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산이 안 보인다(황산)

2024.11.24 23:17

우민거사 조회 수:155

 

             다른 산이 안 보인다

 

   촌부가 해외 트레킹을 갈 때면 이용하는 여행사가 혜초여행사이다. 그 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은 산악인 출신답게 전 세계의 명산을 두루 섭렵하셨다.

   여러 해 전의 어느 날 그분과 환담 도중에 이제껏 가본 산 가운데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딱 한 곳만 고르라면 어디냐고 물었더니 즉각 황산이라고 답하셨다. 그러면서 촌부더러 꼭 가보라고 적극 권하셨다.

   그 이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황산을 마침내 올랐다. 중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2016년 여름에 실크로드(서안-우루무치)를 다녀온 후 8년 만이다.

 

황산57.jpg

 

    혜초여행사에서 마련한 4박5일 일정의 황산 트레킹을 떠난 것은 2024. 11. 2.이다. 첫날 하루는 삼청산을 먼저 오르고, 이어서 이틀에 걸쳐 항산을 오른 후 귀국하는 여정이다. 참가자는 모두 17명이다. 

   과연 얼마나 멋지길래 석채언 사장님이 그렇게 적극 권하셨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황산1.jpg

             [트레킹 전체 여정]

 

   2024. 11. 2.(인천공항-->항주-->황산시)

 

  낮 12시 30분 발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가 12시 5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대략 2시간 동안 976km를 비행하여 중국 항주(杭州) 공항에 도착했다(현지 시각 1시 40분. 중국은 전역이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황산2.jpg

 

   항주 공항의 벽에는 각국 언어로 환영 인사를 써놓았는데, 한글로 된 “환영”도 있다. 그런데 정작 환영을 못 받았다. 

 

   입국장에서 자동 열감지기로 열을 체크하더니 우리 일행 중 나만 별실로 데려가 정식 체온계로 5분 동안 체온을 쟀다. 그리고 다시 입을 벌리게 하여 목구멍에 면봉을 대서 검사를 했다. 이번에 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열흘 전부터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락내리락하여 병원에 다녔는데, 그게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탓에 미열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 이상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무사히 입국하였지만, 하마터면 황산은 구경도 못 한 채 봉변만 당할 뻔했다. 

 

   입국장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던 일행과 박민정 인솔자한테만 미안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동안 해외여행을 수없이 다녔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2023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던 항주(杭州)는 절강성(浙江省)의 성도(省都)로 현재 인구가 약 1,400만 명이다. 절강성은 면적이 남한보다 약간 넓고(10.18만 ㎦) 인구가 5,200만 명이다. 면적이나 인구수로 볼 때 대략 남한 만한 셈이다. 중국의 22개 성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지역 중 하나로, 항주에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다. 수나라 때 항주에서 북경까지 운하를 건설하였다.

 

   이 항주의 가운데로 전당강(錢塘江)이 흐른다. 이 강의 하류인 항주 지역에서는 정기적으로 바다에서 조수가 밀려와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음력 7-9월의 보름 무렵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해일도 발생하여 강가의 도로를 덮치기도 한다. 특히 추석 무렵에 ‘해녕조(海寧潮)’라 불리는 바닷물이 수 미터 높이(최고 10m)의 조수가 되어 전당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장관을 이룬다.

  서기 970년 지각선사가 강의 이런 역류 현상을 진정시키고자 강기슭에 세운 육화탑(六和塔)은 그 광경을 잘 볼 수 있는 명소이다. 

 

황산3.jpg[전당강의 역류 모습: 자료사진]

 

황산4.jpg[육화탑 : 자료사진]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항주만의 전당강 하류가 나팔 모양으로 되어 있어 하구 근처는 너비가 100km 정도 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데, 밀물이 들 때면 바닷물이 100km 너비에서 갑자기 불과 몇 킬로미터(육화탑 부근은 2km)로 좁아진 강으로 밀려들면서 물이 역류하고 파도가 치는 것이다. 여기에 조류의 흐름과 비슷한 방향의 동남풍이 불어 또한 한몫 거든다.

 

   항주의 강남 쪽에 있는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현지 가이드 한승룡님(연변이 고향인 조선족으로 황산에서 20년 동안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의 안내를 받으며 전당강대교를 건너 강북 쪽의 육화탑 밑으로 난 길을 지나 서쪽으로 3시간 30분 달려 황산시(黃山市)에 도착했다.

 

   황산은 행정구역이 절강성이 아니라 안휘성(安徽省)이다. 안휘성은 면적이 13.94㎦에 인구가 6,700만 명 정도 된다. 이웃인 절강성에 비해 규모가 크지만 경제력은 크게 처진다. 이곳의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성의 남부에 있는 황산이다. 

 

   황산시의 본래 이름은 휘주(徽州)였는데 황산으로 개명하였다. 명산인 황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안휘성의 ‘휘(徽)’자가 바로 이 휘주에서 따온 것이다. 황산을 청정지역으로 보존하기 위해 사방 200km 이내에는 공해업소의 설립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본래 75%가 산악지형이어서(안휘성의 북부는 평야지대인 데 비해 남부는 산악지대이다) 사람이 살 곳이 못 되고 전쟁이 나면 피난민이 몰려들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주희(朱熹)라는 큰 인물이 나왔다는 것이 이채롭다. 하긴 지금은 인구가 135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는 인천공항에서 황산시까지 대한항공 직항편이 다녔는데, 코로나로 노선이 폐쇄되어 지금은 안 다닌다.  

 

   황산시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호텔 투숙에 앞서 ‘휘상고리(徽商故里)’라는 대형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이곳만이 아니라 전국에 여러 곳에 지점이 있다고 한다.

   드디어 기름진 중국 음식의 시작이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먹어야 했는데(호텔의 뷔페식이든 일반식당의 각종 요리든), 정말 매번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굴뚝같이 났다. 

 

황산5.jpg[휘상고리]

 

   이 식당 이름에 붙은 ';휘상(徽商)'은 그냥 붙인 것이 아니다. 휘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상인인 휘상(徽商)과 산서(山西)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진상(晉商. 晉나라 상인이라는 뜻)은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상업 능력이 가장 뛰어난 상인들이었다. 

 

    라이벌 관계였던 두 지역 출신 상인들이 명·청기에는 중국의 상권을 휘어잡았다. 두 지역 다 척박한 산지라서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농업이 아닌 상업에 일찍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휘상과 진상이 상권을 장악한 것이다.

    휘주에서 남자는 13살이 되면 쫓겨나다시피 집 밖으로 떠밀려 나가 장사꾼이 되었다고 한다. 휘상들은 주로 소금, 면포, 차, 문방사우(文房四友) 등을 취급했다. 

 

   전통적인 상업방식을 고수했던 휘상과 진상들은 청나라 말기 이후의 국가적 혼란과 밀려드는 서양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몰락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의 청나라 시대에 조성되어 내려오는 옛 거리(老街)를 둘러보았다. 중국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고대 건축양식의 상점가이다.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시키듯 고풍이 물씬 난다. 그 거리의 가장 많고 중요한 지분을 차지는 상점은 차 전문점과 문방사우 전문점이다. 

 

    안휘성이 자랑하는 명차인 기문홍차(祁門紅茶. 세계 3대 홍차 중 하나이다), 황산모봉(黃山毛峰.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이다), 태평후괴(太平猴魁. 주은래가 중국을 방문한 닉슨에게 선물하였고, 후진타오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에게 선물한 차이다)를 가는 곳마다 쌓아놓고 파는데, 그 저렴한 가격에 입이 벌어졌다. 대략 서울의 인사동에서 파는 값의 1/10 정도 하는 듯하다. 가져갈 공간도 없고, 이제 여행의 첫날이라 기념으로 각 1통씩 구입하는 데 그쳤다. 

 

황산6.jpg

황산7.jpg[청대 옛 거리]

 

   숙소인 백경가일호텔(栢景假日酒店)에 도착하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 중국은 뭐든지 만들었다 하면 크게 하기로 유명한데, 호텔 역시 마찬가지다. 무슨 호텔이 그리도 큰지 같은 계열의 여러 개 호텔이 그룹을 지어 있어 자칫하면 입구를 헷갈리기 십상이다. 

   내부 시설도 훌륭하다. 8년 전 실크로드 탐방 때와는 또 다르다. 4박5일의 여정 중 황산의 산 위에 있는 사림호텔에서 하루 잔 것을 제외하고 이 호텔에서 사흘을 묵었다.

 

황산8.jpg[백경가일호텔(栢景假日酒店)

 

   2024. 11. 3.(삼청산)

 

   아침 6시에 일어나 6시 30분에 호텔의 뷔페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7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삼청산(三淸山. 해발 1,817m)으로 출발했다. 삼청산 트레킹은 다음날부터 1박 2일로 진행할 환산 트레킹에 앞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푸는 여정이다.

   삼청산은 황산의 남쪽에 있는데, 황산시에서 삼청산까지는 차로 2시간 30분 걸린다(263km).

 

   삼청산이 있는 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안휘성이 아니라 강서성(江西省)이다. 강서성은 면적이 16.7만㎢에 인구가 4,500만 명이다. 전날에 이어 이틀 사이에 3개 성을 다니는 셈인데, 중국의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3개 성이지, 웬만한 나라 3개를 다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강서성은 말 그대로 서쪽의 강이 많은 곳이다. 강줄기가 무려 2,400여 개나 된다.

 

  근래 등산객들에게 황산 못지않게 인기를 끄는 삼청산은 14억 년 전 지질변화를 거쳐 형성된 산으로, 현존하는 화강암 밀집군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거칠고 강렬한 느낌의 황산과 비교할 때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삼청산은 독특한 지질구조와 자연경관으로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12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수많은 화강암 기둥과 봉우리가 조화를 이루며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에 더하여 수령이 6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바위를 뚫고 나와 하늘로 우뚝 솟아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일찍이 소동파(蘇東坡)는 삼청산을 두고 이렇게 읊었다. 

 

   攬勝遍五嶽(남승편오악) 

   絶景在三淸(절경재삼청)

   雲霧的家鄕(운무적가향)

   松石的畵廊(송석적화랑)

 

   오악의 절경을 두루 보고자 하면 

   그 절경은 삼청산에 있다.

   구름과 안개의 고향이요 

   소나무와 돌의 화랑이다.

 

   금사(金沙) 케이블카장 입구에 세워놓은 문의 좌우 기둥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바위에 "강남 최고의 선봉이고, 천하무쌍의 복 받은 땅(江南第一仙峰, 天下無雙福地)"이라고 써 놓았듯이, 삼청산은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선경을 자랑하는 복 받은 산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산의 풍광을 “동쪽은 험준하고, 서쪽은 기이하며, 북쪽은 수려하고, 남쪽은 절묘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황산16.jpg[삼청산 전경]

 

   삼청산은 특이하게도 1,600여 년 전 동진(東晉) 시대 때 도사 ‘갈홍(葛洪)’이 이곳에서 단약(丹藥)을 빚고 법을 설파하면서 도교가 퍼지기 시작한 이래 많은 수행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지금도 도교 관련 230여 개에 이르는 문화유적들이 풍부하고, 도교의 성소인 삼청궁(三淸宮)에는 지금도 많은 수도자가 기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삼청산은 중국 도교의 성지이다. 그래서 ‘노천도교박물관’이라 할 정도이다.

  

   ‘삼청산(三淸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산 정상의 옥경봉(玉京峰. 해발 1,817m), 옥허봉(玉虛峰. 해발 1,771m), 옥화봉(玉華峰. 해발 1,752 m) 세 봉우리가 마치 도교의 최고 신선인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이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산16-1.jpg[삼청궁] 

 

   삼청산에는 2개의 케이블카 노선이 있는데, 하나는 금사 케이블카이고 다른 하나는 남부 케이블카이다. 삼청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사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아침 10시 삼청산 등산로 입구의 금사 케이블카(8인승) 타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15분) 올라가야 트레킹이 시작된다. 그런데 인구 대국 중국답게 벌써 인산인해다. 등산객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도 몰리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 언제나 케이블카를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런 때 중국 특유의 이른바 “관시(關係)”문화가 작동한다. 황산 가이드 경력만 20년인 한승룡님의 폭넓은 관시(關係)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황산15.jpg[금사 케이블카장 입구]

 

   케이블카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트레킹을 시작한 시각이 오전 10시 40분이다. 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하였는데, 그 총거리가 대략 10km이고, 소요시간은 5시간 정도이다. 길에서 만나는 이정표에 영어 외에 한글도 병기되어 있는 곳이 많아 반갑다.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다.

 

황산17-1.jpg[삼청산 트레킹 개념도]

    

   케이블카가 쏟아내는 사람들로 처음에는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을 정도였다. 그들의 복장에 비추어볼 때 단순관광객이 훨씬 더 많은 듯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찔한 절벽에 선반을 매달 듯 설치하여 놓은 고공 잔도(棧道. 삼청산 전체로 총연장 약 20km)가 거의 평탄하여 걷기가 쉽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른 황산의 잔도는 계단과 평지의 비율의 80:20인 데 비하여, 삼청산의 잔도는 반대로 계단이 20% 정도이고 80%는 콘크리트 포장을 한 평지다. 

 

   그러니 단순히 소풍 나온 차림의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곳곳에 식사가 가능한 휴게소나 매점이 있어 소풍객의 입장에서는 금상첨화이다. 물론 이들은 잔도를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초반의 거망출산(巨蟒出山), 동방여신(東方女神) 등 명물 바위들을 구경한 후 대부분 도중에 돌아가는지라 그 후부터는 다소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초한지(楚漢誌)에 보면 유방이 항우에게 밀려 파촉(巴蜀)으로 들어간 후 항우의 의심을 피하려고 중원으로 나가는 통로인 잔도를 불태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중국에서 잔도는 역사가 깊다. 

 

   삼청산의 많은 잔도 중에서 특히 남해안잔도와 서해안잔도가 산객을 즐겁게 하는데, 출발해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이내 나타나는 남해안잔도는 수직 절벽에 만든 고공 잔도를 처음 접하는 놀람의 대상이 되고, 중간에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후 걸은 후반부의 서해안잔도는 평균 해발고도 1,600m에 총거리 3.6km나 되는데도 계단이 하나도 없어 다시 놀란다. 그래서 유유자적 걷다 보면 마치 구름 속에서 노니는 느낌이다. 

 

황산18.jpg

황산19.jpg

황산19-1.jpg

황산19-2.jpg

황산19-3.jpg[잔도의 이모저모]

 

  삼청산은 1년에 270일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어 제대로 된 경치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이날은 시종일관 쾌청하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로 전날도 비가 왔다고 한다. 

  한승룡 가이드님의 말에 따르면, 트레킹하는 사람의 80%는 제대로 못 보고 돌아간다고 한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3대에 걸쳐 덕을 쌓은 모양이다. 

 

  삼청산도 그렇고 후술하는 황산도 동일한데, 케이블카에서 내려 잔도를 걸은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단 한 번도 흙을 밟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길에서는 휴지, 비닐봉지, 페트병 등을 볼 수 없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쓰레기통이다. 잔도 곳곳에 콘크리트로 된 고정형 휴지통(주위 풍광에 어울리는 색을 칠해 전혀 어색하지 않다)을 설치해 놓고 청소부가 계속 순회하면서 수시로 수거해간다. 그래서 쓰레기로 꽉 찬 쓰레기통은 볼 수 없다. 심지어 점심 식사를 한 곳은 쉬어가라고 벤치를 여러 개 설치하고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17명이 도시락을 먹고 난 많은 쓰레기를 버리기가 무섭게 수거해갔다. 이러니 등산로가 쾌적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일행은 도시락을 먹었지만, 사실 전술한 대로 음식을 파는 휴게소와 매장이 여럿 있어 개별 산행이라면 굳이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화장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깨끗한 화장실이. 전에 키나발루 트레킹 때도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을 부러워했는데, 삼청산과 황산은 그보다도 더 쾌적하다. 

 

  그런데 “내 쓰레기는 내가 가져간다”는 슬로건 하에 쓰레기통을 치워버렸고, 화장실은 천연기념물이라 할 정도로 희소한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현실은 어떤가. 길에, 계곡에 버려진 콜라병, 생수병, 비닐봉지, 휴지.... 어쩌다 발견한 화장실은 악취가 코를 찌르고.

 

   수익자 부담으로 입장료를 받으면 재원이 충분히 마련되련만, 엉뚱하게 국립공원을 공짜로 입장하게 해 놓고 쓰레기통과 화장실의 설치 유지비가 없거나 부족하다는 타령을 할 일인가. 입장료 1,000원(아니면 그 이상)을 받는다고 설악산을 갈 사람이 안 갈 것인가. 세금으로 국립공원을 유지하려니 늘 재원이 부족하고, 평생 높은 산에 한 번도 안 가는 사람도 국립공원 유지비 충당을 위한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인해 퍼렇게 멍든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이 삼청산과 황산에 대비되어 씁쓸하다.      

  

  각설하고, 잔도에서 만나는 수많은 기암(奇岩)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을 몇 개 보자. 

 

  동방여신(東方女神) 

 

  ‘사춘여신(司春女神)’이라고도 불린다. 삼청산의 명함이라 할 수 있는 여성 얼굴 모양의 큰 바위로, 본래 이름은 ‘여신봉(女神峰, 해발 1,180m)’이다. 이 바위는 콧마루와 턱·입·머리결까지 여성의 모습과 닮았고, 그 높이가 86m나 된다. 사대부 집안의 근엄한 안방마님 모습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단아한 소녀 같기도 하다. 

 

황산21.jpg[동방여신] 

 

   거망출산(巨蠎出山)    

 

  삼청산의 또 다른 대표적인 상징물로 동방여신과 마주 보고 있다. 높이가 128m, 지름이 7~10.5m인 이 거대한 바위는 마치 큰 구렁이(巨蠎)가 머리를 쳐들고 산으로 나오는(出山)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그렇게 명명되었다. ‘코브라바위’라고도 한다.

   등산로를 따라가노라면 한동안 사방에서 볼 수 있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보인다. 2017년에 영국 세계기록인증기관(WRCA)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비단뱀 모양의 봉우리’로 인증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23번째 딸 요희(瑤姬)가 인간 세상에서 젊은 사냥꾼과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알고 서왕모가 둘을 갈라놓기 위해 사냥꾼을 코브라로 만들어 산속에 가두어버렸다. 요희는 너무 슬퍼 산 위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사춘여신(司春女神)이 되었다.

 

   2017년 4월에 3명이 거망출산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하켄(Haken)을 박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만용을 부렸다가 형사처벌을 받은 일이 있다(꼭대기에 오른 2명은 각각 징역 1년과 벌금 10만 위안, 아래에서 보조한 1명은 벌금 5만 위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황산21-1.jpg[거망출산]

 

  도사와 돼지머리

 

   이건 촌부가 붙인 이름이다. 서해안풍경구에서 볼 수 있다. 도교의 수염을 기른 도사가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뒤에 돼지 한 마리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물 같기도 하고, 도사를 수행하는 제자 같기도 하다.     

 

황산20.jpg[도사와 돼지머리]

 

  그 밖에도 코끼리코를 그대로 닮은 바위와 하늘로 뻗은 손가락 모양의 바위가 시선을 끌었다. 

 

                 황산23.jpg

                [코끼리코]

 

황산22.jpg[하늘로 뻗은 손가락]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금사 케이블카장으로 돌아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였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황산시로 돌아오니 만추의 밤이 깊어간다. ‘한도숯불구이(韓都碳烤)’ 집에서 삼겹살과 상추로 배를 불리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 9시가 넘었다. 긴 하루였다.

 

황산24.jpg[한도숯불구이]

 

  2024. 11. 4.(황산)

 

  드디어 황산을 오르는 날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6시 30분에 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에 호텔을 나섰다. 서울에서 가져온 짐 중 황산을 오르고 산상의 호텔에서 1박하는 데 필요한 것만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호텔에 맡겼다. 산행을 마치면 다시 이 호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모두 지정된 황산은 중국 10대 명승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국 10대 명승지 중 산은 황산이 유일하다. 가로 40km, 세로 30km, 총 둘레 250km에 이르는 이 산은 선경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풍광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찬사를 받았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은 이산(黟山. 검은 산이라는 뜻이다)이었는데, 중국의 옛날 전설에 나오는 3황5제(三皇五帝. 전설에 의하면 이들로부터 중국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 한 명인 ‘황제(黃帝)’가 이 산에서 온천욕을 하고 선단(仙壇)을 만들어 신선으로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당나라 현종이 황제(黃帝)의 황(黃) 자를 따서 황산(黃山)으로 부르게 하여 이름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황산25-1.jpg [황산 전경]

 

   황산에는 연화봉(최고 높은 봉우리. 해발 1,864m), 광명정(해발 1,860m), 천도봉(해발 1,810m)의 세 주봉 외에 해발 1,000m가 넘는 69개의 멋진 화강암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달리기하듯 솟아있고(당초 고생대에 생겨난 이 봉우리들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식이 되면서 지금의 낭떠러지 절벽이 되었다), 기암괴석들과 소나무, 그리고 안개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이들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를 온천(溫泉)과 더불어 황산사절(黃山四節)이라고 한다. 

 

  이 높고 깊은 산에 바다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봉우리들의 위나 밑으로 구름과 안개가 덮인 공간을 보고 사람들은 이를 바다라고 불렀다. 이름하여 구름바다(雲海)이다. 그래서 황산에는 사면팔방으로 돌아가며 바다가 있다. 동해, 서해, 북해, 그리고 천해(天海)가 그것이다. 

 

   경치가 이처럼 빼어나다 보니 황산을 찾는 ‘화가는 붓을 들고, 시인은 펜을 든다’는 말이 있고,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 1586-1641)은 전국의 명산대천을 두루 섭렵한 후 

 

  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

 

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뜻인즉,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온갖 명산이 많은데, 그중에서 오악(五岳. 중국의 5대 명산으로 항산, 화산, 숭산, 태산, 형산을 지칭한다)을 다녀오면 다른 산들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다녀오면 그 오악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산25-0.jpg[황산 트레킹 개념도]      

  

   오전 7시 40분 황산 시내의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로 50분 거리의 황산버스터미날에 도착한 후 자광각으로 가는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가니 자광각(紫光閣. 해발 830m) 케이블카장이다. 이곳에서 오전 9시에 옥병루행 케이블카에 올랐다. 

 

  급경사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의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수직에 가까운 암봉들 사이로 까마득한 급경사(표고차가 740m이다)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혹시라도 서버리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공상을 해 본다.  

 

황산25-2.jpg[자광각 케이블카]

 

   20여 분 걸려 옥병루(玉屛樓. 해발 1,570m) 하차장에 도착하여 하차한 후 바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황산의 유명한 잔도를 오르는 것이다. 

 

   76세의 나이로 1979년에 황산을 찾은 등소평이 황산의 멋진 풍광을 전 국민이 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한 후 21년에 걸쳐(설계 12년 + 공사 9년) 70여만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잔도를 건설하였다고 한다(2001년에 개통).

   황산 전체에 총 23만 개의 돌계단이 있는데, 그중 옥병루 케이블카장에서 서해대협곡을 거쳐 정상의 호텔까지 가는 데는 18,000개가 있다. 

 

황산43-1.jpg[황산의 잔도]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깎아내 두 사람이 지날 수 있는 돌계단을 만든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놀랍게도 그 계단을 가마가 다닌다. 앞뒤의 두 사람이 어깨 위에 멘 가마에 사람이 탄다. 

   황산의 잔도는 오르고 싶은데 다리는 말은 안 들으니 가마를 타는 모양인데, 유심히 보면 가마에 탄 사람들은 대개 눈을 감고 있다. 내 발로 걸어 올라가면서도 발아래의 깎아지른 절벽에 현기증을 느끼는 판에 흔들리는 가마를 타고 있으니 오죽하랴 싶다.     

 

             황산28.jpg

황산28-1.jpg[잔도를 오르는 가마]

 

   오전 9시 40분, 황산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명물인 영객송(迎客松. 해발 1,670m)에 도착했다. 두 팔을 벌려 손님을 영접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소나무이다. 황산에 있는 수많은 소나무를 대표하는데, 수령이 1,500년이고 이 나무의 보존을 위해 보험까지 들었다. 그 보험가액이 무려 1,000억 위안이라고 한다. 

 

   이런 명물이다 보니 이 소나무를 보려는 사람들로 그 주위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그 바람에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20분 넘게 걸렸다.  

   ​언뜻 보면 수많은 소나무 중 한 그루에 불과할 뿐인데, 작명을 어떻게 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이 다분히 섞인 듯하다. “관광은 포장이다”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황산30.jpg

황산29.jpg[영객송]

 

   영객송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황산의 제1봉인 연화봉(蓮華峰)이 눈앞에 보인다. 아쉽게도 지금은 안식년 기간이라 오를 수가 없다. 제2봉인 광명정은 상시 개방이지만, 연화봉과 제3봉인 천도봉은 5년 주기로 돌아가며 안식년을 실시한다.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연화봉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온통 거대한 암봉인데 정상을 항하여 가파른 절벽에 설치한 잔도가 멀리서 보기에도 아찔하다.  

 

황산32.jpg[연화봉]

 

   연화봉을 옆으로 두고 난 길을 따라가자 전망대가 나오고 멀리 광명정이 아스라이 보인다. 이어서 경사가 급하고 좁아 사람들로 붐비는 내리막계단인 백보운제(百步雲梯)를 지나면 오어봉(鰲魚峰. 해발 1,790m)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이 오르막 계단을 포함하여 백보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보운제(百步雲梯)는 이름대로라면 구름 속에 있는 100개의 계단이어야 하는데, 100개가 훨씬 넘는다. 특히 오르막 계단까지 포함할 경우에는 계단이 족히 1,000개가 넘는다.

   중국 지명에는 과장이 심한 곳이 많은데, 이곳은 거꾸로 축소하여 이름을 붙였다. 그 이유가 뭘까. ‘천보’나 ‘만보’라고 하면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안 오를까 봐 그런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황산31-1.jpg

황산31.jpg[백보운제]

 

   자라(鰲)처럼 생겼다 하여 오어봉(鰲魚峰)이라 불리는 봉우리를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의 일직선으로 난 계단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그재그로 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다. 

   거리가 짧은 직선코스가 당연히 시간이 덜 걸릴 듯한데 실상은 그 반대이다. 직선코스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정체가 심하기 때문이다. 직진코스는 하나의 선(線)이 하늘을 향했다 하여 따로 일선천(一線天)으로도 불린다(백보운제 전체를 일선천이라고도 한다).  

 

황산34.jpg

황산33.jpg [오어봉과 올라가는 돌계단코스]

 

   날이 좋아 햇볕이 작열하는 가운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40여 분 걸려 오어봉에 다 오르니 오전 11시 10분이다. 전후좌우로 탁 트인 전망이 장관이다. 광명정과 그 밑의 천해호텔이 선명하게 보인다.

  전술한 대로 가마를 타고 올라온 사람이 있어 자세히 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자고 있다. 가마를 타도 피곤하고 힘든 모양이다. 하긴 가마멀미를 한다고 하지 않던가. 

 

황산35.jpg[광명정이 보이는 바위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광명정을 향해 출발했다. 20분 정도 걸려 천해호텔(해발 1,690m) 앞 광장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들렀는데, 규모와 청결함에 새삼 감탄하였다. 

 

    화장실 볼 일을 본 후 천해호텔 옆의 광명정 오르는 길목에서 한승룡 가이드님께 배낭을 맡기고 광명정으로 향했다. 왕복 산행인지라 힘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광명정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동안 이곳에서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멀리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고, 더구나 연화봉도 못 올라간 마당인데 누가 있어 쉬고 안 간다고 하랴. 허위허위 걸음을 재촉하여 계단길을 오르니 20분 만에 광명정에 도착했다(낮 12시).   

 

황산35-2.jpg[천해호텔 앞 공중화장실]

 

황산35-1.JPG[광명정 오르는 계단]

 

   광명정(光明頂)은 전술한 대로 황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해발 1,860m). 최고봉인 연화봉보다 불과 4m 낮다. 그런 만큼 황산의 여러 일출 명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곳에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윗부분은 기상관리처로 사용하고 아랫부분은 산장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흥미롭게도 광명정의 최고점은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아니라 바로 옆의 다소 펑퍼짐한 바위이다. 그래서일까 그 바위 위에 사람이 몰려 있다. 추락 방지를 위해 바위 주위에 설치해 놓은 난간의 줄에는 자물쇠가 줄줄이 걸려 있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명승지에 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황산36.jpg

황산37.jpg[광명정]

 

황산37-1.jpg광명정에서 바라본 천도봉과 연화봉]

 

   광명정에 올랐다가 천해호텔 앞 공터로 다시 내려와 500m 떨어진 곳의 백운(白雲)호텔로 향했다. 10분 만에 도착한(낮 12시 20분) 이 호텔이 이날 점심 식사 장소이다. 호텔 안 지하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전술한 황산 시내의 ‘휘상고리(徽商故里)’의 지점으로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 이곳까지는 아직 일반 관광객들이 많아 식당이 상당히 붐볐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서둘러 식사를 하고 나왔다.

 

황산38.jpg[백운호텔]

 

   백운호텔의 정문에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이 지은 시 ‘산행(山行)’의 아래 구절이 좌우 기둥에 씌어 있다.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멀리 늦가을 산의 경사진 돌길을 오르니

    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인가(人家)가 있네

 

  그렇다. 황산에는 그 많은 돌계단을 오르면 해발 1,600-1,700m 되는 곳에 백운호텔, 서해호텔, 북해호텔, 천해호텔, 사림호텔 등 호텔이 여럿 있고, 현재 신축 중인 호텔들도 있다. 그 호텔들이야말로 하나같이 위 시에서 말하는 대로 경사진 돌길을 올라가 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있는 인가(人家)들이다.

   물론 9세기의 두목(杜牧)이 21세기의 이 호텔들을 염두에 두고 위 시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한 게 흥미롭다.

     

   백운호텔을 출발하면 본격적으로 서해대협곡으로 향하게 된다. 이제부터 정말로 힘든 많은 계단을 걸어야 하니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지름길로 배운루에 가서 기다리다 만나자고 한승룡 가이드님이 말하지만, 역시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해대협곡이야말로 황산의 백미로 24개 협곡 중 가장 절경을 자랑하는 곳인데 이곳을 생략하면 힘들여 황산에 온 보람이 없으니 말이다.

 

황산39.jpg[서해대협곡 트레킹 개념도]

 

   출발에 앞서 배낭을 짐꾼에게 맡겼다. 이날 최종 목적지인 사림호텔까지 운반해 주는데 비용이 130위안이다. 산에서 1박할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새벽 추운 날씨에 시신봉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과 옷을 챙겨오다 보니 배낭이 꽤 무거웠다. 영객송부터 이곳까지는 한승룡 가이드님의 비교적 가벼운 배낭과 바꿔 메고 왔지만, 서해대협곡은 계단이 더욱 가파르고 많아 아예 짐꾼을 고용한 것이다. 

 

   황산트레킹은 1박2일 동안 길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힘든 여정인 만큼 옥병루 케이블카장을 출발할 때부터 짐꾼을 고용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 트레킹 때는 현지 가이드가 아예 출발 시에 그런 안내를 해서 큰 도움을 받았었다.

   이번 트레킹에 함께하신 분들 가운데도 연로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미리 그러한 내용을 공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오후 1시 20분 백운호텔을 출발했다. 출발지에서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내 보선교(步仙橋)라고 양쪽의 바위 절벽을 연결하여 통로를 만든 다리(길이 10m)를 건너게 된다. 신선(仙)이 걷는(步) 다리이니 이 다리를 건너면 바야흐로 누구나 신선이 되는 걸까. 

 

황산40.jpg[보선교]

 

   그렇게 신선이 되어 걷노라면 곧 천해참(天海站. 해발 1,706m)이라는 모노레일 탑승장이 나온다. 백운호텔로부터 600m 떨어진 곳이다. 

 

   이 모노레일(60인승)을 타고 서해대협곡의 맨 밑바닥인 곡저(谷底. 해발 1,209m)로 내려간다. 상차장인 천해참부터 하차장인 배운계참(排雲溪站)까지 모노레일의 길이는 892m이고 표고차는 497m이다. 모노레일은 사면이 투명한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5분의 짧은 시간에 서해대협곡의 편린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노레일은 2013. 7. 9. 개통되었다.  

 

황산41.jpg

황산42.jpg[모노레일]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이제부터 바야흐로 황산의 가장 절경인 서해대협곡 트레킹이 시작된다. 서해대협곡은 황산 서쪽 일대의 거대한 협곡에 바다처럼 넓고 깊은 풍광을 담고 있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 

 

   깎아지른 듯 뾰족하게 서 있는 암봉의 옆구리로 난 돌계단 잔도를 오르고 또 오른다. 멀리서 보면 하늘을 향해 달리기하듯 경쟁적으로 솟아있는 암봉들의 절벽뿐이라 도저히 길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곳, 그곳에 길이 있다. 

 

  상황에 따라 바위를 깎기도 하고, 선반을 설치하기도 하고, 굴을 뚫기도 하여 만든 미로(迷路) 같은 이 잔도는 난간 옆이 천 길 낭떠러지인 곳이 많아 오금이 저린다. 그래서 ‘황산 산행 때는 걸으면서 경치 구경을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차마 밑을 내려다볼 수 없어 암벽에 붙어 걷느라 기념사진을 찍을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귀신도 홀리는 마법에 걸려 있는 듯하기도 하고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로운 풍경이라 하여, 마환경구(魔幻景區) 또는 몽환경구(夢幻景區)라고 불릴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을 어찌 서서만 구경하랴. 

 

    촌부는 본래 고소공포증을 모르는 데다 이미 전날 삼청산에서 고공잔도 걷기 예행 연습을 한 터라, 걸으면서 보고, 쉬면서 보고,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오르면서 보고, 내리면서 보고, 난간에 기대서 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발을 옮긴다. '보고'를 '뜨고'로 바꾸면 바로 판소리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 중 천하맹인이 눈 뜨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황홀하기만 한 경치에 넋을 잃는다. 그저 “야, 정말 멋있다. 진짜 장관이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황산26-1.jpg

                        황산26-0.jpg

황산27.jpg

황산44.jpg

황산45.jpg[서해대협곡의 잔도]

 

   이날은 날씨까지 도와주어 높디높은 뾰족 봉우리들과 깊은 골짜기가 연출하는 장면을 눈에 다 담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거기에 더하여 이따금 몰려왔다 멀어져 가는 구름이 조연으로 등장하여 선경을 연출한다.

     이쯤 되면 시 한 수가 없을 수 없다.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의 흉내를 내 본다.    

 

  흰 구름 푸른 솔은 골골이 잠겼는데

  만추에 물든 단풍 봄꽃보다 더 좋아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며내누나

 

   한승룡 가이드님의 말이 당신이 20년 동안 황산 가이드를 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황산에 올라 이날처럼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은 20% 정도밖에 안 되고 대개는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거나 비가 와 제대로 못 본다고 한다. 대략 1년에 200일은 그런 날이라고 한다.

    삼청산에서도 느꼈지만, 분명 우리 일행 중에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3대에 걸쳐 덕을 쌓은 사람이 있나 보다.     

 

황산46.jpg

황산47.jpg[봉우리, 소나무와 구름이 연출하는 선경]

 

  배운루를 향해 가는 가운데 발아래로 배운정이 보이고 그리로 내려가는 길도 보인다. 그곳에서 보는 서해대협곡의 경치가 또한 일품이라지만, 백운호텔을 출발한 후 벌써 2시간이 넘어 갈 길도 바쁘고, 이미 멋진 풍광을 한없이 보아온 터라 새삼 내려갔다 올 일이 아니다. 

 

황산48.jpg[배운정]

 

   오후 3시 50분에 배운루(排雲樓)에 도착했다. 산장을 겸한 휴식공간이다. 그 앞에 돌출된 바위에 만든 전망대가 있는데, 도착 직전부터 몰려오기 시작하던 구름(안개)에 가려 전방의 봉우리들이 실루엣만 보인다. 그 풍경이 오히려 신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배운루에서 10여 분 머물며 숨을 돌리고 다리에 휴식을 주었다가 화장실에 들른 다음 바로 이날의 최종목적지인 사림호텔로 향해 출발했다. 

 

황산50.jpg

황산49.jpg

황산49-1.jpg[배운루와 전망대]

 

   본래 예정된 일정은 배운루에서 황산의 대표적인 명물 중 하나인 비래석(飛來石. 높이 12m, 무게 360톤의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나는 모양을 하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을 다녀오는 것이었는데, 비래석이 지난 여름에 벼락을 맞아 가까이 갈 수 없는지라 포기하고,  멀리 구름 속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황산51.JPG[광명정과 비래석]

 

황산52.JPG[비래석. 자료사진]

 

   배운루를 지나면서부터는 여전히 돌길이기는 해도 완만하고 평탄한 숲길이라 더 이상 무릎에 부담이 안 간다. 오후 4시에 배운루를 출발하여 바로 인근의 서해호텔을 지나 얼마 안 가자 길가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 시야에 들어왔다. 이름하여 단결송(團結松)이다. 

   소나무의 가지가 중국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합한 숫자와 같은 56개인 점을 발견하고 강택민 주석이 전체 민족의 화합을 기리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름도 참 그럴싸하게 잘 짓는다.

 

   그런가 하면 이 소나무를 지나 불과 3분만 가면 이번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나그네의 소매를 잡는다. 황산에서 제일 큰 소나무라 하여 대왕송(大王松)으로 불린다. 정말로 제일 큰 나무인지 여부는 모르겠고, 크기는 확실히 컸다.

 

                황산53.jpg

               [단결송. 한승룡 가이드님과 함께]

 

황산54.jpg[대왕송]

 

  오후 4시 30분에 마침내 이날 산행의 종착지인 사림(獅林)호텔에 도착하였다(해발 1,601m. 이 호텔 인근에 북해호텔이 있다). 호텔에 도착하여 1시간 휴식을 취한 후 5시 30분에 뷔페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7시간을 걸었는지라 피로가 몰려와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황산55.jpg[사림호텔]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올라 일출을 보려면 산정이나 그 언저리에 1박을 하는 게 보통이다. 이를 위해 산장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산장이라는 게 시설이 워낙 열악하여 그야말로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에 불과하다.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악취가 코를 찔러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러면 황산은 어떤가. 이날 1박을 한 사림호텔은 시내의 특급호텔과 다를 게 없다. 정갈한 2인실 객실에는 푹신한 침대와 화장실, 냉온수가 다 나오는 샤워실이 구비되어 있다. 더구나 방에는 일출을 보러 갈 때 추위에 대비하여 입고 가라고 두터운 파커를 비치하여 놓았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산장은 아예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벌어지는 것일까. 언필칭 환경론자들은 중국은 환경 보존에 신경을 안 써서 아무 곳에나 특급호텔을 짓는다고 폄하(貶下)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황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하여 황산 주위 200km 이내에는 공해업소의 설립을 불허하는 곳이 중국이라는 것을 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도 제발 환경론자들의 꿈 같은 이상론에서 탈피하여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환경 보존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는 유럽의 알프스에 가면 수많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는 설악산 오색에 고작 케이블카 하나 설치하는 것을 둘러싸고도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는가.         

 

  2024. 11. 5. (시신봉-비취계곡-휘주고성-황산시)

 

   시신봉(始信峰)에 올라 일출을 본 후에 하산하는 날이다. 새벽 5시 30분에 호텔을 나섰다. 해는 6시 25분에 뜨고 시신봉 정상(해발 1,680m)까지 20분이면 가는데, 일출을 보러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야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여 일찍 나선 것이다. 

   그런데 깜깜한 밤중에 헤드랜턴을 켜고 서둘러 시신봉에 오른 보람도 없이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설마 이곳에서 밤을 새운 것은 아닐 터이니 참으로 극성스럽다고나 할 밖에. 

 

   아무튼 그런대로 일출을 볼 수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꽤나 춥다. 털모자를 쓰고 내복까지 입고 스웨터 등 옷을 몇 겹 껴입어 나름으로는 보온에 신경을 썼는데, 추위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영하의 날씨는 아니다. 

 

   아무리 추워도 해만 제대로 뜬다면 다 보상이 되련만, 안타깝게도 잔뜩 깔린 구름 위로 붉은빛이 감도는 것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승룡 가이드님이 전에 찍은 일출 사진을 보여주어 이를 보니 아쉬움이 더 컸다. 하지만 어쩌랴,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을. 그나마 꿩 대신 닭으로 주위의 운해 속의 봉우리들이 연출하는 멋진 광경이 그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시신봉은 전술한 서하객이 황산이 최고로 아름다운 산이라고 칭찬한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다가 시신봉에 오르고 나면 비로소() 황산의 아름다움을 믿기(信) 시작한다 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진 것이다. 한 자리에서 황산의 멋진 봉우리들을 가장 많이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신봉이다.

  황산56.jpg

황산58.jpg[시신봉의 일출. 아래 사진은 한승룡 가이드님이 전에 찍은 것]

 

황산57.jpg[시신봉에서 본 운해 속의 봉우리들]

 

   '바위가 없으면 소나무가 있을 수 없고, 소나무가 없으면 바위가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무석불송 무송불기)]'고 했던가. 황산은 곳곳에서 바위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뤄 절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소나무 뿌리에서 화강암을 부식시키는 물질이 나와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다고 한다. 바위가 화분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혹자는 ‘황산의 바위는 소나무의 어머니이고, 운해는 소나무의 젖이다. 그 바위와 운해가 소나무를 키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서 잎이 짧고 유난히 무성하게 자라 하나의 독립된 품종이 되었고, 그래서 다른 곳의 소나무와 구별하여 이름도 따로 ‘황산송(黃山松)’이라고 불린다. 황산송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3m 자라는데도 수백 년의 세월이 걸릴 만큼 성장 속도가 느리다.

 

   중국은 이 황산송을 보호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황산으로부터 70km 떨어진 곳에서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하자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년에 걸쳐 황산 주변을 빙 돌아가며 폭 4km, 길이 100km에 이르는 지역의 소나무 360만 그루를 모두 베어내어 재선충이 황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이러한 황산송은 황산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시신봉의 소나무는 특별대접을 받는다. “시신봉에 오르지 않으면 황산송이 보이지 않는다(不上始信峰 不見黃山松)”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시신봉 주변에는 깎아지른 절벽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군락이 지천이다.  

 

  시신봉에서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하산을 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사림호텔 근처에 있는 황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 산객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날 보고 가라고. 다름 아닌 ‘몽필생화(夢筆生花)’이다. 이번에도 소나무이다. 도대체 어떤 소나무일까. 아래 전설을 보자.   

 

  이태백이 꿈(夢)에 바위에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있는데, 황산에 붓처럼 우뚝 서 있는 이 바위 위에 꽃처럼 피어난 소나무가 꼭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몽필생화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태백이 술에 취해 황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모습을 본 한 노승이 붓을 주고 시문을 부탁했는데, 이태백이 술에 너무 취해 시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붓을 던지고 떠났다. 노승이 이태백을 배웅하고 돌아와 보니 붓을 던진 자리에 한 그루 소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몽필생화라는 것이다.

 

황산59.jpg[몽필생화]

 

  몽필생화가 1970년에 고사하자 중국 당국은 그 자리에 플라스틱으로 된 모조 소나무를 심었다가 뽑아내고 새로 소나무를 심어 정성껏 돌보고 있다. 몽필생화의 맞은편 봉우리는 필가봉(筆架峰)으로 붓을 걸어놓은 모습이라는데, 촌부의 눈으로는 식별이 안 된다.

 

   몽필생화를 지나면 불과 5분 만에 또 하나의 명물 소나무를 만난다. 시신봉 가는 길과 운곡사 케이블카 탑승장 가는 갈림길에 있는 ‘흑호송(黑虎松)’이다. 

   한 수도승이 나무 밑에서 도를 닦다가 나무 위를 보니 검은 호랑이가 누워 있었다고 하여 흑호송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무가 검은 호랑이 모습으로 보이는지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나저나 촌부가 그 위치에 있지 않아서인지 나그네의 눈에는 그저 한 그루의 잘생긴 소나무였을 뿐이다. 

  

황산59-2.jpg[흑호송]

 

   흑호송을 지나 10분만 가면 백아령(白鵝岺. 해발 1,750m)에 도착한다(오전 8시 30분). 이곳에서 운곡사(雲谷寺)까지 하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8km 산길을 2시간 걸려 걸어서 내려가느냐, 아니면 케이블카를 타고 8분 만에 하산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승룡 가이드님이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고 우리 일행에게 묻는데, 아무런 답이 없다. 그러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자고 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 촌부를 포함하여 적어도 5명 정도는 내심 걸어서 내려가고 싶었지만, 대세에 밀려 표현을 안 한 것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 대다수의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구나 하산 후의 다른 일정도 있는데.  

 

   오전 8시 50분에 운곡사행 케이블카(8인승)에 올랐다. 백아령과 운곡사를 연결하는 이 케이블카는 길이가 2,804m로 주행시간은 8분이다.

   황산을 쉽게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오르면 된다. 또한 촌부 일행처럼 서해대협곡의 수많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느라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면서 황산을 내려가는 방법으로도 적격이다. 서해대협곡 쪽으로 되돌아가 18,000개 돌계단을 다시 내려가라고 하는 것은 무릎에 너무 잔인한 일이다.

    

  산에 덮인 게 구름인지 안개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가운데 막상 황산을 내려가려니 아쉬움에 자꾸 고개가 뒤로 돌려진다. 내 생애에 언제 또 오겠는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등을 돌리고 앉은 ‘부부바위’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잘 가라고.    

 

황산61.jpg[운곡사행 케이블카]

 

황산60.jpg[부부바위]

 

   케이블카에서 내려 버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9시 20분이다. 아직 이른 시각이다. 이후의 일정은 비취계곡과 휘주고성을 둘러보고 발마사지를 한 후 황산에 와서 처음 묵었던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일정은 황산 등산에 부수하는 것이라 간략히 언급한다. 

 

   비취계곡(翡翠溪谷)은 황산의 많은 계곡 중 하나인데, 유난히 물이 맑아 비취색을 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윤발과 양자경이 주연한 영화로 2000년에 개봉하여 아카데미상(2001년.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외국어영화상)도 수상한 와호장룡(臥虎藏龍)을 촬영한 곳이다. 영화에서 주윤발이 대나무숲과 연못 위를 날아다녔던 장면이 새삼 기억나는 곳이다.  

 

황산62.jpg

황산63.jpg

황산63-1.jpg

황산64.jpg[비취계곡의 이모저모]

 

   비취계곡에 이어서 찾아간 곳은 휘주고성(徽州古城)이다. 명청 시대의 건축물과 옛 휘주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 4대 고성[산서성의 평요고성(平遙古城), 사천성의 낭중고성(閬中古城), 운남성의 여강고성(麗江古城), 안휘성의 휘주고성] 중 하나이다. 

 

   상업으로 많은 부를 쌓은 휘주 상인들은 재산을 보호하고 도적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았다. 성곽은 세 번의 보수공사를 한 까닭에 색깔이 각각 다르다. 잘 보존된 성곽과 그 안에 있는 관아, 민가, 옛 거리인 패방, 탑과 다리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곳에서 안휘의 먹과 벼루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휘성이 배출한 인물 중 청백리의 상징인 포청천이 있다. 탐관오리들을 단두대에 올린 포청천은 드라마에 의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관아 가운데 ‘현고경명(懸高鏡明)’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곳이 있는데, 포청천이 재판을 한 곳이다. 

   판관이 재판에 앞서 그 현판을 보면서 거울처럼 맑고 공명하게 재판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판관의 앞 탁자에는 목편(木片)통이 꽂혀 있다. 판관이 붉은색 목편을 던지면 죄인을 사형(작두형)에 처했다.

 

황산65-1.jpg

황산65.jpg[정문]

 

황산66.jpg

황산66-1.jpg[거리 모습]

 

황산70.jpg

황산71.jpg[포청천이 재판하던 곳]

 

황산67.jpg

황산68.jpg[성곽]

 

황산69.jpg[성곽에서 내려다본 성안의 모습]

 

   휘주고성을 구경하고 나와 단체로 발 마사지를 받으면서 사흘간의 산행으로 지친 다리의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황산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샤브샤브집으로 갔다. 시내 한복판 번화가에 있는 3층짜리 식당이다. 예열공장(譽悅工場)이라는 상호가 재미있다. 식당 이름에 공장(工場)이라니.     

   이 식당의 샤브샤브는 뷔페식이다. 각종 육류, 해산물, 채소, 밥 등을 알아서 먹을 만큼 가져다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맥주와 포도주까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게 이채롭다.

 

    식당을 나오면서 한승룡 가이드님께 도대체 이렇게 먹고 마시는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1인당 한국 돈으로 2만원이란다. 이 사람들 땅 파서 장사하나? 그 돈 받고 안 망하나?

     한승룡님 말이 하루에 손님이 650명만 들어오면 수지가 맞는데, 손님이 그보다 훨씬 많아 줄을 서야 한단다. 과연 중국답다. 

 

황산72.jpg[예열공장]

 

  2024. 11. 6. 귀국

 

   4박5일의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는 날이다. 아침 7시 40분에 호텔을 나와 항주로 향했다. 항주까지는 버스로 3시간 30분 걸렸다. 항주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3시 10분 발 아시아나 항공으로 귀국했다. 

 

  글을 마치며 이번 일정을 차질없이 이끌어주신 박민정 인솔자님과 한승룡 가이드님, 그리고 해외 트레킹을 갈 때마다 신경을 써 주시는 혜초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세 분의 건승을 빈다. 특히 박민정 인솔자님은 맨 뒤에서 촌부를 따라오며 멋진 사진을 찍어 주셨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을 보면 강물의 흐르는 방향을 알 수 있다. 그 나뭇잎이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촌부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지내오다 보니 어느새 고희(古稀)다.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황산 산행의 여정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다음 여정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다리에 힘이 있는 한 길을 나서리라. 단순히 머릿속 생각에 그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끝)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와호장....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