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마고도(茶馬古道)를 가다
2025.09.03 20:09
차마고도(茶馬古道)를 가다
2007년 KBS의 6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인에게 알려진 차마고도(茶馬古道).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이 오고 갔던 길이다.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인류 역사상 최고(最古, 最高)의 문명·문화·경제 교역로이다.
해발고도가 평균 4,000m 정도인 높은 산과 고원지대에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만들어낸 길, 중국의 운남성이나 사천성에서 출발하여 티베트를 거쳐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로 이어지는 5,000km가 넘는 길이 바로 차마고도다.
KBS의 다큐멘터리는 광활한 고원과 깎아지른 협곡, 깊이를 알 수 없는 강, 눈 덮인 설산을 지나 아주 오래전부터 차와 말과 소금, 그리고 불교가 오갔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 언젠가는 촌부도 그 길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품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일어난 반정부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진 후 외부인의 티베트 여행이 제약을 받는 바람에 차마고도 여행의 꿈이 멀어져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2. 15. 마침내 여행 제한이 풀려 이번 여름에 차마고도를 찾아 길을 나설 수 있었다. 2025. 7. 30.부터 8. 9.까지 10박11일의 여정이었다.
여행을 주관한 혜초여행사에서 내놓은 상품은 첫 출발이 9월에나 가능했다. 그래서 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께 부탁하여 7월 말에 출발하는 일정을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객을 거쳐 총 18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 중에 연세가 80세(남)와 76세(여)인 노부부가 계셨는데, 그 연세에 전 일정을 가뿐히 소화하셔서 일행을 감탄하게 하였고, 78세 된 또다른 여자분(혼자 오셨다)은 그 식사량과 주량이 촌부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허언(虛言)이 아닌 것 같다.
한편 현재 중국은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지만, 티베트는 여전히 별도의 여행 허가가 필요하다. 허가를 받는 것은 혜초여행사에서 대행하였다.
여행 시기가 KBS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 18년이 지난 시점이다 보니 고도(古道)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금사강, 란창강, 누강이 만들어낸 아찔한 협곡은 그대로였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방영했던, 마방들이 밧줄 하나에 목숨을 의지하고 건넜던 강 위에는 다리가 놓이고,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나 있던 좁은 길은 이를 대신하여 그 옆으로 넓은 포장도로가 뚫렸다.
결국 촌부의 이번 여행은 흙길 고도(古道)를 말(馬)을 몰고 간 것이 아니라 포장된 신도로(新道)를 차(車)를 타고 이동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 그 길은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아니라 차차신도(茶車新道)인 셈이다. 그래도 그 차차신도(茶車新道)가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따라 생겼기에 차마고도(茶馬古道)를 가는 기분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은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서안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중국 국내선(사천항공)을 타고 여강으로 가, 그곳에서부터 버스와 9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여 라싸까지 1,900km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멀고도 높은 길에 긴 시간 차를 타느라 멀미에 고산증까지 겪어야 해서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여정이었기에 아래에 정리하여 본다.
2025. 7. 30.(인천공항->서안)
인천공항에서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한 대한항공 비행기가 현지 시각(서울보다 1시간 늦다) 오전 11시 40분에 서안공항에 도착했다. 서안은 2016년 7월에 실크로드 여행을 위해 처음 와본 후 두 번째이다.
공항을 나서니 섭씨 35.9도의 후끈한 날씨가 객을 맞는다. 공항 바로 옆의 공항호텔(호텔 이름이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영상 40도의 푹푹 찌는 날씨 속에 한양릉(漢陽陵)으로 이동했다.
이 능은 한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의 능이다, 야산 하나가 그냥 통째로 능이다. 현재 중국의 여러 능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이 능은 발굴한 상태 그대로 전시관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어 마치 지하박물관 같다. 안에 들어가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한양릉의 전경과 전시관]
한양릉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영상 41도로 기온이 더 올라갔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승설재 대표님이 마련한 찻자리에서 간단한 차모임을 가졌다.
2025. 7. 31. (서안->여강->샹그릴라)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거의 매일 아침 5~6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하루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한다. 식사를 하고 짐을 꾸리고 숙소를 나서기까지 대략 1시간 30분 내지 2시간 걸린다. 해외여행에 나서면 어디를 가든 반복되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6시 40분에 호텔과 실내로 연결되어 있는 공항으로 갔다. 국내선을 타고 여강으로 가기 위해서다. 서안공항은 명색이 국제공항으로 큰 것을 좋아하는 중국답게 규모가 매우 크다. 그러나 국내선 창구는 붐비는데 국제선 창구는 매우 한산하다. 취항하는 외국 도시가 적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외국인 중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온다고 할까.
지역 정치인들의 입김으로 지방공항을 잔뜩 건설하였다가 취항하는 비행기가 없어 활주로를 고추 말리는 장소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일부 공항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정치가 경제를 왜곡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이런 불합리한 단면은 어딜 가나 있는 모양이다.
중국이 지난 6월부터 비행기에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탑승하는 것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대부분 배터리를 압수당했다. 정품 샤오미 배터리 정도나 통과될 것 같다. 이 배터리들은 서안의 현지 가이드가 보관하고 있다가 후에 차마고도 여행을 마치고 서안으로 다시 돌아와 귀국할 때 돌려받았다. 앞으로 중국 여행을 할 경우 유념할 일이다.
기차만 완행이 있는 줄 알았더니 비행기도 완행이 있다. 서안에서 여강으로 가는 사천항공의 이 비행기가 중간에 사천성 이빈(宜賓)이라는 곳에 기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40여 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공항 구내를 서성여야 했다. 이빈은 오랑액(五粮液)의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공항 구내에 오랑액 광고판이 즐비했다.
[이빈공항의 오랑액 광고]
오후 12시 15분, 여강(麗江)에 도착했다. 비가 내렸다. 해발고도가 2,450m이다 보니 서안과 달리 날씨가 쌀쌀하다. 여강은 2016년 11월에 호도협 트레킹 때 와본 곳이라 낯설지 않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샹그릴라로 향했다.
오후 5시에 도착한 샹그릴라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인구 30만의 이 도시는 교통체증이 심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이상향의 도시가 아니었다. 샹그릴라 고성(古城)은 2014년 1월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여 목조 건물 100여 채를 태운 후 재건하면서 오래된 고성의 면모가 퇴색하였다. 여강고성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안타깝다.
샹그릴라 고성에 온 기분을 내려고 100불을 주고 티베트 민속의상을 빌려 입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경복궁이나 인사동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고성은 중국답게 사람들로 넘쳐났다,
고성에 거북을 닮은 귀산(龜山)이 있는데, 그 산에 청나라 초기에 세운 대불사(大佛寺)가 우뚝 솟아 있다. 절까지 나 있는 146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지대가 높다 보니 숨이 가쁘다. 이곳에서 샹그릴라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세계 최대의 마니차(높이 21m, 지름 6m에 이르고 무게가 60톤이다)가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그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한양에서 온 나그네도 그 군중 속의 한 명이 되었다.
[샹그릴라 전경과 고성의 거리 모습]
[대불사와 세계 최대의 마니차]
본래 샹그릴라(Shangri-La)는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이다.
곤륜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으로, 외부로부터 단절된 채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샹그릴라 이야기는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신비의 도시 샹바라(Shambhala, 香巴拉)에 기초하고 있다.
이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간이 흐르면서 샹그릴라는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관광객 유치의 목적으로 샹그릴라임을 자처하는 장소가 등장하자, 중국 당국은 2001년 운남성의 중전(中甸)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개명하여 정식 지명으로 정하였고, 그 후 이곳을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저녁 식사를 한 장룡모우연(藏龍耗牛宴)이라는 식당이나 투숙한 송찬림장지성연(松賛林藏地聖蓮) 호텔은 중국답게 그 규모가 엄청났다.
이후 가는 곳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대개 15가지 내외의 요리가 나오는 진수성찬이었는데, 처음 며칠은 먹을 만했으나(호사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중국음식 특유의 느끼함 때문에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했다.
송찬림장지성연(松賛林藏地聖蓮) 호텔의 입구에는 “샹그릴라가 해발 3,300m로 천당에 가장 가까운 곳(香格里拉 海拔 3300m 最接近天堂的地方)”이라는 문구가 벽에 씌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호텔은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의 고풍스런 장식이 특히 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호텔 안에 중정(中庭)이 설치되어 있어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객잔(客棧)의 모습이다. 객실도 고풍스러운데 고산증에 대비한 산소발생기가 설치되어 있는 게 이채롭다.
[송찬림장지성연(松賛林藏地聖蓮) 호텔의 입구와 내부 및 객실 모습]
샹그릴라는 해발고도가 3,300m이다. 당연히 두통 등의 고산증 증세가 나타난다. 우리 일행 중에 이런 높이의 고지대는 처음 오신 한 분이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였다.
반면에 촌부는 이제는 고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벼운 두통만 있었다. 서울 출발 전에 한 의사 선생님한테 들은 조언대로 이날부터 매일 저녁에 비아그라 한 알을 복용하고 다음 날 아침에 다이아막스 반 알을 복용하는 일을 계속하였더니 이후의 해발 4~5,000m를 오르내리는 일정에서 고산증으로 인한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 박재송님이 특별히 준비해온 구운마늘을 계속 먹은 것도 한몫했다.
2025. 8. 1. (샹그릴라-> 더친->옌징)
마침내 티베트 땅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호텔 주위를 산책하고 식사를 한 후 8시 15분에 출발했다.
20여 분 만에 나파해(納帕海)에 도착했다. 이름과 달리 호수이다. 해발 3,300m의 고원에 있는 호수인데, 워낙 넓다 보니 이름에 바다(海)가 들어간 것이다. 넓은 지역에 구름이 끼면 운해(雲海)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다.
날이 흐리고 쌀쌀해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떠났다. 앞으로 멋진 경치가 널려 있으니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일도 아니다.
[나파해(納帕海)]
바야흐로 좌우의 높은 산을 끼고 산 중턱으로 난 길과 고갯길을 넘어가는 여정(214번 국도)이 시작되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저 고개가 나오고 그 고개를 넘으면 다시 새로운 고개가 이어진다. 절벽 위로 난 길을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높은 산이 줄을 서나 싶은데 어느새 협곡을 흐르는 금사강이 나온다.
맞은 편의 구름이 걸려 있는 높은 산 중턱으로 좁디좁은 산길이 동행한다. 저 험한 길을 옛날 마방들이 힘들게 다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바로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아닐까.
[산 중턱의 옛길]
샹그릴라를 출발하여 2시간 지나 금사강제일만(金沙江第一灣)을 내려다 보는 전망대(해발 2,529m)에 도착했다.
월량만(月亮灣)으로도 불리는 금사강제일만은 장강(長江)의 상류인 금사강이 계곡을 따라 원을 그리며 흐르는 곳인데 그 풍광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물굽이는 아니어도 전술한 나파해처럼 만(灣)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바다가 그리워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금사강제일만(金沙江第一灣)]
[도반들과 함께]
금사강제일만 전망대를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더친(德欽)이다. 운남성에서 최고로 높은 산인 매리설산(梅里雪山)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매리설산은 모두 13개의 봉우리(평균 6,000m 이상으로 최고봉인 태자봉은 해발 6,743m이다)가 있으며, 티베트 불교에서 '설산(雪山)의 신(神)'으로 숭배하는 성산이다. 그래서 산 정상은 등반이 금지되어 있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산이다.
험난한 차마고도를 넘어야 했던 마방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빌었던 성산이기에 그들의 오랜 염원이 지금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날씨가 좋으면 점심 식사(오골계 전골에 상추쌈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였다)를 한 관경천당(觀景天堂) 호텔의 앞 정원(해발 3,500m), 그리고 인근의 매리설산 전망대에서 매리설산의 연봉들을 잘 볼 수 있는데(가이드의 말로는 많이 알려진 비래사 전망대보다 이곳이 더 낫다고 한다), 이날은 아쉽게도 구름이 오락가락하며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두 군데 어디에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매리설산 전망대]
매리설산 전망대를 떠난 버스가 꼬불꼬불 산길을 이 굽이를 돌고 저 굽이를 돌며 곡예를 하듯 내려간다. 지나온 고갯길을 차창을 통해 되돌아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엄습한다. 저 높고 험준한 길을 넘어서 내려왔다니.
그렇게 길을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협곡 사이로 짙은 황토색 물결이 급류로 넘실대는 란찬강(瀾滄江. 메콩강의 상류이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 물은 색깔이 저리도 진흙탕색일까. 장마가 한창이어서 마치 강물이 넘칠 것처럼 세차게 많이 흐를 때의 한강 물색과 비슷하다.
저 물이 흘러오는 티베트는 물이 귀한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본 설산의 눈이나 빙하가 녹은 물의 색은 저렇지 않았는데... 또 쓸데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돈다.
[란창강의 모습]
오후 5시 20분, 티베트로 들어가는 검문소에 도착했다. 티베트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자치주 중 하나인지라 국가가 갈리는 국경선은 아니지만, 티베트로 들어가려면 티베트 자치정부로부터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은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지만, 티베트는 그와 별도로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검문소에서 그 허가증을 검사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리고 이곳까지 타고 왔던 버스는 여강으로 되돌아가고 이제부터는 티베트의 9인승 밴으로 갈아타고 이동한다. 이 밴은 나중에 라싸 공항에서 서안 가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계속 이용했다. 그에 맞추어 가이드도 라싸에서 온 김광씨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밴에는 앞뒤에 독일 자동차 벤츠의 마크가 붙어 있는데, 실제로는 중국차에 마크만 그렇게 붙여놓은 것이었다. 촌부도 처음에는 정말 벤츠 차인 줄 알았는데, 며칠 타고 다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짝퉁 천국의 한 모습이다.
[티베트 검문소와 9인승 짝퉁 벤츠]
오후 6시 옌징(鹽井)에 도착하여 옌징 최대 호텔인 운곡장원(云曲庄園)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한 시간여 객실에서 쉬면서 긴 시간 차를 타고 온 피로를 풀고 오후 7시에 호텔 내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인근의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돈 후에 호텔에 딸린 노천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하늘에 반달이 밝게 떠 있는 분위기가 이국(異國)의 깊은 산속 노천온천의 낭만을 더했다.
[운곡장원(云曲庄園)호텔]
2025. 8. 2.(옌징->망캉-> 좌공)
오전 8시 40분, 호텔을 나와 오전에 옌징의 소금 마을을 둘러보았다, 옌징은 1,300년 전인 당나라 때부터 소금을 생산해 온 곳이다. 해발 2,400m의 옌징은 란창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고을인데, 흙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란창강의 강가에 소금물이 나오는 우물이 수십 개 늘어서 있고, 그 우물을 물지게로 길어다 염전에 부어 햇볕과 바람에 말려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다.
티베트가 본래 바닷속에 있던 땅이 융기하여 고원이 된 것이라 바닷물이 우물로 솟아나는 곳이 바로 옌징이다. 마치 히말라야에서 암염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염전과 소금 고드름]
이 소금을 만드는 작업은 전적으로 여인의 몫이다. 전에는 좌우에 10리터짜리 물통을 하나씩, 합쳐 20리터의 물통을 물지개에 달고 우물에서 염전까지 하루에 100번 져 날랐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다행히 지금은 모터를 설치하여 소금물을 호스로 퍼 올려 여인네의 일손을 덜었다. 그렇지만 염전을 만들고 다지고 소금을 수확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오로지 여인네가 하여야 해서 그녀들은 허리를 펼 틈이 없다. 옌징의 소금은 한마디로 햇살과 바람과 여인의 손이 빚어낸 작품이다.
남자들은 그 생산된 소금을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 운남, 사천, 네팔, 인도 등 외지로 나가 팔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 오는 일을 담당하였다.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고 있는 여인]
오랜 세월 원시적인 제염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옌징의 소금은 이를 구하러 온 마방들에게 팔기도 하고, 부족한 곡식을 얻기 위해 주고받는 교역품이기도 했다. 또한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먹이던 약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의 소금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의 선물’로 불린다.
동행자 중 한 분이 옌징의 소금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옌징
---소금 여인을 기억하다.
람찬강 물결 따라
천년이 흘렀다.
붉은 흙 언덕 위
태양이 소금을 키우고
바람이 결정의 숨을 불어넣는다.
여인들은
굳은살 박인 손으로
소금물을 이고 나르고
다시 하늘에 올린다.
하루, 또 하루
침묵 속에서
고단함은 말하지 않는다.
땀방울이 마르면
하얀 소금꽃이 핀다.
그 한 줌의 소금에
강의 물소리와
태양의 온기와
여인들의 심장이 녹아 있다.
당신은
고단한 삶 속에서
세상에 건네는
가장 순결한 천년의 선물이다.
소금 마을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점심 식사 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 인근의 포도주 공장을 견학했다. 공장의 담에 씌어 있는 “최상의 포도주 공장은 대자연(大自然是最好的釀酒師. The best winemaker is nature)”이라는 인상적인 표어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1865년에 처음 세워졌다는 이 포도주 공장은 무엇이든 일단 지었다 하면 크게 짓는 중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보았던 포도주 공장은 이 공장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다.
인근에 염전이 있을 정도로 햇살이 강하니 질 좋은 포도가 생산될 것 같긴 한데, 포도주의 질이 어떨지 궁금했다. 비주류인 나는 술맛을 몰라 나중에 일행한테 들으니 맛도 좋다고 한다.
[포도주 공장의 전경과 내부]
점심 식사를 한 후 12시 30분에 옌징을 출발했다. 란창강과는 여기서 헤어졌다가 318번 국도에서 다시 만난다.
표고차가 2,000m나 되는 산길을 힘겹게 계속 오르다 오후 1시 50분 홍라산(紅拉山)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해발고도가 4,448m이다. 표지석 주위로 수많은 룽따가 펄럭인다. 해발고도가 높지만 전술한 대로 머리만 약간 무거울 뿐 고산증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
[홍라산 고갯마루]
이 고개를 해발 3,500m까지 내려가면 망캉(芒康)이다. 오후 3시 15분에 망캉에 도착하여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대낮인데 기온이 영상 20도로 선선하다. 망캉은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와 대형 호텔도 들어선 제법 구색을 갖춘 현대 도시다. 잉크를 뿌려놓은 듯한 푸른 하늘이 인상적이다.
[망캉의 거리 모습]
망캉에서는 상해에서 출발하여 성도를 거쳐 온 318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나중에 린즈에서 고속도로로 올라서기 전까지 계속 이 도로를 달린다.
이 도로는 상해부터 시작하여 라싸를 지나 네팔국경의 장무(張武)까지 총연장이 5,476km나 된다. 중국인들이 인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는 도로이다. 그래서 이 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기념품점에서는 “318 此生必駕”(차생필가)라는 로고가 찍힌 모자를 판다.
망캉에서는 또한 앞서 헤어진 란창강도 일부 구간에서 다시 보게 된다. 여전히 흙탕물이다.
망캉을 지나면 해발 2,600m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 오르막의 정점이 뚱따산(東達山) 고갯마루이다(해발 5,130m). 이번 차마고도 여행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동시에 318번 국도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소 늦은 시각인데도 여행객들로 붐볐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지만, 고도가 워낙 높은지라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찼다. 고산증으로 인한 어려움을 덜 겪으려면 무조건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원리를 새삼 되새겼다. 이미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라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머물다 내려갔다.
[둥따산 고갯마루]
우리 옛시조에 이런 것이 있다.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왔다 하면, 나는 한 번도 아니 쉬어 넘으리라
그런가 하면 판소리 춘향가 의 눈대목 중 하나인 "갈까부다"(한양으로 떠난 후 소식이 없는 이도령을 춘향이 그리워하는 대목이다)의 사설에는 위 시조를 본딴 듯한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서 갈까부다
장성령(長城嶺)이나 동설령(東雪嶺)이 얼마나 높은 고개이길래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바람도 쉬었다 넘어야 하고, 구름도 쉬었다 넘어야 하고, 하늘을 나는 온갖 매들도 쉬었다 넘어야 하는 걸까.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니 장성령은 전라남도 장성에서 전라북도 정읍으로 넘어가는 고개(호남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 보러 갈 때 넘던 고개이다)인데, 어이없게도 해발고도가 348m라고 한다. 이쯤 되면 과장이 너무 심하다. 그래도 그 익살이 재미있다.
이 시조를 지은 무명씨(無名氏)가 홍라산 고개(4,448m)나 뚱따산 고개(5,130m)의 존재를 알았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바람도, 구름도, 해동청 보라매도 모두 넘기를 포기한 고개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 너머에 사랑하는 님이 왔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넘겠다고 하였으리라.
그리고 춘향가의 동설령(東雪嶺)은 실재하는 고개가 아닌 듯하다(황해도 황주에 동설령이라는 고개 있다고 하나, 황해도는 춘향가의 무대와는 너무 동떨어진 곳이라 의미가 없다.
저녁 8시 10분에 이날의 목적지 좌공(左貢. 해발 3,810m)에 도착했다. 좌공은 꽤나 번화한 도시다. 네온싸인이 번쩍이는 현대식 건물이 늘어서 있다. 시간이 늦어 금일미사방채(錦一味私房菜)라는 식당에서 먼저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인 회정국제(汇鼎國際)호텔에 짐을 풀었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야경도 구경할 겸 호텔에서 나와 시내 중앙통을 거닐다 발마사지를 하는 곳에서 오랜만에 발마사지를 받았는데, 288위안의 가치를 못 했다. 함께 한 일행들도 모두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반면 노상에서 산 과일은 당도가 높아 맛이 훌륭했다. 호텔에 난방이 작동 안 해 경량패딩을 입고 잤다.
[좌공의 야경]
2025. 8. 3.(좌공->바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이 약간 있어 다이아막스를 반 알 먹고, 산책을 하러 호텔 밖으로 나서니 영상 6도의 흐린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호텔 옆으로 물살이 세고 수령이 제법 풍부한 이름 모를 강이 흐른다. 현지 가이드는 얄룽창포강(雅魯藏布江)의 한 지류라고 하는데, 구글지도상으로 보면 얄룽창포강의 지류가 좌공으로 흐를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아무튼 확인 불가이다.
아침 8시 35분에 호텔을 출발했다. 오전 11시에 방달진(邦達鎭)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이날 최종 목적지 바쑤(八宿)에 도착하기 전까지 점심 식사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방다초원(邦達草原)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이 초원은 겹겹이 높은 산이 이어지는 깊은 산중에 분지 형태로 꽤 넓은 초원이 형성된 곳이다. 초원 가운데로는 강이 흐른다.
[방다초원]
방다초원을 보면서 고도를 높여 318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던 밴이 정오를 지난 12시 30분 멈춘 곳은 해발 4,618m에 위치한 예라산(業拉山)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역시 중국답다. 어딜 가든 조금만 유명하다 싶으면 인산인해다.
이 전망대에서 유명한 천로72굽이길(天路72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발고도가 4,000m가 넘는 곳에 12km나 되는 이런 굽이길이 있다는 게 놀랍다.
차마고도를 가는 마방들이 말에 짐을 싣고 오르내렸던 이 길은 지금은 포장도로로 차가 다닌다. 전에는 이 길을 가는 사람도 말도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예라산 전망대와 천로72굽이길]
이 험준한 72굽이길을 다 내려가면 온통 바위로 덮힌 산의 대협곡 저 아래로 누강(怒江)이 나타난다. 누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총연장 2,815km이다.
이름이 분노(憤怒)한 강이라니, 무엇에 분노한 것일까. 분노를 표출하기라도 하려는 듯 격하게 흐르는 물살의 색깔이 란찬강처럼 진한 황토색이다.
그 강의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보라고 해발 2,800m 되는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협곡 위에 떠 있다시피 한 전망대에 서면 순간적으로 현기증에 눈앞이 아찔하다. 전망대와 누강의 낙차는 198m이다.
[누강 협곡 전망대]
이 전망대에서 협곡으로 따라 나 있는 길을 20여 분 더 가면 누강을 가로지르는 누강대교(怒江大橋. 해발고도 2,800m. 다리 길이 165m)가 나타난다. 그리고 협곡을 이루는 바위산의 옆구리에 아슬아슬한 길이 나 있는 게 보인다.
저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양쪽으로 수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버티고 있는 협곡에 길을 내고 산을 넘어 힘들게 외부세계로 나간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마방들이다. 그들이 다녔던 저 길, 바로 차마고도이다.
이제는 현대화된 포장도로가 그 길의 위를 덮고 마방의 역할을 대형트럭이 대신하고 있는 역사 속의 길이 되었지만, 이곳 누강에서 바라보는 차마고도는 여전히 나그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다리를 건설하는 동안에 희생(고산증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된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리 난간에 놓고 간 음료와 과자 등이 애절하다. 지나가는 차들도 경적을 울려 애도의 뜻을 표한다.
KBS의 다큐멘터리에서 마방들과 말들이 누강을 건너는 장면을 촬영한 곳에는 도르래는 철거되고 강물만 굽이치면서 흐르고 있었다. 저 강이 마방들의 애환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누강대교]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말들이 도르래를 타고 강을 건너던 곳]
오후 4시 45분 이날의 목적지 바쑤(八宿)에 도착했다. 해발 3,260m에 있는 비교적 작은 산골 도시다. 그래도 거리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노강운(怒江云)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3성급 호텔이라 여행사에서는 잠자리가 불편할 것이라고 했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 생각에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카페를 찾을 수 없어 그냥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난방이 안 들어와 패딩을 입고 자야 했다.
[바쑤의 거리 모습과 노강운호텔]
2025. 8. 4.(바쑤->포미)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 산책을 할 겸 호텔 밖으로 나서니 영상 11도의 날씨가 목을 움츠리게 한다. 서울은 35를 넘나드는 찜통더위가 계속된다고 하니 피서 하나는 제대로 온 셈이다.
거리를 이리저리 거니는데 “중국사법(中國司法. CHINA JUSTICE)”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이 보였다. 아마도 법원 건물 같다. 그 가까운 곳에는 무강광장(武鋼廣長)이라는 넓은 광장이 있다.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법원 문은 닫혀 있었고, 광장에도 사람이 없었다.
보통 중국여행을 하다 보면 아침 일찍 광장에 나와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티베트의 깊은 산속 고을이어서 그런가.
[중국법원과 무강광장]
호텔로 돌아와 아침 7시 30분에 식사를 했는데, 이번 여행 중 가장 부실한 식사였다. 정말 먹을 게 없었다. 잠자리 말고는 가히 3성급 호텔다웠다.
식사 후 아침 9시에 출발했다. 다시 오르막이다. 길옆 보리밭의 보리가 누렇게 익었다. 길 옆에 한동안 보이는 산들이 나무가 거의 없는 붉은 색 바위산들이다.
1시간 30여 분을 달려 높은 고갯마루를 하나 넘은 해발 4,400m의 초원지대에 다다라 차가 멈췄다. 전방에서 도로공사 중이라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도리없이 차에서 내리니 길 한쪽으로는 룽따가 길게 펄럭이고, 반대편의 다른 한쪽으로는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냇물이 소리내어 흐른다.
차인(茶人)이신 승설재 대표님이 차마고도를 여행하는 사람답게 여러 종류의 차를 준비해 온 덕분에 냇가에 찻자리를 펼쳤다. 도로공사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해발 4,400m의 차마고도에서 명품 대홍포를 마시는 횡재를 하였다. 서울에서 마시던 대홍포의 맛이 아니었다.
차를 마시다 고개를 들자 산마루를 커다란 백사(白蛇) 한 마리가 힘차게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필시 겨울에 내린 눈의 잔설이 연출하는 장면이리라. 그런가 하면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타고 온 자동차 옆에다 상을 차리고 아예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먹는다.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도 있다.
[길게 이어진 룽따]
[냇가 찻자리의 대홍포]
[산마루의 백사(白蛇)]
[길가에서 밥을 해 먹는 중국인들]
2시간 30분이나 기다려 통행이 재개되었다. 오후 2시 20분에 공사 구간을 완전히 벗어나 길을 재촉하여 오후 3시에 란우호(然烏湖. 해발 3,930m)라는 호수에 도착했다.
호숫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호수를 둘러보았다. 티베트어로 “양의 젖”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호수는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것이다. 총길이 약 29km, 너비 1km의 길쭉한 형태를 하고 있다. 호수의 깊이는 평균 6m 정도이다.
[란우호]
란우호에서 318번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의 좌우는 삼림이 우거지고 동행하는 팔룽창포강[ 帕隆藏布江. 후술하는 얄룽창포강(雅鲁藏布江)의 지류이다]이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물살이 빨라 마치 캐나디안 로키산맥의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 길을 50km 달리면 미퇴빙천(米堆冰川)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오후 4시에 미퇴빙천 전망대 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일정이 많이 늦어졌지만, 해가 늦게 지는 까닭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미퇴빙천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이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 다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는 해발 3,830m에 있다. 미퇴빙천은 높이가 6,385m인 설산(히말라야산맥에 있는 산이다)에 빙하가 형성된 곳이다. 빙하의 높이만 800m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힌다. 빙천은 그 빙하가 녹은 물이 고인 곳을 뜻한다.
[미퇴빙천과 오가는 셔틀버스]
빙하를 보고 나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30분이다.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달려 포미(波密)에 도착했다(해발 2,700m). 숙소는 백한(柏澣)호텔이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송이요리가 나왔다. 동행한 월우스님이 이곳은 송이가 많이 나오는 곳이니 식사 후 따로 송이를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모두 흔쾌히 따라나서 호텔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송이 파티를 했다. 1kg에 18만원 하는데 품질이 매우 좋았다. 특히 향이 기막혔다. 반은 생으로 먹고 반은 불판에 약간 익혀 실컷 먹었다.
[백한호텔과 송이 파티]
2025. 8. 5.(포미->린즈)
전날은 밤에 도착하는 바람에 포미(波密)의 도시 풍경을 보지 못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오니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미를 “티베트의 스위스”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팔룽창포강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고, 강 위로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이 이어진다. 영상 13도의 선선한 기온이 온몸을 감싼다.
포미는 온난다습한 아열대기후가 특징이라 혹한이나 혹서가 없다. 눈 덮인 산봉우리 아래로 빙하와 삼림과 강이 아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포미의 전경]
포미 시내를 벗어나도 318번 국도의 좌우로 계속 설산과 강이 따라오며 경치 자랑을 한다. 왜 자기를 안 보고 가는 거냐고 항의하는 듯하다.
한 시간쯤 가자 알프스의 산속 마을처럼 예쁘게 꾸민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해발 2,630m).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호수의 정경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그림 같은 집들의 잘 꾸민 정원에 더 눈길이 간다. 본래 리조트 단지로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티베트 전통 옷을 빌려주기도 해 샹그릴라에 이어 다시 빌려 입었는데, 이번에는 주인의 인심이 후해 무료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에 한동안 떠날 줄 몰랐다.
[포미의 산속 마을]
이 아름다운 마을을 뒤로 하고 한 시간 차를 달리면 통맥대교(通麥大橋. 해발 2,050m)를 통과한다. 여기서 다시 한 시간 정도 가면 루랑(魯朗)마을에 다다른다(해발 3,350m). 역시 리조트 단지이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바로 옆에 있는 호숫가를 1시간 30분 동안 여유롭게 산책하였다. 설산의 고산지대에 있는 넓은 호수가 연출하는 풍경은 그야말로 목가적이다.
호숫가를 따라 만들어놓은 산책길에는 곳곳에 건강과 관련된 표어를 써 놓았는데, 그중에서도 이른바 “걷살눕죽(걷는 자는 살고 눕는 자는 죽는다)”과 일맥상통하는 표어인 “健步不息 生命不止"(건보불식 생명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건강한 걷기를 멈추지 않으면 생명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랑마을의 호수와 건강표지판]
또한 이곳에는 말을 타는 승마장이 있다. 명색이 차마고도에 왔는데 말을 한 번도 못 타봐서야 되겠는가. 관광객들을 위해 말을 10여 마리 준비해 놓은 곳이 있어 가보았다.
말이 크지 않아 한번 타보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막상 타려니 낙상의 염려와 다음 일정이 기다리는 시간 제약으로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그 후일이 촌자의 생전에 다시 오려나...
[승마장]
오후 2시 45분, 루랑임해(盧朗林海) 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발 4,300m이다. 이 높은 곳에 특이하게도 숲이 우거졌으니, 중국사람 특유의 과장된 표현인 ‘임해(林海)’라는 명칭이 붙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열대 밀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난자바와봉(南迦巴瓦峰. 해발 7,782m)이 보인다는데, 이날은 흐려서 안 보였다. 숲이 우거진 덕분에 해발 4,300m의 고산에서도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루랑임해(盧朗林海) 전망대]
루랑임해 전망대에서 30분 정도 더 가면 써지라산(色季拉山) 전망대라는 또 다른 전망대에 다다른다. 해발고도가 4,728m이다. 이제 앞으로의 여정에서 이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은 없다.
이곳은 산봉우리가 온통 룽따와 타르초로 덮였다. 이번 차마고도의 긴 여정 중에서 룽따와 타르초가 가장 많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티베트 사람들의 염원이 서린 듯했다.
비록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티베트 불교의 본산지를 여행하는 마당이라 우리도 준비해 간 룽따를 펼쳐 이곳에 매달았다. 물론 모든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써지라산(色季拉山) 전망대]
써지라산 전망대에서 숲이 우거진 내리막길을 따라 1시간 20분 동안 내려가 린즈(林芝)애 도착했다(해발 2,990m). 오후 5시 10분이다. 기온이 영상 23도로 쾌적하다. 린즈는 인구가 20만 명 정도 되는 제법 큰 도시다. 티베트에서는 기후가 온화한 지방으로 티베트의 강남이라 불린다.
린즈는 티베트에서 라싸(拉薩)에 이은 1인당 GDP 2위인 도시인데, 이는 농업이 주류인 티베트 내부에서 몇 안 되게 공업이 경제의 주류를 차지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25일 라싸에서 린즈(林芝)를 잇는 라린철도(拉林铁路)가 완공되어 고속열차가 다니고, 라싸까지 318번 국도 외에 G4218번 고속도로도 연결되어 있다. 이에 더하여 공항도 있다.
린즈의 숙소인 V-Continet Nyingchi 호텔(=五洲黃冠호텔)의 방은 5성급답게 아주 정갈헀다.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의 모습 또한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인구 20만의 도시가 이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나, 5성급의 멋진 대형호텔이 있는 것이나, 하나같이 이곳이 중국 티베트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다시 시내 중심가의 식당으로 이동하여(호텔의 견습생 직원이 안내를 했다) 전날에 이어 송이 파티를 또 했다. 1kg에 15만원이었는데, 전날보다도 질이 더 좋았다. 정말 원 없이 송이를 먹었다.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평생 먹을 송이를 다 먹었다고 만족해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어느새 밤 11시 30분이다. 고산증 약을 하나도 안 먹었는데 특별한 증상이 없이 깊은 잠에 들었다.
[V-Continet Nyingchi 호텔]
[린즈의 거리 모습]
[송이 파티]
린즈의 남쪽으로 얄룽창포강(雅魯藏布江)이 흐른다. 인도의 브라마푸트라강의 상류인 이 강은 수미산에서 발원한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 강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공사비용 1,700억 달러). 강 유역의 국가들 사이에 수자원 이용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듯하다.
2025. 8. 6.(린즈->라싸)
마침내 라싸에 입성하는 날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산책하러 호텔 밖으로 나오니 영상 12도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했는데, 5성급 호텔답게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많아 입이 즐겁다.
짐을 꾸려 9시에 출발했다. 린즈부터 라싸까지는 G4218번 고속도로(=林拉公路. Linla Hihgway)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318번 국도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 두 길이 함께 나란히 간다.
한동안 냥쿠강을 끼고 서진하는 고속도로변의 경치가 장관이다. 잉크를 뿌려놓은 듯 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 그리고 그 밑의 해발 4,000m 내외의 녹색 고산준령이 연출하는 티베트의 속살이 나그네의 눈길을 오래 사로잡는다.
[고소도로변의 경치]
오전 11시에 고속도로에서 잠시 벗어나 318번 국도로 가 길가의 한 호텔 앞에서 멈췄다. 파송조덕형(巴松措德亨)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호텔이다. 이 호텔에 있는 식당이 점심 식사 장소이다. 본래 생선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魚藏. Fish Restaurant)이라고 하는데, 이날 점심은 이제껏 들른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촌부는 음식보다는 주위의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녹색 산을 배경으로 한 거리 모습이 더 끌렸다.
[파송조덕형(巴松措德亨) 호텔과 인근 거리 모습]
식사 후 다시 고원의 평야지대에 난 고속도로를 달렸다. 최고 고도 4,400m까지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이건만, 고속도로라 그런지 고지대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마침내 라싸 지구로 접어들었다. 이제껏 지나온 린즈 지구보다 고도가 높은 고원지대이다. 해발고도가 4,000m를 넘어가자 들판은 푸른 초원이지만 주위 산에서는 숲을 볼 수 없다.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인 듯하다.
오후 3시 10분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간덴사(甘丹寺) 올라가는 꼬불꼬불 산길로 들어섰다. 30여 분 동안 그야말로 여러 굽이를 돌고 돌아 해발 4,280m에 있는 간덴사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고갯길에서 바라본 간덴사의 규모가 우선 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산 전체가 하나의 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카파(宗咯巴)가 1409년에 창건한 이 절에는 현재 스님이 300여 명 있는데, 전성기에는 6,000여 명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닝마파, 카규파, 샤카파, 겔룩파) 중 가장 엄격하고 조직화된 최대 종파가 달라이라마가 소속된 겔룩파(格魯派)인데, 그 겔룩파를 대표하는 절이 바로 간덴사와 후술하는 조캉사원이다.
이곳저곳을 한 시간에 걸쳐 절 안을 둘러보았는데, 하도 커서 못 가본 곳이 많았다. 족히 하루 정도 시간을 내야 자세히 둘러볼 수 있을 듯했다.
[간덴사의 이모저모]
절 안 어느 골목의 벽에 기대어 그리스인 조르바가 되기도 했다. 그 사진을 본 오랜 벗이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며 이런 글을 보내왔다. 어떤 문필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랴. 갑자기 전율이 느껴진다.
[간덴사의 벽에 기댄 조르바]
간덴사의 조르바
하얀 돌담에 기대선 사람.
뜨거운 햇살,
굽이진 골목,
멀리 보이는 황금빛 지붕.
그 순간,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조르바는 말한다.
“생각 말고 살아라.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이다.”
목적지 없이도 충분한 길.
사진 속 그는 조르바처럼 머물고, 느끼고, 존재한다.
삶은 그렇게, 멈춘 자리에서 빛난다.
간덴사 사원을 둘러보고 해발 3,650m의 라싸(拉薩)에 도착하니 오후 6시다. 대기 온도가 26도로 다소 덥다.
시내 중심 상가에 있는 한식당(상호 : 宜順居)에 저녁을 먹으러 가 소고기, 돼지고기 삼겹살, 야크고기, 상추쌈, 김치찌개, 된장찌개, 잔치국수 등 그야말로 순 한국음식으로 배를 불렸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한식이던가. 해발고도가 높음에도 고산증 걱정을 안 하니까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라싸의 한식당]
저녁 8시 10분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서울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광화문을 기준으로 하면 멀리 강남에 있듯이) 처음에는 다소 불만을 표하던 일행들이 막상 호텔에 도착하니 입을 다문다. 서울의 인터콘티넨탈호텔보다 거의 3배쯤 되는 이 거대한 호텔의 규모와 시설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의 이모저모]
하루 종일 이동을 한 터라(약 460km) 다소 피곤하였지만,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갔다. 다음날 포탈라궁(布達拉宮) 관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포탈라궁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맙소사, 포탈라궁 앞의 거리는 밤 11시로 심야인데도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건물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불야성의 도시이다. 라싸는 은둔의 왕국 티베트의 고요한 수도가 아니라 북경이나 상해를 연상케 하는 현대 중국 대도시의 축소판이었다.
[포탈라궁의 야경과 거리 모습]
2025. 8. 7.(라싸)
이날은 온종일 라싸에 머물며 명소를 둘러보았다. 호텔에서 뷔페식 아침 식사를 그럴싸하게 하고 8시 40분에 포탈라궁(布達拉宮)에 도착했다.
라싸의 상징, 아니 티베트의 상징인 건물이 바로 포탈라궁이다. 포탈라는 티베트어로 ‘깨끗한 땅’이라는 뜻이다. 티베트인에게 이 궁전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여겨진다. 티베트의 종교, 정치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살았던 때도 그랬지만, 티베트가 중국의 자치주 중 하나가 된 지금도 언덕 위의 이 궁전은 신비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채 라싸와 티베트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곳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포탈라궁은 7세기 중반에 티베트 전역을 통일한 송첸캄포가 요새처럼 지은 것인데 세월 속에서 낡고 전쟁을 겪어가면서 파괴되었다. 그 후 1645년에 제5대 달라이라마가 폐허 위에 현재의 포탈라궁을 건축했다. 그때부터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달라이라마는 이 궁전에서 살며 나라를 통치했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로 티베트를 장악한 겔룩파의 최고 지도자에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부여한 칭호이다. ‘큰 바다와 같은 스승’이라는 뜻이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육체만 달리할 뿐 계속 환생하여 이 세상의 중생을 구제하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포탈라궁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될 뻔했는데, 당시 수상 주은래가 군대를 동원해서 막아 화를 면했다.
높이 117m, 동서 길이 360m, 총면적은 10만㎡가 넘는 이 거대한 궁전은 밖에서 보면 13층 구조이지만 실제는 9층이다. 방이 천 개나 되고, 1만 개가 넘는 작은 사원들과 20만 개에 달하는 불상들이 있다.
궁전은 하루에 6시간만 개방하고,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관람시간이 40분으로 제한된다. 관람객이 너무 많이 와서 하루 최대 1,600명만 방문할 수 있도록 규제한다.
[포탈라궁의 정면과 측면]
오전 8시 40분에 포탈라궁 앞에 도착했다. 궁 앞 공터가 관람객으로 이미 북적거린다. 가이드가 미리 구매한 입장권상의 입장시각까지 시간이 있어 주위를 잠시 둘러보았는데, 무엇보다도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며 가는 세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저 두 어린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오체투지를 하는 걸까. 왠지 모를 착잡한 마음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서 위안화를 꺼내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옴 마니 반메훔~
[오체투지를 하는 세 모녀]
입장 순서가 되어 포탈라궁으로 들어갔다. 궁전을 홍산(紅山. 해발 3,600m)의 꼭대기에 지은 까닭에 지그재그로 난 비탈진 길을 제법 올라가야 한다. 이 오르막의 난간에서 보면 라싸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포탈라궁에서 본 라싸 전경]
여권 검색대를 지나 궁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中庭)이 나온다. 이곳까지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촬영이 불허되고 모자도 벗어야 한다. 그리고 40분 안에 나와야 한다. 그마저도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주마간산식으로 볼 수밖에 없다.
[포탈라궁의 중정. 가운데 건물의 중앙이 들어가는 문이다]
포탈라궁 안은 홍궁(紅宮) 지역과 백궁(白宮) 지역으로 구분된다.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홍궁은 주로 종교의식이 열리는 공간이다. 궁의 상부에 있으며, 많은 복합 건물의 구불구불한 통로 사이로 사원과 장서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역대 달라이라마들의 사원과 기도실, 그리고 많은 보석과 장식들이 있다. 역대 달라이라마의 옥좌와 영탑(靈塔) 등이 공개되어 있다.
홍궁이 부처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공간이라면 흰색이 칠해져 있는 백궁은 인간들을 위한 세속적인 공간이다.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궁의 하부 쪽에 있으며, 일부 방 외에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다.
[상부의 홍궁과 하부의 백궁이 구분되는 모습]
포탈라궁 앞에는 본래 큰 호수가 있었다. 상징적으로 설치한 해자(垓子)였다. 호수를 건너 도달하는 포탈라궁은 세속을 떠난 성지(聖地)이자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도 호수와 산과 궁이 어우러진 풍경은 실로 장엄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 해자를 모두 메우고 돌을 깔아 광장을 만들어버려 지금은 옛날의 상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포탈라궁에서 나와 앞에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점심 식사 장소로 갔다. 공원의 공터에 시진핑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올해가 티베트가 자치주로 인정된 60주년이어서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는 기념식 준비를 한다고 한다(우리 일행이 귀국한 후인 2025. 8. 20. 시진핑 주석이 실제로 라싸를 방문했다).
산동청식부(山東廳食府)라는 상호의 식당에서 산동식 음식(무엇보다도 덜 느끼해서 먹을 만했다)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조캉사원으로 향했다. 포탈라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라싸 구시가지의 중심부이다. 중국 명칭은 따쟈오시(大昭寺)인데, 일반적으로는 본당에 해당하는 부분의 명칭인 ‘조캉사원’으로 불린다.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의 위치]
조캉사원은 전술한 간덴사와 함께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다. 7세기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캄포가 당나라 태종의 조카딸인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그녀가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647년). 그 석가모니상은 지금 사원의 본당에 모셔져 있다. ‘조캉’이란 티베트어로 ‘석가모니상을 모신 법당’이라는 뜻이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사원은 총 4층(면적은 25,100㎡)으로 티베트 전통 양식의 복합 건물로 지어졌고, 내부에 많은 예술작품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
오후 2시에 입구의 검색대를 통과하여 2층 회랑으로 올라가자 조캉사원의 유명한 황금빛 지붕 등 전모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나,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촬영이 금지된다. 관람객이 워낙 많아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예술작품들과 스님들의 수행 공간을 수박 겉핥기로 둘러보는데도 1시간 정도 걸렸다(관람시간이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조캉사원의 정면]
[조캉사원의 이모저모]
티베트 불교에서 조캉사원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전국에서 오체투지를 하면서 온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라는 데 있다. 그래서 조캉사원의 정면에 있는 바코르광장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 사람들의 오체투지는 우리나라에서 자기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시위의 한 방편으로 거리에서 행하는 오체투지와는 그 출발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오로지 순수한 종교적 신념으로 이곳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것이다.
한양 나그네도 조캉사원의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이곳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한국의 사찰에서 늘 하던 식의 절이 아니라 온몸을 땅바닥에 던지고 이마를 땅에 댔다.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몸을 감쌌다. 무엇인가 정체 모를 뭉클함이 가슴 속에 피어올랐다.
절에 가면 늘 하던 대로 “부처님, 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이 나라”라고 하면 부처님이 어느 나라로 받아들이실까. 한국이든 티베트이든, 부처님이야 상관하시지 않겠지만, 그래도 촌부가 명색이 한국에서 태어난 중생이기에, 이왕이면 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게 낫겠다 싶어 기도를 바꿨다.
“부처님, 대한민국이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조캉사원에서의 오체투지]
오체투지를 끝내고 바코르가(八角街)를 따라 조캉사원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사원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각종 생필품, 불교용품, 기념품 등을 판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 상가를 돌 때는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티베트 사람들의 관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만일 반대로 돌다가는 마주 오는 사람들과 충돌하기 십상이다.
[바코르가]
조캉사원에서 나와 포탈라궁 북쪽으로 3km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세라사원(色拉寺)으로 이동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렀는바, 다행히 문 닫기 20분 전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이다. 이 사원에는 티베트어로 된 대장경이 있고, 경내가 넓어 많은 승려들이 머물고 있다. 최고로 많았을 때는 학승 수가 7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도 300여 명의 학승들이 기거하며 공부와 수행을 하고 있다. 역대 달라이라마들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3시부터 스님들이 1:1 불교 교리 토론을 한다. 매우 진지하고 흥분된 표정으로 토론을 하는데, 손바닥을 크게 치고, 삿대질하듯이 공격적인 몸짓을 하기도 한다, 큰 소리로 물으면 방어자는 차분하게 즉시 답을 해야 한다.
[세라사 입구]
[토론하는 승려들]
[토론을 마치고 나오는 승려들]
세라사를 끝으로 이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7시 20분이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비록 세 군데밖에 안 둘러보았지만, 중국답게 많은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쌓였는지 곤하게 잤다.
2025. 8. 8.(라싸->서안)
티베트 차마고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안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산책 겸 호텔 밖으로 나서니 영상 11도의 쌀쌀한 날씨가 객의 목을 움츠리게 한다. 그런데 다음날이면 폭염에 시달리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할 생각을 하니까 그 쌀쌀한 날씨가 오히려 고맙다. 결과적으로 연일 계속되는 폭염을 피해 피서를 제대로 한 셈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1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20여 분 만에 천불암(千佛庵)에 도착했다. 라싸의 시민들이 아침마다 와서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오체투지를 하며 하루를 여는 기도를 하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그네도 어제에 이어 이날도 경건한 마음으로 국태민안을 빌며 오체투지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월우스님이 어제보다 자세가 잡혔다고 하신다.
오체투지를 한 후 같은 경내에 있는 마니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탑 안에는 부처님을 돌판에 그린 마니석이 보관되어 있고, 탑신 하단에는 마니차가 있다.
[천불암과 오체투지]
[천불암의 마니탑]
천불암 관람을 끝내고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8시 45분이다. 공항은 새로 지었는지 깨끗하고 쾌적했다. 그런데 넓은 계류장에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만 보이는 것은 무어람.
서안으로 가는 중국동방항공 비행기는 11시 20분에 뜬다. 여행사에서 점심 식사용으로 김밥도시락을 준비했는데, 비행기가 이륙 후 기내식으로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나그네는 김밥이 더 입에 맞았다.
[라싸공항]
오후 2시 5분에 서안공항에 도착했다. 여강행 비행기를 탈 때 보관시켰던 보조배터리를 찾아 공항을 나서니 후끈한 열기가 8일 만에 돌아온 객을 맞는다.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서안 시내로 들어가 회족(回族) 거리로 갔다. 소수민족인 회족(이슬람 민족으로 종교가 이슬람교이다. 중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전부 합쳐 1,000만 명 정도 된다)들이 운영하는 상가와 음식점이 주축인 거리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서안 시내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눈요기의 볼거리도 많고, 다양한 길거리음식을 구경할 수 있었지만,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회족 거리의 이모저모]
회족 거리를 둘러본 후 장안성 성벽으로 이동했다. 당나라 건국 후 처음 쌓았던 성벽은 당나라 말기에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 후 명나라 초기인 1374년에 성벽의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서쪽과 남쪽은 원래의 당나라 장안성의 터 위에 성을 연장하여 만들었고, 동쪽과 북쪽은 새롭게 만들었다. 그 후 청나라 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13.75km이고, 높이는 12m이다. 동서남북으로 4개의 성문이 있고 각 문은 3층이다.
계단을 이용하여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올라가 보았다. 성벽의 폭이 넓어(12~14m) 아침이면 성벽 위에서 시민들이 조깅을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관광객과 일반 시민들이 섞여 붐볐고, 심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옛날 황제 복장을 한 남자, 양귀비 복장을 한 여자, 결혼사진을 찍는 남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장안성벽의 이모저모]
장안성의 성벽에서 내려와 인근에 있는 십삼조(拾參潮)라는 식당으로 가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 이름의 십삼(拾參)은 서안이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더하여 내부를 공원처럼 꾸며놓은 이 식당의 출입구 바닥에 이태백이 지은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유명한 시가 형광빛으로 씌어 있어 눈길을 끈다.
[십삼조 식당과 이태백의 시]
여산(廬山)은 서안과는 거리가 한참 먼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산이다. 섬서성(陝西省)의 서안 근처에도 정작 비슷한 이름의 여산(驪山)이 있는바, 중국 최고의 경국지색 중 하나로 꼽히는 여인으로 주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포사(褒姒)에 얽힌 고사(故事)에 나오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던 산이다.
그나저나 왜 서안에 있는 이 식당에 강서성 여산(廬山)에 관한 시를 적어 놓았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은 접어두고 시나 감상해 볼거나.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낙구천)
향로봉에 햇살이 비쳐 자색 안개 피어나는데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산 앞에 냇물이 걸린 듯하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 높이가 삼천 척이라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구나
산의 최고 높이가 1,474m에 불과한 여산에 있는 폭포의 높이가 삼천 척이라니, 모르긴 해도 이태백의 과장이 좀 심한 듯하다. 아무튼 여산(廬山)에는 아름다운 폭포가 많기로 유명하다.
저녁 식사 후 숙소인 쉐라톤 호텔로 돌아오니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피곤하다. 라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40도가 넘는 서안에서 곧바로 회족 거리로, 장안성벽으로 쏘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귀국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탓도 있다. 쾌적하고 좋은 호텔에서 1박의 잠만 자고 가야 한다는 게 아쉽다.
2025. 8. 9. (귀국)
귀국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라 모처럼 아침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호텔 주위의 너른 잔디밭을 거닐고 뷔페식 아침 식사도 맛있게 하려니(특히 김치를 넣어 먹은 장국수가 일품이다) 불현듯 10박11일이 일정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여행은 언제나 설렘으로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난다. 그 아쉬움이 잊혀질 때쯤 되면 다시 설렘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
오후 12시 40분에 서안을 출발하는 대한항공에 몸을 싣자 이내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인천공항이다. 상상 속의 차마고도에서 현실의 인천으로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차마고도 여행이 어떠했냐고 묻는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을 마치며, 이번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신 여러 도반님들, 전체 일정을 일부러 마련하고 차질 없이 진행하여 주신 혜초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과 나소영 인솔자님, 현지(서안, 운남, 티베트)에서 성심껏 안내를 해 주신 현지 가이드님(김동인님, 박성파님, 김광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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