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가뭄에 단비

조회 수 26 추천 수 0 2018.08.29 23:28:36


   창밖에 비가 소리 내어 내리는 깊은 밤이다.

   어제부터 조금씩 뿌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여름 내내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처서(處暑)도 지나고 백중(百中)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답게 온다.

   며칠 전에는 19호 태풍 솔릭(SOULIK)호들갑스럽게 요란만 떨었지 비다운 비 한 번 뿌리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따로 없다.

   아무튼 여름 내내 기승을 부리던 폭염을 몰아낸 것이 말만 요란했던 태풍이 아니라 그 태풍 후에 조용히 찾아온 비라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어제가 백중(百中)이었다.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 할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백중은 음력 715일로 이 때 벼 이삭이 한창 패기 시작하기 때문에 벼의 생육과정에서 물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 그런 시기에 가뭄이 들어 논에 물을 대지 못하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속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밭작물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 했던 농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그 자체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텃논.jpg


   예전에 농촌에서는 백중날은 여름철 휴한기 명절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고 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흘러간 이야기 아닌가 싶다 반면 지금도 산사에서는 백중날 스님들이 석 달 동안의 하안거(夏安居)를 끝내고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지라, 여전히 여전히 큰 명절이다.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고, 지장보살이 지옥문을 열어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뜻깊은 날이다.

 

   이처럼 산 사람들은 서로서로 화목을 다지고, 죽어서 지옥의 나락에 빠진 사람들은 지장보살의 구원을 받는 날이 백중인데, 그 백중에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런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고용은 감소하고, 계층간 대립은 격화되고, 인구절벽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강대국들 간의 무역분쟁의 여파는 밀려오고, 북한의 비핵화는 오리무중으로 접어들고...  대내외 환경이 어느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채 화해와 구원은커녕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어가고 있는 형국이다오늘 조계사 앞 우정국로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간대에 열린 전국승려대회와 교권수호결의대회야말로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부처님의 자비를 앞세우는 불교계마저 이럴진대, 하물며...

 

   타들어 가던 대지를 적시는 단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내 편 아니면 적 이라는 단세포적 이분법 사고에 젖어 쪼개지고 갈라진 채 이전투구에 골몰하고 있는 군상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단비는 언제나 내릴까? 내리기는 하는 걸까? (2018.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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