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세월은 야속하게 흐르고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2018년 5월에 올랐던 히말라야 랑탕 국립공원을 8년 만에 다시 찾은 소회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판소리 사 철가에 나오는 위 구절 그대로이다. 가지 말라고 아무리 용을 쓰며 붙들어 매려고 해도 뿌리치며 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고, 그에 따라 흘러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두 해 전에 고희(古稀)를 넘긴 마당에 히말라야를 다시 찾은 것은 어찌 보면 처음부터 만용(蠻勇)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촌부의 발길을 또 히말라야로 향하게 한 것은, 늙음을 부정하고픈 허망한 욕심과 지난해 2월 안나푸르나의 토롱패스(Thorong Pass. 해발 5,416m)를 넘었는데 그보다 낮은 곳이야 쉽지 않겠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리고 히말라야의 4대 고개(=패스)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자 고갯마루 아래에 커다란 호수가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라우레비나 패스(Laurebina Pass. 해발 4,610m)를 넘고 싶은 욕심이 한데 아우러진 결과이다.      

 

    비록 소망대로 라우레비나 고개를 넘긴 했지만, 결과적로 이내 청춘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음을 절감한 산행이 되고 말았다. 그 여정을 담담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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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2. 24.(인천공항 -> 카트만두)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네팔의 카트만두행 비행기(대한항공)를 타기 위해 오전 10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1월 14일부터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이용하기 시작해서인지 공항이 꽤 붐볐다. 

   비행기가 예정보다 40여 분 늦게 출발한 데다 비행시간도 예정보다 길어진 탓에 현지 시각 오후 5시 30분에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을 위한 짐 검사가 전보다 까다로워졌다. 지난해 9월의 반정부 시위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까다로워진 입국심사와는 달리 공항에서 숙소인 하얏트 호텔로 가는 버스의 차창에 비친 거리 모습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하얏트 호텔은 지난해 묵었던 하얏트 호텔이 아니어서 어리둥절했는데,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난해 묵은 하얏트 호텔은 하얏트 레전시(Hyatt Regency) 호텔이고, 이날 도착한 호텔은 같은 계열의 하얏트 센트릭 소알티모드(Hyatt Centric Soalteemode) 호텔인바, 전자는 지난해 9월 일어난 반정부 시위 때 시위대들이 호텔에 난입하여 불을 지르는 바람에 아직도 수리 중이어서 투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후자에 묵게 된 것이다. 

    굳이 두 호텔을 비교한다면 전자는 고전풍이고, 후자는 현대적이다. 후자의 식당은 온갖 음식이 풍성한 전자의 그것만은 못해도 나름 깔끔하고 음식도 먹을 만했다.    

 

랑탕라우0.jpg[하얏트 센트릭 소알티모드(Hyatt Centric Soalteemode) 호텔]

 

   지난해 토롱패스 트레킹에 이어 이번에도 가이드를 맡은 지반(Jeevan)님에게 시위대가 왜 하필이면 하얏트 레전시 호텔에 불을 질렀냐고 물었더니, 빈부 격차가 큰 네팔에서 그 호텔이 부(富)의 상징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란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지. 

   그리고 하얏트 센트릭 소알티모드 호텔도 정문을 닫아놓고 경비가 지키고 있다가 차량이 도착하면 일일이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아무튼 그 시위로 총리가 물러나고 촌부 일행이 카트만두에 머무르고 있던 3월 5일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창당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정당인 국민독립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2026. 2. 25.(카트만두 -> 골프반장 -> 쿠툼상)

 

    시차 적응을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잤지만, 새벽 4시 45분에 잠이 깼다. 한국시간으로는 아침 8시다. 몸에 밴 수면 습관이 고작 약 한 알로 쉽게 바뀔 일이 아닌가 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쿠툼상(Kutumsang. 해발 2,470m)이다. 중간지점인 골프반장(Golphu Bhanjyang. 해발 2,145m)까지는 지프로 이동하고(5시간 소요), 그곳에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하여 쿠툼상까지 걷는 일정이다(3시간 소요). 

 

랑탕라우1.jpg[카트만두에서 골프반장까지]

 

    골프반장으로 가는 도중에 샹카라푸르(Shankharapur)라는 곳에 도착하여(오전 10시), 그곳의 경치가 좋은 한 예쁜 카페(해발 1,796m)에서 진한 레몬차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도로 사정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중간중간 차에서 내려 허리를 펴야 한다. 더구나 샹카라푸르를 지나면 비포장도로인지라 더욱 그렇다.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멜람치(Melamchi) 강변에 도착하니 주위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네팔은 위도가 북위 28~30도인지라 한국보다 기후가 훨씬 따뜻하여 이미 한국의 4-5월 날씨다(후술하듯이 룸비니는 낮 기온이 벌써 영상 31도로 한국의 한여름 날씨다). 

 

   강변을 달릴 때만 해도 그나마 견딜 만했던 도로가 본격적으로 산속으로 접어들자 그야말로 꼬불꼬불 춤을 춘다. 랑탕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8년 전 샤브루베시 쪽으로 가던 길도 그렇더니 접근로마다 왜 이리 험한지 모르겠다고 투덜대 보지만, 허공에 주먹질하기다.

 

    마침내 해발 2,165m의 고개를 넘어 오후 1시에 골프반장(Golphu Bhanjyang. 해발 2,145m)에 도착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인데도 중학교가 있고, 며칠 후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유세차량도 보였다.   

 

    골프반장에 있는 외견상 허름하기 짝이 없는 로지(Himalayan New Lodge & Restaurant)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의 외견과는 달리 네팔 고유의 음식인 달밧은 의외로 입에 맞았다. 이제껏 여러 번 먹어본 달밧 중 최고였다.   

   

랑탕라우2.jpg[골프반장 전경. 오른쪽의 3층 건물이 중학교다]

 

랑탕라우4.jpg[골프반장 로지의 달밧]

 

   오후 2시. 드디어 트레킹의 첫발을 떼었다. 이곳에서 쿠툼상까지 가는 차도도 있지만, 촌부 일행은 산속으로 난 등산로를 택하였다. 출발지부터 돌계단을 올라야 했으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가 편했다. 

   오전에는 맑았어도 오후만 되면 구름이 끼고 흐려지는 것이 히말라야의 보편적인 날씨인데, 이날은 오후 내내 해가 쨍쨍 났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을 올라야 해서 내복까지 챙겨입었는데,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더워서 땀이 났다.  

   

랑탕라우5.jpg[골프반장의 트레킹 출발지점]

 

   등산로 주변에는 긴 솔잎이 모두 아래로 늘어진 소나무와 심장(=하트 Heart) 모양의 고사리가 자주 눈에 들어왔고, 붉은색의 랄리구라스도 보였다. 랄리구라스는 아직 철이 아닌데 일찍 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가이드 지반님의 말에 의하면 붉은색이 일찍 핀다고 한다.

   실제로 후술하듯이 랑탕 계곡의 랄리구라스 군락지(흰색이나 노란색이 주종이다)에서는 랄리구라스를 볼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3월 중순이 지나야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랑탕라우6.jpg[고사리]

 

   해발 2,560m의 고개를 넘어 쿠툼상(Kutumsang. 해발 2,470m)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요리사와 포터 등 지원 인력은 차편으로 이미 와 있었다.

    숙소인 ‘나마스테 호텔(Namaste Hotel)’은 히말라야의 로지들이 다 그렇듯이 이름만 호텔일 뿐 산장 개념의 로지다. 그래도 이 로지는 시설이 깨끗하고 전망이 좋은 데다 수도에서 더운물까지 나와 최상이었다(히말라야의 대부분 로지에서는 더운물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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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8.jpg[쿠툼상 전경과 나마스테 로지]

 

    오후 6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돼지고기 수육에 상추쌈과 된장국으로 배를 불렸다. 쿠툼상은 고산증을 느낄 정도의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발고도가 2,000m를 넘는 데다 지난해 가을부터 컨디션 난조로 제대로 된 등산을 못해서인지 다소 힘이 들었다. 그래서 비아그라와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랑탕라우9.jpg[쿠툼상의 저녁식사]

 

  2026. 2. 26.(쿠툼상 -> 타데파티)

 

   새벽 4시에 잠이 깨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 5시에 일어났다. 기온이 영상 5도로 쾌적하다. 로지의 앞마당에 나서자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 해를 손 위에 올려놓아 본다. 이때만 해도 유유자적의 낭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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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트레킹의 전형적인 678시스템(=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에 따라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했다. 목적지는 타데파티(Thadepati. 해발 3,690m)로 대략 13km를 걷는다. 소요시간은 10시간 정도이다. 표고차 1,000m 이상을 올라야 하고, 거기에 해발 3,000m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다행히 잘 정비된 등산로가 돌계단 아니면 완만한 오르막의 연속인 데다 날씨가 좋아 걷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밀림숲을 지나기도 하고 개활지를 지나기도 한다. 더워서 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이런 경우를 대비해 출발 시에 여러 옷을 겹쳐 입고 출발했다). 

 

   중간에 말을 타고 가는 등산객을 만났다. 가이드 지반님이 촌부에게도 힘들면 말을 타라고 했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트레킹 2일차 아닌가. 대신 해발 3,000m가 넘어가면 배낭을 보조가이드에게 맡기기로 했다. 촌부 일행 중에는 아예 출발 시부터 배낭을 보조가이드에게 맡긴 분도 있다(비용은 하루에 10불 정도이다). 힘을 저축하기 위한 것이다.     

 

랑탕라우11.jpg[말을 탄 등산객]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계속 산객을 반긴다. 우수(雨水)가 지나고 경칩(驚蟄)이 목전이건만 여전히 겨울 추위의 위세가 남아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전술하였듯이 이미 봄이 한창이다. 

   밀림답게 이끼로 덮여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는 나무들도 있고, 바위 밑에 앙증맞게 피어있는 작은 꽃들도 있다. 마치 꽃다발처럼 생긴 랄리구라스 나무 한 그루가 객의 발길을 부여잡기도 한다.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하고 외치는 듯하다.

 

랑탕라우12.jpg[야생화]

 

랑탕라우13.jpg[랄리구라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발 3,285m의 고갯마루다. 시계바늘이 정오를 넘은 12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의 ‘망겐고트(Mangengoth)’라는 로지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비빔밥이다. 아직은 입맛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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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440636387.jpg[망겐고트 로지와 비빔밥]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에 고갯마루의 반대편 쪽으로 내려서는 순간 주위 풍경이 확 바뀐다. 갑자기 설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개 하나를 두고 어찌 이렇게 경치가 다를까. 겨울에 영동고속도로를 지날 때 둔내터널의 이쪽과 저쪽 풍광이 확연히 다른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이때부터는 여전히 계속되는 열대림 속의 설국(雪國) 모습이 매우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눈 속 바위 밑에 피어있는 보랏빛의 가냘픈 야생화가 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무한한 생명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해발 3,340m의 이름 모를 고갯마루에서는 도연명의 표현 그대로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의 자태를 뽐내는 커다란 소나무를 한 그루 만나기도 한다. 

 랑탕라우15.jpg[열대림 속의 설국]

 

랑탕라우16.jpg[눈 속 바위 밑의 야생화]

 

랑탕라우17.jpg[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

 

    오후 4시가 넘어가자 기온이 갑자기 확 떨어짐을 피부로 느낀다. 벗어서 배낭에 넣어 두었던 옷을 꺼내 다시 겹쳐 입어도 한기가 스며든다. 카우보이 차림의 마부가 말을 몰고 지나면서 눈길에 힘들 텐데 타지 않겠냐고 묻는다. 대답은 물론 “N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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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시가 넘어가자 구름이 주위를 덮더니 우박이 쏟아진다. 깊은 산속이라 해가 일찍 지는데, 갈 길은 아직 머니 어쩔거나. 말 그대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금방 나올 듯한 로지는 영 보이지 않는다. 이래저래 헴가림만 많아진다. 그 마음을 시 한 수로 읊어 본다.   

 

   서산에 걸린 해는 긴 그림자 드리우고

   눈 덮인 골짜기앤 구름이 머흐레라

   갈 길 먼 산객은 헴가림만 하도 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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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위(四圍)에 어둠이 깔린 저녁 6시 10분에 타데파티(해발 3,690m)의 ‘섬초 탑 로지(Sumcho Top Lodge)’에 도착했다. 당초 2시간 30분 걸릴 것을 예상했는데, 눈 덮인 산길을 오르다 보니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로지는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는 곳인데, 낮의 날씨가 흐렸던 탓에 생산된 전기가 충분치 않아 고작 방의 전등만 흐릿하게 들어오고 화장실은 깜깜 절벽이다.   

 

랑탕라우20.jpg[타데파티의 섬초 탑 로지]

 

    저녁 7시에 식사를 하는데 입맛이 없다. 불청객 고산증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억지로 밥을 겨우 몇 숟갈 뜨다 말았다. 두통은 없는데 속이 울렁거려 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밥을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 후 사흘간은 마늘 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그럴수록 뜨거운 물주머니 2-3개와 날젠 물병(1리터짜리)이 몸을 따끈하게 덥혀 주는 침낭이 큰 위안이 된다. 등과 배에 핫팩을 붙이면 금상첨화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잠자리마저 시베리아면 최악이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등과 배와 발이 따뜻하니 잠이 쉽게 드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히말라야를 처음 온 것도 아니건만 촌부에게는 매번 고산증이 영원한 숙제다. 고산에서도 평지와 다름없게, 아니 더 맛있게 룰루랄라 식사를 하는 도반들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아니 얄밉기까지 하다. 마치 공부 못하는 사람 옆에서 1등을 자랑하는 학생들 같다.  

 

   2026. 2. 27.(타데파티 -> 페디)

 

   약속된 기상시간은 아침 6시 30분이지만, 5시에 잠이 깼다. 간밤에 저녁 9시부터 잤으니 5시에 깰 만도 하다. 로지 밖으로 나오니 온 천지가 하얀 설국이다. 전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미처 못 본 멋진 경치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도 터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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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23.jpg[타데파티 로지에서 본 설경]

 

   아침 8시에 타데파티를 출발했다. 이날의 목적지는 페디(Phedi. 해발 3,730m. 페디는 ‘고개 아래’라는 뜻이다). 대략 14km를 걸어야 한다. 소요시간은 10시간 정도이다. 히말라야에서는 평균적으로 하루 10시간(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걷는 게 일반적이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특히 이날은 출발하여 해발 3,430m의 곱테(Ghopte)까지 급경사의 산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3,730m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가 않다. 

 

   출발할 때 보았던 멋진 경치와는 곧 이별하고 이내 만나는 급경사의 눈길은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 중 가장 급경사의 눈길이다. 

 

랑탕라우24.jpg[급경사의 눈길]

 

   그간의 경험상 고산에서는 비록 눈 위라 할지라도 넘어지면 타격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해서 내려갔다. 물론 무릎보호대를 했지만, 사용한 지 10년이 넘어서인지 자꾸 흘러내리는 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로 신형을 구입할 때가 된 모양이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산행이 전에 없이 힘들었던 것에 비하여 무릎은 덜 아팠다. 평소에 무릎 영양제(뉴질랜드 초록홍합)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무릎 강화운동(스쿼트 등)을 하고, 매일 파스를 붙인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 단언은 못 하겠다.    

      

   출발 3시간 만에 곱테의 ‘멘도 게스트하우스(Mendo Guesthouse)’라는 로지에 도착했다.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는 곳이다. 메뉴는 라면이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먹는 라면의 기막힌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촌부도 일찍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 맛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날은 야속한 고산증 때문에 신(辛)라면 봉지를 들고 사진을 찍는 데 그치고 말았다. 

 

   고산증, 정말 싫다!

   라면 대신 묽은 마늘 죽을 먹어야 하는 슬픔을 누가 알 거나. 로지 난간에 올려져 있는 눈사람은 촌부의 쓰라린 마음을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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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27.jpg[멘도 게스트하우스의 라면과 눈사람]

 

    점심식사 후 12시에 다시 페디를 향해 출발했다. 이때부터의 길은 전반적으로 오르막이다. 늘 그렇듯이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좁은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눈 녹은 물이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구간의 다리는 비교적 짧은 편인데(그래서 출렁다리가 없다), 다리 위에 지붕이 씌워져 있는 곳이 많다. 다리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려 함이 아닌가 싶은데, 유독 이 구간만 그럴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랑탕라우28.jpg[계곡의 지붕이 있는 다리] 

 

   이따금 우박과 눈발이 날리는 산길이 구름에 덮이다 보니 금새 어두워진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도착한 페디의 로지(Hotel Dawa Baby. 해발 3,730m)는 이번 여정 최악의 로지다.

   거창하게 이름에 호텔을 앞세웠지만, 식당의 전기가 약해 랜턴을 켜고 식사를 해야 했고, 방이나 공동화장실은 그나마 아예 전기가 없었다. 로지 간판에 와이파이가 된다고 되어 있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이런 로지에서는 식사 후 할 일이라곤 잠자는 것밖에 없다.    

 

랑탕라우29.jpg[페디의 로지]   

 

   2026. 2. 28.(페디 -> 라우레비나 -> 고사인쿤드 -> 촐랑파티)

 

   이날이 이번 트레킹 중 최고로 힘든 날이다. 마침내 라우레비나 고개(Laurebina Pass. 해발 4,610m)를 넘고 고사인쿤드(Gosain Kund. 해발 4,380m)를 거쳐 촐랑파티(Cholangpati. 해발 3,584m)까지 하산하는 일정이다. 대략 12km를 걸어야 한다. 당초 예상 소요시간은 10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12시간 걸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죽 반 그릇을 먹고 6시에 출발했다. 페디에서 라우레비나 고개의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해발 3,730m 지점에서 출발하여 표고차가 900m 정도 되는 고갯마루까지 오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예서 말 수도 없는 노릇, 천근만근의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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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디의 로지 뒤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니 먼동이 트며 산 정상이 붉게 물들고 있다. 날씨가 맑은 날 히말라야의 설산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2시간 정도 올라 해발 4,000m를 돌파하자 이번에는 나그네의 발치 아래로 흰 구름이 덮인 산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에 눈이 부시다.      

 

랑탕라우31.jpg[일출 모습]

 랑탕라우32.jpg[구름이 덮인 산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

 

   이제부터 멀리 전면에 라우레비나 고개의 정상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반 중에 고산증을 느끼지 않고 발이 빠른 사람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고산증으로 계속 죽밖에 먹지 못한 촌부는 힘이 달려 뒤에 처질 수밖에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4,230m에 있는 마지막 로지인 ‘페디 하이캠프(Phedi High Camp)’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0분이다. 페디에서 3시간 30분 걸린 것이다. 

    이 로지는 라우레비나 패스를 넘는 사람이 체력이 소진되었거나 날씨가 갑자기 나빠졌을 때, 또는 고갯마루를 넘기 전 고도 적응을 위해 쉬어가는 곳이다. 규모가 작고 시설이 매우 기본적인 그야말로 '차 한 잔 마시는 쉼터' 수준이다. 이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렸다. 

 

랑탕라우33.jpg[페디 하이캠프]

 

   고갯마루를 향해 다시 발을 내디디려니, 가이드 지반님이 정상까지 경사도 급하고 아직 멀었는데(표고차 380m를 더 올라야 한다), 앞서간 도반들과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졌다면서 소위 ‘사람택시’를 이용하자고 한다. 

   그 사이 페디 하이캠프 로지의 주인과 이미 의논을 마친 듯, 주인이 천으로 둥그렇게 묶은 끈을 가지고 나와 한쪽은 자신의 이마에 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촌부의 엉덩이를 받쳐 촌부를 업었다. 중국의 높은 산을 가면 가마를 타는 사람들이 있고,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에는 '사람택시'가 있더니, 이곳에서도  이런 식의 ‘사람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택시를 탄 촌부야 편하고 힘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사람을 업고 가파른 고산을 오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중간중간 쉬거나 내려서 걷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올라 12시 30분에 라우레미나 고개의 정상(해발 4,610m)에 도착했다. 고갯마루에는 돌무더기를 쌓고 꽂아놓은 깃대에 타르초가 달려 날리고 있었고, 칼바람을 막아주는 돌담들(고사인쿤드에서 후술하는 축제를 할 때 몰려온 사람들이 바람을 피하는 곳이다) 사이로 고개를 넘는 길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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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35.jpg[라우레비나 고갯마루.  촌부 옆이 사람택시]

 

    촌부를 태웠던 ‘사람택시’는 돌아가고 가이드 지반님과 둘이 고사인쿤드로 걸어 내려갔다. 이 길은 반대편의 올라온 길과는 달리 눈으로 덮여 있었고, 고사인쿤드까지 가기 전에도 길옆으로 수리아쿤드(Surya Kund. 고갯마루 바로 밑에 있다) 등 곳곳에 눈 덮인 작은 호수가 있었다(이 산에 크고 작은 호수가 모두 108개 있다는 말도 있다). 

 

    눈 덮인 내리막길이라 촌부 딴에는 조심한다고 했지만 결국 몇 번을 미끄러졌다. 그나마 다행히 큰 부상 없이 2시간을 내려가 고사인쿤드(Gosain Kund. ‘Gosai Kunda’라고도 표기한다. 해발 4,380m)에 도착했다.  

 

랑탕라우35-1.jpg [눈 덮인 내리막길]

 

랑탕라우36.jpg[눈에 덮인 수리아쿤드]

 

랑탕라우37.jpg[고사인쿤드]

 

   고사인쿤드는 힌두교의 시바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때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는 힌두교 성지(聖地)이다. 그래서 매년 8월이면 이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 반경 300~400m의 타원형인데, 눈이 반쯤 녹아 있는 수면 위로 주위의 설산이 비치는 모습이 절경으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기서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시바신에 관하여 잠시 알아보자. 그래야 고사인쿤드가 성지로 취급되는 이유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인구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2023년에 중국을 추월) 인도에는 그 인구보다 신(神)이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이 많다. 인도인들은 그 많은 신들 중에서도 다른 신들의 근본 뿌리라고 할 브라흐마(Brahma. 창조의 신), 비슈누(Vishnu. 유지의 신), 시바(Siva. 파괴의 신)를 가장 중요한 신으로 꼽는다. 이 신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다.

     브라흐마(Brahma)는 힌두교의 최고신으로 우주를 창조한 신이다.  비슈누(Vishnu)는 브라흐마가 창조한 세상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신이다. 비슈누는 특히 세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고 한다. 심지어 부처도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취급된다.
     시바(Siva)는 세상을 파괴하는 신이다. 브라흐마와 비슈누가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을 하는 것과 대조된다. 그래서 그림이나 성상을 만들 때 시바는 시체를 짓밟고 춤을 추는 등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새로운 건물을 세우려면 낡은 건물을 무너뜨려야 하듯이, 시바는 낡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파괴자인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재건하는 복합적인 존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바신이 현재 가장 최고의 숭배 대상이다.  그리고 코끼리 얼굴의 가네샤신은 시바신의 아들이다.

 

   고사인쿤드 호숫가의 로지인 ‘호텔 나마스테(Hotel Namaste)’에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도반들이 반긴다. 그들은 이미 점심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울렁거리는 속에 식욕이 날 수 없는 촌부는 묽은 흰죽만 조금 먹는 데 그쳤다. 

 

랑탕라우38.jpg[고사인쿤드의 로지]

 

   일찍 도착했으면 호수 주위를 걸으며 시바신의 흔적을 찾아 좀 더 자세히 호수를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 유난히 심한 고산증 때문에 너무 지체되어 그럴 여유가 없다. 시계바늘이 이미 오후 4시를 향하고 있었다. 갈 길이 바쁜 탓에 도반들을 먼저 출발하게 한 후 잠시 쉬다가 다시 발을 떼었다. 

 

   이제부터 이날의 목적지 촐랑파티(Cholangpati. 해발 3,584m)까지는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그때까지 온 길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는데, 가이드 지반님이 이미 예정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라 이대로 가면 밤늦게 촐랑파티에 도착하게 되니 그곳까지도 사람택시를 이용하자고 한다. 촌부는 그냥 걸어 내려가고 싶었지만, 너무 늦으면 다른 도반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지반님이 스태프 중 포터 두 명을 골라 번갈아 가며 택시 노릇을 하게 했다. 평소 5-60kg 정도의 짐을 거뜬히 지고 다니는 사람들인지라, 촌부를 태운 택시들은 경사진 내리막 비탈길을 두 시간 동안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들이 발을 헛디딜까 봐 오히려 촌부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 덕분에 촐랑파티에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촐랑파티의 로지인 '호텔 랑탕리룽 뷰(Hotel Langtang Lirung View)'는 전날 묵은 페디의 로지에 비하면 이름처럼 호텔에 해당한다(물론 실체는 어디까지나 로지다).

   난로가 지펴져 있는 식당 겸 휴식공간에서 젊은 영국인 부부가 눈에 띄었다. 놀랍게도 서너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애를 데리고 왔다. 어디까지 가냐고 했더니 고사인쿤드까지 갈 거라고 한다. 그들의 용기와 체력이 부럽기도 하고, 만용으로 보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역시 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랑탕라우39.jpg[랑탕리룽 뷰 로지]

 

   2026. 3. 1.(촐랑파티 -> 톨로샤브루)

 

    라우레비나 패스를 넘어온 터라 이제부터의 일정은 당분간은 수월하다. 목적지 톨로샤브루(Thulosyabru)까지는 7km로 4시간이면 갈 수 있고, 그곳은 해발고도가 2,210m여서 지긋지긋한 고산증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평소보다 1시간 늦은 789시스템을 택하여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로지의 앞마당에 나서니 ‘랑탕리룽 뷰(Langtang Lirung View)’라는 로지의 이름에 걸맞게 랑타리룽(해발 7,223m)의 멋진 설산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랑탕리룽은 이후 랑탕에 도착할 때까지 길잡이 역할을 한다. 

 

   톨로샤브루로 내려가는 길에는 봄빛이 완연하다. 붉은색 랄리구라스도 보이고, 산비탈에 만든 다랭이밭에는 밀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작은 골짜기의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물레방아를 이용하여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특이한 풍경도 접할 수 있다. 

 

   도중에 아래쪽에서 땀을 흘리며 올라오는 한 젊은 청년을 만났다. 핀란드에 왔다는 이 청년은 고사인쿤드를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동반자가 전혀 전혀 없이 혼자 여행 중이다. 패딩을 입고 있는 촌부와 반팔 반바지 차림의 이 청년의 복장이 대비된다. 이제 촌부에게 젊음은 감탄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랑탕라우40.jpg[설산 랑탕리룽의 모습]

 

랑탕라우41.jpg[도반 및 가이드들과 함께]

 

랑탕라우42.jpg[물레방아 마니차]

 

랑탕라우43.jpg[핀란드 청년과 함께]  

 

    오후 1시 15분 톨로샤브루(해발 2,210m)에 도착했다. 톨로샤브루는 네팔의 소수 민족인 타망족의 집단 거주지로, 샤브루베시로 연결되는 차도가 있어 자동차가 다닌다. 그래서 산비탈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마을임에도 길거리에 상점들도 있고, 여행객들을 위한 로지들이 많다. 고사인쿤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이곳도 큰 피해를 입었으나, 주민들의 노력과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로지와 가옥이 현대적으로 재건되었다.

    이 로지들 지붕 위에는 대부분 룽따와 타르초가 나부끼고 있어, 이곳이 티베트와 가까운 지역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네팔의 자연과 문화가 응축된 보석 같은 곳이라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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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46.jpg[톨로샤브루의 이모저모]

 

   톨로샤브루의 숙소인 ‘랑탕 뷰 로지(Langtang View Hotel & Lodge)’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여 햇볕이 따사롭고, 방에는 더운물이 나와 샤워도 가능하다. 히말라야의 여느 로지들과 달리 로지 이름에 붙은 호텔이라는 말이 격에 맞는다. 또한 이름에 걸맞게 전면으로 랑탕리룽이 선명하게 보인다. 

 

랑탕라우47.jpg[랑탕 뷰 로지]

 

랑탕라우48.jpg[랑탕 뷰 로지에서 바라본 랑탕리룽] 

 

    톨로샤브루 특산물인 감자를 갈아 넣은 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가이드 지반님이 구해준 실과 바늘로 양손 엄지손가락을 땄다. 도반인 박재송님이 수고를 해주셨다.

    그동안 두통도 없으면서 속만 울렁거린 증상이 단순한 고산증 증세가 아니라 음식이 체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 전 8월에 키르키스스탄의 천산산맥을 트레킹할 때의 비슷한 경험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손가락을 따니 검은 피가 나오고 속이 많이 시원해졌다. 진즉 시도해 볼 것을...

     점심식사 후 모처럼 휴식을 취하면서 따사롭고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2026. 3. 2. (톨로샤브루 -> 라마호텔)

 

    라우레비나 패스 트레킹의 종점인 랑탕계곡으로 내려서는 날이다. 톨로샤브루에서 표고차 600m를 내려가면 랑탕계곡(해발 1,650m)을 만나게 된다.

 

    아침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의 시스템으로 복귀하여 8시에 출발했다. 랑탕계곡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그래도 일단 추위와는 작별을 했고, 이제까지와는 달리 깊은 계곡 위로 산과 산을 잇는 출렁다리도 건너고, 길을 막고 있는 소들이 길을 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랑탕라우49.jpg[출렁다리]

    

랑탕라우50.jpg[길을 막은 소들]

 

    톨로샤브루에서 출발하여 2시간 정도 내려가자 삼거리가 나타났다. 샤브루베시로 가는 길과 랑탕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샤브루베시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샤브루베시는 랑탕계곡을 따라 체르코리까지 오르는 트레킹코스의 출발지이다. 8년 전 그 코스를 따라 체르코리까지 등정한 적이 있는데, 삼거리 이정표 옆에 앉아 그때의 산행기 중 샤브루베시에 얽힌 애환에 관하여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며 새삼 감회에 젖어든다.     

 

    샤브루베시(Shyabrubesi)는 티벳 말로 ‘함께 모여 춤추고 노는(샤브루) 평지(베시)’라는 뜻이다. 이곳은 그 이름만큼이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티베트가 1950년 중국의 침략을 받아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되자 많은 티벳 사람들이 탄압을 피해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고 넘어 네팔 땅으로 들어섰고, 마침내 해발 1,460m의 샤브루베시에 도착하였다. 비록 그다지 넓지 않은 평지이지만 그들에게는 마음껏 춤추고 놀 수 있는 평화의 땅이었다. 그야말로 ‘샤브루 베시’였던 것이다.

    네팔은 전체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이고 불교도는 10%에 불과한데, 이곳 샤브루베시는 물론이거니와 향후 트레킹 과정에서 지나는 라마호텔과 랑탕, 그리고 강진곰파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불교(티벳불교인 라마교) 신자임은 그들이 바로 티베트에서 넘어온 사람들임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물론 이들 티베트계 사람들만 사는 것은 아니고, 주민 중에는 타망족이나 쉐르파족도 있다.

 

랑탕라우51.jpg[삼거리 이정표 앞에서] 

 

    오전 10시 25분 랑탕계곡에 도착했다. 사실 이것으로 이번 트레킹의 주된 목적인 라우레비나 패스를 넘는 일은 달성한 셈이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체르코리까지 등정하는 것은 덤으로 붙여진 부수적인 일정이다. 그래서일까 긴장이 다소 풀렸고, 끝내는 후술하듯이 남은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하산하고 말았다.

 

    랑탕계곡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8년 전처럼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이 워낙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이고, 곳곳의 웅덩이(沼)는 옥색빛을 뽐내고 있다.  

    계곡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그 사이 고희(古稀)를 넘긴 산객의 걸음걸이는 무정한 세월을 못 이겨 딴판으로 힘겨워한다. 옛시조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한데 나그네는 유전(流轉)하니, 계곡은 옛 계곡이로되 사람은 옛사람이 아닌” 것이다.  

 

랑탕라우52.jpg[랑탕계곡]

 

    계곡 저편 수직의 바위절벽에 매달려 있는 석청 벌집은 8년 사이에 양이 많아졌다. 분명 사람들이 채취하여 갈 텐데, 채취량보다 새로 만들어지는 양이 더 많은가 보다.

    이런 험지에다 벌집을 짓고 꿀을 만드는 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인간의 탐욕스런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면 바위 절벽 전체가 석청 벌집으로 덮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아니면 좀 더 쉬운 곳에 벌들이 서식처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랑탕라우53.jpg[석청 벌집]

 

    랑탕계곡으로 내려선 후부터의 여정은 다시 오르막의 연속이다. 라마호텔(지명이다. 해발 2,410m) -> 랑탕(해발 3,430m) -> 강진곰파(해발 3,830m) -> 체르코리(해발 4,984m)의 순서로 올라가야 한다.

 

    랑탕계곡을 따라 위와 같이 올라가는 트레킹코스가 랑탕트레킹의 본류이다 보니, 이 코스에서는 유난히 서양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날도 점심 식사장소인 밤부(Bamboo. 해발 1,984m)까지 가는 동안에 이미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을 만났다. 이 트레킹코스가 안나푸르나나 에베레스트에 비하여 비교적 수월하고, 이곳에서는 베이스캠프가 아닌 설산 정상(체르코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여 세계 각지의 트레커들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12시 30분에 밤부에 도착하였다. 이곳 로지인 ‘호텔 쉐르파(Hotel Sherpa)’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한국인 5명이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북산악연맹 소속 산객들로 샤브루베시에서 올라온 분들이다. 이들도 혜초여행사의 트레킹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왔다고 한다. 이후로는 우리 일행과 동일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식사로 비빔국수를 먹었는데, 비로소 식욕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동안 여러 날 제대로 식사를 못한 까닭에 입맛대로 먹었다가는 또다시 탈이 날 수 있어, 반 그릇만 먹고 숟갈을 놓았다. 맛있게 두 그릇을 먹는 도반이 어찌나 부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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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54-1.jpg[밤부의 로지와 비빔국수]    

 

    적은 양일망정 그나마 제대로 식사를 하고 나니 새삼 기운이 난다. 8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곡을 따라 이날의 최종 목적지 라마호텔(Lama Hotel. 해발 2,410m)까지 올라갔다. 

 

    엄청난 수량의 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다 곳곳에서 폭포를 이루고 소(沼)를 만드는가 하면, 짐을 가득 실은 말들이 줄을 지어 등산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말이 생필품의 거의 유일한 운송수단이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에서는 그 말의 역할을 야크가 대신하기도 한다.   

 

    오후 5시에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숙소인 ‘프렌들리 게스트하우스(Friendly Guesthouse)’는 8년 전에도 묵었던 곳인데, 그사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여전히 인터텟 로밍은 물론이고 와이파이도 안 되며, 공동화장실과 공동수도를 이용하여야 한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휴대폰 충전이 된다는 것이다. 

    8년 전에는 다소 이른 시각에 도착하여 짧은 시간일망정 로지 앞 계곡에 발을 담그고 탁족(濯足)을 하는 용기를 냈었지만, 이번에는 꿈 같은 이야기다. 

 

    저녁식사로 나온 부대찌게와 누룽지를 조금 먹고 8시4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랑탕라우55.jpg[라마호텔의 프렌들리 게스트하우스 로지]

 

   2026. 3. 3. (라마호텔 -> 랑탕)

 

    아침 8시에 랑탕(Langtang. 해발 3,450m)을 향해 길을 나섰다. 랑탕까지는 12km로 당초 예정한 소요시간은 약 8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꼬박 10시간 걸렸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이미 산속에서 7일을 보낸 마당에 다시 표고차가 1,040m 되는 산길을 오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출발하여 두 시간 정도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 완만한 길이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주위의 풍광을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랑탕리룽의 빼어난 자태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전날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선명하다. 이날 낮의 날씨가 참으로 좋았던 덕분이다.

 

랑탕라우56.jpg[랑탕 계곡 위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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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58.jpg[랑탕 리룽을 바라보며]

 

    예정보다 많이 늦어진 가운데 정오를 넘겨 랄리구라스 군락지에 다다랐다. 랄리구라스 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풍경의 군락지를 잔뜩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아직 꽃 필 생각을 안 하고 있다. 가이드 지반님의 말이 이곳은 3월 중순을 넘어 꽃이 피기 시작하여 3월 말은 되어야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 군락지의 랄리구라스 감상이 랑탕 트레킹의 별미 중 하나인데, 자연이 허락을 안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랑탕라우59.jpg[랄리구라스 군락지]

 

    힘겹게 해발 3,000m를 넘어 오후 1시 10분에 ‘호텔 티베탄(Hotel Tibetan. 해발 3,040m)’이라는 로지에 도착했다. 좀 더 가야 앞서 간 주방팀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로지에 도착하는데, 시간이 이미 너무 지체된 상태(1시간 이상 늦어졌다)라 이곳에서 따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갑자기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한식 대신 로지의 식당에 주문하여 피자(야채피자와 참치피자), 스파게티, 찐 감자로 식사를 했는데, 뜻밖에도 모두 맛이 참 좋았다. 사실 트레킹 내내 영양을 생각하여 하루 세끼를 모두 한식으로 먹다 보니 다소 질린 상태였는데,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음식들이 오히려 입에 맞은 셈이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닐는지.  

  

랑탕라우60.jpg[호텔 티베탄 로지]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휴식까지 취한 것은 좋았으나, 이후의 랑탕까지의 오르막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계곡에서도 멀어진 산길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날이 어두워지고 덩달아 기온도 급강하한다. 2015년에 네팔을 휩쓴 대지진(사망자가 8,500명 이상이었다) 때 사망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조성되어 있는 게 전에 못 보던 시설이다. 

 

랑탕라우61.jpg[대지진 피해 군인 추모시설]

 

    오후 6시 10분이 되어서야 랑탕(해발 3,450m)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2시간 이상 지체된 것이다. 8년 전에도 묵었던 로지(Sunrise Guesthouse)는 그 사이 리모델링을 하였는지 2층짜리 건물이 3층으로 변신해 있었다. 

    시설이 좋아 방에 딸린 화장실의 수도에서 더운물이 나왔다. 3층 위 옥탑에 식당을 만들어놓아 식사하러 오르내리기가 힘든 게 흠이다. 4~5,000m의 산을 오르내리는 트레킹을 하면서 건물의 3층을 오르기를 싫어하다니! 이 얼마나 인간의 모순된 모습인가.    

 

    돼지불고기와 상추쌈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0시간 넘게 산길을 걸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랑탕라우62.jpg[랑탕의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 로지]

 

   2026. 3. 4. 그리고 그 이후

 

    이날은 목적지 강진곰파(Kyangjin Gompa. 해발 3,870m)까지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날이다. 북어국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여 오전 8시 30분에 로지를 나서는데 이상하게 기운이 없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안 되겠다 싶어 로지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력이 영 회복되질 않는다. 두통이 있거나 속이 울렁거리는 고산증 증세가 아니라 음식물 섭취를 제대로 못하면서 7일간 높은 산길을 걸은 그간의 강행군으로 몸이 탈진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그런 강행군을 견뎌낼 수 있는 청춘이 아니다.

     글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  결국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은 어려운.” 상태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강진곰파에 가서 다음날 체르코리(Tserko Ri. 해발 4,984m)를 오르기만 하면 그것으로 이번 트레킹이 화룡점정을 하지만, 욕심을 낼 일이 아니었다. 체르코리는 8년 전에 이미 한번 오르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곳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다만 촌부 혼자 하산하게 할 수는 없다고 도반들이 함께 하산하기로 해 참으로 미안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랑탕라우63.jpg[하산 헬기 앞에서]

 

    정오 무렵에 헬기를 타고(이번 일정에서 하산은 헬기로 하는 것으로 차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의 일정은 고카르나 포레스트 리조트(Gokarna Forest Resort)에서 머물면서, 원숭이 사원인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 사원인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의 화장터, 파탄(Patan) 왕궁,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Lumbini) 등지를 관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글의 성격상 상술(詳述)을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룸비니에 있는 한국 사찰 ‘대성석가사’이다. 룸비니에는 네팔 정부가 국제사원구역으로 제공한 부지에 각 나라별로 불교사원을 건축하여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인도, 중국, 일본, 심지어 독일까지 여러 나라의 절들이 하나씩 있어 그 나라의 불교를 상징한다. 그래서 어느 절을 가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벌써 영상 31도나 되는 무더운 날씨인데도 관광객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절이라는 ‘대성석가사’는 가보고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중국 절 맞은편에 단을 쌓고 3층짜리 거대한 건물(높이 47m. 중국 절보다 크게 짓겠다는 생각을 한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높게 지었는지 궁금하다. 1995년에 착공하여 2017년에 완공했다고 한다)을 올린 이 절은 찾는 이가 하나도 없이 처마에 거미줄만 무성한 폐허 수준이다. 

    정문 출입구의 철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옆의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경내에 인적이 끊겼다. 법당문도 당연히(?) 잠겨 있다. 단청은 칙칙하여 음산하기만 하고, 지붕에는 기와도 없다. 괴기영화나 촬영하기 딱 좋겠다 싶었다.

 

    어떤 분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절을 지었는지, 왜 이렇게 방치하여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는지, 성지 순례하러 많은 스님과 불교도들이 룸비니를 찾는데, 그들은 이 절을 보고 가는 걸까. 마냥 궁금하기만 하다. 

    지금이라도 조계종 종단에서 나서서 이 절을 인수하여 괴물 법당을 철거한 후 우리 고유의 사찰 양식을 살린 절을 지어 한국 불교의 위상을 회복시키기를 고대한다면 헛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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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라우65.jpg[룸비니의 대성석가사] 


      글을 마치며 이번 산행을 함께 한 도반님들께 마음 속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모든 일정을 마련하고 끝까지 노심초사 애써 주신 혜초여행사의 석채언 사장님, 김시온 팀장님, 장성순 대리님, 박진형 대리님과 가이드 지반님 등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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