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쿠오 바디스(Quo Vadis)

조회 수 70 추천 수 0 2018.11.04 21:02:12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갓 피운 황국화(黃菊花)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지은 시조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촌부의 학창시절에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

옥당(玉堂)은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을 일컫는 말이다.

 

   명종(明宗)임금이 어느 날 황국을 금분에 담아 옥당의 관원에게 주며 시를 지어 올리라 했다.

당황한 옥당관이 시를 갑자기 지을 수가 없어 마침 당직 중이던 송순에게 부탁하였고,

이에 그가 지은 것이 바로 이 시조이다.

명종임금이 보고 크게 칭찬하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을사사화를 일으킨 윤원형을 비롯한 권신 모리배들의 국정 농단을 겪어 온 임금의 심정을

정곡으로 헤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서운 바람과 찬 서리를 견디고 피는 국화는 예로부터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올곧은 지조의 상징이었다.

 

황국.jpg


   상강(霜降)도 지나고 사흘 후면 입동(立冬)인데 금당천변 우거(寓居)의 뒤뜰에 황국이 만발했다.

이를 금분에 담아 보낼 옥당도 없고, 그럴 처지는 하물며 더더욱 아니니 촌부 혼자 그 앞을 서성이며 국향(菊香)에 취하곤 한다. 

 

논풍경2.jpg


마냥 꽃만 바라볼 수 없어 벌들의 전송을 받으며 발길을 대문 밖으로 돌리면

추수를 끝낸 들녘이 한가로이 펼쳐진다.

황금빛으로 빛날 때는 마냥 풍요롭게 느껴지더니 이젠 다소 을씨년스럽게 다가온다.

나무가 단풍이 들어 붉은 색으로 변한 산도 그러하다.

앞으로 엄동설한이 찾아오면 그마저도 적막강산으로 변하리라.

이순(耳順)이 넘도록 보아온 계절의 변화이건만 그 앞에서 심란해지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끝을 모르고 암울한 지표들을 양산하는 경제,

과연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북한의 비핵화 문제,

악화만 되어가는 듯한 한일관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그 와중에 터지는 새우등 신세가 될지 모를 우리의 형편...

밝은 이야기는 없이 하나같이 힘든 소리만 들려오는 작금의 현실이

저물어 가는 늦가을 들녘에 중첩(오버랩)되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문득 옛날에 보았던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외치던 절규가 떠오른다.

 

“쿠오 바디스(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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