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바늘이 어느덧 10월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0월 초까지 늦더위가 이어지더니 지난 중순에 갑자기 밀어닥친 영하의 추운 날씨로 가을이 실종되었나 싶었는데,

그 후 다행히 기온을 회복하여 요새가 그야말로 가을의 절정이다.

그나마 1주일 후면 입동(立冬)이니 아쉽게도 그 가을이 곧 막을 내릴 판이다.

그러기 전에 만추(晩秋)를 충분히 느끼고 즐겨야 하는데...

 

 

단풍 구경을 하겠다고 매일 우면산을 오르고, 지난 주말에는 북한산도 다녀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유난히도 가을비가 잦은 탓인지 어디를 가도 단풍이 예쁘지 않다.

작금에 세상이 뒤숭숭하기 그지없다 보니 하늘도 안 도와주는 걸까.

 

여름 내내 아파트단지 화단에 내놓았던 난() 화분들을 집안으로 들여왔다.

그것들을 베란다에서 정리하면서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단풍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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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집 앞의 단풍나무가 마치 불이 붙은 듯 저토록 붉게 타오르고,

은행나무는 물감을 뿌린 듯 샛노랗게 물든 것도 모르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범부(凡夫)는 가을을 찾아 밤낮 이 산 저 산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이쯤 되면 戴益(대익)이 봄을 찾아 헤매며 읊은 시(探春. 탐춘) 표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봄을 촌부의 가을로 바꿔 되뇌어 본다(探秋. 탐추).

 

   盡日尋秋不見楓(진일심추불견풍)

   杖藜踏破幾重雲(장려답파기중운)

   歸來適過杏花下(귀래적과행화하)

   楓在枝中已十分(풍재지중이십분)

 

   종일토록 가을을 찾아 헤맸건만 단풍은 끝내 보지 못하고,

   지팡이 짚고 겹겹의 구름만 헛되이 헤치고 다녔네.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행나무 밑을 지나노라니,

   아뿔싸, 단풍은 은행나무 가운데 이미 와 있었네그려.

 

그렇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둔자(鈍者)는 미몽(迷夢)에서 헤매느라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차기 대통령선거가 넉 달 열흘 정도 남았다.

선거에 출마할 여당 후보는 이미 정해졌고, 닷새 후에는 제1야당 후보도 정해진다.

그런데 목하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이 하나같이 그에 대한 국민들의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두 배를 넘나든다.

명색이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나와 경쟁을 하여야 하는데, 작금의 현실은 그 반대이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최선이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차선이라도 취해야 하듯이,

최악(最惡)보다는 차라리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나으리라.

 

그러면 그게 누구인가? 정답은?

위 시가 가르쳐 주고 있다.

楓在枝中已十分(풍재지중이십분)”

답은 이미 진즉에 나와 있다.

눈을 얼마나 똑바로 뜨고 살피느냐에 따라 정답과 오답이 갈릴 뿐이다.

 

한낱 무지렁이 촌노(村老)는 그저 국운(國運)의 평안을 빌 따름이다.

 

부디 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소서!”

 

가을의연인-채은옥.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