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되어 볼거나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거나, 종로3가에서 창덕궁 쪽을 바라보면 북악산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전체가 커다란 암봉(岩峰)의 형상인 이 봉우리의 왼쪽은 거의 90도에 가까운 절벽 모습이다. 북한산에 있는 많은 봉우리 중 기(氣)가 가장 세다는 보현봉(普賢峯)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건국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온 탓인지, 이른바 ‘기도발이 좋다’고 하여 무속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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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올해가 시작되면서 히말라야산악회의 첫 산행지로 삼일절에 보현봉을 오르기로 했었다. 그런데 2월의 키나발루 트레킹 후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5월 13일로 연기하였다.  

  그렇게 해서 부상일로부터 석 달 후로 정한 2023. 5. 13. 히말라야산악회의 박영극, 오강원, 박재송님과 보현봉으로 향했다. 나로서는 발가락 상태를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날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만나 택시로 북한산 평창공원지킴터 입구에 도착한 게 아침 6시 50분이다. 평창동의 대로변에서 평창공원지킴터 입구까지는 상당히 올라가는데, 그 길이 포장도로이기 때문에 걸어가는 의미가 반감되어 이렇게 택시로 올라가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현명하다. 

 

2.jpg[평창공원지킴터]

 

   평창공원지킴터에서 보현봉 밑의 일선사로 올라가는 길은 시작부터 돌계단이지만 비교적 평탄하다. 사실 북한산은 등산로의 대부분이 평탄한 편이다.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돌계단 또는 철제계단)을 설치하고, 철제계단은 그 위에 고무판까지 깔아 놓기도 하여 오르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국립공원인 북한산은 전 세계 국립공원 중 단위면적 당 탐방객의 수가 가장 많다는 말에 어울리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르다 보니 자연적으로 길이 평탄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에 더하여 곳곳에 절이 있는지라 절 측에서 절까지의 길을 정비하고, 더 나아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탐방객을 위하여 시설을 보완한 결과이다. 

 

  평창공원지킴터를 출발하여 20분 지나자 동령폭포(東嶺瀑布)가 나왔다. 향림폭(香林瀑)이라고도 불린다. 개연폭포·구천폭포·청수폭포와 더불어 북한산의 4대 폭포로 꼽히는데, 비가 온 지 여러 날 되어서인지 말 그대로 ‘폭포’라고 불릴 만큼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지었다는 시(詩)가 안내판에서 객을 맞는다. 예로부터 북한산 유람에 나선 문인들이 산중턱의 이 폭포를 보고 멋진 풍경에 반했다고 한다. 그 옛날 지금처럼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었을 리가 없으니, 뒷짐 지고 거니는 양반들이 북한산 정상을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중턱에 있는 이 폭포를 보고 시를 지으며 놀지 않았을까 싶다. 

 

3.jpg[동령폭포]

 

   아무튼 “與黃山東籬諸公 賞瀑東嶺(황산, 동리와 더불어 동령폭포를 구경하다. 황산은 김유근, 동리는 김경연의 호)”라는 제목의 추사의 시는 이렇다. 안내판의 해설은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 촌부 나름대로 그 뜻을 풀어 보았다.

 

夏山新霽雨(하산신제우)

無溪不淸漪(무계불청의)

百疊翡翠堆(백첩비취퇴)

峯顚與澗涯(봉전여간애)

 

空山寂人心(공산적인심)

之子竟誰思(지자경수사)

石頑猶堪語(석완유감어)

水駛不可追(수사불가추)

 

幽松若高士(유송약고사)

白雲媚奇姿(백운미기자)

金膏充我腸(금고충아장)

水碧染我眉(수벽염아미)

 

僊路永隔世(선로영격세)

誰敎緣細絲(수교연세사)

我欲斷塵缺(아욕단진결)

無懽而無悲(무환이무비)

 

여름 산에 비 그치고 날이 새로이 개니

계곡마다 맑은 물이 넘실대고 

비취색이 겹겹이 쌓여 

산봉우리와 물가를 감도누나 

 

빈 산이라 사람의 마음도 고요한데

그대는 끝내 누구를 생각하는가

돌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이야기를 나눌 만한데

물은 빨리 흘러가 그럴 수가 없구나

 

그윽한 소나무는 고매한 선비와 같고

그 위의 흰 구름이 기묘한 맵시를 뽐내 선경을 연출하네

나도 선약(仙藥)인 금고(金膏)를 먹고  

하얀 수정으로 눈썹을 물들여 신선이 되어볼거나  

 

신선이 사는 곳 아득히 먼데

뉘라서 가는 실로 연결할거나 

내 이제 헛된 생각 끊으려 하니

즐거움도 없고 슬픔도 없네 

   

   추사가 언제 이 시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물이 쏟아지는 폭포와 그 주위의 소나무, 그리고 하늘의 흰 구름이 연출하는 선경(仙境)을 접하고는 선약(仙藥)을 먹고 신선이 되어 세상 인연을 끊고 살고픈 마음을 드러낸 것을 보면, 오랜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심신이 지쳐 있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더 이상 희로애락의 세사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촌부가 비록 신선은 아니나, 그렇다고 신선의 행세조차 못 할 것은 아니기에 신선놀음을 하며 산책로 수준의 산길을 오르다 보니 이내 일선사(一禪寺)에 다다른다(평창공원지킴터로부터 1.7km).   

   비구니 도량인 이 절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보현봉에 있는 절답게 보현사였다. 무학대사 등 많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고, 중창과 전란으로 인한 소실, 복원을 되풀이하였다. 그 와중에 한때는 관음사(觀音寺)로 불렸고, 1957년 당시 승려였던 시인 고은(高銀)이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자신의 법명인 일초(一超)의 ‘일(一)’과 도선국사의 ‘선(詵)’을 합쳐 일선사(一詵寺)로 고쳤다. 그 후 1962년에 절이 재단법인 선학원에 소속되면서 현재의 일선사(一禪寺)로 다시 바뀌었다.  

 

4.jpg[일선사]

 

    아침 8시의 이른 시간이어서일까, 절 마당에 스님은 안 보이고 개가 객을 맞는다. 짖기는 해도 물지는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그 옆에 보인다. 전각이 몇 채 없는 조용한 절이지만, 멀리 시내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훌륭해 등산객의 발길이 잦다. 그런데 절 입구와 경내의 약사전 옆 산 쪽에 각각 있는 알림판에 눈이 가는 순간 뜨악해진다.

  

알림 보현봉 등산길은 없습니다. 제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아니온 듯 발길을 돌려주세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수행 중의 스님을 붙들고 보현봉 가는 길을 물어보고 따졌길래 이런 “알림”을 적어 놓았을까. 산중에서 길을 묻는 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길이 없다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 길이 없는 게 절의 탓도 아닌데 무얼 따졌다는 것인가. 

    아무튼 절집에 있는 “알림”치고는 너무 삭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비로운 부처님이 널리 시방세계에 임하여 계신다(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는 대웅전 주련의 글귀가 무색하다.  

 

    일선사에서 돌아 나와 보현봉 정상으로 향했다. 마지막 고비에는 경사가 급하지만 쇠파이프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거대한 암봉(岩峰)의 모습인 보현봉 정상(해발 714m)에서 조망하는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멀리 북쪽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보이고, 그 뒤로는 도봉산이 보인다. 가까이는 문수봉과 문수사, 그리고 북한산성의 대남문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남쪽으로는 북악산과 그 너머의 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안개가 덜 걷힌 탓에 그 경치가 선명하지 않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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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jpg[보현봉 정상]

 

   보현봉 정상에서 내려와 문수봉으로 향했다. 당초 계획은 보현봉만 오르고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정상에서 내려왔을 때의 시각이 오전 9시 30분밖에 안 되어 하산을 하기에는 너무 일러 방향을 바꾼 것이다.  

   보현봉에서 문수봉으로 가려면 북한산성의 12성문 중 대성문과 대남문을 지나야 한다. 토요일임에도 아직은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먼저 대성문에 도착했을 때도 아직 10시가 안 되었다.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대성문(大成門)은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높이 4m, 폭 4.5m). 본래 처음에는 “소동문”으로 불린 작은 암문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의 북한산성 행궁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해발 462m)을 거쳐 북악터널 부근을 지나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어 임금이 행궁 행차 시에 이 문을 출입하게 됨에 따라, 성문을 성대하게 개축하고 이름도 대성문으로 바꾼 것이다. 편액은 숙종 임금의 글씨이다.

 

7.jpg[대성문]

 

   대성문에서 대남문은 300m 거리이다, 걸어서 10분 걸린다. 대남문(大南門. 해발 663m)은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남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문수봉과 보현봉 사이의 안부(鞍部)에 위치해 있다. 대남문의 남쪽 성밖으로는 구기동 계곡으로 연결되고, 북쪽 성안으로는 행궁지로 곧바로 연결된다. 이 행궁지 가는 길은 가을 단풍이 유명하여 북한산 단풍의 별미로 꼽힌다. 

 

8.jpg[대남문]

 

    대남문에서 문수봉(文殊峰. 해발 727m)은 지척이다. 가는 길의 경사도가 미약하여 과연 해발 727m의 문수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문수봉에서 조망하는 경치 또한 보현봉 못지않게 멋지다. 깎아지른 암벽 위의 보현봉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대남문에서 그 정상까지 연결되는 암봉 능선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으로 보현봉을 오른다면 꽤나 힘들 듯하다. 자세히 보면 보현봉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이 여럿 보인다. 

 

9.jpg[문수봉 정상]

 

10.jpg[문수봉에서 바라본 보현봉]

 

   문수봉 정상도 온통 바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현봉 정상과 달리 널찍하여 산객들에게 좋은 쉼터를 제공한다. 목도 축이고 땀도 식힌 후 승가봉 쪽으로 하산길을 택하였다. 하산길의 처음에는 20 여분 동안 갖가지 기암괴석을 마주하여 눈이 호강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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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jpg[문수봉 하산길의 기암괴석] 

 

   그런데 그 후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엄청난 고행의 길일 줄이야. 90도에 가까운 암벽을 쇠파이프 난간에 의지하여 내려가는데, 이제껏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힘든 코스를 다녀본 기억이 없다. 이런 길은 오르기는 해도 내려가는 것은 피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 길 400m를 20분에 걸쳐 내려가고 나니까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 내려온 갈래길의 이정표에 “문수봉(어려움) 0.4km”, “문수봉(쉬움) 0.4km”의 두 가지 방향 표시가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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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jpg[문수봉의 내리막길과 이정표]

   

   문수봉을 다 내려온 후에 승가봉(僧伽峰. 해발 567m)을 거쳐 사모바위를 지나 승가사(僧伽寺)로 내려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개가 걷혀 주위의 멋진 풍광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에 비례하여 무릎이 점점 더 아파오는 것은 어쩔 거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얻는 게 어디 있으랴. 그나마 상태를 점검하려고 했던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17.jpg[승가봉]

 

   승가사에서 승가공원지킴터까지만이라도 편하게 가려고 카카오택시를 불렀는데, 우여곡절 끝에 올라온 택시의 앞바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타자마자 내려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이고 내 무릎~!

속절없이 걸어 내려가 승가공원지킴터에 도착하니 시계바늘이 오후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부른 카카오택시에 올라타니 살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할 때는 범부도 추사처럼 신선이 되고픈 마음이었는데, 다 마치고 났을 때는 영락없는 속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뱁새가 어찌 황새를 따라가랴. (끝)

  18.jpg[산행 개념도]

 Track04.mp3 (차마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