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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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법인 세종의 해외 워크샵에 처음 참여했다. 송무2그룹 변호사들이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장소는 사이판(Saipan).  이번 행사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차질없이 진행한 집행부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이하에서는 행사기간 동안 공적인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여가 활동 중 촌부가 참가했던 부분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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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평양의 필리핀 동쪽으로 14개의 섬이 하나로 늘어서 있는 북마리아나 제도(諸島)(Nothern Mariana Islands)가 있다(북마리아나 제도에 괌을 더하면 마리아나 제도이다). 이 제도는 미국령에 속하는데 그중 가장 큰 섬이자 수도가 사이판이다. 대한민국에서 동남쪽으로 3,000㎞ 떨어져 있고, 괌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북위 15°10’51”, 동경 145°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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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은 길이 19㎞, 폭 9㎞의 대각선으로 길쭉한 모양의 섬이다. 면적은 115.4㎢로 수원시와 넓이가 비슷하다(대략 제주도의 1/10). 섬의 서쪽은 모래 해변, 동쪽은 바위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 있는 높이 474m의 타포차우산(Mount Tapochau)이 가장 고지대이다. 연간 강수량이 2,000 ~ 2,500㎜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사이판은 인구가 2000년에는 62,392명이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확 줄어 현재는 25,000명 정도이다. 한국인 교민이 한때는 5,000여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1,500명 정도 된다. 섬 주민들의 60%는 방글라데시, 필리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엄연히 미국령임에도 불구하고 촌부가 2박3일 머무는 동안 백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미국 본토의 사람들도 사이판이 어디 있는지, 미국령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미국 본토에서 사이판을 왕복하는 항공기 직항편도 없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이 인천공항과 사이판공항을 오가고 있는데, 비행시간이 4시간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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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은 역사적으로 원주민인 차모로(Chamoro)족이 살던 곳인데, 1600년대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고, 많은 차모로 사람들이 1815년 강제로 괌에 이주당한 후 근처의 사타왈섬에 살던 캐롤라이나(Carolina) 인들이 사이판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이판은 현재도 영어 사용자 외에 차모로어와 캐롤라이나어 사용자들이 있어, 주요 표지판에 영어 외에 차모로어와 캐롤라이나어를 병기한 곳이 있다.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이 끝난 후 한동안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으나(전쟁에서 독일이 미국을 지원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여 태평양의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또한 이곳에 사탕수수밭을 만들었고, 3.1 운동 후에는 한국인들도 이곳에 인부로 오게 되었다(이들이 사이판 한인 1세대 이주민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사이판 전투(미국이 B-29 폭격기로 일본 본토를 공습하기 위한 비행장 건설을 위해 사이판을 점령하려고 벌인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함에 따라 1944년 7월부터 미국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1986년 11월 사이판을 비롯한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이 스스로 독립을 포기함에 따라 정식으로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지만, 전술한 것처럼 미국 본토에서 사이판을 직접 오가는 항공편은 없고, 하와이와 괌을 거쳐서 가거나 일본의 나리타공항을 거쳐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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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서 제주항공을 타고 4시간 30분 비행하여 도착한 사이판공항은 영락없는 시골 공항이었다. 공항의 비행장에 경비행기만 몇 대 보일 뿐 제대로 된 여객기라고는 촌부 일행이 타고 간 제주항공 비행기가 유일하다. 한국에서 출국 전에 미리 제출한 전자입국신고서(G-CNMI ETA)와 QR코드 덕에 쉽게 입국 절차를 마쳤다.

 

    공항을 나서니 영상 28도의 후끈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더운 나라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지난해 이맘때 찾았던 베트남의 나트랑과 다낭을 떠올리며 ‘그곳에 비하면 시원하네’ 하고 위안을 삼는다.

 

사이판2.jpg[사이판 공항]

 

    사이판에서 이틀 동안 묵은 숙소인 켄싱턴(Kensington) 호텔은 사이판에서 가장 큰 호텔로 한국의 이랜드 그룹에서 운영한다. 그래서일까 투숙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안내 프론트의 직원이 한국말을 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호텔 뷔페식당의 주메뉴가 한식이어서 음식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은 덤이다. 물론 일식, 중식, 양식 음식도 구비되어 있지만, 이들은 한식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사이판3.jpg[켄싱턴 호텔]

 

   객실이 넓고 모두 바다를 향해 있는 이 호텔은 넓은 부지에 각종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데다 붐비지 않아 휴양이나 관광차 들른 투숙객에게는 안성맞춤의 숙소이다.

 

   넓고 쾌적한 옥외 주 수영장(Main Pool)이 있는가 하면, 바다를 조망하며 수영할 수 있는 인피니티풀(Infinity Pool. 턱이 없이 물이 계속 흘러넘치는 수영장)도 있다. 주 수영장은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그 뒤를 이어 오후 6시에 인피니티풀을 개장하여 오후 9시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계속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다.

 

   나아가 호텔이 바닷가에 바로 인접해 있어[파우파우 비치(Pau Pau Beach)가 전용해변이나 다름없다] 아무 때고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는데, 주위에 다른 시설이 없어 바다를 통째로 차지하고 수영하는 느낌이다. 더운 지방답게 바닷물이 차지 않아 이른 아침에도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촌부는 사이판에서의 일정 중 매일 아침 일찍 바닷가에 나가 발을 담그고 거닐었고, 둘째 날은 오후 5시에 주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다가 6시에 인피니티풀로 옮겼다.

 

사이판4.jpg[객실에서 내려다본 주 수영장과 해변]

 

사이판5-1.jpg [주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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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7.jpg[인피니티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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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에 머무는 2박3일의 짧은 일정 속에 틈을 내 찾아간 관광명소 몇 군데를 소개한다.

 

마나가하섬(Managaha Island)

 

   사이판을 찾으면 꼭 가볼 것을 권유받는 곳이 마나가하(Managaha)섬이다. 사이판 본섬의 서쪽 바로 코 앞에 있는 이 섬이야말로 휴양지 사이판의 꽃이고 보석이다. 촌부도 사이판에서의 일정 중 둘째 날 오전을 이곳에서 보냈다.

 

    마나가하섬은 본섬에서 배를 타고 10분가량 가면 도착할 수 있다. 배에서 내려서 섬 안의 길을 따라가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구조로, 평범한 속도로 걸어도 30분 정도면 섬 안의 모든 곳을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지만, 바닷물이 워낙 맑고 푸른 데다 섬의 풍광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섬 안의 스낵코너에선 한국 라면, 떡볶이도 판다. 마나가하섬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요새화했던 섬이라 그때 설치했던 일본군의 해안포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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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9-2.jpg[마나가하섬]

 

    ‘사이판에 가서 마나가하섬을 안 가보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나가하섬은 사이판 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특히 이곳에서 한 패러세일링(Parasailing)은 모험과 스릴 만점이었고,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면서 물 반 고기 반인 바다속의 다양한 물고기와 산호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동심의 세계 그 자체였다.

     이 두 가지 체험이야말로 사이판 여행의 백미이다. 촌부는 2016년 2월에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할 때 퀸스타운(Queen’s Town)에서 패러세일링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호수에서 했던 그때보다 이번이 훨씬 역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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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12.jpg[패러세일링]

 

사이판13.jpg[스노클링]

 

자살절벽(Suicide Cliff)과 만세절벽(Banzai Cliff)

 

    마나가하섬 다음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자살절벽(Suicide Cliff)과 만세절벽(Banzai Cliff)인데, 이곳은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셋째 날 오전에 현지 가이드 박문수씨의 안내로 이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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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절벽은 전술한 사이판 전투 당시 일본군의 최후 기지가 있던 마피산(Mount Marpi. 해발 249m)의 북쪽 절벽으로 사이판의 최북단이다. 절벽 위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절벽 위에 서면 그 아래로 멀리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절벽의 아래가 바로 바다는 아니다).

    사이판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미군의 항복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였다. 그래서 자살절벽이라는 살벌한 이름이 붙여졌다.

 

사이판14.jpg[자살절벽]

 

   만세절벽은 자살절벽보다 좀 더 낮은 지대의 바닷가에 있다. 이곳은 사이판 전투 당시 저지대로 몸을 피했던 민간인들이 만세를 부르며 바다로 뛰어내린 곳이다. 

 

   당시 일본군은 일본 민간인들에게 미군한테 잡히면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고 세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민간인들이 상당수 자발적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사이판 전투를 앞두고 미국 언론에 미군의 일본군 전사자 사체 훼손(금니 채취를 위한 것이었다) 사건이 보도되고 그것이 일본에 전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절벽 아래쪽은 바로 바다로서 떨어진 지점에는 뾰족한 바위가 있어 바로 사망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바람에(약 5,000명) 나중에 미군 고속정이 수습하러 왔으나 시체에 가로막혀 접근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이처럼 애환이 서린 이곳의 바다는 왜 그리도 푸르른지... 마치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하다.

 

사이판15.jpg[만세절벽]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자살을 택하였을까? 일설에 의하면 일본 국왕이 사이판의 민간인에게 자살을 명령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명령의 이유는 사이판에 거주하는 일본 민간인이 잡혀서 미국의 선전방송에 불려나가게 되면 일본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반대로 미군의 사기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David Bergaminirk가 쓴 “Japan's Imperial Conspiracy”(1972)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주류 학계의 정설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만세절벽 근처에 이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일본인 위령탑, 오키나와인 위령탑 외에 한국인 위령탑(1981년 건립)이 따로 있다. 한국인 희생자는 앞에서 언급한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사이판16.jpg[한국인 위령탑]

 

   만세절벽은 이처럼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닷가에서 보는 수평선은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시야가 좌우로 탁 트여 바다를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이곳의 수평선은 둥글다.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라고나 할까. 또한 빛이 공기를 통과할 때 공기의 밀도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지는바, 이곳의 바다 위는 공기의 밀도가 높아 굴절 효과가 더 커 수평선이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진상으로는 일직선과 거의 구별이 안 된다. 그러니 믿기 어려운 사람은 직접 가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이판17.jpg[둥근 수평선]

 

새섬(Bird Island)

 

   새섬은 사이판의 북동쪽 해안에 있는 작은 석회암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섬의 양옆으로 파도치는 모습이 마치 새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새섬이라 불린다. 이 섬의 주위에 산호가 많아 먹이인 물고기가 풍부하여 새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섬의 바위 절벽에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새들이 사는 집이다. 이 섬 주위의 바다색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다만 만세절벽의 바다와는 달리 짙은 푸른 색이 아닌 맑은 푸른 색이다.

 

   한편 이 섬은 그 자체 모양이 거북이가 바다에서 육지로 향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원주민들은 거북섬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름에 걸맞게 섬을 마주하는 해안의 백사장에는 거북이들이 올라와 알을 낳는다.

 

사이판18.jpg[새섬]

 

   전망대에서 새섬을 내려다보며 시를 한 수 떠올려 본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하늘 향해 솟은 바위섬들
 
   밀려드는 파도에 몸을 빼앗겨
   물안개로 답한다
 
   이상 짙은 향기 핥으며
   꿈을 꾸는 갈매기
   하늘에 날개 붙잡혀 쉴 곳조차 잃어도
 
   불어오는 바람 벗 삼아
   살결 고운 구름 향해 노를 젓는다
 
   여름을 태운 넋을 받아
   하늘의 거울이 된 바다
 
   저녁 노을에
   지나는 나그네들 눈빛에 스며들어
   입술을 촉촉하게 적셔주며 녹아 흐른다

                                            ----가을 바다/김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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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에서 2박3일을 보내고 귀국길에 오르려니 짧은 일정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완전 무공해지대라 사방으로 쏟아지는 듯한 별을 볼 수 있는 ‘별빛 투어’에 참여하지 못한 게 내내 아쉽다.

 

    아무튼 사이판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30분밖에 안 걸리고, 시차도 1시간밖에 안 나고, 무엇보다도 붐비지 않아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녕 매력적인 휴양지이다.

     기후도 비록 한국보다는 덥지만, 동남아의 푹푹 찌는 날씨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모로 괜찮은 곳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귀국 비행기를 타면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사이판19.jpg[사이판 밤하늘의 별. 별빛 투어에 참가한 동료 변호사가 촬영]

 

01. On Earth As It Is In Heaven.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