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지고 찢기고...설마(雪魔)의 상흔

 

     2025년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 산행지로 어제(1.4.) 청계산을 올랐다.

    사철을 가리지 않고 자주 찾는 산이고, 그래서 그동안 오른 횟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산이건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산이다.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그리 높지도 않아(해발 616m) 여유롭게 산행하기에 딱 좋다. 게다가 이수봉(二壽峰)과 국사봉(國思峰), 그리고 혈읍재(血泣재)처럼 지난 역사를 한 번 다시 돌아보게 하는 명소들도 있어 산행길이 심심하지도 않다. 

 

    더구나 어제는 뜻밖에도, 옛골 등산로 기점에서 이수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방향에서 다소 벗어나 있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천림산 봉수(天臨山 烽燧) 유적을 처음으로 둘러보았다.

    이 봉수는 부산 응봉에서 시작된 봉화 신호를 용인 석성산 봉수로부터 받아 한양의 목멱산 봉수로 전달하던 곳이다. 2019년에 복원되었고, 2023년에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청계산1.jpg[천림산 봉수]

 

    어제 청계산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하늘이 빛났지만, 지난해 11월 말에 내린 폭설과 그 이후 간간이 내린 눈이 곳곳에 쌓여 있어, 소한(小寒)을 하루 앞둔 영하 5도의 아침 기온과 더불어 겨울 산행의 맛을 느끼게 했다. 겨울 산은 눈이 하나도 없거나 기온이 너무 포근하면 아무래도 제맛이 나지 않는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 것이다. 

 

청계산10.jpg

 

   청계산은 주지하듯이 소나무가 많다. 그래서 등산로 양옆으로 소나무가 도열하여 있는 곳도 적지 않고, 그 사이를 걸으며 솔 향기에 젖어보는 것도 청계산 등산의 별미 중 하나이다. 

 

청계산12.jpg[소나무숲]

 

   그런  소나무들이 지난해 11월 말에 내린 폭설에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당시 내린 눈이 그야말로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濕雪)이었는지라 솔잎에 내려앉은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뿌리가 뽑히고, 줄기가 꺾이고, 찢기고,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가거나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흔적들은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해 눈에 익숙하지만, 이렇게 설마(雪魔)의 피해를 크게 입은 모습은 생경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통째로 쓰러진 나무가 아예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여러 군데이다.       

 

청계산9.jpg[뽑히고]

 

청계산2-1.jpg

청계산2.jpg[꺾이고]

 

청계산7.jpg[부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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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6.jpg[찢기고]

   청계산4.jpg[길을 막고]

 

   논어(論語자한(子罕편에 세한연후(歳寒然後)에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라는 말이 나온다그 뜻인즉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다른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잎을 다 떨구어도 소나무만큼은 늦게까지 푸른 잎을 유지하기에곤궁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소나무에 비유한다.

    그래서 유명한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은 자신은 죽어서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하는 낙낙장송(落落長松)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칭송을 받는 대가로 입은 설마(雪魔)의 피해가 너무 잔혹하다소나무도 솔잎을 진즉 떨구어버렸으면 설마(雪魔)를 피했을 것을... 그래서 세상일에는 늘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나저나 설마(雪魔)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나무가 뽑히고, 꺾이고, 찢기고, 부러진 모습 위에 지난 연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혼란스러운 나라 상황이 겹쳐진다(overlap). 

     이에 더하여 설해표(雪害標)라고 해야 할까, 등산로에 놓인 기울어진 이정표가 현시국을 상징하는 것만 같아 마냥 씁쓸하다. 

 

청계산.jpg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이 몰고 온 충격파가 가뜩이나 힘든 나라 경제에 무거운 짐을 안겨 주고 있는 판에, 뜬금없는 계엄령이 불을 질러,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민심이 요동치고 나라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어찌할 거나. 청계산 산신령에게라도 물어볼까.

 

   천벽력 따로 없네 이 무슨 변고인가

   산은 아니 되고 민초들만 고통일세

    신령님 알려주오 우리네 갈길이 어드메요          

 

    나라가 절단나든 말든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정상배들과는 달리,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신년사에서 하나같이 정신을 바짝 차려 위기를 극복하자고 다짐한다.  꺾이고 부러지고 찢어진 상처를 치유하자는 것이다. 

    경제사령탑으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고 있는 경제부총리가 그나마 중심을 잡으려고 처절하게 애쓰는 모습에서 희망의 씨앗을 본다.  

 

     제발 나라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 하루 빨리 걷히고 밝은 태양이 다시 떠올라 이 아름다운 산하를 찬란하게 비추길 학수고대한다.     

 

청계산11.jpg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겨울 풍경 - Ciels d'hiver-1-Andre ....mp3

(앙드레 가뇽. 겨울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