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면 깨면 되지만

2021.12.26 01:15

우민거사 조회 수:144

 

2021년의 마지막 주말이자 크리스마스이다.

사흘 전이 작은 설로 불리는 동지(冬至)였다.

동지는 밤이 하도 길어 할 일 없는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던가.

한마디로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선 셈이다.

그런 동지에는 정작 따뜻했던 날씨가

오늘은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로 도로 곤두박질쳤다.

(일기예보를 보면 내일은 영하 16도로 더 춥다고 한다)

 

이렇게 추운 날에,

더구나 성탄절이라 가족들과 오손도손 함께 보내는 날에,

탑골공원에 오시는 노인분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위한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16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여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펼쳐 추위를 녹였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기에'

탑골공원의 무료 급식은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지는데,

그 급식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설, 추석,  크리스마스 같은 이름 있는 명절에는

자원봉사자가 잘 나오지 않아 늘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처럼 날씨가 추우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그러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하며 며느리까지 데리고 갔는데,

위와 같이 16명이나 나왔다.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분들께 오늘 같은 날 어떻게 나오셨나고 물으니 한결같은 대답이,

'크리스마스에 날씨까지 너무 추워 봉사자가 없을 것 같아 나라도 나가야겠다'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나날이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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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기후 변화가 워낙 심해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를 대변하던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올겨울 들어 다시 부활하는 느낌이다.

주중에는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따뜻하다가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코로나가 다시 급속도로 확산되어 나들이를 자제해서일까,

주차장을 방불케 하던 주말의 고속도로가 요새는 눈에 띄게 한산하다.

주말마다 여주를 오가는 일개 촌부(村夫)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세상살이가 그리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만 될 일이던가.

 

하루에 7천 명을 넘다들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코로나 감염자나,

1,000 명을 웃도는 위중증 환자의 숫자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관계 당국의 행태를 보노라면,

K-방역 운운하며 위정자들이 우쭐대던 게 도대체 얼마나 허망한 이야기였는지 알 수 있다.

 

아이를 구급차(ambulance) 안에서 출산하여야 했고,

그러고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극복한답시고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들

이런 판국에 누가 기꺼이 아이를 낳으려 할까.

 

조선 중기의 문인인 정래교(鄭來僑 1681-1757)가 지은 글에 이런 게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밖에 나가 무리를 따라 크게 취하여 저녁 때 돌아오다가 집을 못 찾고 길에 벌렁 누웠다.

그리고는 제 집으로 생각하고 인사불성으로 미친 듯 소리치고 토하며 제멋대로 굴었다.

바람과 이슬이 몸을 엄습하고, 도둑이 틈을 노리고,

수레와 말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밟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괴이하게 여겨 비웃고 마치 기이한 꼴이라도 본 듯이 했다.

 

그런데 어찌 이것만 유독 이상하다 하겠는가.

오늘날 벼슬아치들은 벼슬에 오르거나 벼슬에서 현달하게 되면,

깊이 도모하고 곰곰이 따져 보아 시대를 구하고 나라를 이롭게 할 생각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끊임없이 바라며 욕심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원망이 쌓여 화가 닥쳐와 남들은 위태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는데도,

정작 자신은 여전히 우쭐대며 오만하게 군다.

참으로 심하게 취했다고 할 것이다.

 

, 술 마신 자는 취해도 때가 되면 깬다.

하지만 벼슬하는 사람이 취하면 재앙이 닥쳐와도 깨는 법이 없다.

슬프도다.

(, 酒者之醉 有時而醒. 官者之醉 旤迫而醒無日. 哀哉!).

 

이 글이 어찌 지은이가 살았던 조선 중기의 세태에만 해당하랴.

지은이는 글의 제목을 역설적으로 잡설(雜說)이라고 붙였지만,

그야말로 위정자(僞政者)를 향한 통렬한 정론직필(正論直筆)이 아닐 수 없다.

 

위정자들이 자신의 이익, 그릇된 이념과 정파적 이해에만 매몰되어

국민의 삶을 아랑곳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구급차 안에서의 아이 출산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이제 석 달도 안 남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국민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조령모개(朝令暮改)를 일삼거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함이 없이 우왕좌왕하며,

너나 없이 그저 권력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들이 국민을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정파적 이해만을 위한 권력에 취한다면

닥쳐오는 것은 재앙뿐이다.

그리고 그 재앙 앞에 애꿎은 백성만 시름겨워해야 한다.

어쩔거나.

 

정래교(鄭來僑)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술에 취한 것은 때가 되면 깨지만,

벼슬에 취하면 재앙이 닥쳐도 깨지 않는다"

(酒者之醉 有時而醒. 官者之醉 旤迫而醒無日)

 

하현달1.jpg

 

동짓달의 기나긴 밤이 하염없이 깊어간다.

황진이(黃眞伊)처럼 그 한 허리를 베어내 보기라도 할까.

 

크리스마스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밝히는 금당천 하늘의 하현달이

창백한 모습으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이 그래서일까.

반월조금당(半月照金堂)에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이런가.

 

Warm wishes on christmas-1-Beer.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