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5,416m에 서다(안나푸르나 토롱패스)
2025.03.21 22:20
해발 5,416m에 서다
요새 상가(喪家)에 가보면 바야흐로 백세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판소리 ‘사철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간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그렇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해도 아차 하는 순간에 누구나 북망산천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위 판소리 사설은 바로 이어서 “사후(死後)에 만반진수는 불여(不如) 생전의 일배주만도 못하느니라”라고 노래한다.
2014년 1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푼힐(Poon Hill) 전망대를 시작으로 고산 트레킹에 나선 이래 해발 4,984m의 랑탕 체르코리(Tserko Ri)를 오르기는 했으나(2018년), 그 이상으로 해발 5,000m를 돌파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에베레스트(2017년)와 킬리만자로(2023년)에서 각각 도전했다가 처참한 실패만 맛보아야 했다. 그러기에 5,000m 돌파는 늘 염원의 대상이었고, 아차 한 번 죽어 북망산천의 흙이 되기 전에 꼭 이루고자 하는 꿈속의 높이였다.
자고로 “불려호획 불위호성(弗慮胡獲 弗爲胡成)”이라 했다. 생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행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으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촌부는 이미 지난해 고희(古稀)를 넘겼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는 더 늦기 전에 5,000m 돌파의 꿈을 실현해 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
안나푸르나 산군(山群)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도는 여정(통상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이라고 한다)으로, 그 정점은 안나푸르나 토롱패스(Thorong Pass)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이곳의 높이가 해발 5,416m이다.
이것으로 히말라야 졸업여행을 한다는 심정으로 길을 나섰다. 2025. 2. 21.의 일이다.
안나푸르나 산군의 북단에 위치한 토롱패스는 히말라야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아직은 추운 동계인 2월 말인데 과연 성공할 수 있으려나. 사실 촌부가 해외의 고산 트레킹 때 이용하는 혜초여행사에서도 토롱패스는 4월이나 되어야 상품을 내놓는다. 그런 것을 혜초여행사 석채언 대표님한테 특별히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모객(募客)을 하여 주셨다.
그렇게 해서 2년 전 촌부와 킬리만자로를 함께 올랐던 도반들에 더하여 일반 모객을 통해 합류한 9명 등 총 14명이 혜초여행사의 장성순 인솔자님과 함께 대장정에 올랐다. 거기에 네팔 현지에서 지원인력으로 합류한 가이드, 요리사, 짐꾼(=포터) 23명이 가세하니 38명의 대부대가 되었다. 규모면으로만 보면 거의 히말라야 원정대 수준이다.
일반 모객 중에는 광주에서 네 명의 여자분이 팀을 이뤄 참가하셨는데, 1950년생을 비롯하여 세 분이 70대이고, 한 분만 60대여서 일차로 놀랐고, 트레킹이 시작되자 그분들이 하도 잘 걸어서 이차로 다시 놀랐다. 물론 4분 모두 완주했다. 게다가 이분들이 붙이는 핫팩을 넉넉하게 가져와 나눠 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25. 2. 21.(1일차 : 인천->카트만두)
2025. 2. 21. 오전 9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네팔의 카트만두행 대한항공 비행기는 12시 45분 출발인데, 붐비는 공항 사정을 고려한 여행사의 요청으로 일찍 나간 것이다. 계절적으로 분명 여행 비수기임에도 공항은 붐볐다.
낮 12시 45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가 20분 늦게 출발했다. 지연 출발이 일상적이었던 과거에 비하여 근래에는 비교적 정시 출발한다.
2018년 4월의 랑탕 트레킹 후 7년 만에 다시 찾은 카트만두 공항은 눈에 띄게 정비된 모습이다. 이번이 다섯 번째인지라 공항은 친숙했다. 공항뿐만 아니라 시내의 거리도 많이 깨끗해졌다. 유심히 보면 전에 비포장도로였던 인도들이 포장도로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여전히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누비지만, 그 숫자가 다소 줄어든 대신 자동차가 대폭 늘어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2014년 1월에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을 때 묵었던 하이야트 호텔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넓은 부지에 고성(古城)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그대로였는데, 귀국 직전 하루 더 묵을 때는 네팔 부호 자녀의 호화로운 결혼식이 야외에서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견문이 넓지 않은 촌부의 눈에는 그 호화로움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나저나 초특급인 이 호텔의 시설은 안타깝게도 전보다 더 낡아 보였다. 시설투자를 게을리하는 듯하다.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 2시 15분이다(시차가 3시간 15분이다).
[하이야트 호텔]
2025. 2. 22.(2일차 : 카트만두->베시사하르)
2025. 2. 22. 히말라야 트레킹의 전형적인 6·7·8시스템(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 가동하는 첫날이다. 시차 때문에 새벽 4시에 잠이 깨 뒤척이다 5시 40분에 일어나 샤워를 한 후 호텔 경내 산책에 나섰다. 넓은 경내와 아름다운 조경, 그리고 아기자기한 산책길(조깅 코스)을 걸으며 새삼 멋진 호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뷔페식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했다. 목적지 베시사하르(Besisahar. 해발 760m)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대략 8시간 걸린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개념도]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180km의 길이 재미있다. 카트만두 시내를 관통하는 동안은 그렇다 쳐도 이어지는 4번 고속도로는 ‘High Way’(고도가 높은 고개를 넘고 또 넘는다)에는 해당할지언정 ‘Express Way’는 결코 아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좁은 지방도로 수준이다. 오토바이가 다니고 심지어 자전거도 눈에 띈다. 차를 타고 180km를 가는 데 8시간이나 걸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나마 차도가 대부분 포장도로여서 다행인 데다(인도는 여전히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이다), 전에 랑탕 트레킹을 위해 카트만두에서 샤브루베시까지 갈 때의 험난했던 길에 비하면 도로 상태가 훨씬 양호해서, 이만하면 호강하는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창밖으로 하염없이 눈을 돌렸다.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동안 갠지즈강으로 이어지는 마르상디(Marsyangdi)강이 길옆으로 동행하는데, 물살이 제법 세고 이를 건너지르는 출렁다리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 강의 발원지는 후술하는 틸리초 호수여서 이후의 트레킹에서 여러 날 보게 된다. 강 건너에 보이는 계단식 밭들에는 북위 27도 전후의 위도답게 초록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마르상디강과 출렁다리]
정오 무렵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길가의 리버사이드 스프링스 리조트(Riverside Springs Resort)는 천국이다. 소음과 먼지가 난무하는 길에서 불과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데도 조용하고, 공기도 깨끗하고, 숲이 우거진 풍광도 수려하다. 음식 또한 훌륭하다. 그만큼 빈부의 차이가 심한 셈이다. 하이야트 호텔의 안과 밖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다시 느낀다.
[리버사이드 스프링스 리조트의 식당]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버스가 속력을 낸다. 도로의 포장 상태도 훨씬 좋아 승차감이 한결 부드럽다. 그러나 포카라 가는 방향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4번 고속도로를 벗어난 이후로는 길이 좁고 거칠어진다.
오후 4시 마침내 베시사하르(Besisahar. 760m)에 도착했다. 베시사하르는 ‘산 아래 마을’이라는 뜻이다. 산 위 마을은 가우사하르이다. 낮 최고기온이 26도인 이곳은 오후 5시가 되니 17도로 뚝 떨어져 쌀쌀한 느낌이 든다. 거리에서 산 사과와 바나나의 맛이 달고 깊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시내를 둘러보았다. 작은 산골 마을치고는 제법 번화한 느낌이었는데, 아직은 해가 지기 전인 오후 5시 무렵인데도 이미 많은 상가가 문을 닫아 다소 썰렁한 모습이다. 그 와중에도 LG전자의 대리점인 듯한 상점이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베시사하르의 거리 모습]
숙소인 게이트웨이 히말라야 리조트(Gateway Himalaya Resort)는 고급스런 숙박시설이다. 전체 시설이 정갈하고 널찍하며 풍광도 아름답다. 객실도 쾌적하다. 6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했다. 피자, 파스타, 볶음밥, 샐러드, 만두로 배를 불렸는데, 음식이 입에 맞았다.
[게이트웨이 히말라야 리조트]
2025. 2. 23.(3일차 : 베시사하르->차메)
베시사하르에서 차메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네팔에 와서 이미 이틀 밤을 보냈건만 여전히 새벽 4시가 지나면 잠이 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차 적응이 느려짐을 절감한다.
1시간 넘게 침대에서 뒹굴다 일어나 리조트의 뜰로 나서니 멀리 설산에 아침 햇살이 비쳐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앞으로 매일 실컷 볼 풍경이지만, 그래도 첫 만남이기에 반갑다.
7시에 간단하면서도 실속이 있는 뷔페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10분에 출발했다. 전날과 달리 이날은 이동수단이 지프이다. 길이 버스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험하기 때문이다. 차메까지 소요시간은 7시간이다.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서 만든 이 지프는 겉으로는 낡아 보여도 힘이 좋아 웬만한 난코스를 만나도 거침없이 달렸다.
출발 20여 분 만에 입산 신고 및 입산료(Entry Fee)를 내는 곳에 도착했다. 바야흐로 안나푸르나의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현지 가이드가 그 절차를 밟는 데 20여 분 걸렸다.
이후로는 평탄한 길이 거의 없다. 산 중턱의 낭떠러지 위로 난 좁은 길을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지프들이 달린다. 그 낭떠러지 밑은 강이다.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 연신 전화를 하면서 그런 길을 운전하는 젊은 운전사더러 운전에만 집중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지금은 그가 왕이니 공연히 심사를 거스를 일이 아니다. 혼자서 공연히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 ‘쿵~’하고 지프 천장에 머리를 부딪힌 게 몇 번이던가. 차라리 외면한 채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언제부턴가 설산이 따라온다.
[산길을 달리는 지프 행렬]
오전 10시 30분. 참제(Chamje. 1,430m)에 도착했다.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인 달밧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은 무엇보다도 폭포가 장관이다. 마르상디강이 흐르는 계곡 건너 반대편 산에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을 보러 지나가던 차들이 다 선다. 구글지도에 ‘참체폭포’(Chamche Waterfall)로 표기되어 있는 이 폭포는 ‘봉폭포’(Boon Waterfall)로도 불린다. 폭포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봉폭포 식당(Boon Waterfall Restaurant)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참제폭포와 봉폭포 식당]
폭포를 지나면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이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지는 저 멀리에서 설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정체 모를 마력에 이끌려 히말라야의 안으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절벽 위의 길이 너무 좁고 험한 곳은 추락 방지를 위해 큰크리트벽을 쌓아놓은 곳도 있다. 중국의 황산은 절벽에 잔도를 설치하더니, 네팔의 히말라야는 절벽에 아예 찻길을 냈다. 그러면 후자가 한 수 위인가?
그런데 이따금 이 길을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산객들을 볼 수 있다. 대개 서양사람들이다. 저들은 예서부터 걸으면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
오후 1시 30분. 깊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지프가 멈춰 선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지프에 오래 타고 있는 게 쉽지 않아 잠시 휴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 명소(소위 Viewpoint)가 있는 다라파니(Dharapani. 1,860m)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여유 있게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본 순간 입이 벌어지고, 히말라야의 깊은 산중으로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정면으로는 정상 부위가 구름에 가린 마나슬루(Manaslu. 8,163m)가 보이고 뒤로는 람중히말(Lamjung Himal. 6,983m)의 연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나슬루는 앞으로 6일 후 토롱패스의 정상에 서면 대하게 될 텐데 미리 맛보기로 본 것이다. 그러나 후술하듯이 정작 토롱패스 정상에서는 눈이 내리는 날씨에 날도 저물어 정작 마나슬루를 볼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이날 미리 좀 더 보아둘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상일이 항상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마나슬루]
[람중히말]
오후 3시. 이날의 목적지인 차메(Chame. 2,670m)에 도착했다. 차메는 규모가 제법 큰 산간마을이다. 이곳에서 지프와 헤어졌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차메의 숙소는 이글 아이 호텔(Hotel Eagle Eye). 이름에는 호텔이 붙었지만 히말라야의 전형적인 로지이다. 바야흐로 침낭 생활의 시작이다. 해발고도가 이미 2,670m나 되니 해가 떨어지면 추위가 몰려온다. 난방시설이 없는 로지에서 밤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침낭뿐이다.
이제껏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침낭을 이용하면서 추위에 떨었는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침낭을 새로 구입해 가져왔고, 그 침낭이 진가를 발휘했다. 폴란드산 거위털로 만든 베이스침낭(모델 : Warmest 1120)인데, 가볍고 따뜻했다. 여기에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뜨거운 물주머니를 침낭 안에서 품고 자면 기온이 바깥 기온이 영하 15도로 떨어져도 추위를 모른다.
식사는 이제부터는 다른 히말라야 트레킹 때와 마찬가지로 동반하는 요리사들이 만들어 주는 한식이다. 네팔인들이면서 한식 요리를 배워 하루 세 끼를 따뜻한 한식으로 제공해 주는 그들이 늘 고맙다.
[이글 아이 호텔]
2025. 2. 24.(4일차 : 차메->어퍼피상)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제부터 두 다리에만 의지하여 토롱패스 정상을 오르는 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날은 해발 3,300m의 어퍼피상(Upper Pissang)까지 14km를 걷는다.
안나푸르나는 1봉(주봉. 8,091m)을 비롯하여 2,3,4봉과 남봉의 5개 봉우리가 있고, 그 주위에 7,000m급 13개와 6,000m급 16개를 거느린 거대한 산군이다.
이번에 촌부가 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이 봉우리들을 가운데 두고 남쪽에서 동쪽으로 돌아 북쪽의 토롱패스를 오른 후 서쪽으로 돌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감으로써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2봉(7,939m), 3봉(7,555m), 4봉(7,525m), 강가푸르나(7,454m)는 가까이에서 보고, 1봉과 남봉(7,219m)은 비교적 멀리서 보게 된다. 그리고 보너스로 람중히말(6,932m), 마나슬루(8,163m), 틸리초피크(Tilicho Peak. 7,134m), 닐기리(7,061m), 다울라기리(8,167m) 등 유명한 봉우리들을 곁들여 보게 된다.
네팔에 온 지 4일째인데 아직도 새벽 4시에 잠이 깬다. 시차 적응이 점점 어려워짐도 노화의 한 현상이리라. 침낭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5시에 일어났다. 로지 밖은 영하 8도(체감온도 영하 12도)로 춥다.
침낭을 비롯하여 짐꾼에게 맡길 짐을 정리하고 아침 식사(오전 7시) 전에 밖으로 나와 보니 로지 바로 뒤에서 람중히말의 웅장한 모습이 떠오르는 햇살 아래 빛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만 해발 7-8,000m 내외의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마치 고향마을의 뒷동산처럼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게 신비롭다.
로지 전면으로는 멀리 마나슬루가 보인다. 아직 해가 봉우리의 반대편에 있는지라 로지 쪽에서는 윤곽선만 뚜렷이 보인다. 그래도 구름이 아직 정상을 덮지 않아 다행히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람중히말]
[마나슬루]
정해진 일정대로 아침 8시에 출발했다. 차메 마을을 벗어나면 나오는 등산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후술하는 마낭(Manang. 3,540m)까지 지프로드(Manang Jeeep Road)를 개설하여 차가 다닐 수 있다. 덕분에 전술한 베시사하르에서 마낭까지 15일 이상 걸리던 것이 하루 만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단축되었고, 그로 인해 현지 지역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지만, 트레킹 지형도가 덩달아 바뀌어 산꾼들 입장에서는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마낭까지 가는 동안 물론 많은 부분 좁은 산길을 걷지만, 상당 부분은 이 찻길을 걷게 된다. 길을 걸으면 그만큼 오르락내리락이 심하지 않고 길도 평탄하여 걷기가 쉽지만, 그늘이 없는 강한 햇볕 아래 단조롭게 걷다 보면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마낭 가는 찻길]
그러한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눈 덮인 설산과 마낭계곡이다. 람중히말을 뒤로 하고 출발하였지만 고개를 돌려 온 길을 돌아보노라면 한동안은 따라오고, 길옆으로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설산들 밑으로 마낭계곡이 계속 이어지며 마르상디강이 흐른다.
눈이 부실 정도로 더없이 푸른 하늘과 그 밑의 하얀 설산, 그리고 침엽수림의 녹음이 우거진 산과 계곡이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그림 속을 거니는 동방나그네는 자연스레 신선이 된다.
탈레쿠(Talekhu. 2,720m)를 지나 브라탕(Bhratang. 2,850m)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40분이다. 이곳은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으로 등산로의 좌우로 사과밭이 이어진다. 이곳의 사과는 크지 않으면서(촌부 같은 소식가가 한 번에 먹기에 딱 좋은 크기이다) 달다.
장성순 인솔자님이 가게에서 구입한 사과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호주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합류한다. 인사를 하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라고 정확한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그 이상 다른 말은 못 한다며 웃는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세상이다.
브라탕을 지나 마낭계곡을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찻길과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을 만난다. 온통 바위 덩어리인 산의 허리를 깎아내 트레킹 길을 만든 것이다. 그 길로 이따금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토바이가 질주한다.
[바위 절벽에 만든 길]
바위 절벽의 길을 지나 더 오르다 보면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산을 이루고, 그 밑 계곡으로 맑은 물이 소리 내며 흐르는 곳이 객을 맞는다. 그 산이 이름하여 ‘천국의 문(Heaven Door)’이다. 영혼들이 바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신성한 곳이다.
이 산을 옆으로 두고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두크르포카리(Dhukurpokhari. 3,060m)라는 마을이 나온다. 모르는 사이에 해발 3,000m를 넘었다. 이곳에 있는 티벳호텔(Tibet Hotel)이라는 로지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5분이다.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메뉴는 비빔밥으로 아직까지는 밥이 꿀맛이다.
[티벳호텔]
점심 식사를 여유 있게 한 후 다시 신발끈을 조였다. 이날의 목적지 피상(Pisang)으로 향했다.
피상은 고도의 차이에 따라 아랫마을(Lower Pisang. 3,200m)과 윗마을(Upper Pisang. 3,300m)로 나뉜다. 아랫마을은 계곡 아래 강이 흐르는 평지에 있어 규모가 크고, 윗마을은 산기슭에 있어 규모가 작다. 편의성을 따지면 당연히 아랫마을로 가야겠지만, 안나푸르나 2봉을 바로 코앞에서 대할 수 있는 윗마을이 나그네들의 숙소로 이용된다. 그래서 윗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객을 맞는 로지이다.
[어퍼피상]
오후 3시 30분에 어퍼피상에 도착했다. 숙소는 스위트홈 호텔(Hotel Sweet Home)이라는 상호의 로지이다. 히말라야의 로지들은 대개 블록벽돌이나 통나무로 지은 데다, 방에는 침상만 1~2개 덩그러니 놓여 있고, 전등불도 희미하고, 더운물도 안 나오지만, 이처럼 상호만큼은 거창하게 호텔이라고 붙이는 게 보통이다.
[스위트홈 호텔]
[스위트홈 호텔 앞에서. 촌부의 오른쪽이 장성순 인솔자님]
로지의 마당에서 따뜻한 햇볕을 잠시 쬐다가 방으로 들어가니 썰렁한 기운이 맴돈다. 기온이 낮에는 영상이어도 해만 지면 금방 영하로 떨어진다. 이날도 밤에 영하 8도까지 내려가더니 새벽에는 영하 16도까지 떨어졌다.
일정상으로는 고소 적응을 위해 인근의 곰파를 방문하게 되어 있는데, 이미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고산증세(두통) 때문에 방에 들어가 침낭을 펴고 쉬었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이 나왔다. 아직까지는 먹을 만했지만 조금이라도 과식하면 그 후유증에 고생할 게 뻔해 시장기만 면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리고 준비해 온 고산증약과 수면제를 처음으로 먹고 밤 9시30분에 잠이 들었다.
2025. 2. 25.(5일차 : 어퍼피상->냐왈)
냐왈(Ngawal. 3,657m)까지 10km를 걷는 날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기온이 영하 14도다. 날씨는 추워도 안나푸르나 2봉(7,939m)의 멋진 경치가 이를 상쇄한다. 이런 거대한 설산 봉우리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날은 종일 이 안나푸르나 2봉을 보며 걷는다. 안나푸르나 2봉에 이어 멀리 4봉, 3봉, 강가푸르나, 틸리초피크도 차례로 보이지만 이들 봉우리는 다음날 더 가까이에서 잘 보게 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푼힐 전망대(2014년), 그리고 이어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2016년)에 이어 이번이 안나푸르나를 세 번째 찾은 것인데, 안나푸르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본 것은 처음이다. 트레킹 코스도 안성맞춤이거니와 무엇보다 선명한 날씨가 한몫했다.
[안나푸르나 2봉]
[마낭계곡과 주위의 산들]
어퍼피상에서 냐왈까지 가는 길은 산 중턱을 오르락내리락하긴 해도 평탄하다. 대부분 그늘이 없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더운 느낌이 든다.
중간중간 계곡을 가로지르는 높고 긴 출렁다리도 건넌다. 이 길만이 아니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 보면 어느 코스에서나 이런 출렁다리를 많이 건넌다. 이보다 훨씬 짧고 낮은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고 지역 명물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그 출렁다리를 건널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출렁다리를 만드는 기술 하나는 네팔이 우리보다 나은 듯하다.
[산 중턱의 길과 출렁다리]
네팔의 종교 인구를 보면 힌두교가 87%이고 불교가 8%라고 한다(외교부 자료). 그런데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불교(티벳불교=라마교)가 주된 종교가 아닌가 싶다. 산속 마을에서는 라마교의 상징인 마니차(摩尼車), 마니월(摩尼 Wall), 초르텐(=돌탑), 타르초, 룽따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산 중턱이나 꼭대기에 있는 곰파(=라마교 사원)도 눈에 띈다.
어퍼피상에서 냐왈까지 가는 길에 이런 라마교 상징이 유난히 많았다. 라마교 경전을 새긴 돌판(=마니석)을 돌담처럼 쌓아놓은 마니월은 이를 오른쪽에 두고 걸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불경(不敬)으로 간주된다.
[마니차]
[초르텐과 마니월]
[안나푸르나 2봉 앞의 타르초]
오전 11시가 넘어가면서 안나푸르나 3봉이 자태를 드러낸다. 아직은 안나푸르나2봉이 중심이지만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 자리를 서서히 안나푸르나 3봉이 대신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가다가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면 갸루(Ghyaru, 3,670m)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리면 안나푸르나 2봉과 3봉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안나푸르나 3봉]
[갸루]
[안나푸르나 2봉(좌)과 3봉(우)]
갸루를 지나 평탄한 길을 2시간 정도 가 이날의 목적지 냐왈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기묘한 모양의 설산이 냐왈 뒤편으로 보였다. 피상피크(Pisang Peak. 6,091m)이다. 마치 한 마리의 홍어가 산 위에 있는 모습이다. 촌부가 즉석에서 ‘홍어봉’이라는 별명을 하나 지어주었다.
[피상피크(홍어봉)]
오후 3시가 다 되어 피상 피크의 아래에 있는 냐왈(3,657m)에 도착했다. 숙소인 로지의 이름은 히말라야 호텔(Himalaya Hotel).
카레라이스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시장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조금만 먹고 수저를 놓았다. 고산증으로 다시 두통이 생기고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인솔자 장성순님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산소포화도를 이용하여 측정하니 포화도가 50-60% 언저리를 맴돈다. 평소에 95%가 정상이고 80% 이하로 떨어지면 비상 상황인데 50-60%라니!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상호에 명색이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로지는 추위에 방안의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로지 마당의 공동수도를 이용해야 했고, 화장실에서는 짐꾼들이 영동이로 담아다 주는 물을 사용했다. 사실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는 이런 일이 흔했는데, 그동안 시설이 좋아져 잊고 있던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쉬다가 오후 7시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그러나 속이 울렁거려 미음 한 그릇만 먹고 방으로 돌아와 수면제와 고산증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냐왈 전경과 히말라야 호텔]
2025. 2. 26.(6일차 : 냐왈->마낭)
마낭(Manang. 3,540m)까지 10km를 걷는 날이다. 여전히 새벽 5시에 잠이 깨어 6시에 일어났다. 기온이 영하 9도로 전날보다는 다소 올라갔다. 전날 밤에 약을 먹고 푹 잔 덕분인지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울렁증은 여전하나 정도가 덜하다.
촌부가 그래도 어느 정도 컨디션이 좋아진 반면에, 도반인 오강원님이 코감기로 밤새 코가 막혀 잠을 못 주무셨다. 전날 낮에 덥다고 길가의 계곡물에 발을 씻은 게 원인인 듯하다. 항상 조심하시던 분이 순간적으로 방심한 것이다.
방문을 열고 나서니 바로 앞에서 안나푸르나 3봉(7,555m)이 아침 해를 받아 빛나고 있고, 그 뒤로 강가푸르나(7,455m)가 일부 보인다.
[안나푸르나 3봉과 강가푸르나]
[로지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아침 식사 후 늘 하듯이 8시에 출발했다. 마낭은 냐왈보다 해발고도가 낮기 때문에 이날은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 다음날부터 해발 4,000m가 넘는 본격적인 고산등반을 하는지라 그에 앞서 숨을 고르며 고산 적응훈련을 하는 셈이다.
전날에 이어 날씨가 화창하다. 오르막길은 거의 없고 주로 평지 또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런데 도반인 박재송님이 이날부터는 토롱패스를 다 넘을 때까지 촌부더러 배낭도 메지 말라고 한다. 보조가이드에게 넘겨주고 힘을 비축하라는 것이다.
박재송님이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 그와 함께 에베레스트와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갔을 때 촌부만 고산증이 심해 중도에서 포기하고 내려간 전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이번에 또 벌어질까 봐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촌부 역시 이번에도 중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날씨에 맞춰 갈아입을 옷, 물, 비상의약품, 초콜렛 등 사소한 것들밖에 안 들어 있는 배낭이지만, 그마저 보조가이드에게 넘겨주고 양손에 스틱만 잡고 걸으니 한결 수월하다.
이날은 안나푸르나 3봉이 계속 동행한다. 안나푸르나 2봉만큼 웅장하지는 않아도 옆으로 완만하게 내려 뻗은 능선이 오히려 친근감이 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선명하게 다가온다.
[안나푸르나 3봉]
[촌부 우측으로 보조가이드와 오강원님]
앞으로 계속 전진하자 안나푸르나 2봉과 3봉 사이에 있으면서 이제껏 안 보이던 안나푸르나 4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4봉 밑에 물개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전날은 홍어가 보이더니 이날은 물개다. 설산이 연출하는 진기한 모습이 신기하다.
[안나푸르나 2,4,3봉]
[물개봉]
계곡을 사이에 두고 안나푸르나 3봉의 반대편으로는 설산이 아닌 수직 절벽의 바위 능선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 가져다 놓으면 엄청난 명소가 될 만한데, 이곳에서는 높은 설산들에 가려 명함도 못 내밀고 하릴없이 촌부의 눈에나 들어온다.
오전 10시 40분에 그런 바위 능선이 펼쳐지는 뭉지(Mungji. 3,330m)라는 곳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면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들렀다. 이곳에서 쉬면서 문득 서울에서 가져온 태극기가 생각났다. 5일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뭉지도 안나푸르나 3봉 밑에 있는 마을이라 전망 좋은 곳에 가서 태극기를 들고 안나푸르나 3봉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토롱패스 정상에 서면 사진을 찍을 커다란 태극기도 가져왔는데, 후술하듯이 토롱패스 정상에서는 날이 어두워 찍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때 찍은 게 유일하다. 박재송님은 이때부터 배낭에 태극기를 꽂고 다녔다. 마치 국토순례단 모습이다.
[수직 절벽의 바위 능선]
[뭉지]
[안나푸르나 3봉 앞에서]
[배낭에 태극기를 꽂은 박재송님]
낮 12시 30분 마낭(3,540m)에 도착했다. 마르상디강을 따라 평탄한 길을 걸은 탓인지 10km를 4시간 30분 만에 주파했다. 다른 때는 같은 거리를 가는데 6-7시간 걸렸으니 상당히 빠른 셈이다. 마낭은 토롱패스 트레킹에서 만나는 가장 큰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 안에 빵집을 포함한 다양한 상점들이 있다.
[마낭 입구]
전술한 대로 베시사하르에서 이곳까지 지프로드가 개설되어 있다. 사실 그 길을 이용하여 차로 이곳까지 온다면 트레킹 일정이 적어도 사흘은 단축되겠지만, 그러면 안나푸르나 2,3봉을못 볼 뿐만 아니라, 고산증에 적응할 시간적인 여유 없이 바로 해발 3,540m에 도착하는 만큼 고산증으로 고생할 확률이 크다. 따라서 오로지 토롱패스를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권할 바가 아니다.
마낭에서의 숙소는 로얄 마낭 호텔(Hotel Royal Manang)이라는 로지다. 그 정면으로 강가푸르나가 펼쳐진다. 영상 6도의 따뜻한 날씨에 로지의 뜰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로지는 겉보기는 다소 허술했으나 내부가 청결했다. 전날과 달리 물도 잘 나오고 전등불도 밝았다. 각각의 방마다 딸린 화장실도 깨끗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수제비. 전날보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 고산증이 완화된 덕분에 어느 정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고산 적응을 위해 인근의 곰파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으나, 촌부는 그냥 로지에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부터 이어지는 고된 일정을 생각해 힘을 축적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로얄 마낭 호텔]
[강가푸르나]
2025. 2. 27.(7일차 : 마낭->레다르)
레다르(Leddar. 4,200m)까지 12km를 걷는 날이다. 거리도 거리지만 해발고도를 660m를 올려 마침내 해발 4,000m를 넘어 4,200m까지 가야 해 꽤 힘든 날이다. 기상, 아침식사, 출발이 모두 1시간씩 당겨져 5,6,7 시스템이 작동한다.
전날에 이어 지난밤에도 밤새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던 오강원님이 결국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지프를 불러 베시사하르로 내려갔다. 에베레스트와 킬리만자로에서는 촌부와 달리 완주하셨는데 아쉽다. 그 바람에 우리 도반들은 나만큼은 더욱더 꼭 완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도 그러마고 답은 하지만 고산증이 걱정이다.
마낭을 떠나려니 강가푸르나가 아쉬운 듯 아침햇살을 받아 빛을 내며 인사를 한다. 그 북쪽으로 틸리초 피크(Tilicho Peak. 7,134m)의 온통 유난히 하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가푸르나]
[틸리초 피크]
틸리초 호수(Tilicho Lake. 4,919m. 틸리초 피크 아래에 있다. 마르상디강의 발원지이다)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토롱패스(Throng La Pass)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발 4,000m를 향하여 오르막이 많은 이 길은 전날과 달리 걷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3시간 30분 정도 오르다가 힘이 들어 쉬면서 돌아보는, 순간 안나푸르나 2,4,3봉과 강가푸르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으면 이 모습을 놓칠 뻔했다.
[안나푸르나 2,4,3봉과 강가푸르나]
[안나푸르나의 연봉들]
멋진 경치를 뒤로 하고 걷고 또 걷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높은 고개를 넘고, 깊은 계곡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넌다. 그 사이 군상(Gunsang. 3,900m)을 지나 해발 4,000m를 돌파하였다.
[메인가이드 지바(Jeevba)님과]
정오를 넘긴 햇살이 작열하는 가운데 오후 1시에 야크 카르카(Yak Kharka. 4,108m)에 도착했다. 고산증을 덜 겪기 위해 작심하고 천천히 걷다 보니 선두그룹은 이미 1시간 전에 도착하여 토롱 피크 호텔(Thorong Peak Hotel)이라는 상호의 로지에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늦게 온 촌부를 보고 장성순 인솔자님이 괜찮냐고 걱정을 한다.
[야크 카르카]
점심 식사로 짜장밥과 스파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짜장밥만 조금 먹고 스파게티는 손도 못 댔다. 고산증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음식을 다 먹는 일행들이 정말 부럽다. 히말라야에 처음 온 천재철님은 밥맛이 너무 좋다고 한다. 촌부는 10년 넘게 고산을 다녔음에도 여전히 고산증으로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神)이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원망을 해 본다.
식사 후 잠시 쉬다가 오후 2시에 출발했다. 앞으로 해발고도를 92m 더 올려야 한다. 1시간 30분 걸려 오후 3시 30분에 목적지 레다르(Leddar. 4,200m)에 도착했다. 레다르 바로 직전의 계곡에 놓인 출렁다리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레다르]
야크목장 옆에 있는 숙소 트레커 호텔(Hotel Trekkers)은 마낭의 로지와는 천양지차로 시설이 열악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의 물도 안 나왔다. 도리없이 보조가이드가 양동이로 떠다 주는 물을 사용해야 했다.
[트레커 호텔]
침낭 속에 누워 휴식을 취하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지만 높은 고도 탓에 다시 속이 울렁거려 먹을 수가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데, 보조가이드가 미음을 한 그릇 가져왔다. 정작 정상 정복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식사를 못 해 걱정이 앞선다.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니 여전히 5-60%를 맴돈다.
뜨거운 물주머니를 침낭에 두 개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한밤중 새벽 1시에 가슴에 통증을 느껴 깨는 바람에 수면제를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힘들었던 이날 도반 중 한 분이 이런 시를 남겼다.
길 위에 서서
지난 시간 돌아봄을
자기 성찰이라고 한다
자신의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그 길이 어찌하여
지금의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는지
지금 이 길은
나를 단단하게 하는지
부드럽게 하는지
그러다
이 길이 아니라면
고개를 돌려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는
용기를 주는 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흔들리지 않고 사는 인생은 또 어디 있을까
바람불면 흔들리다
그 바람 지나면 다시 서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생에 머무는 동안
힘들었던 순간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
2025. 2. 28.(8일차 : 레다르->토롱페디)
토롱패스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숙소가 있는 토롱페디(Thorong Phedi. 4,450m)까지 5km를 걷는 날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니 영하 7도에 눈발이 날린다. 일기예보상으로 다음날까지 계속 눈이 내린다고 한다. 이제껏 화창한 날씨가 이어져 좋았는데 하필이면 정상을 앞두고 눈이 내리다니... 조금만 오고 그치라고 내심 기도를 하지만 효과가 있으려나.
마늘을 갈아 넣고 끓인 죽으로 아침 식사를 대용했다. 마늘이 고산증에 효험이 있어 그동안 고산등반 때 종종 마늘 수프를 마셨는데, 이번에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날 저녁, 다음 날 아침을 내내 마늘죽을 먹고 버텼다. 그나마 못 먹었으면 토롱패스 완주를 포기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전 8시 출발할 때에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오는 것 같지 않아 비옷을 안 입고 나섰는데, 점점 눈발이 거세지자 장성순 인솔자님이 고맙게도 자기 비옷을 내줘 내내 입고 다녔다. 본인 배낭 외에 촌부 배낭까지 메고 비옷을 입은 보조가이드의 모습이 마치 외계인 같아 웃음이 절로 났다. 촌부가 목이 마를 때쯤 되면 용케 알고 배낭 속의 보온병에서 물을 꺼내 주는 이 보조가이드 덕분에 한결 덜 힘들이고 걸을 수 있었다.
[장성순님의 비옷을 입은 촌부]
[외계인 같은 보조가이드]
눈이 계속 내리니 온 천지가 하얗게 물들어 주위의 경치가 거의 안 보인다. 그 바람에 무념무상의 경지로 앞만 보고 걷는다.
그렇게 4시간 넘게 걷노라니 저 아래 계곡으로 희끗희끗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가 보통 긴 게 아니다. 더구나 눈이 쌓여 미끄럽다. 보조가이드가 앞서가며 발로 눈을 치워 주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래도 그 다리 위에서 계곡 위쪽으로 보이는 설백의 경치에 잠시 시선을 뺏긴다.
[출렁다리와 계곡 위쪽의 모습]
그 설경에 정신을 팔다가 고려 후기의 문신 이제현(李齊賢. 1288-1367)을 흉내 내 시 한 수를 떠올린다.
吊橋正喜雪漫空(적교정희설만공)
晴後奇觀更不同(청후기관경부동)
大地變成銀世界(대지변성은세계)
四圍山擁水精宮(사위산옹수정궁)
출렁다리에 눈발 날리는 하늘이 좋더니
그 눈 개고 난 후의 멋진 경치 또 다르네
대지는 은세계로 변해 버리고
주위의 모든 산은 수정궁을 품고 있구나
이 다리가 끝나는 곳이 토롱페디(4,450m)이다. 오후 1시 15분에 토롱페디에 도착했다. 당초 4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1시간 넘게 더 걸렸다. 숙소는 뉴 페디 로지(New Phedi Lodge). 로지이면서 호텔이라는 표시를 안 한 첫 로지이다. 방에 수도는 있어도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온다.
[토롱페디]
[뉴 페디 로지]
촌부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한 박재송님이 침낭을 미리 펼쳐놓아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숨을 돌렸다. 점심 식사는 미음을 한 그릇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해발 4,450m에 눈까지 오는 날씨가 매우 춥다. 이제껏 입었던 얇은 내복을 두꺼운 내복으로 갈아입고, 경량 패딩을 입은 후 그 위에 다시 두꺼운 거위털 패딩을 입었다.
오후 5시 40분에 저녁 식사로 마늘죽을 먹고 고산증약을 복용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다음날 새벽 2시에는 토롱패스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눈이 계속 내리니 어떨지 모르겠다.
2025. 3. 1.(9일차 : 토롱페디->토롱패스->묵티나트->좀솜)
마침내 토롱패스 정상(5,416m)에 오르는 날이다. 새벽에도 눈이 계속 내려 정상에 오를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회군할 것인지 설왕설래하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인솔자 장성순님과 메인 가이드 지반(Jeevan)님이 정상에 오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선발대는 아침 6시에 출발했고, 촌부를 포함한 후발대는 7시 15분에 출발했다. 눈이 마침 그쳤다.
밤새 내린 눈에 로지가 눈 속에 파묻힌 모습이 아름답다. 요리사와 짐꾼이 출발하고 그 뒤를 이어 대장정의 발을 내디뎠다. 이때만 해도 이날 무려 17시간을 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눈 덮인 로지]
[출발에 앞서]
출발과 동시에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표고차 876m를 올라야 하니 당연히 길이 가파르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저 봉우리를 넘으면 되려나 싶으면 또 봉우리가 나오고, 저 고개를 넘으면 되려나 싶으면 또 고개가 나온다. 해가 나오고 힘이 드니까 두꺼운 거위털 패딩을 벗었다 도로 입었다를 되풀이한다. 앞서간 사람들이 눈속에 길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툭하면 무릎까지 빠진다.
촌부는 배낭을 아예 메지 않아도 힘든데 보조가이드들은 배낭을 앞뒤로 멘 채 잘도 걷는다. 네팔의 포터(=쉐르파)들이 힘이 좋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명성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다.
온 천지가 눈으로 하얗게 덮인 세상에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설백(雪白)의 천지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새 한 마리와 고래 한 마리다. 눈을 온통 뒤집어쓴 바위가 절묘한 모습으로 산객을 맞아 지친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누가 일부러 연출해도 저렇게는 못하리라.
[새 한 마리와 고래 한 마리]
2시간 30분 걸려 하이 캠프(High Camp. 4,800m)에 도착했다. 토롱패스 올라가는 마지막 로지가 있는 곳이다. 산객들에 따라서는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출발하기도 한다. 사실 이곳에서 묵고 새벽에 출발하면 그만큼 토롱패스 정상에 오르기가 쉬울 것 같다.
장성순 인솔자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하려면 전날 토롱페디가 아닌 이곳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젊은이들을 몰라도 나이 든 사람들은 4,800m에서 자느라 고산증으로 더 고생할 수 있다고 한다. 하긴 촌부도 4,800m에서 하룻밤 자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
[하이 캠프]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했다. 쉴 때는 좋았지만 갈 길이 아직 멀어 그만큼 토롱패스 정상에 도착하는 시각이 늦어진 것을 생각하면 적당히 쉬어야 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한 감이 있다.
아직도 표고차 616m를 더 올라야 한다. 정말이지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보조가이드의 발만 쳐다보며 발걸음을 힘들게 옮기는데 천근만근이다. 그 가이드가 물을 주면 마시는 동안 그야말로 잠깐 쉰다. 생각 같아서는 눈 위에 털썩 주저앉고 싶지만 그럴 일이 아니다. 앉으면 못 일어나기 때문이다. 애꿎게 일으켜 세우느라 보조가이드만 고생시킨다.
어느 시인은 눈 덮인 겨울 산을 오르는 것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겨울 산을 오른다
지나온 풍경을 하나씩 지우면서
온갖 살아있는 것들 속에 들어선다
저 높은 봉우리
침묵 끝에 앉아 바라보는 나의 길은
어느 깊은 숲속으로 이어져 있을까
얼마나 더 오르면
등짐은 더욱 가벼워질까
논 덮인 겨울산
차갑고 단단한 것은 모두 덮여
인내를 키운다
---김지헌. “겨울 산을 오르며”
촌부는 배낭을 보조가이드에게 맡겼기에 가벼워질 것을 바라는 등짐조차 없건만, 이제는 하얀 설국(雪國)을 걷는 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 한 발 한 발 떼는 것 자체가 고행이고, 무사히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화두일 뿐이다.
저 능선만 넘으면 끝일 것 같은 환상에 젖어 보지만 다시 나타나는 능선에 기가 질린다. 심지어 헛것이 보이기도 한다. 보온병의 물도 떨어져 보조가이드가 물도 더 이상 안 준다. 인내심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그쳤던 눈이 다시 내려 선발대가 가면서 내놓았던 길을 덮는다. 보조가이드가 앞장서서 길을 만들며 간다. 그의 발자국을 놓칠까 봐 부지런히 따라가려니 숨이 턱턱 막힌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여야 하니 잽싸게 발걸음을 놀리는 보조가이드를 탓할 수도 없다.
그렇게 악전고투를 하며 마침내 토롱패스 정상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대망의 토롱패스 정상. 해발 5,416m에 섰다. 벼르고 벼르던 정상이다. 2025. 3. 1. 오후 6시 43분이다. 토롱페디를 출발하여 11시간 30분 걸렸다. 거의 사투(死鬪)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에 뒤이어 가슴 한 곳에 다가와 자리하는 공허함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촌부는 왜 그 사투에 가까운 고생을 하고 이곳에 와 선 것일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올라가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토롱패스 정상]
토롱패스에 오르면 보인다는 마나슬루의 멋진 경치는 아쉽게도 물 건너갔다. 주위에 깔리기 시작한 어둠이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어둠을 뚫고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이다. 의지할 것은 헤드랜턴뿐이다.
토롱패스를 넘으면 사막과 고원이 펼쳐진다는데, 어둠 속에서 보일 리가 없다. 대신 내리막의 하산길을 덮은 눈 위에 흙먼지가 덮여 있는 것을 보면 사막에서 먼지가 날아온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고산에서 눈길 위에 미끄러지면 큰일이기 때문에(에베레스트 트레킹 때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크게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조심 5시간 여를 내려가 자정이 넘어서야 묵티나트(Muktinath. 3,760m)에 도착했다. 토롱페디로부터 17시간을 걸어온 것이다,
미리 내려와 있던 장성순 인솔자님이 애가 탄 얼굴로 맞이한다. 그럴 만도 하다. 자정이 되도록 안 내려오는데, 서울의 혜초여행사에서는 안위를 묻는 전화가 계속 걸려 왔으니 말이다. 그도 촌부도 안도의 숨을 내쉬지만 그 안도의 종류가 다른 게 흥미롭다.
묵티나트의 한 로지에서 한숨 돌리고 쉬다가 지프를 타고 산길을 한 시간 달려 좀솜(Jomsom. 2,720m)의 틸리초 호텔(Hotel Tilicho)에 도착하니 새벽 2시다. 그렇게 토롱패스를 넘었다.
다음날 카트만두에 가서 메인가이드 지바(Jeeva)님으로부터 토롱패스 완주를 증명하고 기념하는 패를 받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틸리초 호텔]
[완주 증명 기념패]
2025. 3. 2.(10일차 : 좀솜->카트만두)
눈을 잠깐 붙이는 시늉만 했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6시 30분까지 호텔 인근에 있는 좀솜(Jomsom)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곳이다. 이제는 고산증에서 해방된지라 아침식사로 비로소 밥을 먹었다. 얼마 만인가.
공항으로 가니 공항의 활주로를 거대한 설산이 발아래 내려다보고 있다. 닐기리 북봉(Nilgiri North. 7,061m)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정상의 모습이 정겹다.
그 산 아래 그야말로 작은 공항이 자리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제대로 뜨려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3시간을 기다린 보람도 없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고 한다. 포카라에서 온 비행기가 공항 위로 부는 바람 때문에 착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은 공항 뒷산인 닐기리와 맞은 편의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 사이로 강한 바람이 불어 항공편의 결항이 잦다고 한다.
[닐기리 정상]
[좀솜공항]
도리없이 포카라까지 지프로 이동하기로 했다. 소요 시간은 대략 7시간.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갈 비행기 시간도 그에 맞추어 변경했다. 그나저나 비행기로 2-30분이면 갈 곳을 차로 7시간 걸려서 간다니 기가 막혔는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차로 이동하는 코스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나푸르나 산군의 동쪽은 그동안 걸어서, 서쪽은 이번에 차를 타고 감으로써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완성한 셈이다.
그 덕분에 다울라기리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고, 닐기리 남봉(Nilgiri South. 6,830m)의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나푸르나 1봉(8,091m)도 제대로 보았다. 정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트레킹 때도 날씨가 흐려 제대로 못 본 안나푸르나 1봉을 이번에 선명하게 볼 줄은 몰랐다.
다울라기리는 본래 토롱패스 정상 부근에서 원경(遠景)을 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상 부근에서 못 본 대신 오히려 가까이에서 근경(近景)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다울라기리]
[닐기리 남봉]
[안나푸르나 1봉]
오후 4시 30분에 포카라(Pokhara. 820m)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푼힐 전망대 트레킹과 ABC 트레킹 때에 이어 세 번째이다. 네팔 제2의 도시(인구가 19만 명)인 이곳은 전에 비해 도시가 더 번창해진 느낌이다.
카트만두행 비행기가 오후 7시 2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빈 시간에 유명한 페와호수(Phewa Lake)에서 보트를 탔다. 이 호수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고인 호수이다. 날이 맑으면 안나푸르나의 설산 모습이 호수 표면에 그대로 비친다. 앞서 두 번은 못 탔던 보트를 타본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페와 호수]
포카라 신공항은 2023. 1. 1. 새로 문을 열었다. 구공항은 비좁고 시설이 열악하였는데, 신공항은 넓고 쾌적하다. 새로 문을 연 지 보름만인 2023. 1. 15. 네팔의 예티항공 비행기가 착륙 도중 추락하여 탑승객 72명이 모두 사망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포카라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첫날 투숙했던 하이야트 호텔에 오니 지배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혜초여행사 사장님한테서 전화를 받았다며 산행을 무사히 마쳐 다행이라고 인사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사람 걱정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포카라 신공항]
[포카라 구공항]
2025. 3. 3.- 3. 4.(11일차 : 카트만두->인천공항)
오전에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 7시 20분 비행기로 귀국하는 날이다. 카트만두는 이번이 다섯 번째라 익숙한 도시다. 그래서 간단히 몇 가지만 적어본다.
2016년 당시 지진으로 무너진 더르바르(Durbar) 광장의 사원이 복원되어 있었다. 왕궁도 대부분 복구가 완료되었고, 일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쿠마리 사원에 가서 쿠마리도 보고, 클룩(자전거로 움직이는 인력거)을 타고 타멜 거리를 누비기도 했다. 클룩은 이번에 처음 타보았다.
타멜 거리는 전보다 더 번창한 모습이다. 타멜 거리 안에 있는 히말라야 자바 커피(Himalayan Java Coffee)라는 상호의 깔끔한 카페에 들러 차를 한 잔 마시는 여유도 즐겼다. 네팔 여행객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카페로, 흔히 ‘네팔의 스타벅스’라고 불린다. 당연히 한국인 손님들이 많다.
[2016년. 더르바르 광장의 지진으로 무너졌던 사원 모습]
[현재의 복원된 보습]
[타멜 거리와 클룩]
카트만두 국제공항은 인산인해였다. 청사 안은 물론이고 밖에도 사람들로 붐볐는데, 돈 벌러 해외로 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는 가족들이 많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 옛날 6-70년 대 독일로, 중동으로, 베트남으로 돈 벌러 떠나는 가족을 전송하는 사람들로 김포공항도 그랬으리라. 네팔 사람들도 훗날 언젠가는 지금의 촌부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글을 맺으면서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릴 분들이 있다.
본래 일정에 없던 이번 트레킹 상품을 일부러 마련해 주신 혜초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 짧지 않은 트레킹 기간 내내 노고를 아끼지 않고 신경을 써주신 인솔자 장성순 대리님과 현지 메인 가이드 지바(Jeeva)님 및 보조가이드님, 그리고 함께 걸으며 시종일관 격려해 주신 도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이번에 힘든 토롱패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분들의 도움 덕분이다. 감사합니다. (끝)
02 Mantra of Avalokiteshvara.mp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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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5.03.2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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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5.03.22 10:06
교수님이 계셨으면 다큐를 한 편 찍었을 텐데....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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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2025.03.22 11:52
안나푸르나 5416미터 토롱패스 정상을 거쳐 완주하심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생생한 사진과 트래킹 지도를 겻들인 등정기를 읽다보니 마치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산증을 극복하시면서 수도자처럼 한발 한발 내딛으며 완주하시는 모습은 또 하나의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우민거사
2025.03.22 21:26
박부장님은 연부역강하시니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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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25.03.22 17:39
지난 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드디어 완주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이젠 도전 정신은 내려놓으시고 편안한 산행만 즐기시길 바랍니다. -
우민거사
2025.03.22 21:27
그럴까요. 그만 졸업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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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5.03.22 20:46
아침에 후다닥 읽고 아쉬워
지금 디시 찬찬히 읽었네요.
참 참 눈부시게 아름답다가
이빨 떨리도록 춥고 힘들고
올라도 올라도 제자리 걸음같은 힘든길
한밤중 그 춥고 힘들고 고독한 산행..
그 짓을 왜혀!
그러나 참 대단하세여.
설산 고행을 마치고 하산한 도인 이석여. -
우민거사
2025.03.22 21:29
힘들고 고독하니까 더 매력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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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i
2025.03.23 01:58
좋은 곳을 다녀오셨네요^*^
좋은 공기 좋은 기운 듬뿍 받으셨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진에도 신선하고 상큼한 향기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
우민거사
2025.03.23 07:14
감사합니다. 한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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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2025.03.29 18:24
이 글을 읽다 너무 너무 길어 다 못읽었습니다
이걸 보고 옛날에 안나푸르나 갈려다 지진때문에
못 간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보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버킷리스트 달성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글 신문사에서도 욕심낼 것같은데~~
5월에 뵙겠습니다 -
우민거사
2025.03.29 22:17
꼭 한번 가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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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가슴이 설레네여.
나도 함께 하는 듯한 현장감
산 속 마을에서 걷다가 찝차로 덜컹거릴 땐 궁디는 구름을타고 가슴은 철렁..
저녁에 다시 찬찬히 읽어야 겠어여.
한편의 생생 다큐
등정기의 고전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