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겨울다와야

2022.01.30 23:56

우민거사 조회 수:181

 

소대한(小大寒)도 지나고 설을 낀 5일간의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입춘(立春. 24)이다.

추위가 완전히 물러간 것은 물론 아니지만,

시절이 이쯤 되면 올겨울이 사실상 다 지나갔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런데 올겨울에는 영하 15도를 웃도는 추위가 맹위를 떨친 적도 있지만,

큰 눈이 내린 적이 없어서인지 영 겨울다운 맛이 나지 않는다.

음식도 제철에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있듯이,

계절도 그 계절에 맞는 기후가 이어져야 계절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의 상징은 역시 눈 아니던가.

지난주 주말에(2022. 1, 22.) 계방산(桂芳山. 해발 1,577m)을 다녀왔는데,

겨울 설산 산행의 성지(聖地) 중 하나로 꼽히는 명성이 무색하게 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등산로에서 아이젠을 찰까 말까 고민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튼 이런 겨울답지 않은 겨울조차도 그나마 노루꼬리 만큼밖에 안 남았다는 게 못내 아쉽다.

무슨 시간이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그 겨울의 아침 동녘이 밝아올 즈음 금당천으로 나섰다.

새벽공기가 영하 11도로 꽤 차지만,

언제 보아도 반갑고 정겨운 모습에 저절로 빠져든다.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촌부는 특히 이즈음의 풍경에 더 매료된다.

 

된서리가 내린 금당천 위로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에 취하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내민 해가 물속에서 빛난다.

이에 더하여, 냇가의 갈대가 유혹하는 대로 걷다가 고개를 들면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가 무리 지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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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후 겨울이면 주말마다 금당천에서 대하는 풍경이지만,

말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요, 귀와 눈이 맑아지는 산하(山下)이다.

일찍이 원감국사(圓鑑國師. 1226-1293)가 읊었던 閑中自慶(한중자경 : 한가함 속에서 스스로 기뻐하다)’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고 생각한다면 너무 외람된가.

 

日日看山看不足 (일일간산간부족)

時時聽水聽無厭 (시시청수청무염)

自然耳目皆淸快 (자연이목개청쾌)

聲色中間好養恬 (성색중간호양념)

 

산을 날마다 봐도 언제나 보고 싶고

물소리 수시로 들어도 물리지 않누나.

귀와 눈이 저절로 다 맑고 상쾌해지니

물소리와 산색 사이에서 고요함을 기른다네.

 

거처하는 곳이 산사였으니 매일 매일 산을 대하고 물소리를 들으며

내면의 고요를 기를 수 있었던 원감국사를,

주말에나 금당천을 찾는 촌부가 어찌 흉내 낼 수 있을까마는,

마음만이라도 그 먼발치를 따라가고프다.

 

대통령 선거가 40일도 안 남았다.

음식이 음식다와야 맛이 있고,

계절이 계절다와야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듯이,

대통령이 대통령다와야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번에는 국인의 귀와 눈이 저절로 맑아지게끔 올바른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정녕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겨울바다-김학래.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