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에 기대어

오두막에 바람이 스며들고(破屋凄風入)

조회 수 107 추천 수 0 2021.01.09 21:51:14

 

    소한(小寒. 15)이 지나면서 닥쳐온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급기야 8일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8.6도까지 내려갔다. 한강도 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일 밤에는 폭설이 내려 서울 시내 교통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퇴근하는 데 무려 3시간 걸렸다.


     그런데 서울시의 제설대책은 늑장을 부리고,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야 할 교통방송(TBS)은 정치방송을 일관해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4월의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는 서울시 시정(市政)의 난맥상이 날로 더해 간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살이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금당천(金堂川)으로 내려왔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산천의 모습이 한결 정겹다. 맨땅이 을씨년스럽게 드러난 나대지보다는 눈이 덮인 산하가 훨씬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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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고층빌딩도 없고, 길을 오가는 자동차도 적으니 기온이 대처(大處)보다 3-4도 낮다. 그러지 않아도 추운 서울보다 더 춥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아침 기온도 영하 18도였다. 그래도 그 추위가 상큼한 것은 공기가 맑고 자유롭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금당천을 따라 걷는 산책길은 촌부에게 언제나 여유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길에서는 눈으로 보지 않으니 분별할 일이 없고(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 귀로 듣지 않으니 시비할 일도 없다(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


     다만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이라, 눈 덮인 들판을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만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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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 같아서는, 소가 있어 소를 타고 즐기면 좋으련만, 트랙터와 경운기가 일반화된 요새는 농촌에서도 소를 볼 수가 없으니 어쩌랴

     그 옛날 소를 타고 유람했던 선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글로나마 그 기분을 느껴 본다.

 

     (전략)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빨리 보면 대충 보고, 천천히 보면 미묘한 것까지 다 볼 수 있다. 말은 빨리 가고 소는 천천히 가니, 소를 타는 이유는 천천히 보기 위해서이다. (중략). 맑은 바람이 부는데 휘파람 불며 소가 가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마음껏 술을 마시면 가슴속이 시원하여 절로 즐겁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은 '기우설(騎牛說. 소를 타는 즐거움)'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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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부는 비록 소를 타지는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하지만, 소를 타고 노닐던 선인들의 흥취를 다소나마 알 것 같다

    소걸음은 천천히 가는 것의 징표이다. 빨리 가는 말이 아니라 천천히 가는 소를 타고 둘러보니 천지사방의 자연이 구석구석 다 보였으리라.

 

    2021년 신축년(辛丑年)의 새해가 밝았다.

 

     음양오행상으로 신축년(辛丑年)의 신()은 금()에 해당하고, ()은 토()에 해당한다. 토생금(土生金)이니 토()가 금()을 낳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마침 올해의 간지(干支)가 바로 이런 음양오행의 원리에 딱 부합한다. 그에 걸맞게 서로서로 상생하고 발전하는 한 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해 1년 내내 벌어졌던 꼴불견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제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한낱 촌부만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신축년에는 정상이 당연히 정상이 되고, 비정상은 어디까지나 비정상일 따름인 세상이 펼쳐지길 소망하여 본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이고 우보만리(牛步萬里)라고 했다. 세상의 올바른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순리에 맞게 뚜벅뚜벅 가다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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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 금당천의 밤이 깊었다. 북극 한파가 몰고 온 찬 바람이 누옥 깊숙이 스며든다. 문을 열고 텅 빈 뜨락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그러다 시 한 수를 떠올리고 붓을 놀린다.


破屋凄風入(파옥처풍입)

空庭白雪堆(공정백설퇴)

愁心與燈火(수심여등화)

此夜共成灰(차야공성회)

 

허름한 오두막에 스산한 바람 스며들고

빈 뜰에는 흰 눈이 쌓여만 가네.

시름겨운 내 마음과 저 등불이

이 밤을 함께 태워 재가 되누나.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지은 설야독좌(雪夜獨坐. 눈 오는 밤 홀로 앉아)’라는 시이다

     한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이었다가 진도로 유배되어 끝내 사약을 마셔야 했던 저자가 그 진도에서 이 시를 남겼다.


     시인의 아리고 아렸을 심정이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 동시에 조선시대 숙종 임금 시절 서인과 남인 간의 피비린내 났던 당쟁이 오버랩된다. 예나 지금이나 정적(政敵)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잔혹한 것일까. 위정자들에게는 대립과 갈등대신 포용과 상생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늦은 밤 문방사우(文房四友) 씨름하는 촌부의 붓끝이 잘 돌아가지 않음은 스산한 바람 때문인가, 시름에 겨운 마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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