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건너뛰고 용은 춤을 추고 (차마고도 호도협과 옥룡설산)
2016.12.06 14:05
호랑이는 건너뛰고 용은 춤을 추고
KBS가 1년 4개월에 걸쳐 제작하여 2007년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한 6부작 다큐멘타리 “차마고도”를 2009년에 DVD로 본 일이 있다. 위 작품이 2008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상을 휩쓸었으며 2008년 10월에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로서는 최초로 6부작 중 제1부인 〈차마고도-마지막 마방 편〉이 국제 에미상(Emmy Awards) 다큐멘터리부문 최종 수상후보에 올랐다는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때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 막상 다녀온 몇몇 사람들(대개 등산이나 트레킹의 고수들이다)의 이야기인즉, 시간도 오래 걸리고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9월에 법원 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법원 문을 나선 후에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지내다 1년이 훌쩍 지나갔다. 더구나 지난 2월에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차마고도의 일부인 호도협(虎跳峽)를 걷는 트레킹이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세계 3대 트레킹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밀포드뿐만 아니라 나머지 하나인 마추픽추도 이미 다녀왔건만....
그러던 차에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 할 때와 실크로드 탐방할 때 이용하였던 혜초여행사로부터 전자메일을 한 통 받았다. 운남성 여강(麗江. 중국말로는 리장)까지 직항하는(1주일에 2회)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하면 3박4일에 호도협과 옥룡설산을 다 갔다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전세기를 이용 안 하면 직항편이 없어 성도나 곤명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보통 6박7일 걸린다). 비용도 139만으로 비교적 저렴했다. 단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중순 이 사실을 소오름산우회원들에게 회람한 결과 일정이 맞는 성산대형(손기식), 예산대사(홍경식) 두 분이 흔쾌히 나섰고, 회원은 아니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는 주흥 선사(이주흥)도 합류하여 결국 촌부를 포함한 4명이 2016년 11월 3일 여강 행 아시아나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여러 여행사에서 모집한 단체관광객들로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을 만큼 대성황이었다.
[인천공항 - 여강 비행경로]
차마고도(茶馬古道)
예정보다 40분 늦은 오전 11시 1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의 비행 끝에 오후 3시 10분(현지 시각. 한국보다 1시간 늦다)에 여강공항에 도착하였다. 여강이 있는 운남성이 중국의 서남부 끝에 있다 보니 인천공항으로부터의 거리가 2,720km나 되어 비행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운남성은 높은 고원지대였다. 여강의 해발고도도 평균 2,418m이다. 그래서 여강공항 주위에 있는 산들은 해발 3,000m가 넘는 게 보통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곳의 11월임에도 불구하고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온이 23도일 정도로 날씨는 온화했다. 한겨울에도 평균 최저기온이 0도 내외라고 한다.
[여강공항]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선족 가이드 김종선씨의 안내로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바로 교두진(橋頭鎭)으로 이동했다. 호도협 트레킹의 시발점인 곳으로 여강에서 버스로 2시간 30분 걸린다. 여강 시내를 벗어나면 이내 금사강(金沙江. 중국말로 진사강)을 만나 강 옆으로 난 길을 한참 따라 이동한다.
금사강은 양자강의 상류에 해당한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맹획과 유명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전투를 벌인 남만정벌 후 밀가루와 고기를 이용하여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만든 제물[이것이 우리가 지금 먹는 만두(饅頭)의 효시이다]을 강의 신에게 바치고 건너간 강이 바로 여강 부근의 금사강(당시의 명칭은 노수)이다. 강을 건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대략 이곳쯤 아닐까 하고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에는 누런 강물이 무심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이 남송을 정벌할 때도 이 강을 건넜다고 한다.
그 시절 인걸들은 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주야(晝夜)로 긋지 아니하는 유수(流水)는 오늘도 변함없이 여강 주위를 맴돌아간다. 청산이 만고에 푸르르고 유수가 주야로 긋지 아니하듯 우리네 인간도 그치지 않고 만고상청(萬古常靑)할 수 있을까? 안 될 말이다. 그런데 대유학자인 퇴계 선생은 어찌하여 그런 욕심을 내셨을까. 모를 일이다.
교두진에 도착하여 차마고도의 호도협 1박2일 트레킹에 필요한 짐만 분리해 등산배낭에 옮긴 후, 그곳에 대기 중이던 미니 밴(5-6인승. 이곳에서는 ‘van’을 ‘빵’이라고 발음하여 ‘빵차’라고 부른다)에 탑승했다. 숙소인 차마객잔으로 이동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나시족의 여자이다. 모계사회로 여자가 경제활동의 중심역할을 하는 나시족의 한 단면을 시작부터 보는 듯하다.
가는 길에 상호도협을 둘러보려고 했으나 비행기의 연착으로 일정이 늦어져 날이 어두워지는 탓에 다음날로 미루고 차마객잔으로 직행했다.
차마객잔은 해발고도가 2,450m 되는 곳에 위치하여 있어 호도협의 금사강 물가를 따라 개설된 포장도로에서 한참 올라가야 한다. 그 길이 날이 어두워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다음날 아침에 내려가면서 보니 경사도가 심하면서도 폭이 매우 좁은 꼬불꼬불 산골길이었다. 길가에 난간도 없어 운전사가 한순간 한눈을 팔거나 차의 제동장치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이면 황천길로 직행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러니 아침에 내려갈 때 가슴을 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시족 여자 기사가 모는 미니 밴]
차마객잔(車馬객棧)은 차마고도의 호도협 구간에 있는 객잔이다. 객잔은 옛날 차마고도를 오가던 상인들이 머물던 마방이다. 글의 진행상 이해의 편의를 위해 차마고도와 호도협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자.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도 200년 앞서 열린 최고로 오래된 교역로로서,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던 옛길’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중국의 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거대한 문명교역로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지세가 높으며(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이다) 가장 험준한 길로 알려져 있다. 차마고도는 거대한 자연과 다양한 생태계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수민족의 이동로로 다양한 언어, 다채로운 종교와 문화가 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차마고도 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구간이 삼강병류(三江并流)의 협곡이다. 금사강(金沙江 장강의 상류), 난창강(瀾滄江 메콩강의 상류), 노강(怒江 살윈강의 상류)이 횡단산맥의 5,000m 이상의 설산 사이로 나란히 흐른다. 삼강병류 협곡은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협곡 중 금사강이 흐르는 곳이 호도협이다.
[삼강병류]
차마고도는 각종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차와 말의 교역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트레킹 코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중국 운남성이 품고 있는 보물 같은 트레킹 코스가 다름 아닌 호도협(虎跳峽)이다. 기술했듯이 영국 BBC방송이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로 꼽아 더욱 유명해졌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이 본래 하나였던 산을 나시족의 성산인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과 티베트인의 성산인 합파설산(哈巴雪山, 5,396m)으로 갈라놓았고, 그 갈라진 좁은 틈으로 장강(長江)의 상류인 금사강이 흘러들면서 16km 길이의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으니 그게 바로 호도협이다. 강변에서 양안의 산봉우리 정상까지 최고 표고차가 무려 3,900m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인 이곳은 여강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져 있다.
운남성에서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는 보이차의 주 산지인 서쌍판납(西雙版納)에서 보이(普耳)를 지나 대리(大理), 여강(麗江), 상그릴라(香格里拉)를 거쳐 라싸(拉薩)에 이르는데, 여강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에 이 호도협이 자리 잡고 있다.
사냥꾼에 쫓긴 호랑이(虎)가 협곡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건너뛴(跳) 협곡(峽)이라는 뜻의 호도협은 폭이 좁은 곳은 30m밖에 안 되고(上虎跳峽에 있다)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른다. 넓은 강이 갑자기 폭이 좁아진데다 낙차가 크니 물은 그야말로 급류로 흐른다. 호도협 구간의 차마고도는 합파설산의 중턱을 따라 이어져 트레킹 내내 맞은편 옥룡설산의 멋진 설산모습을 보며 간다.
[호도협 트레킹 코스]
다시 차마객잔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기술하였듯이 옛날 마방이었던 이 객잔은 외형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시설은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각 객실마다 화장실을 겸한 샤워실이 따로 있고, 침대가 두 개씩 있다. 특히 혜초여행사를 통하여 온 투숙객에게는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아주고 깨끗하게 세탁한 전용 침구를 제공하여 잠자리가 참으로 편하다.
이날 저녁식사는 오골계백숙이었다. 평소 육고기를 멀리하는 촌자에게는 다소 곤혹스런 메뉴였으나, 다음날의 긴 여정을 생각해 여행사 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라 몇 저름 입에 넣었다.
저녁식사 후 식당 밖으로 나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맑은 하늘이 실종된 서울에서 살다보니 하늘에 별이 그리도 많은 줄 몰랐다. 아니 잊고 살았던 것이다. 별구경을 제대로 하라고 평상이 놓여 있어 거기에 누우니 내가 하늘 가운데 있는 기분이다.
천지동근 물아일체(天地同根 物我一體)가 별거인가. 별이 빛나는 밤, 그 별 가운데 누운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가치를 다 누린 듯하다. 보름달이 뜰 때 오면 더더욱 멋지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11월 중에 68년만의 슈퍼문(Super Moon)이 뜬다는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던가. 어린 중생의 욕심은 끝이 없다.
[차마객잔. 뒤에 보이는 산이 옥룡설산이다]
호도협(虎跳峽)
2016. 11. 4. 아침 5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공기가 워낙 깨끗한 깊은 산속인데다 잠자리가 푹신하고 편한 덕분에 전날 장거리 이동하느라 쌓인 피로가 다 가신 듯 기분이 상쾌하다. 6시 20분에 쌀죽, 빵, 김치 등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점심시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짐만 챙겨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객잔에 맡긴 후 7시에 객잔을 나섰다. 전날 타고 왔던 미니밴을 타고 상호도협(上虎跳峽)으로 이동했다. 차로 이동하니 불과 10여 분 거리이다.
상호도협은 말 그대로 관광지로 꾸며 놓았다. 협곡을 건너 뛴 호랑이석상이 호도협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역시 중국답게 크게 만들었다. 아무리 30m라도 그렇지 호랑이가 과연 30m를 건너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진작부터 들었었는데, 협곡의 물가까지 내려간 순간 의문이 금방 풀렸다. 물 한 가운데 커다란 바위(虎跳石)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상호도협과 호도석]
그나저나 협곡을 흐르는 물살은 거세고 소리도 요란했다. 사람이 빠지면 여간해서는 구조하기 어려울 듯하다. 전형적인 건기(11월은 평균 강수량이 11mm이다)임에도 그렇게 물이 많이 흐르니 우기에는 어떨지 능히 짐작된다. 장강(長江)의 물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장강을 흔히 양자강(揚子江)과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정확히는 양자강은 사천성 의빈(宜賓)에서 상해까지의 중·하류 구간을 말하고, 그 이전의 상류 구간은 금사강이다. 그리고 두 강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 장강이다.
[상호도협에 있는 장강 모형석]
상호도협을 구경하고 다시 미니 밴에 올라 나시객잔(해발 2,100m)으로 이동했다. 차마객잔과 마찬가지로 옛날 마방이다. 11월임에도 각종 꽃이 만발해 있고, 수확한 옥수수를 난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설은 차마객잔보다 못한 듯하다.
[나시객잔]
나시객잔부터 호도협 트레킹의 시작이다. 최종 목적지까지 17km이다. 9시 정각 첫발을 내디뎠다. 성산대형께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면서 말을 타셨다(40분 동안). 마부가 여자인 게 특이했다. 나시족인 줄 알았더니 장족이라고 한다. 말이 다니던 길이니 말을 타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일까 말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호도협 트레킹의 경유지 고도 및 예상 소요시간]
[말을 탄 성산대형]
점심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차마객잔까지 예상 소용시간은 2시간 30분. 해발 2,100m에서 2,670m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걷는다. 길을 걷는 내내 급경사의 산(깎아지른 절벽인 경우가 많다) 아래로는 계단식 경작지와 호도협을 흐르는 금사강이 보이고, 그 건너 맞은편에는 웅장한 옥룡설산이 동행한다. 상호도협의 관광지도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좋아서 이내 땀이 나고 새벽의 싸늘한 기온에 맞춰 입었던 옷들을 하나씩 둘씩 벗어 배낭에 넣어야 했다.
출발해서 1시간 반쯤 걸었을 때 이 코스에서 가장 힘들다는 구간의 초입에 도착했다. 이름하여 ‘28밴드’라는 곳으로, 28굽이를 돌며 2,670m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이 구간에 들어서기 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기력을 충전하라고 친절하게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오르라고 가이드가 여러 번 강조한다.
[28밴드의 쉼터]
그런데 막상 이 구간에 들어서니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올라가는 굽이가 계속될 뿐이지 난이도는 웬 만한 산에 가면 흔히 만나는 깔딱고개나 다름없다.
“에이~ 괜히 겁먹었네! 산에 한두 번 다녀보나.”
28밴드의 마지막 구비에 다다라 고갯마루에 서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코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이는 옥룡설산의 산마루에는 흰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아득히 보이는 금사강에는 옥빛 물결이 굽이치며 흐른다.
[28밴드로 올라가며 내려다 본 호도협의 금사강]
[28밴드의 정상. 뒤에 보이는 산은 옥룡설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서면 고도가 차츰 낮아지면서 발걸음이 편해질 즈음 아침에 출발했던 차마객잔으로 다시 들어서게 된다. 당초 예정대로 11시 30분에 도착했다. 맛있는 점심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쌀밥, 국, 김치 등 한식으로 배를 채우고 난 후 아침에 맡겨 두었던 짐을 배낭에 넣으니 제법 무거워졌다. 그러나 과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후의 길이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 목적지를 남겨 놓은 마지막 1시간만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 아니면 낮은 경사의 비탈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도객잔(해발 2,500m)까지는 고도만 높다뿐이지 거의 산책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성산대형께서도 말에서 내리셨고, 미음완보(微吟緩步)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걸었는데도 오후 2시에 중도객잔(中途客棧)에 도착했다.
[중도객잔]
중도객잔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호도협에 있는 객잔 중에서 규모도 크고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관광객을 태우고 온 미니 밴들이 객잔 앞에 줄지어 있다. 우리처럼 본격적인 트레킹을 하지 않고 호도협을 단순히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중도객잔까지 차를 타고 올라와 30분 거리의 관음폭포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호도협 트레킹의 맛을 살짝 보고 간다. 아무튼 찾는 이가 많다 보니 고객서비스 차원에서인지 뜨거운 물과 찻잎(차의 종류는 불명)을 비치하여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답게 중도객잔에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의 경치도 장관이다. 객잔 옥상에 설치된 전망대는 물론이거니와 이곳은 화장실에서 내다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한 때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이라고 불렸던 화장실은 객사 증축공사로 인해 헐렸지만, 지금의 화장실도 안으로 들어서면 창문 너머로 옥룡설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보름달이 뜰 때가 제일 장관이라고 하는데, 낮에 도착한 관계로 상상 속의 풍경으로 남겨 두어야 했다.
[중도객잔 옥상의 전망대와 옥룡설산]
일반 관광객들과 달리 우리는 갈 길이 멀기에 오후 2시 40분 중도객잔을 나섰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에 배낭을 멘 등에 이내 땀이 흐른다. 중도객잔에 쉬느라 입었던 겉옷들을 다시 벗어 배낭에 넣어야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걷다가 깎아지른 절벽 위로 난 바위고개 정상에 오르자 관음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건기인지라 수량이 적어 빈약한 모습이다. 고갯마루답게 땀을 식히라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오히려 더 반갑다.
김종선 가이드는 절벽 위에 난 길이 폭이 좁아 추락 위험이 큰 곳이니 조심하라고 당부 또 당부한다. 정말이지 경치에 취하거나 사진 찍느라 한눈을 팔다가는 천애의 절벽으로 추락하기 십상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관음폭포. 사진 가운데 가로로 보이는 줄이 절벽 위의 길이다]
[천길 절벽 위의 길들]
오른쪽으로 계속 동행하는 옥룡설산과 그 아래 먼발치의 협곡을 흐르는 금사강 물줄기를 감상하랴, 멋진 경치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랴, 좁은 길에 발조심하랴, 변하는 기온에 맞추어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랴, 앞서 가는 일행들과 거리를 유지하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목적지까지 앞으로 1시간 남았다고 가이드가 알려 준다. 이는 곧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잠시 쉬면서 무릎보호대를 다시 한 번 여미고 등산스틱을 두 손에 꼭 잡고 심호흡을 한 후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내리막은 아니었다. 분명 1시간 내려가는 길이고, 이제까지 온 길과 비교하면 경사가 급하고 무릎에 다소 부담이 가는 것은 맞지만, 이 역시 한국에서 등산할 때면 으레 만나는 내리막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다음날 옥룡설산 등산할 때 4,300m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때의 내리막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아무튼 최종 목적지인 타나객잔(‘티나’는 ‘中峽’이라는 뜻이다. 당초 장선생객잔으로 최종 목적지로 했었는데, 내리막 경사가 조금 덜한 티나객잔으로 도중에 변경했다)에 도착하니 오후 5시이다. 중도에 말을 보내고 당신의 발로 몸소 걷느라 다소 뒤로 처진 성산대형께서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8시간에 걸쳐 총 17km를 완주(?)한 기쁨으로 일행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티나객잔]
티나객잔 앞에 대기 중이던 미니밴을 타고 교두진으로 나가 그곳에서 다시 버스(전날 공항에서 타고 왔던 버스)로 갈아탄 후 어둠이 짙게 깔린 여강 시내로 돌아갔다.
저녁 7시, “獨島”라는 상호가 붙은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달리 비계가 별로 없는 제대로 된 삼겹살이다. 다들 트레킹이 힘들었는지 무한리필 되는 삼겹살로 포식을 한다. 촌부는 삽겹살은 한두 점 맛만 보고 별도로 나온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배를 불렸다. 이 또한 일미였다.
식사 후 산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하여 중국 전통 마시지를 하는 곳으로 갔다. 여행사에서 단체로 마련한 코스이다. 한 방에서 동시에 7명이 마사지를 한다. 마사지사가 먼저 따뜻한 물로 손님의 발을 씻긴 후 마사지를 하고, 이어서 전신마사지를 한다. 젊은 마사지사들이 땀까지 흘려가며 정성껏 한다. 1시간 30분에 걸친 마사지를 받고 나니 피로가 다 풀린 듯 개운하다.
여행사에서 지불하는 마사지 비용(금액은 알 수 없다) 외에 별도로 손님별로 중국 돈 20위안 또는 한국 돈 4,000원의 팁을 준다. 한국 돈도 받는 것을 보면 한국인이 많이 찾는 듯하다. 마사지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곳의 마사지는 건전하여 산행의 여독을 푸는 좋은 방법으로 추천할 만하다.
마사지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여강고성 안에 있는 화새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이다. 호텔이 고성 안에 있다 보니 호텔까지 버스가 들어가지 못해 큰 길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화새호텔은 중국 전통가옥풍의 2층짜리 호텔이다. 내부시설은 현대식으로 고쳤지만 외양은 영락없는 옛날 기와집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이 한 채가 아니라 각각의 대문이 있는 여러 채이고, 그 건물들 사이로 골목길까지 나 있다. 동네의 거의 한 구역을 전부 화새호텔이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일행 중 일부는 술 한 잔 할 겸 여강시내 야경을 구경하러 나갔지만, 성산대형, 예산대사, 주흥선사, 그리고 촌부는 다음 날을 생각하여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화새호텔의 정문과 내부]
옥룡설산(玉龍雪山)
2016. 11. 5. 호도협의 반대편으로 옥룡설산 샹그릴라 코스를 등산하는 날이다.
곤돌라를 타고 해발 3,500m 지점에 내려 옥룡설산의 가장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샹그릴라 코스는 2012년 11월 개방된 옥룡설산 국립공원 내 유일한 정식 트레킹 코스이다(옥룡설산에는 3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샹그릴라 코스만 국립공원 내에 있다). 해발 4,310m에 자리한 설련대협곡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와 해발 3,800m에 자리한 설산소옥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파노라마 코스로 나뉜다.
[옥룡설산 트레킹의 경유지 고도 및 예상 소요시간]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에 식사를 하고 7시에 호텔을 나섰다. 버스로 옥룡설산 국립공원 매표소까지 이동하는 데 1시간 걸린다. 가는 도중에 한 골프장 옆을 지나가게 되는데, 김종선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 골프장은 해발 3,000m가 넘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장타자가 드라이버로 제대로 치면 공이 700m까지 날아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중국이 ‘뻥’이 심한 곳임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골프장에 비하여 공이 멀리 날아갈 것임은 분명하다.
옥룡설산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옥룡설산의 최고봉인 선자두(扇子陡)가 보인다. 옥룡설산은 해발 5,596m로 한라산을 3개 쌓아놓은 것과 맞먹는 높이이다. 운남성에서 매리설산(梅里雪山. 해발 6,74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만년설이 쌓인 13개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꿈틀대며 승천하는 은색의 용을 닮았다고 하여 ‘옥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규모는 길이 35km, 너비 12km이다.
최고봉인 선자두(扇子陡)는 부채를 펼친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만년설이 하얗게 덮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등산 대신 관광용 케이블카(리프트)를 타면 4,5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고산 등반에 자신이 없다며 성산대형께서는 이 방법을 택하셨다.
나시족은 이 산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어 큰 일이 있을 때면 산을 향해 기도를 드리거나 재를 올렸다고 한다.
[만년설로 덮인 옥룡설산. 가운데가 최고봉인 선자두이다]
옥룡설산은 서유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三藏法師)가 구해주기 전까지 500년 동안 갇혀 있던 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서유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여기서 서유기의 관련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자.
손오공은 오래국(敖來國)의 화과산(花果山)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돌에서 태어난 돌원숭이[石猿]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세고 난폭해서 금방 원숭이 왕이 되었고,
도술을 배운 후 지상과 천계를 넘나들며 악행을 저지르고, 급기야 천계에 가서 불노장생의 단약과 복숭아를 훔쳐 먹는 등 난동을 피우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옥황상제의 부탁을 받은 석가여래에게 붙잡혀(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기에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오행산(五行山)에 감금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5백 년 후 손오공은 인도로 불법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에 의해 구출되어 그를 따라 인도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오행산이 옥룡설산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불경을 구하러 인도를 다녀온 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쓴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모델이다. 서유기에서도 그는 당태종의 명으로 불경을 구해 오기 위해 수도 장안을 출발하여 천축국(인도)로 향한다. 그가 가는 방향은 내내 서쪽이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여 공주성(鞏州城)과 하주위(河州衛)를 지난다. 두 곳 다 지금의 감숙성 내에 있는 곳으로 황하의 상류지역이다. 이어서 쌍차령을 지나 양계산(兩界山)에 다다른다.
이 양계산은 이름이 말해 주듯 산을 경계로 동쪽은 당나라 영토이고 서쪽은 타타르족의 영토이다. 바로 이 산에서 삼장법사는 돌 밑에 갇혀 있는 손오공을 보고 구해 주는데, 이때 삼장법사에게 길안내를 하던 유백흠이 삼장법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산의 옛 이름은 본래 오행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황제가 서역 땅을 정벌하고 나라를 안정시켰을 때부터 양계산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양계산을 지난 후 삼장법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화염산도 지난다. 화염산은 현재 신장·위구르 자치지구의 투르판 지역에 있는 산이다. 그런데 옥룡설산은 장안에서 서역의 천축국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1,700km 떨어진 운남성에 있는 것이다. 서역으로 가던 삼장법사가 감숙성에서 느닷없이 발걸음을 돌려 남쪽으로 그 멀리 내려가 옥룡설산을 다녀온 후에 다시 서쪽의 화염산으로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처럼 비행기를 타고 잠시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말이다. 더구나 운남성은 당시 당나라의 영토도 아니었다.
이쯤 되면 손오공이 옥룡설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손오공이 옥룡설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옥룡설산의 신비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지어낸 허구가 아닌가 싶다. 하기야 서유기 자체가 허구이니 허구에 허구를 하나 더 보탠들 어떠랴.
옥룡설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안내소(매점을 겸하고 있다) 건물로 들어가 옥룡설산이 새겨진 모자와 휴대용 산소통을 하나 샀다. 산소통의 모양은 에프킬러를 닮았는데, 부착된 흡입마스크를 끼우고 코 주위에 밀착하여 분사하면 산소를 마실 수 있다. 대략 100회 정도 흡입할 수 있다. 가격은 68위안이다.
범부는 이번에 옥룡설산에서 처음 보아 신기했는데, 나중에 귀국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니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팔리고 있다. 옥룡설산에서는 높은 산에 올라가려니 고산증에 대비하여 필요하다지만, 우리나라에는 고산증을 걱정할 만큼 높은 산도 없는데 어쩐 일이람. 하도 미세먼지와 매연에 시달리다 보니 신선한 산소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이리라.
[옥룡설산 국립공원 안내소]
국립공원 안에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모우평(牦牛坪) 케이블카장으로 이동했다. 이동시간은 50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장의 해발고도가 이미 3,209m, 고산증 증세가 나나탈 수 있는 곳이다. 준비한 팔팔정(비아그라의 국내 복제약) 한 알을 먹고 4인승 곤돌라에 올라탔다. 20분 정도 걸려 해발 3,500m 지점에서 내렸다. 머리가 다소 아프기 시작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옥룡설산의 주봉 선자두가 바로 가까이 다가온다.
[옥룡설산 모우평의 곤돌라]
오전 9시 35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에 앞서 일행이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최종목적지인 설련대협곡(4,310m)까지의 샹그릴라 풀코스를 완주하는 팀이고, 다른 한 팀은 1차 목적지이자 점심식사 장소로 예정되어 있는 설산소옥(해발 3,800m)까지만 갔다가 돌아가는 파노라마코스를 걸을 팀이다. 범부와 예산대사는 풀코스 팀을 선택하고, 주흥선사는 파노라마코스 팀을 선택했다. 풀코스 팀은 나시족의 현지 산악가이드가 따로 안내를 맡기로 했다.
[옥룡설산 트레킹 코스]
설산소옥까지 예상소요시간은 2시간. 비록 고도가 높기는 하지만 표고차가 300m에 불과하여 산행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출발 후 10여분 정도 걸으면 설화사(雪花寺)라는 절이 나온다. 라마교 사원이다. 이름조차 눈꽃이 피는 절이니 한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 절 앞에서 풀코스 팀이 인증샷을 남겼다.
[풀코스 팀. 뒤는 설화사]
설화사 앞을 지난 후에는 야크목장과 산야목장 등이 있는 평탄한 초원지대를 지나기도 하고, 관목지대를 지나는가 하면, 마치 밀림처럼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을 지나기도 한다. 출발할 때 지끈거리던 머리가 고지대에 적응이 되어 가는지 한결 덜하다. 가쁘던 숨도 정상을 찾아간다.
[샹그릴라 코스의 관목지대]
샹그릴라 코스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정표이다. 중국어 이정표 외에 혜초여행사에서 한글로 고도와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도 세워 놓은 것이다. 중국 땅에 있는 높은 산에 한글 이정표라! 그런 이정표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여행사의 노력을 치하하고 싶다.
[중국어 이정표]
[한글 이정표]
한글 이정표를 보고 좋아진 기분을 망쳐 놓은 것이 바로 나시족의 현지 산악가이드이다. 우리말을 못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명색이 가이드라면 등반객, 그것도 모두 초행길인 등반객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낙오자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하건만, 이 가이드는 출발하면서부터 휴대폰에 매달린 채 앞장서 가더니 우리 일행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설산소옥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기만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었다. 길이 외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그 싶은 산속에서 전부 미아가 될 지경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휴대폰에 매달려 있는 사람도 처음 보거니와 도대체 이 사람은 가이드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설산소옥에는 예정보다 빠르게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점심을 얼른 먹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일찍 출발할 요량으로 서두른 것인데, 점심식사 준비가 미처 덜 되어 기다려야 했다.
설산소옥은 해발 3,800m 지점의 너른 평지 잔디밭에 혜초여행사가 만든 일종의 원두막이다. 그래서 다른 여행사가 이용하려면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트레킹 팀이 도착하기 전에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가 먼저 가서 준비하여 점심을 제공한 후 식사가 끝나고 트레킹 팀이 떠나면 요리사도 문을 잠그고 하산한다.
원두막이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까닭에 따뜻한 햇볕 아래 야외에 간이식탁을 차려놓고 식사를 했다. 메뉴는 누룽지 끓인 것이었는데, 맛이 괜찮아 먹을 만했다. 고산 등반 시에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간이식으로 준비한 것이다.
[설산소옥]
식사를 마치고 12시에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참여자는 총 7명이었다. 이 때부터는 고도가 더욱 높아짐에 따라 수시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에 오리털파카를 벗었다 입었다 되풀이해야 했다. 아무래도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숨도 더 찼지만, 잠깐씩 쉬면서 기력을 보충하고 올라가는 것을 반복했다. 문제의 산악가이드는 이번에는 혼자 맨 뒤에 처져서 올라온다. 그 바람에 등산로를 찾느라 좌우를 두리번거려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참으로 본분을 모르는 염치없는 가이드였다.
오후 1시에 해발 4,060m 지점의 여신동(女神洞)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돌리느라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하려니 예산대사께서 당신은 그만 하산하겠다고 하신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해발 4,000m를 넘는 지점까지 오른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일행 중 몇 명은 이미 앞서 올라간지라 그 바람에 한동안 혼자 걸어야 했다.
[여신동. 해발 4,060m]
설산소옥에서 출발할 때 김종선 가이드가 어느 지점에 있든 오후 2시에는 회군하여야 곤돌라의 하산시간을 맞출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서둘러 걸었다. 이 지점부터는 경사가 급하고 길에 모래가 많아 미끄러웠지만 1시 30분에 4,260m 지점의 설산아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일행 중 3명이 다시 회군했다.
[설산아구. 해발 4,260m]
다시 한양나그네 홀로 남아 30분을 더 올라가 2시에 4,300m 지점에 도착했다. 10m만 더 올라가면 최종 목적지인 설련대협곡이지만 이미 충분히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돌아섰다.
비록 최종 목적지 바로 코앞에서 돌아섰지만 어차피 옥룡설산의 정상까지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고, 해발 4,300m 지점에 홀로 서서 멀리 발아래 펼쳐지는 장관들을 혼자 즐기는 기분도 괜찮다. 뒤늦게 나타난 문제의 가이드가 인증샷을 찍어 주어 가이드로서의 유일한 역할을 하였다. 범부보다 앞서 간 2명은 설련대협곡까지 완주하고 돌아왔다.
[설련대협곡 직전. 해발 4,300m. 뒤에 보이는 봉우리들 앞이 대협곡이다]
무릎보호대를 다시 한 번 조이고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갔다. 설산소옥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고, 여기서부터는 설련대협곡까지 완주하고 돌아온 두 명과 함께 쉬엄쉬엄 하산하여 오후 4시 15분에 곤돌라 탑승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7시간 45분에 걸쳐 왕복 총 12.8km를 걷고 나니 성취감과 피로가 전신을 엄습한다. 부지런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젖다 보니 안내소에서 샀던 산소를 마시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3200m 지점으로 내려왔을 때 불현 듯 그 생각이 났고, 서울로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인지라 뒤늦게 개봉하여 다 들이마셨다. 이미 고산증이 없는 지대로 내려온 후인지라 별다른 효용은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호텔을 출발할 때와 역순으로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6시 40분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식사 후 여강고성의 야경을 구경하러 나갔다. 호텔이 여강고성 내에 위치한 까닭에 다녀오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여강고성(麗江古城)
땅덩어리가 큰 중국이 자랑하는 수많은 관광지 중의 하나가 운남성 여강(麗江, 리장)이다. 중국의 서남부에 자리 잡은 운남성은 면적이 39만 4천㎦로 한반도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인구도 4,600만 명이나 된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26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특이한 곳이다. 그만큼 환경이 여러 모로 다양하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심하지 않고 일 년 내내 온화하여 살기 좋은 기후가 여러 소수민족을 불러 모았는지도 모른다. 이는 나그네 혼자만의 추측이다.
운남성의 여강은 중국 내에서도 잊혀진 땅이었는데, 1996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외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지진 피해를 복구하고 신 공항을 건설하면서 드러난 이곳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일상에 세상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그 후 배낭여행과 패키지여행의 명소로 빠르게 부상했다.
여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구시가지인 여강고성(麗江古城)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여강고성은 송나라 말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곳으로 지금도 명·청대의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96년의 대지진 당시에도 800년 된 고성의 집과 도로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100여 채가 넘는 나시족의 전통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강고성의 상가골목]
중국 내 다른 고성들과는 달리 여강고성에는 성벽이 없다. 옛날 여강 통치자의 성이 목씨(木氏)였는데 성벽(口)으로 둘러쌀 경우 세력이 ‘곤(困)’해질 수 있어 성벽을 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성 안에는 이곳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살고 있다. 그래서 나시족이 사용하는 동파문자(東巴文字)를 써 놓은 담벽을 보는 것도 이색적이다.
동파문자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다. 시내버스에도 한자와 동파문자를 병기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동파문자는 마치 한문 서체 중 금문과 비슷하다. 나시족은 동파교를 믿는데, 지금도 종교의식을 행할 때는 동파문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나시족은 모계사회로서, ‘나시’는 흑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흑인처럼 피부가 새카만 것은 아니고,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하여 다소 검은 편이다. 운남성에 주로 거주하는데, 그 숫자가 대략 30만 명을 약간 상회한다고 한다. 여강고성에서는 전통복장을 한 나시족 여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동파문자]
[나시족의 전통복장]
여강고성의 중심거리는 사방가(四方街)이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좁은 골목길이 사방으로 미로처럼 얽혀 있고 각종 물건을 파는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 자체가 이곳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골목길을 따라 마을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많은 수로가 있어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수로에는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이 흐른다. 꽃 장식을 한 수로와 그 위의 돌다리(돌다리의 수가 무려 354개라고 한다), 그리고 수로 옆으로 늘어선 전통가옥들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사방가 표지판과 광장]
[꽃장식을 한 수로와 그 옆의 전통가옥들]
상가 중에서 많은 것이 보이차를 파는 곳이다. 운남성이 바로 보이차의 산지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여강 자체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남쪽의 서쌍판납(西雙版納)이 가장 주된 산지이다. 그런데 가짜가 많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온 터에 값이 하도 천차만별이어서 선뜻 살 생각이 안 든다. 보이차 상점거리를 몇 번 왔가 갔다 하고도 결국 못 사고 돌아섰다. 그런가 하면 근래 들어 운남성에서 커피가 생산되면서 커피 원두나 가루커피를 저렴하게 파는 전문점도 여럿 있다.
아무튼 곳곳에 홍등을 밝힌 여강고성의 야경은 휘황찬란하면서 볼거리가 많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강을 상징하는 모자를 하나 살까 하고 유심히 보았지만 그런 모자를 파는 곳은 발견하지 못했다.
2016. 11. 6. 이번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 비행기로 귀국하는지라 오전에 시간이 있어 10시 40분까지 다시 여강고성 자유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상점들이 반 정도밖에 열지 않아 지난밤에 보았던 화려함은 간 데 없고, 오히려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여강고성 관광은 밤에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썰렁함을 뒤로 하고 여강고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는 열고루(閱古樓)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역시 이른 시각이라 손님이 거의 없이 한가하여 바깥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기왕이면 운남성 보이차를 본고장에 마셔보자고 시켰는데, 기대에 영 못 미친다. 좋은 차는 다 홍콩이나 대만 등지에 나가 있다는 이야기가 정녕 맞는가 보다.
아무튼 차의 맛은 그렇다 치고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여강고성의 모습은 정말 옛날 그대로가 아닌가 싶었다. 1,2층짜리 회색빛 기와지붕만 보일 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옛 멋을 다 버려 놓은 서울의 인사동이나 북촌과 너무 대비되는 광경이다.
[열고루에서 본 여강고성 전경]
엄격한 통제가 가능한 사회주의국가이기에 오히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개인의 사유재산권 보장을 내세워 파괴되어 가고 있는 한옥마을을 오히려 외국인 나서서 지키려고 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오버랩되어 너무 씁쓸하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만이 아니라 서유럽의 도시들을 가도 구도심은 가능한 한 원형대로 보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은 민주국가가 아니어서, 언필칭 ‘재산권 보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매사 돈의 논리에 매몰되어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만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입으로만 자랑만 하면 뭐하나.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자유관광을 끝내고 여강고성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흑룡담(黑龍淡)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천(玉川)공원이라고도 한다.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호수이니 후자의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멀리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보인다. 공원은 무척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호숫가를 따라 명·청시대의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강을 소개하는 사진에 어김없이 나오는 아름다운 다리 오공교(五孔橋. 구멍이 다섯개인 다리)와 정자 득월루(得月樓)가 바로 이곳에 있다. 오공교는 반원의 아치가 맑은 물속 그림자와 합쳐져 마치 완벽한 원처럼 보인다. 공원이 넓어 호숫가를 따라 반 바퀴 도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흑룡담공원. 윗 사진의 3층 정자가 득월루이고, 두 사진의 다리가 오공교이다]
흑룡담공원 부근에 동파문화박물관이 있다. 주로 나시족의 동파문자를 연구하는 곳으로, 동파문자 외에 의복, 장신구 등도 전시하여 놓고 있다. 이곳은 여강미술관도 겸하고 있는데, 마침 안의 넓은 뜰을 둘러싼 회랑에서 서예전을 하고 있어 둘러보았다. 예서체 글씨가 주종을 이루는 게 특색이었다.
[동파문화박물관과 동파문자]
[서예전에 전시된 예서체 작품들]
귀국
이번 일정은 트레킹이 주목적인지라 관광은 흑룡담공원과 동파문화박물관에서 끝내고 인근의 중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공항으로 가 귀국길에 올랐다. 본래 오후 3시 40분 출발예정이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오는 아시아나 비행기가 1시간 연착하는 바람에 여강공항에서의 출발시각이 그만큼 지체되었다.
인천공항에 어차피 밤늦은 시각에 도착하는 것이니 1시간 늦는 게 대수이랴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청사 밖으로 나오니 아뿔싸 공항버스가 끊어졌다. 할 수 없이 서울역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가서 택시로 갈아타고 귀가하니 이미 자정을 넘긴 후였다. 아시아나항공의 전세기 덕분에 알찬 트레킹은 할 수 있었지만, 항공서비스에 관하여는 불만족스러운 면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에 그 내용까지 쓰지는 않으련다. 기껏 훌륭하게 마친 트레킹의 기분을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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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님~ 정말 멋지십니다!! 마치 제가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어쩜 이리도 실감나게 표현하셨는지요. 손오공 이야기도 참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뒤에 보이는 설산과 하늘은 비현실적일만큼 근사해서 마치 합성사진처럼 보일 정도네요.
부실한 체력의 저로서는 오랜 산행으로 다져지신 대법관님의 체력이 너무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직접 눈으로 저런 경치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