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秋夜雨中(추야우중)

조회 수 117 추천 수 0 2019.09.21 22:24:32

사본 -20190922_091402.jpg


모레가 추분이니 완연한 가을이다.

황금빛 농촌 들녘에는 바야흐로 벼 베기가 시작되었다. 그 가을에 비가 내린다. 그것도 제법 많은 비가. 태풍 타파의 영향이라고 한다.

한밤중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왜 늘 촌부를 상념에 젖게 하는 것일까.

특히 가을밤이면 더욱 그러하다. 하긴 촌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1,100년 전의 어느 묵객(墨客)은 지금도 자주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시를 한 수 남겼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상념에 젖어 시를 읊지만

세상에는 그 소리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한밤중 창밖엔 비가 내리는데

등불 앞에 있는 마음은 만 리 밖을 달리누나.

 

    통일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시 秋夜雨中(추야우중)”이다. 최치원은 골품제 때문에 꿈이 좌절된 대표적인 6두품 지식인이었다. 능력 있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변방의 수령으로 떠돌다가 끝내는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조용한 곳을 찾아 홀로 은거했다.

    어느 가을날 밤이 깊었다. 이미 삼경(三更.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이다. 최치원은 잠을 못 이루고 등불 아래서 책을 뒤적이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젖는다.

  

내 나이 열두 살에 중국 유학길에 올랐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스물여덟 살에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돌아온 지 어언 스무 해가 지났구나. 그 스무 해 동안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굴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구나. 지방 수령 자리만 맡아 변방을 떠돈 게 얼마이던가.’


    품은 뜻은 만 리 밖 큰 꿈을 향해 내달리는데, 현실은 골품제의 벽을 넘을 수 없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그의 호가 바로孤雲(고운)’ , ‘외로운 구름인 이유이다.

    깊은 산중에 홀로 은거하면서도 최치원의 마음 한쪽에는 중앙정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위 시에는 그의 바로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나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21세기이다. 골품제 같은 굴레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카스트 제도가 사실상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공식적으로는 폐지)는 인도에서조차도 하층민 출신의 모디(Narendra Modi)가 총리를 하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 누구도 최치원 같은 한탄을 할 필요가 없고,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정계로 진출해 이른바 권력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다. 일찍이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이 남긴 시조에 이런 명구가 있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 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그렇다. 모든 사람이 다 벼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의사라고 모든 병을 다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너나없이 벼슬을 하려 하고, 너나없이 모든 병을 다 고치려고 한다면 이는 욕심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욕심은 끝내 화를 불러온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아침에, 100세 인생을 살고 계신 김형석 교수님이 어느 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음미할 만하기에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제목) 금이건 권력이건혼자 가지려 하면 비극뿐이다

 

어렸을 때 톨스토이의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를 읽었다.

아침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한 보라도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뛰었으나, 지나친 욕심으로 과로에 지쳐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책에도 소개하였고 강연할 때 인용하기도 한다. 소유욕의 노예가 되면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인생관이 절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학에 있을 때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세 강도 이야기'를 읽었다.

요사이 사회 현실을 보면서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아마 독일에서는 많이 읽히는 동화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세 강도가 만나 길을 함께 가고 있었다. 그들은 신세타령을 했다. '우리도 최소한의 수입이라도 주어진다면 강도질을 끝내고 부끄럽지 않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소원이었다. 돈이 없어 할 수 없이 강도가 되었다는 후회였다.


그들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맞은편 언덕 숲속에 번쩍이는 물건이 보였다. 무엇인가 싶어 가보았다. 황금 덩어리였다. 세 사람은 이것을 나누어 가지면 부자는 못 되지만 남들같이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셋은 발길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가 안정된 삶을 꾸리기로 했다. 강가에 있는 빈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다. 앉아 있던 두 강도가 노를 젓던 친구를 강물에 밀어 넣고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금괴를 삼 등분 하지 말고 둘이서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늦은 오후에 한 마을에 이르렀다. 한 강도는 동네로 들어가 도시락을 준비하고 남은 강도는 금괴를 지키기로 했다.

도시락을 사 들고 나오던 강도는 생각했다. '저놈을 치워버리면 내가 고향에서 큰 부자가 되겠는데' 하고. 술병 안에 독약을 타 넣었다.

남아 있던 강도도 같은 생각을 했다. 도시락 준비를 하러 간 강도가 갖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허리에 비수를 감추고 기다렸다.


점심 도시락을 차려놓은 강도에게 칼을 든 놈이 대들었다. 두 강도는 싸웠으나 칼을 든 놈이 상대방을 죽여 시신을 가까운 모래밭에 묻어버렸다.

이제 이 금괴를 혼자 가지면 부자가 되어 가정도 꾸미고 행복해질 거라며 웃었다.

격렬한 싸움을 했고 시신을 묻는 동안에 갈증을 느낀 강도는 죽은 강도가 남긴 술병을 열고 한참을 들이켰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는 쓰러졌다.

세 강도는 이렇게 모두 저승으로 떠나고 금덩어리만 남겨 놓았다.

 

톨스토이는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되거나 전부라는 인생관을 갖고 산다면 허무한 인생으로 끝난다는 교훈을 남겼다.

세 강도 이야기는 탐욕에 빠져 이웃을 해치거나 독점욕의 노예가 되면 본인은 물론 사회에 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와 현 사회에 해당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욕망의 대상은 돈과 경제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권력은 더욱 무섭다.

권력의 독점욕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과 선한 서민들에게 불행을 초래한다.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만이 아니다.

권력을 독점하려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례는 지금도 허다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0/2019092001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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