싸인 적이 있었냐는 듯 새로운 절집으로 태어났더군.

이를 일러 "死卽生"(사즉생)이라고 하는 건가.

 

낙산사 범종1.jpg한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법문 삼아 다향(茶香)에 젖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조용한 곳에 앉아 차를 반쯤 마시다 향을 피우니, 신묘한 기운이 맴도는 가운데 물이 흐르고 꽃이 피누나)

라 했던가. 

 

새로 조성한 범종을 직접 다섯 번 타종하여 보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맑고 은은하던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네.

멀리 동해바다로 퍼져 나가는 종소리에 온갖 번뇌를 실어 보내며 나름의 순례길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였다네.

 

    대관령의 아흔아홉구비 옛길을 지나다 보면 보현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네.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승원스님이 2년 전에 주지로 부임하시면서 자그마한 암자이니 기회가 되면 들러서 쉬어 가라고 하셨지. 차일피일 하던 차에 문득 생각이 나서 귀경길에 그 암자를 찾아 나섰네.

 

허허, 그런데 대관령만 굽이굽이가 아니라, 이 절을 가는 길 또한 대관령의 큰 길에서 한 없이 산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감탄케 하더군.그런데 그야말로 심신 산골 막다른 곳에 위치한 이 절을 보는 순간 또 한번 놀라게 되네. 결코 자그마한 암자가 아니라 대웅전을 포함하여 건물이 8채나 들어선 큰 규모의 절집이기 때문이지.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오히려 본사인 월정사보다도 역사가 깊다고 하더군.

 

산이 깊고 절 옆의 계곡물이 깊어 물소리 요란한건만, 찾는 피서객 하나 없는 산사,

공양주 보살님이 챙겨 주신 소박한 저녁식탁에 앉아 밥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네. 

곡기에 굶주린 건가, 불타의 지혜에 목이 마른 건가... 

 

아미타불.

 

2012. 8. 16.

서리풀거사가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