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은 캐지 못했어도

 

   2023. 8.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에 도전했다가 심한 고산증으로 인해 4,000m에서 내려와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기회를 보아 다시 도전하리라 마음속으로 그리며, 그때를 대비하여 계속 주요 국내산을 올랐다. 그렇게 해서 월출산, 함백산, 태백산, 가리왕산, 발왕산, 한라산에 족적을 남겼다. 

   사실 산은 오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른 체력 하강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어 보려고 이 산 저 산을 기웃거리며 용을 쓰는 것이다. 몸부림을 친다고 하면 너무 자학적인 표현이려나.

 

  그런 와중에 2024. 1. 28. 눈 덮인 한라산을 두 며느리와 함께 올랐다가 기상악화로 정상인 백록담까지는 못 가고 진달래대피소에서 회군하였는데,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방심하여 미끄러지는 통에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3주 가까이 부목(副木. Gips)을 해야 했다.

 

   부목이야 필요하면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참고 지내면 되지만, 문제는 진즉에 예정되어 있던 대만 옥산(玉山) 트레킹이었다. 다행히 부상 후 3주가 지나면서 부목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경과를 관찰하던 강경민 정형외과원장님으로부터 트레킹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길을 나섰다. 혜초여행사의 옥산 트레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다만 왼손으로 등산스틱을 잡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여서 오른손만 사용하기로 했다.   

 

옥산4.jpg[옥산 전경. 자료사진]

 

 옥산(玉山)

       

   옥산은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해발 3,952m로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3,776m)보다 176m 높다. 옥산은 남북으로 길게 달리면서 대만을 동서로 나누는 중앙산맥(총거리 320km)의 거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여 있다. 현재 국가공원이다. 

  대만은 총면적이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한 것보다 약간 넓은 35,580㎢에 불과한데, 해발고도가 3,000m가 넘는 산이 258개나 된다. 남북을 합쳐도 2,744m의 백두산이 최고봉이고, 남한만 놓고 보면 1,950m의 한라산이 최고봉인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옥산은 아랫부분은 전반적으로 아열대 기후이지만, 해발 3,952m의 높은 산이라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내려가 온대림, 한대림의 숲을 이룬다. 해발 3,000m 정도에서 온대림과 한대림이 경계를 이룬다. 산 정상 부근까지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특히 거목의 가문비나무 원시림이 장관이다. 5-6월이 장마철이고, 7-8월은 태풍의 계절로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질 때가 많다.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사이가 등산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매년 12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2,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눈이 오지만 금방 녹는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산의 정상이 은백색의 옥(玉)같이 보인다고 하여 옥산(玉山. Mountain Jade)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인천공항-->자이(嘉義)

 

     2024. 2. 28(수). 오전 7시 30분에 인천공항에 갔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타이페이(臺北)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코로나가 종식된 후 해외여행객이 대폭 늘었다는 말이 실감 나게 해외여행 비성수기의 다소 이른 시각인데도 공항이 인파로 붐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7월 말에는 해외여행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쩌다 눈에 띌 정도로 한산하였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옥산3.jpg[항공노선]

 

    예정보다 35분 늦게 이륙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가 1,463km를 날아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타이페이에서 서쪽으로 32km)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30분 걸렸다. 대만은 한국보다 시간이 1시간 늦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트레킹 갈 때는 항공편이 저가 항공밖에 없어 불편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항공편이라 괜찮은 기내식도 주고 서비스도 좋았다. 중형 항공기인데도 자리는 만석이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것만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노선이든 항공노선을 저가 항공이 독점하는 사태만은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타오위안 공항 출구 쪽의 한 벽에는 여러 나라의 말로 환영인사를 써놓았는데, 우리말 “환영합니다”의 글씨가 제일 컸다.  

 

옥산3-1.jpg[타오위안 공항. 오강원님, 월우스님과 함께]

 

    공항에서 나와 혜초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라 자이(嘉義)로 향했다. 자이는 대만의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타이페이에서 254km 떨어져 있고, 북회귀선이 이 도시의 남부를 지나간다. 이 도시의 동쪽에 옥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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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의 위치]

 

    고속도로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던 도중에 타이중(臺中)의 청수지역에 있는 휴게소를 들렀는데, 대만 최대의 휴게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규모가 엄청났다. 내부에 거대한 쇼핑몰이 있는가 하면, 외부에는 야외공원, 운전사 휴게실이 따로 있고, 화장실을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지었는데, 이 또한 규모가 보는 일의 입을 벌어지게 한다. 

    대만의 전체 면적이라야 전술한 대로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정도이지만, 중국 대륙에서 살던 기질이 있는지 대만에서는 타이페이의 중정 기념관(장개석 기념관)이나 이 휴게소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축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옥산5.jpg[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이 거대한 휴게소를 나와 다시 남행을 계속하여 오후 4시 25분에 자이(嘉義)에 도착하였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지 않은데도 버스가 제한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까닭에 4시간 정도 걸렸다. 자이는 말하자면 옥산 산행을 위한 베이스캠프에 해당하는 곳이다.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의 객실 창에서 아리산(?)으로 생각되는 높은 산이 멀리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호텔의 이름이 “동방명주국제대반점(東方明珠國際大飯店)”이다. 서울의 잠실에 있는 식당으로 한국에 와 있는 중국인들을 감시하는 중국 비밀경찰로 의심을 받아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동방명주(東方明珠)”와 같은 이름인 것이다. 

    작금에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많이 악화된 상태인데, 설마 중국 비밀경찰이 버젓이 대만에서 대만에 와 있는 중국인들을 감시하도록 대만 당국이 내버려 둘 리는 없을 터인즉, 아마도 “동방에 있는 밝은 구슬”이라는 뜻이 좋아 이름을 짓다 보니 우연히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옥산6.jpg[동방명주국제대반점(東方明珠國際大飯店)]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호텔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버스로 이동하였다. 상호는 “죽향원(竹香園)”. 이 식당 역시 규모가 엄청나다. 대만 요리를 코스로 즐기는 곳으로 무려 13가지 요리가 나왔다. 대만의 음식답게 요리가 기름지다. 

   계속 먹다 보니 소화가 염려되어 콜라를 시켰는데 콜라가 없단다. 한국에서는 식탁이 몇 개 없는 작은 골목식당에도 콜라가 있건만 이 큰 식당에 콜라가 없다니... 그런데 다음날 간 타이페이의 큰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뿐이랴,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일행들과 차 한 잔 하려고 주위를 돌아다니다 끝내 찻집을 찾지 못해 허탕을 쳤다.

 

옥산7.jpg[죽향원(竹香園) 식당] 

 

    이처럼 대만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식당에 콜라가 없는 곳이 많고, 거리에 카페가 드물다. 이 점에 관한 한 8년 전 대만 여행을 처음 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한 집 건너 카페가 있다시피 하는 우리나라의 음료 문화가 이상한 건 아닐까.   

 

자이(嘉義)--> 배운산장(排雲山莊)

 

 2024. 2. 29. 

     한국과의 시차가 1시간밖에 안 되어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세계 어디나 비슷한 뷔페식이다. 8시에 호텔을 나서 버스를 타고 옥산으로 향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아리산(阿里山)을 거쳐 간다(자이에서 아리산까지는 22km). 

 

  출발하고 나서 30분도 안 되어 동행인 월우스님이 휴대폰으로 온 전화를 받더니 수심에 잠기셨다. 올해 98세이신 모친이 위독하셔서 아무래도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신다. 도리없이 아리산의 품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셨다. 다행스럽게도 가이드와 혜초여행사 본사 간에 연락이 되어 귀국 비행기를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리산(해발 2,481m)은 대만의 주요 관광지이자 차(茶) 산지이다. 여기서 나오는 차는 주로 청차(靑茶)인 우롱차(烏龍茶)이다. “아리산차(阿里山茶)” 자체가 하나의 유명 브랜드이다. 아리산으로 들어서서 옥산에 이르기 전까지 꼬불꼬불 산길의 높은 산록에 차밭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스리랑카의 캔디에서 누와라엘리아 가는 산길의 차밭을 연상케 한다. 

 

옥산8.jpg[아리산의 차밭]

 

   아리산 중턱의 한 마을에서 버스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전후좌우로 온통 아리산차를 만들거나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촌부는 대만에 온 김에 아예 처음부터 “동방미인(東方美人. Oriental Beauty)”을 구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리산차는 사지 않았는데, 아리산차도 구입하여 직접 마시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만한 차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오전 10시 10분에 옥산 등산로 입구의 상동포(上東埔) 주차장(해발 2,584m)에 도착하였다. 높이에 걸맞게 이미 많은 산들이 발아래로 보인다. 

   이곳에서 무거운 짐은 짐꾼에게 맡겼다(짐꾼은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했다). 짐꾼이 짐을 지게에 지고 배운산장까지 갔다가 다음날 다시 지고 내려오는 방식인데, 짐꾼 1인당 최대 25kg까지 운반해 준다. 짐은 통상적으로 1박 2일 동안의 등산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배낭이나 카고백이므로, 등산객 2-3인이 공동으로 한 명의 짐꾼을 고용하면 된다. 

 

옥산9-1.jpg[상동포(上東埔) 주차장]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키나발루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짐꾼(=등산가이드가 겸직)이 짐을 운반해 주었는데, 그때는 비용이 등산객을 기준으로 하여 등산객 1인당 50불이었다(최대 20kg까지). 그런데 이번에는 짐꾼을 기준으로 하여 짐꾼 1인당 500불(최대 25kg까지)이다. 이렇게 비용 계산 방법이 다르긴 해도 단순히 kg당 단가로 계산하면 8배 차이가 난다.

 

    다만, 짐의 성격상 최대치에 이를 일은 거의 없으므로, 등산객 1인당으로 비교할 때 옥산에서 2인이 공동으로 짐꾼을 고용하면 등산객 1인당 250불이고, 4인이 고용해도 1인당 125불이다. 그렇다 해도 키나발루보다는 확실히 비싸다. 국민소득이 대략 대만은 34,000불, 말레이시아는 14,000불인 점을 감안할 때, 옥산 짐꾼의 운반비가 지나치게 비싼 것인지, 아니면 키나발루 짐꾼의 운반비가 지나치게 싼 것인지 헷갈린다(등산객 4인이 공동으로 짐꾼 1인을 고용할 때의 1인당 비용 125불은 두 나라의 국민소득 차이에 얼추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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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등산복무중심(排雲登山服務中心) 표지목]

 

   상동포의 등산로 시작 지점에 “배운등산복무중심(排雲登山服務中心)”이라는 글이 새겨진 거대한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튼 큰 것을 좋아한다. 옆의 또 다른 이정표를 보니 370m 전방에 배운등산복무중심(排雲登山服務中心)이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표지목 옆으로 난 완만한 경사의 포장도로를 따라 370m를 올라가니 과연 배운등산복무중심(排雲登山服務中心)이 나타났다. 옥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입산 허가(배운산장 숙박 허가를 겸한다)를 받는 곳이다. 건물의 입구 외벽에는 “옥산국가공원관리처 배운관리참(玉山國家公園管理處 排雲管理站)”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쉽게 말해 옥산관리사무소이다.  

 

옥산11.jpg[배운등산복무중심(排雲登山服務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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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0_175011.jpg[옥산 등산 개념도]

 

    전에는 이곳에서 입산 허가를 받으면 그때부터 걸어서 올라갔는데, 지금은 타타카안부등산구(塔塔加鞍部登山口)까지 3.4km를 마이크로 셔틀버스(공원에서 운행한다)를 타고 간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절약된다. 이 셔틀버스를 타고 타타카안부등산구까지 가는 동안에 차창에 어리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해발고도가 이미 2,000m를 훨씬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전 11시, 옥산 등산의 실질적인 시작점인 타타카안부등산구에 도착했다. 이곳의 높이는 해발 2,610m이다. 등산 시작점에는 옥산등산구(玉山登山口)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자연석 돌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옥산주봉(玉山主峰)이 해발 3,952m임을 알리는 인공표지석이 하나 더 있다. 그밖에 옥산동봉(玉山東峰. 해발 3,940m), 옥산북봉(玉山北峰. 해발 3,858m), 남옥산(南玉山. 해발 3,381m)의 각각의 높이를 새긴 인공표지석들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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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10-1.jpg[옥산 등산구와 등산로]

 

    오전 11시 10분, 드디어 옥산주봉 등정의 첫발을 뗐다. 가이드 유국용님이 주의를 준다. 등산로가 협소하고 길옆으로 작은 풀들이 자라는 곳이 종종 있는데, 이 풀들을 밟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풀이 죽을까 봐 그러는 게 아니다. 그 풀 밑은 족히 수백 미터 되는 천애의 절벽이라는 것이다.

 

   그랬다. 배운산장까지 이어지는 이 등산로는 높고 경사가 급한 산의 허리를 깎아 만든 탓에 매우 좁고 위험하다. 잠시라도 한눈팔다 등산로를 벗어나는 순간 황천길이 보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술하는 맹록정 쉼터가 단적으로 이를 말해준다. 

   이 길에는 길고 짧은 다리가 89개 있다. 계곡을 잇기도 하고, 도저히 길을 내기 어려운 낭떠러지에는 잔교(棧橋)를 설치한 것이다. 500m마다 지나온 거리와 앞으로 갈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좋은데, 이왕이면 그곳의 해발고도도 함께 알려주면 더욱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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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13-1.jpg[좁은 등산로와 다리]

 

   타타카안부에서 배운산장까지는 8.5km이다. 겹겹으로 펼쳐져 있는 산세와 이름 모를 거목과 고산식물들을 보면서 1.7km 오르다 보면 등산로 중 유일한 화장실(=측소. 厠所)이 30m 전방에 있는 맹록정 쉼터(孟祿亭. Monroe Pavilion. 해발 2,838m)에 다다른다. 

  이 정자는 1952년 당시 타이완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세무고문(稅務顧問. Tax Consultant) J.E. Monroe가 이곳을 지나다 추락하여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먼로의 혼이 서린 것일까, 정자 앞에 활짝 핀 매화꽃이 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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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14.jpg[맹록정과 매화]

 

   어느덧 시계가 정오를 지나고 있다. 점점 더 강해지는 햇살 아래 고산준령과 그 정점에 걸려 있는 흰 구름들이 연출하는 풍경에 넋을 잃는다. 하늘이 어찌 저리도 눈이 시리게 파랗단 말인가. 제발 내일도, 그중에서도 특히 새벽도 저렇게 맑으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빈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잠도 안 자고 이른 새벽에 기를 쓰고 올랐는데,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천지가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허망했던 지난해 키나발루의 산행이 제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는데....

 

옥산17.jpg[등산로에서 바라본 산, 구름, 그리고 하늘]

 

    맹록정에서 가파른 벼랑을 가로지르는 산길을 지나 1km를 더 가면 옥산전봉(玉山前峰. 3,239m)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오고(이곳에서 옥산전봉 정상까지는 800m), 여기서 다시 2.3km를 가면 백목림 휴식처 겸 전망대[白木林觀景臺. 서봉관경대(西峰觀景臺)라고도 한다]이다. 해발 3,000m를 돌파한 3,093m 지점에 있는 이곳은 나무의 표피가 화재로 하얗게 변한 고사목(枯死木)이 된 백목림(白木林)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맹록정과는 달리 이곳은 구색을 갖춘 목조건물에 긴 의자와 마루바닥을 설치한 제법 넒은 휴식공간이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백목림 지대도 장관이지만, 그 위로 펼쳐진 일(一)자에 가까운 거대한 암릉(岩陵)에 시선이 더 끌린다. 옥산주봉에서 옥산남봉으로 병풍을 펼쳐놓은 듯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다음 날 새벽에 그 산줄기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멀리 한양에서 찾아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1시 40분이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허기를 달랬다. 서울에서는 쳐다보지 않던 삼각김밥이 왜 그리 맛있는지... 팔 부상으로 가벼운 배낭을 메는 것도 여의치 않은 촌부를 대신하여 자기 배낭에 촌부의 도시락까지 함께 넣어온 도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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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19-1.jpg[백목림 휴식처]

 

옥산17-1.JPG[백목림 지대]

 

옥산18.jpg[옥산주봉에서 옥산남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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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림을 지나면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산객을 기다린다. 여전히 작열하는 햇볕을 받으며 1.7km 정도 가면 길 왼쪽에 대초벽(大峭璧. 해발 3,173m)이 나온다. 산행지도나 산행기에 꼭 언급되는 거대한 암벽으로 수직에 가깝다, 당초 바닷속에 있다가 지각운동으로 융기한 것이다. 가이드가 사전에 특별히 설명해 주었으면 유심히 보았을 텐데, 사전 지식이 없던 촌부는 ‘등산로 옆에 거대한 암벽이 있네’ 하면서 그 밑으로 난 길을 그냥 지나갔다. 아쉬운 대목이다.    

 

옥산21-2.jpg[대초벽]

 

   대초벽을 지나면 등산로가 다소 완만하여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그것도 잠깐이다. 1km 정도 더 가면 다시 가파른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배운산장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깔딱고개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의 깔딱고개인 만큼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숨이 가쁘다. 도리없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일행 중 올해 80세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은 아무래도 힘드신지 ‘가다 쉬다’를 반복하신다. 그 연세에 옥산 트레킹에 도전하신 것 자체가 대단한데, 놀랍게도 다음날 정상까지 오르고 완주하셨다. 훗날 나도 가능할까? 자신이 없다. 

 

   오후 4시 20분. 마침내 배운산장(排雲山莊. 해발 3,402m)에 도착했다. 타타카안부의 산행 시작 지점에서 5시간 10분 걸렸다. 여행사에서 예약하여 배정된 방으로 가니 상동포 주차장에서 짐꾼에게 운반을 맡긴 짐이 이미 와 있다. 

   방에는 2층 구조의 침상이 양쪽에 놓여 있다. 한 쪽에서는 각 층에서 1인이 잘 수 있고, 다른 쪽에서는 각 층에서 4-5인이 잘 수 있는 구조이다. 남녀 구분은 없다. 그리고 침상에는 사람 수에 맞추어 침낭이 비치되어 있는데, 근래에 구입하였는지 비교적 새것으로 따스했다. 

 

옥산22.jpg[배운산장]

 

   배운산장에는 식당이 하나 있다. 규모가 작아 등산객들을 시간대별로 구분하여 놓아 각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할 수 있다. 산장 측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식판에 받아 자리에 가지고 가 먹는데, 솔직히 식사의 질은 그야말로 허기를 때우는 수준이다. 게다가 오직 젓가락만 주고 숟가락이 없기 때문에 국그릇을 들고 마셔야 한다. 새벽에 정상에 오르기 전과 올랐다가 내려와 먹는 죽도 마찬가지다. 젓가락으로 죽을 먹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국물은 마실 수나 있지, 이거야 원... 그리고 이 산장에는 공동 세면장과 화장실이 있는데, 더운물은 물론 안 나온다.

 

   앞에서 국민소득에 대비하여 키나발루의 짐꾼과 이곳의 짐꾼 비용을 비교하여 보았는데, 키나발루의 라반라타 산장과 비교하면 이곳 산장의 수준은 정말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12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는 까닭에 성수기에 이 산장을 이용하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하니 어쩔 것인가. 

 

   산장에서 김텃골 교수님 가족을 만났다. 지난해 9월 태안에서 뵙고 난 후 오랜만에 다시 상봉한 게 대만의 옥산 배운산장일 줄이야. 촌부 일행의 옥산 트레킹 소식을 접하고 당신께서도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먼저 와 기다리신 것이다. 김교수님은 여행의 달인이라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 대신 혼자 또는 가족만의 자유여행을 즐기신다. 이번에도 김교수님 가족은 전날 이곳에 도착하여 1박하고 이날 이미 정상에 올라갔다 오셨다고 한다. 

 

옥산28.jpg[감텃골 교수님 가족과 함께]

 

   오후 5시 30분에 이른 저녁을 먹고(때우고) 서울아산병원의 김순배 교수님이 처방해 준 고산증 약을 먹었다. 해발 3,402m의 지점에 있는지라 머리가 약간 아픈 정도였지만, 지난해 여름 킬리만자로에서 겪었던 악몽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기에 미리 복용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한 번 더 먹었는데, 그 덕분에 고산증에서 해방되어 무사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산 등반 시 늘 먹던 비아그라를 이번에는 안 먹어도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김순배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저녁 7시에 잠을 청했다. 아니 자야 했다. 이때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산장 전체가 소등을 하기 때문이다. 

 

옥산주봉 정상 

 

    2024. 3. 1.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식당으로 가니 흰죽과 빵 등 몇 가지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조식(早食)보다 이르다 하여 조조식(早早食)이라 한다]. 입맛이 있을 리 없지만, 지난해 키나발루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 빈 속에 정상에 올랐다 허기가 져 힘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억지로 죽 한 그릇을 비웠다.  

 

    비가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전에는 흐리기만 하고 오후에나 비가 좀 내릴 거라고 한다. ‘구름(雲)을 배척한다(排)’는 이름에 안 아울리게 배운산장이 구름에 잔뜩 덮여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배운(排雲)’산장이 아니라 청운(請雲)’산장이라고 할 판이다

    아래위로 겨울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몇 겹 옷을 더 껴입은 후 정상을 향해 새벽 3시 30분에 출발했다. 정상에서 멋진 일출 광경을 보기 위해 잠도 설치고 오르는 것이다. 

 

옥산23.jpg[출발에 앞서]

 

    배운산장부터 옥산주봉 정상까지의 등산로는 전날 올라온 길에 비하여 경사가 가파른데다(전날은 표고차 792m에 거리가 8.5km인 데 비하여, 이날은 표고차 550m에 거리가 불과 2.4km이다) 그것마저도 대부분 돌길이다. 그런 험한 길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하여 오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촌부는 더구나 등산스틱을 하나밖에 사용 못 하는 처지이니...  

 

옥산23-2.jpg[옥산주봉 등산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로 오를수록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강풍까지 불어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찬 공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산소가 점점 희박해져 숨이 턱에 찬다. 어둠에 더하여 산을 온통 덮은 짙은 구름으로 헤드랜턴의 불빛도 고작 앞사람의 뒷모습을 겨우 비추는 정도이다.

     상황이 이러니 앞뒤 사람에 서로 의지하면서 한발 한발 오르는 발걸음이 마치 수도자의 그것과 같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 그대로이지만,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오르는 길이다. 이런 높은 산을 이처럼 이른 새벽에 힘들여 오를 때 느끼는 기분은 올라 본 사람만이 안다. 

 

옥산25-3.jpg[낭떠러지에 만든 길]

 

    지그재그 형태로 된 산길을 한 시간 반 정도 올라가니 터널이 하나 나왔다. 어둠 속에서 처음엔 자연 동굴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내려오면서 보니 그게 아니라 낙석이 빈번한 지대라 돌을 피하기 위해 철제 구조물을 터널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옥산 등산지도에 풍구(風口)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다. 글자대로라면 바람의 입구인데, 오히려 이곳은 세찬 바람을 피할 수 있어 좋다. 길이가 대략 2-30m 정도 된다.  

 

옥산24.jpg[풍구(風口). 낙석 피해 방지 시설]

 

   그런데 앞에서 가던 사람들이 더 이상 전진을 안 한다. 현재 속도로 올라가면 정상에서 일출 때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고,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추우니 차라리 이곳에서 기다리다 일출 시각에 맞추어 올라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3~40분 더 머무르다 그 후에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시 출발했다. 

 

   다만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대부분 쇠사슬을 잡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등산스틱은 불필요하고 오히려 짐만 된다는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스틱은 모두 한 곳에 모아두었다. 이런 곳에서 남의 스틱에 욕심낼 등산객은 없으니 분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다른 팀들도 스틱을 모아 놓은 곳이 보인다.

 

    터널에서 나와 조금 오르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배운산장에서 2.1km 되는 지점이다. 직진하여 2.1km 가면 옥산북봉이고, 오른쪽으로 300m 가면 옥산주봉임을 알려준다. 여전히 짙은 구름에 이정표 외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옥산25.jpg[삼거리 이정표]         

          

   이곳에서 옥산주봉까지 300m는 옥산 등산로 중 최고의 난코스이다.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바위길에 박아놓은 쇠막대기를 연결하여 놓은 쇠사슬을 잡고 올라야 한다. 곳에 따라서는 두 손 두 발을 동원해 기어올라야 한다. 

   짙은 구름으로 인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위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어 미끄럽기도 하다. 상고대를 연상케 하는 얼음이 얼어붙은 쇠사슬을 잡을 때는 머리가 쭈뼛해지기도 한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이라 전후좌우가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오직 정상을 정복한다는 일념으로 올라서 두려운 마음이 없었지, 정상에 올랐다가 시야가 어느 정도 트인 상태에서 하산하며 보니까 소름이 쫙 끼쳤다. 아니 도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올라갔나 싶었다.         

 

옥산25-1.jpg

옥산25-2.JPG[정상 가는 길]

 

    아침 6시 17분. 고작 300m를 무려 30분에 걸쳐 전진하는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정상에 섰다. 그러나 힘들게 오른 보람도 없이 고대했던 일출은 아쉽게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여전히 짙은 구름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강풍에도 날아가지 않고 끄떡 않으니 무슨 조화람. 정상에서 보인다는 옥산북봉이나 옥산남봉은 그것이 있는 곳의 방향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옥산의 산신령이 야속하기만 하다. 옥을 캐려나 했는데, 캐기는 커녕 보지도 못 하다니.

 

옥산26.jpg[옥산주봉 정상]

 

   이날이 3·1절이다. 때맞춰 가이드가 준비해 온 태극기를 들고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워낙 강해 혼자 들 수가 없어 일행 한 분의 도움을 받았다. 비록 옥은 캐지 못했어도, 동북아시아의 최고봉에 오른 희열에 더하여, 그런 곳에서 태극기를 들고 맞이하는 3·1절의 의미가 남다르다. 시 한 수를 읊어본다.

 

無杖陟玉頂(무장척옥정)

强風四面來(강풍사면래)

濃雲仙氣息(농운선기식)  

太極村夫心(태극촌부심)

 

    지팡이도 없이 옥산 정상에 오르니

    강풍이 사방에서 불어오누나

    짙은 구름은 신선의 입김이요 

    흩날리는 태극기는 촌부의 마음이다.

 

옥산27.jpg

 

    정상에 오른 후에는 내려갈 일만 남는다. 여전히 구름 속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위가 조금씩은 보인다. 그러나 시야가 트이는 것에 비례하여 겁이 난다. 쇠사슬에 붙은 얼음의 두께가 올라올 때보다 점점 더 두꺼워지고, 돌길은 더 미끄러워진다. 어휴, 저길 어떻게 내려가지... 

  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가는데, 전날 촌부의 점심 도시락을 운반해 주셨던 도반이 급기야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는 정도에 그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도대체 저 구름은 언제나 걷힌담. 

     

   걷다, 쉬다, 돌아보다 하면서 배운산장에 도착하니 아침 8시 10분이다. 식당에서 흰죽 한 그릇을 먹고 와 짐 정리를 했다. 전날 산행 출발지였던 타타카안부로 도로 내려가는 것이다. 무릇 어느 산이나 산행을 할 때 올라간 길을 그대로 다시 되돌아 내려가는 것은 무료하기 때문에 산꾼들은 가능한 한 이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냐 어쩌랴,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출발 즈음에 빗방울이 떨어져 다소 긴장을 했는데, 이내 그치고 하산길 내내 흐리기만 했다. 덕분에 덥지 않아서 좋았지만, 대신 맞은편의 깎아지른 산봉우리들이 연출하는 장엄한 풍경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구름이 연출하는 신비스런 분위기에 더하여, 알프스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에델바이스를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망외의 수확이다. 등산로 옆에 피어 있어도 자칫 무심코 지나쳤을 것을 원예전문가인 김텃골 교수님 덕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옥산29.jpg[에델바이스]

 

     타타카안부에 도착하니 낮 12시 25분이다. 이제부터는 전날의 역순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옥산관리사무소(=배운등산복무중심)를 거쳐 상동포 주차장까지 간 후, 그곳에서 대기 중인 여행사 버스를 타고 타이페이로 이동하면 된다. 이후의 일정은 산행과 무관한 까닭에 간략히 적는다.  

 

    도중에 “야압곡(野鴨谷)”이라는 상호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타이페이에 도착하니 오후 7시가 넘었다. 여행사에서 예약해 놓은 시간 관계상 점심 식사로 먹은 음식이 미처 다 소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바로 “대과벽몽고고육(大戈璧蒙古烤肉)”이라는 상호의 식당으로 가 화궈(火鍋)로 저녁식사를 했다. 거대한 식당에 한국인 손님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곳 같다. 

    식사 후 곧바로 “재춘건강생활관(再春健康生活舘)”이라는 마사지 업소로 가 단체로 40분간 발 마사지를 받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사지사가 정성을 기울여 마사지하는 게 느껴졌고, 실제로 다리의 피로가 많이 풀렸다. 비록 정해진 가격이긴 하지만, 팁으로 고작 한국 돈 2,000원을 주는 손이 부끄러웠다. 

 

옥산30.jpg[야압곡(野鴨谷) 식당]

 

옥산31.jpg[대과벽몽고고육(大戈璧蒙古烤肉) 식당]

 

옥산32.jpg[재춘건강생활관(再春健康生活舘) 마사지 업소]

 

    여행사에 마련한 다음 일정은 타이페이의 유명한 야시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새벽 2시에 일어나 종일 설친 산행의 피로가 쌓인 데다 비가 내리는 쌀쌀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모두 반대하여, 그냥 호텔(=하이야트 플레이스 뉴 타이페이)로 가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끝냈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옥산33.jpg[하이야트 플레이스 뉴 타이페이 호텔]  

 

 귀국

 

    2024. 3. 2. 당초 예정은 이날 귀국하는 것이었으나, 대만 전문가로 중국어에 능통하신 김텃골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 하루 더 머무르며 타이페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이 자리를 빌려 교수님과 교수님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촌부는 8년 전인 2016년 4월 초에 말썽이의 로스쿨 졸업 기념으로 타이페이 여행을 한 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이 불과 하루인지라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 잉거(鶯歌) 도자기 마을, 용산사(龍山寺), 야시장(夜市場), 이 네 곳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기에도 바빴다. 더구나 종일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해 나그네의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고궁박물관은 여전히 관람객이 많았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볐던 예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작금에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반영하는 듯하다.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이 줄어든 것이다. 이 박물관은 보유하고 있는 유물에 비하여 전시공간이 좁은 탓에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명성만큼의 값을 못 한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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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34-1.jpg[고궁박물관]

 

  잉거(鶯歌) 도자기 마을은 타이페이의 교외에 있어 한 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가야 한다. 이곳은 온갖 종류의 도자기를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중후한 것도 있고 귀엽고 앙증맞은 것, 참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것 등이 객의 시선을 끈다. 이 값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렴한 상품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까지 가져가는 일도 쉽지 않고, 서울 인사동에 가면 웬만한 게 다 있다는 생각에 눈요기에 그쳤다. 차를 마시는 다구(茶具)를 파는 곳이 많은데, 정작 차를 마실 만한 곳이 드물다는 게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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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35-2.jpg[잉거 도자기 마을]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용산사는 특이한 절이다. 1738년에 창건된 이 절은 국가지정 고적인데, 주불(主佛)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불교사찰이면서도, 안에는 도교의 여러 신들과 촉나라 장수 관우, 송나라 유학자 주자도 신으로 떠받들어 그 상(像)들을 모셔두고 있다. 이를테면 유불선이 공존하는 셈이다. 그런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런가 하면 방문객으로 하여금 점괘를 뽑게 한 후 이를 풀이해 주기도 한다. 

   해가 지면 그야말로 ‘절간’이 되는 한국의 사찰과 달리 용산사는 밤 10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관람객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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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36.jpg[용산사]

 

   용산사 건너편에 화시지예(華西街) 야시장이 있다. 타이페이는 야시장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시내 곳곳에 있다. 밤늦도록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도 한국 관광객이 많다. 대만식 빈대떡(아니면 대만식 피자?)이라고 할 만한 길거리 즉석 음식을 먹어보았는데 그럴싸했다.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 아예 한 곳 허름한 식당(그러나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곳이다)에 들어가 국수와 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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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37.jpg[화시지예 야시장]

             

   야시장 구경을 끝으로 호텔로 돌아와 다시 1박을 하고 2024. 3. 3. 귀국을 위해 타이페이 공항으로 갔다. 인천행 오후 1시 20분 발 아시아나 비행기가 웬일로 제시간에 계류장에서 활주로로 이동하나 싶었는데, 맙소사 활주로에서 2시간을 서 있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활주로 2개 중 하나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새삼 인천공항에 감사한 마음이다.

    끝으로 산행 기간 내내 도움을 주신 도반님들과 성의를 다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유국용 가이드님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김텃골 교수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끝)   

 

          옥산인증서.jpg

 

Teresa Teng (등려군)_Tian Mi Mi.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