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동화 속으로 들어가다


     지난 7월 17일이 초복이었고, 8월 16일이 말복이었다. 복날이 한 달간 지속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온 나라가 찜통 속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급기야 8월 1일에는 서울의 낮 최고 온도가 39.6도로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그렇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8월 3일 돌로미티(Dolomiti)로 트레킹을 하러 출발했다. 당초 의도한 바는 결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더위 탈출의 바캉스를 겸한 셈이 되었다. 한 때 캐나디언 로키와 저울질을 하기도 했지만 작년에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을 한 경험이 돌로미티 쪽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대신 후자는 내년으로 미뤘다.


       주지하듯이 알프스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 있다. 그 중 이탈리아 쪽은 북서쪽으로 몽블랑, 마터호른, 몬테로사 등 해발 4,000m 대의 설산들이 이어지고, 북동쪽으로 해발 3,000m 대의 바위산들이 이어지는데(18개), 이 이탈리아 북동쪽 알프스 지역을 돌로미티(흔히 불리는 돌로미테<Dolomite>는 영어식 표현이다)라고 부른다. 그 면적은 대략 제주도의 세 배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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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미티’라는 이름은 이 지역 산들이 대부분 돌로마이트(白雲石. dolomite)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18세기에 이 지역의 광물을 탐사했던 프랑스 학자 돌로미외(Dolomieu)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산들이 온통 돌산이다 보니 ‘돌로 모든 산 밑에’를 둘렀다 하여 ‘돌로미테’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번 트레킹에는 50년 지기 벗인 담허(淡虛. 김춘수)가 도반이 되었다. 그와는 국내 산행은 여러 번 함께 하였지만 해외 트레킹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에 부부, 모녀, 친구, 단독 등 다양한 조합의 구성원들이 서울, 일산,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 총 18명이 산행에 참가하였다. 트레킹을 주관한 것은 혜초여행사였는데, 인솔자인 손지혜씨 외에 김해관 회장님이 코스 점검 차 동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돌로미티를 가려면 전에는 밀라노를 거쳐서 가야 해 접근성이 떨어졌는데, 아시아나 항공에서 베네치아 행 직항편을 운항하게 되면서 이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그래서 혜초여행사의 ‘돌로미티 하이라이트’ 트레킹에 참가신청을 내고 베네치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2018년 8월 3일 오전 10시 15분이다. 그리고 11시간 30분 걸려 베네치아에 도착하였다(현지시각 오후 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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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한동안은 고속도로가 뚫린 평야지대를 지나지만, 어느 순간 높은 산이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꼬불꼬불 산골길로 접어든다. 동시에 줄지어 기다리는 높은 산봉우리들의 환영인사를 받게 된다. 이 산골길은 꼬불꼬불할 뿐만 아니라 매우 협소하여 대형차는 서로 교행하기가 힘들 정도인데다 많은 곳이 깎아지른 절벽 위로 길이 나 있어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곡예사를 연상케 하는 버스운전사의 현란한 운전솜씨에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베네치아로부터 4시간 걸려 발 디 가르데나(Val di Gardena. ‘가르네나 계곡’이라는 뜻. 돌로미티는 산이 많다 보니 계곡도 많고 그 계곡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의 작은 산골마을인 셀바(Selva)에 있는 볼켄쉬타인(Wolkenstein) 호텔에 도착하였을 때는 현지시각으로 이미 밤 8시가 넘었다. 호텔에서 늦은 저녁식사로 나온 비프스테이크가 뻑뻑하여 맛이 없음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촌부의 식성 탓이려나... 그나저나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것은 무슨 징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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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하이라이트 트레킹 조감도]


2018. 8. 4.(세체다 트레킹)

 

      전날 서울에서부터의 긴 여정에 피로가 쌓였음에도 향후의 트레킹에 대한 설렘과 시차(이탈리아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로 인해 자정이 넘도록 늦게까지 뒤척였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시차를 극복할 때까지 며칠간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일이다. 


      아침식사 전에 마을 구경을 할 겸 거리로 나서니 날씨가 쌀쌀하다. 셀바의 해발고도가 1,563m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1,563m는 남한에서 여덟 번째로 높은 오대산의 정상과 똑같은 높이이다). 돌로미티 트레킹 내내 밤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야 했던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아침 기온은 보통 14℃~16℃ 정도이다. 


     셀바는 알프스의 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초원 위의 아름다운 집들과 깨끗한 거리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작년에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 할 때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도 그랬는데, 이곳에서도 알프스의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들의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모습이 멀리 동방에서 온 촌부를 한없이 부럽게 한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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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의 아침풍경과 볼켄쉬타인 호텔]


      아침 7시 반에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8시 반에 드디어 돌로미티 트레킹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전날의 긴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고려해 이날은 8Km 정도 걸었다. 이번 트레킹의 특징 중 하나가 하루를 오래 걸으면 그 다음날은 다소 짧게 걷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완급을 조절한 덕분에 몸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셀바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산골마을 오르티세이(Ortisei. 해발 1,236m로 셀바보다 저지대이나 규모는 다소 크다. 이하에서는 ‘해발’은 생략하고 고도만 표기한다)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를 탔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고 순식간에 800m를 올라 케이블카에서 내려 몇 걸음 내딛는 순간, 하늘로 뾰족하게 솟은 오들레(Odle) 산군(최고봉인 사스 리가이스<Sas Rigais>가 3,025m)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그 멋진 풍광에 모두들 입이 벌어졌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세체다(Seceda)로 돌로미티를 소개하는 사진들에 꼭 나오는 곳이다. 이후로 6일 동안 계속 이런 기막힌 경치를 접하게 되지만, 첫 번째로 대할 때의 감흥이 아무래도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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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오들레 산군으로 향하는 길의 왼쪽은 아찔한 수직 절벽이고 반대편은 완만한 푸른 초원지대이다. 그 절벽 위로 난 길을 따라 산 바로 밑까지 걸어가는데, 경사가 급하지 않아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는다. 푸른 초원지대에는 이름 모를 온갖 야생화가 한창이다. 새파란 하늘 밑 오들레 산군의 침봉(針峰)을 감쌌다 풀어주었다 하는 흰 구름은 동방 나그네를 환영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하는 것일까.


      오들레 산군은 봉우리들이 워낙 날카로워 아쉽게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 그래서 봉우리 밑에서 방향을 틀어 돌아 내려가야 한다. 소피에(Sofie) 산장(2,392m), 피에라롱가(Pieralonga) 산장(2,291m)을 거쳐 점심식사 장소인 바이타(Baita) 산장(2,099m)까지 가는 이 길은 오들레 산군의 밑을 둘레길처럼 돌아가는데, 가끔 경사가 제법 진 곳도 있지만 대개는 평탄한 편이다.

      길의 전면에서는 셀라(Sella) 산군 곳곳에서 비경이 등장하고, 길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넓은 초원지대 건너에는 사소 룽고(Sasso Lungo. 3,181m)와 사소 피아토(Sasso Piato. 2,955m)가 우뚝 솟아 있다(사소<sasso>는 바위산이라는 뜻). 이 두 산봉우리는 다음날에도 방향을 바꿔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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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3.jpg [바이타 산장 가는 길]


      길이 평탄하다보니 외지에서 온 등산객 말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산책 나온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심지어 생후 두 달밖에 안 된 젖먹이를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후의 계속되는 트레킹 일정 중에도 어린 아이들을 동반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트레킹 첫날이라 이것 보고 감탄, 저것 보고 감탄...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신선놀음으로 여유 있게 걷다 보니 어느새 바이타 산장이다. 점심식사가 예정된 곳으로서, 산타 크리스티나(Santa Christina. 1,428m)로 내려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콜 라이저(Col Raiser) 산장이 바로 옆에 있다.

     이 산장은 주위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했는데, 음식은 그 경치 값을 못했다. 이곳의 점심으로 나온 마카로니 파스타는 한 마디로 이번 여정에서 접한 음식 중 최악이었다. 주문하고 한참 기다려야 한 것은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럴 수 있지만, 파스타를 반만 삶은 것인지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일행 대부분이 반도 못 먹고 포크를 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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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타 산장 앞에서]


      그렇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콜 라이저 산장의 탑승장으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산타크리스티나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산타 막달레나(Santa Magdalena) 마을이 나온다.


      오들레 산군을 가운데 두고 세체다로 올라가는 한쪽 마을이 오르티세이라면 그 반대쪽에 있는 마을이 산타 막달레나이다. 이곳에서는 세체다처럼 높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마을 뒤로 솟아 있는 오들레 산군의 뾰족한 연봉들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어 사진 찍는 명소로 유명하다. 마을 자체도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답다.


      본래 예정은 이곳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물며 마을을 둘러보고 오들레 산군을 조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렇게 맑던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릴 때는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면 될 정도였기에 그다지 괘념치 않았는데,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지나가는 비려니 했으나 좀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비를 맞으면 선발대로 갔던 사람들이 이내 돌아온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버스로 돌아갔는데, 촌부와 외우(畏友) 담허, 그리고 프로 여행가 임병선님(그는 몽블랑 일주 트레킹<TMB>을 마치고 베네치아에서 우리와 합류하였고, 돌로미티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다시 융프라우로 간다고 한다. 가히 철인<鐵人>이다), 이렇게 셋은 좀 더 기다렸다가 비가 약간 주춤해진 틈을 타 막달레나 마을과 그 뒤의 오들레 산군이 잘 보이는 곳까지 가서 그 풍광을 사진에 담아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마을도 아름다웠지만, 마을 입구 초원 위에 따로 홀로 있는 작은 성당이 인상적이었다.
      돌로미티의 산신령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셀바로 귀환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파란 하늘에서 해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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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막달레나 마을과 성당]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셀바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거리 구경을 나섰다. 거리 자체도 아름다운데다 기념품 가게가 많아 돌로미티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살까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그런 모자를 파는 곳은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하늘이 갑자기 다시 흐려지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비가 그쳤을 때는 무지개도 떴다.

     돌로미티 지역은 여름날 오후에는 이처럼 거의 매일 비가 잠깐씩 내린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맑은 공기와 푸른 초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호텔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발사믹 식초(Aceto Balsamico. 집사람이 사오라고 한 모데나<Modena> 상표의 발사믹 식초가 마침 그곳에 있었다)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2018. 8. 5.(알페 디 시우시 트레킹)


      시차로 인해 여전히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이날은 전날과 달리 18.5Km를 걸어야 한다. 트레킹을 마친 후의 숙소도 캄피텔로(Campitello)로 바뀐다. 이런 고산 트레킹이 처음인데다 허벅지 뒤쪽(햄스트링)이 다소 불편한 담허가 은근히 걱정을 하였지만, 막상 아무 일 없이 완주를 하였고, 오히려 다음날부터의 트레킹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전날처럼 아침 7시 반에 식사를 하고 8시 반에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걸려 시우시 알로 스칠리아르(Siusi Allo Sciliar. 1,000m)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발 디 가르데나를 사이에 두고 오르티세이의 반대편 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셀바의 볼켄쉬타인 호텔을 나설 때 무언가 빠진 듯 허전하였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시우시 알로 스칠리아르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등산모자를 쓰지 않고 여행가방에 넣어 보낸 것이다(옷가지 등 여행용품을 담은 여행가방은 여행사에서 따로 다음 숙박지로 옮겨 준다). 마침 곤돌라 타는 곳 옆에 등산용품점이 있어 모자를 하나 살 수 있었다. 핑계 김에 돌로미티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찾았으나 이곳에도 그런 모자는 없었다. 작년에는 체르마트의 호텔에서 등산화를 안 신고 나와 곤혹을 치렀는데, 올해는 등산모자라니... 싫어도 나이 들어감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시우시 알로 스칠리아르에서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올라가면 콤파치오(Compaccio. 1,850m)가 나오고,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 다시 리프트로 갈아타면 파노라마(Panorama. 2,015m) 산장에 도착한다. 이 산장을 중심으로 전후좌우로 말 그대로 초원지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바, 이 초원지대가 바로 유명한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이다. 알페(Alpe)는 알프스 산맥이라는 뜻도 되고 고산지대의 목장이라는 뜻도 된다. 


      알페 디 시우시는 평균 해발고도가 대략 2,300m 정도 되는 고지대로 알프스에서 가장 높고 넓은 초원지대이다(면적이 56㎢로 축구장 8,000개를 합쳐 놓은 규모). 사소 룽고(3,181m), 사소 피아토(2,955m), 덴티 디 테라로사(Denti di Terrarossa. 2,657m) , 스칠리아르(Sciliar. 2,450m)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 초원지대의 사방으로 난 길은 등산객뿐만 아니라 단순 관광객,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 심지어 마차를 타는 사람 등으로 붐볐다. 자동차길도 있다. 이곳은 그늘이 전혀 없지만, 햇볕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 반팔,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도 많았다. 한 마디로 그냥 고지대의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맑은 태양 아래 부담 없이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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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 디 시우시]


      파노라마 산장에서 왼쪽으로 사소 룽고와 사소 피아토, 오른쪽으로 스칠리아르를 두고 그 사이의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전진하다 보면 정면으로 덴티 디 테라로사의 암봉들(그 중 한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을 마주하게 되고,  그 봉우리들 사이의 안부를 넘어가는 깔딱고개인 파소 알페 디 티레스(Passo Alpe di Tires. 2,440m. 파소<passo>는 ‘고개’, ‘거리‘라는 뜻)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고개 밑에 다다르자 인솔자인 손지혜씨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고개를 넘어 산 뒤편을 돌아 파노라마 산장으로 귀환하는 다소 힘이 드는 코스와 이제껏 온 길을 되돌아 파노라마 산장으로 그냥 바로 가는 편안한 코스가 있는데, 어느 코스를 택할지 희망하는 대로 조편성을 하겠다는 것이다. 덧붙여 전자는 시간이 걸려 이곳의 날씨 관계상 오후가 되면 혹시 도중에 비를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저 멀리 동방에서 돌로미티 트레킹을 하러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 후자를 택할 리가 있겠는가, 전원이 전자를 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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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와 고개 중간에서 한 이탈리아인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해서 이 고개를 넘는데, 비록 오르기 쉽게 하느라 지그재그 형태로 길을 내기는 했지만 결코 만만하게 오를 고개는 아니었다. 도중에 만난 한 이탈리아인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브래지어 하나만 걸친 채 윗몸을 다 내놓고 고개를 오르는 구릿빛 피부의 여인은 일광욕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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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를 오르는 구리빛 여인]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져 뒤돌아 보이는 알페 디 시우시의 풍경이 더욱 멋지게 변하기 때문에, 그 맛에 힘든 줄 모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에는 커다란 통나무에 독일어로 이 고개가 로스짠의 안부(鞍部)임을 알리는 ‘로스짠샤르테(ROSSZAHNSCHARTE)’라는 글귀가 새겨진 표지목이 가로로 놓여 있고,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등산객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로스짠은 덴티 디 테라로사의 독일어 명칭이다. 

       돌리미티에서는 이처럼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만 된 표지판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돌로미티가 본래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데서 기인한다. 이 표지목은 확실치는 않으나 형태나 노후 정도로 보아 오스트리아 땅이었을 때 설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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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의 표지목. 사진 중앙은 담허, 오른쪽은 손지혜씨]


       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반대편 경치를 보는 순간 모두 입이 벌어졌다. 뜻밖에도 이제까지 보안 온 초원지대와는 전혀 다르게 거대한 암봉들과 깊은 계곡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돌로미티의 최고봉인 마르몰라다(Marmolada, 3,342m)도 멀리 희미하게 보였다. 만일 고개 밑에서 되돌아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돌로미티는 정말 갈 수 있는 데는 가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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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 너머의 풍경]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며 땀을 식히고 난 후 오른쪽으로 난 돌길을 따라 돌아 내려가면 산모퉁이가 끝나는 지점에 알페 디 티레스(Alpe di Tires. 2,440m) 산장이 나타난다. 흰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푸른 하늘 아래 빨간 지붕이 대비되어 눈에 확 띄는 이 산장이야말로 두목(杜牧)이 읊은 그대로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深處有人家(백운심처유인가)


이다. 멀리 산을 오르니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피어나는 깊은 곳에 인가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가을산(寒山)을 이야기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가을산 여름산을 구별할 일이 아니다.

  우리 일행의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는 이 산장 역시 많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점심으로 나온 사슴고기가 전날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먹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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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 디 티레스 산장]

  

     산장에서 점심 겸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덴티 디 테라로사의 뒤편을 돌아 파노라마 산장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이번에는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져 출발하는 바람에 앞 사람을 놓쳐 도중에 잠깐 길을 잘못 들기도 했으나, 김해관 회장님이 마침 뒤따라오다 정정해 주신 덕분에 곧바로 제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기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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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티 디 테라로사의 뒤편에서. 촌부 옆이 김해관 회장님]


      이 길에서는 사소 피아토와 사소 룽고가 지척에 보인다.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는 그 모습에 더욱 정감이 간다. 덴티 디 테라로사의 뒤편을 다 돌아 몰리그논(Molignon) 산장(2,045m)을 지나면 오전에 파노라마 산장에서 마주했던 초원지대가 다시 펼쳐진다. 사소 피아토와 사소 룽고뿐만 아니라 전날 갔던 오들레 산군과 셀라 산군도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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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의 알페 디 시우시]


      아무데고 사진기만 들이대면 멋진 장면이 찍히는 까닭에 걷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산용 리프트와 곤돌라를 타려면 오후 5시까지는 파노라마 산장에 도착하여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서둘러야 했다. 도중에 “오늘은 왜 비가 안 오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을 하늘이 알기라도 했는지 파노라마 산장을 눈앞에 두고 비가 내린다. 다행히 이슬비 수준이라 5분여를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오전에 올랐던 것의 역순으로 리프트와 곤돌라를 이용하여 시우시 알로 스칠리아로 돌아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발 디 가르데나를 지나 해발 2,200m 되는 고개(파소 셀라<Passo Sella>. 셀라 산군과 사소 룽고 산군 사이의 고개로 처음에 베네치아에서 발 디 가르데나의 셀바로 올 때 반대편에서 넘어온 고개이기도 하다)를 꼬불꼬불 넘어 1시간 30분 걸려 작은 산골마을 캄피텔로(Campitello. 1,448m)의 호텔(호텔 이름도 '캄피텔로'이다)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7시이다.

      한 시간 후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주식으로 나온 생송아지요리(우리나라 한식당에서 먹는 로스편채와 비슷하다)가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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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피텔로 호텔]


2018. 8. 6.(사스 포르도이 트레킹)


      이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전에 거리 산책을 나섰다. 운동도 하고 마을 풍경도 익힐 겸 이른 아침에 하는 이 산책은 범부가 해외에 나가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다.
      간밤에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아침날씨가 쌀쌀하기는 해도 유난히 상쾌하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계곡에는 맑디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르고, 마을 한복판에 있는 성당의 종소리도 정겹게 들려온다. 길을 따라 상점이 늘어선 곳을 걷다 보니 아침기온이 16도임을 알리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아침기온은 매일 30도를 넘고 있다는데, 이 무슨 호강이란 말인가.


      전날과 동일하게 7시 반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 반에 호텔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사스 포르도이(Sass Pordoi)이다. 전날 긴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이날은 완급 조절을 위해 걷는 거리가 5.1km에 불과하다.
      이날부터 운송수단이 대형버스에서 7인승 밴으로 바뀌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산골길을 달리는 데는 이런 차가 훨씬 효율적이고 승차감도 좋다. 현지 가이드 로렌조를 포함하여 19명이 석 대의 밴에 나누어 타고 파소 포르도이(Passo Pordoi. 2,239m.)로 이동했다. 케이블카 탑승장에 있는 등산용품점에서 마침내 포르도이와 돌로미티의 로고가 함께 들어 있는 캡 형태의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4분 만에 해발 2,950m까지 올라가면 사스 포르도이의 마리아(Maria) 산장에 도달한다. 마리아 산장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시설이 파괴된 돌로미티의 재건에 힘을 기울인 마리아 피아즈(Maria Piaz)의 이름을 딴 산장이다. 그녀는 사스 포르도이에 케이블카를 건설한 관광산업 선구자이다. 산장에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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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피아즈 동상]       


         사스 포르도이에서는 지척에 있는 피츠 보에(Piz Boe. 3,152m. 피츠<Piz>는 봉우리라는 뜻)뿐만 아니라, 360도 돌아가며 셀라 산군(북쪽), 사소 룽고(북서쪽), 덴티 디 테라로사(서쪽) 등 이미 보았던 산들뿐만 아니라 마르몰라다(Marmolada. 3,343m. 동남쪽) 등 돌로미티의 명물 산들을 다 조망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오랜 옛날(족히 수억 년 전) 바다에서 솟아오른 것이라고 한다. 가히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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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포르도이의 주위 모습]


       마리아 산장에서 피츠 보에를 바라보며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이내 포르셀라(Forcella) 산장(2,848m)이 나온다. 이 산장 바로 앞의 브이(V)자형 계곡의 모습이 기가 막히게 멋진데, 파소 포로도이에서 걸어 올라오고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케이블카 타기를 거부하는 진정한 산악인들이다. 영화 클리프 행어(Cliff Hanger)를 돌로미티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이 계곡을 가로질러 줄을 매고 찍었던 것은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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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셀라 산장 앞의 V자형 계곡]


       포르셀라 산장을 지나 보에 산장(2,871m)까지 가는 길이 이 트레킹 코스의 백미이다(마리아 산장부터 보에 산장까지 왕복 총 5.1km). 피츠 보에의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암석구간인 이곳에는 나무와 풀이 안 자라고,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어쩌다 야생화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다른 곳처럼 지천으로 볼 수는 없다.


       햇빛 아래 온통 회백색으로 빛나는 백운석으로 이루어진 이 구간이야말로 돌로미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더구나 이곳에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연상케 하는 대협곡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위로 뭉게구름이 수시로 피어올랐다 사라지곤 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빛나는 백운석의 암석지대, 깊은 대협곡,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푸른 하늘... 이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동방나그네를 마치 동화 속의 나라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해리포터가 어디선가 비행담요를 타고 나타날 것만 같다. 그 동화 속의 나라에 들어온 촌부는 대체 누구인가. 현실세계의 인간인 촌부가 동화 속의 해리포터가 되어 대협곡의 암벽에 서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동화 속의 해리포터가 촌부로 변해 암벽에 서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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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도이의 백운석 암석지대]


문득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른다.


장자는 말한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니 틀림없는 인간 나였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이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그렇다. 天地同根(천지동근)이고 萬物一如(만물일여)라고 했다. 하늘과 땅은 그 뿌리가 같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 대협곡 위로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뭉게구름이야말로 우리네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일찍이 득통선사(得通禪師. 1376-1433)가 일갈하지 않았던가.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그 구름이 소멸하는 것이다.
   구름은 본래 그 자체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도 이와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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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석 암석지대에 구름처럼 피어난 동방나그네들]


       보에 산장까지 가는 길은 이곳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피츠 보에 정상에 올라갔다가 보에 산장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이날도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 일행의 당초 예정된 산허리코스보다 두 시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여겨졌고, 이날은 오후 일정에도 여유가 있어 촌부도 그렇게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단체 트레킹을 하는 여행사의 사정상 허용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위험부담이 따르는 개별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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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 보에]


     11시 반에 보에 산장에 도착하였다. 최종 목적지이자 점심식사 장소이다. 주위가 오로지 백운석뿐인 이 황량한 암석지대에서 어떻게 물을 구할 수 있기에 산장이 있는 것일까. 신기하기만 한데, 이곳도 여전히 등산객들로 붐빈다(다만 화장실 세면대의 물이 쫄쫄거리는 것을 보면 물이 풍부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예 숙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날의 점심메뉴는 스파게티와 슈니첼(Schnitzel. 오스트리아의 전통요리로, 본래는 송아지 고기로 만드는데 이날은 돼지고기로 만들었다. 돈까스를 연상하면 된다)로 맛이 괜찮았다. 거기에 담허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온 종갓집 김치를 곁들이니 금상첨화이다. 컵라면 용기처럼 산장에서 제공한 식기가 아닌 것은 사용자가 되가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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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 산장]


      점심 식사 후 마리아 산장으로 케이블카를 타러 돌아가는데 오후의 돌로미티답게 비가 쏟아진다. 비가 하루라도 거르면 오히려 이상하다. 속절없이 20여 분 동안 빗속을 걸어야 했다. 막상 케이블카를 타고 파소 포르도이로 내려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환하게 갰다. 비가 오는 시간을 인력으로 조절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포르도이에서 캄피텔로로 귀환하는 도중에 카나제이(Canazei. 1,450m)에서 내렸다. 캄피텔로보다 규모가 큰 마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상가도 제법 번화하다. 발 디 파사(Val Di Fassa) 지역의 중심에 자리한 까닭에 기본적으로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갖추고 있다. 마침 중심가에 방울기차의 정거장이 있어 1시간 동안 타고 유람을 했는데, 막판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일부구간은 건너뛰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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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제이의 거리 모습]


      카나제이 유람을 마치고 캄피텔로까지 걸어갔다. 20분 정도 걸렸지만, 아기자기한 마을을 관통하고, 초원을 지나고, 물이 흐르는 계곡 옆으로 난 숲길을 걷는지라 지루하거나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걸었다. 그야말로 여유가 넘치는 하루였다.


      캄피텔로 호텔의 식당에서 저녁식사 메뉴로 슈바인학센(Schwein Haxen. 독일의 전통음식으로 우리의 돼지족발을 연상하면 된다)이 나왔는데, 너무 구워 딱딱한데다 짜서 입에 안 맞았다. 도리 없이 샐러드뷔페로 배를 채웠다.
      본래는 저녁식사를 얼른 마치고 시내로 나가 카페에 들러 차나 마시며 돌로미티 산마을의 야경을 즐기려고 했었으나, 식사 도중 다시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통에 포기하고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참으로 비가 여러 가지로 안 도와준다.


2018. 8. 7. (마르몰라다 트레킹)  


       전날 여유 있는 일정을 보낸 만큼 이날은 일정이 빡빡하다. 때문에 평소보다 30분 이른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트레킹 후의 숙박지가 코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1,222m)로 바뀌는 지라 여행가방도 함께 꾸려 나왔다. 


       전날처럼 밴 석 대에 나누어 타고 말가 치아펠라(Malga Ciapela. 1,638m)로 향했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르몰라다(Marmolada. 최고봉인 푼타 페니아<Punta Penia>의 높이가 3,343m)의 두 번째 높은 봉우리인 푼타 로카(Punta Rocca. 3,309m)에 오르기 위해서이다(푼타<Punta>는 뾰족한 봉우리라는 뜻). 


      본래 일정은 먼저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1,919m)로 가서 마르몰라다의 아래로 난 둘레길을 따라 마르몰라다를 조망하면서 말가 치아펠라까지 15km 걸은 후 오후에 푼타 로카에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 수 없을지 모른다는 판단 하에 일정을 바꾼 것이다. 아울러 푼타 로카 하산 후의 일정도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에 있는 산인 피츠 데 구다(Piz de Guda. 2,132m)의 밑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중에 마르몰라다를 더 잘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 로렌조의 설명이었다.
 
       말가 치아펠라로 가는 도중에 페다이아(Fedaia) 호수(2,054m)를 지나게 되는데, 그 물 위로 빙하가 덮인 마르몰라다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 멋진 정경을 선사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어렵사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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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이아 호수에 비친 마르몰라다]
 
      말가 치아펠라에 도착하니 비교적 이른 시각인데도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로 벌써 붐빈다. 케이블카를 타기에 앞서 인솔자 손지혜씨가 준비한 점심도시락(샌드위치와 과일)을 하나씩 나누어 받았다. 푼타 로카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에는 이제까지처럼 식사를 할 수 있는 산장이 없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가 이래서 필요한 것일까, 곧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한번 갈아타긴 하지만 해발 1,638m에서 3,309m까지 오르는 데 케이블카를 이용하니까 금방이다. 암벽등반 장비를 갖춘 전문 산악인조차도 두 발로 오르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텐데 말이다.

      푼타 로카의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360도 돌아가며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기온이 쌀쌀하여 미리 준비해 온 패딩을 꺼내 입는 사람들도 많다. 촌부는 견딜 만한데다 번거롭기도 하여 그냥 주위 경치 조망에 집중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다시피 한 푼타 피에나는 물론이거니와 피츠 보에, 셀라 산군, 사소 룽고 등 이제까지 거쳐 온 산들이 다 보인다. 피츠 데 구다도 저 아래 발밑에 있고, 앞서 언급한 페다이아 호수도 빤히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밖으로 나가면 빙하를 밟아 볼 수도 있다. 추락 방지용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와는 달리 이곳에는 난간이 없어 사진 찍기에도 좋다. 물론 절벽 밑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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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 로카 전망대에서 본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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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 로카 전망대 밖의 빙하 위에서]


      푼타 로카에서 하산하니까 오전 11시다. 말가 치아펠라의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10 여분 거리에 있는 피즈 데 구다 둘레길 초입에 들어서 단체로 스트레칭을 한 후 시계방향으로 둘레길 산행을 시작했다.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은 완만한 오르막인데 그늘이 져 더운 줄 몰랐고, 오히려 각종 나무와 풀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걸으니 상쾌하다. 가다가 뒤돌아서면 파란 하늘 아래 마르몰라다의 자락들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의 모습이 선명하고, 우애 깊은 형제처럼 나란히 선 다섯 봉우리가 자태를 뽐낸다. 오봉능선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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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28.jpg [마르몰라다의 케이블카와 오봉능선]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이런 유유자적이 이어지지를 못했다. 앞에서 길을 인도하던 로렌조가 당황한 듯 얼굴색이 변했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이 무너져 전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오던 길로 혼자 부리나케 내려갔다. 잠시 후 환한 얼굴로 나타난 로렌조가 다른 길을 찾았다며 따라 오란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길로 가던 것도 잠시, 20분도 채 안 돼 로렌조가 다시 낭패한 얼굴을 한다. 이 길마저 막힌 것이다.
      결국 피츠 데 구다의 둘레길을 돌며 마르몰라다를 조망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앞서 출발했던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되돌아갔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1 시간여를 헛걸음한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앉은 김에 쉬어 간다’고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돌아온 김에 그곳의 노천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손지혜씨가 애써 준비한 도시락의 맛이 별로다. 샌드위치의 빵이 너무 딱딱하다. 카페에서 콜라를 시켜 함께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산행 도중에 산장이 없어 이처럼 도시락을 준비하여야 할 때는 차라리 슈퍼마켓에 들러 각자 기호에 맞게 준비하게 하는 것이 낫다(작년에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 때는 그렇게 했다).


      점심식사 후 걸어서 소토구다(Sottoguda. 1,252m)로 이동했다. 소토구다는 피츠 데 구다 밑에 있는 마을인데(소토<Sotto>라는 말 자체가 ‘산 밑’이라는 뜻이다), 말가 치아펠라에서 소토구다로 가는 곳에 길이 2km, 높이 100m에 이르는 길고 깊은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세라이 디 소토구다(Serrai di Sottoguda)이다.

      옛날에는 이 협곡에 난 길이 말가 치아펠라와 소토구다를 잇는 유일한 통행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협곡 위로 대체도로가 생겨 이 협곡의 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러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되어 있다. 당초 예정대로 피츠 데 구다 둘레길을 시계방향으로 돌았을 경우에는 소토구다를 거쳐 이 협곡을 통과해 말가 치아펠라로 귀환했을 텐데 이제는 그 역순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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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이 디 소토구다 협곡]                          



       길옆으로 제법 상당한 양의 물이 흐르는 이 협곡은 자연보호구역으로서, 한여름에도 시원할 뿐만 아니라 경치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군데군데 볼 만한 곳에는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 중 앙증맞게 작은 성당, 십자가 예수상, 성모마리아상, 폭포 등이 과객의 관심을 끌고, 협곡의 높은 곳을 가로지르는 교량과 그 위를 달리는 차량들이 양념으로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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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31.jpg [협곡의 성당과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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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곡을 가로지르는 교량]


     성당, 십자가 예수상, 성모마리아상은 그 옛날 유일한 통로인 이 좁은 협곡을 지나야 했던 사람들이 낙석, 눈사태, 짐승 등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햇빛을 가릴 정도로 협곡이 깊은 까닭에 그들의 염원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산골마을 소토구다는 이제까지 보아온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예쁘게 가꾸어진 아담한 산골마을이다.  오후 4시에 우리 일행을 태우고 갈 밴들이 올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여유가 있어 모처럼 자유시간을 가졌다. 마을을 둘러보고 기념품가게도 들어가 보고 하는데, 누가 돌로미티가 아니랄까봐 그러는지 갑자기 또 비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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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구다의 모습]


     그래 비도 피할 겸 길옆의 한 카페를 찾았다. 차를 한 잔 주문하려니까 이탈리아인 점원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들어간다. 뜻밖에도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다. 잠시 후 다른 여자 직원이 나와 주문을 받는데 동양인이다. 네팔에서 왔다고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자주 가다 보니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 네팔인을 만나면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세 번이나 트레킹 코스를 바꾼 끝에 돌로미티의 비가 오는 작은 산골마을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알프스 풍광을 바라보는 낭만까지 즐길 줄이야... 그래서 세상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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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구다의 카페에서. 산진 왼쪽부터 박해준님, 김해관님, 담허, 촌부]


       밴을 타고 꼬불꼬불 산골길을 지나 오후 5시에 코티나 담페초의 라자디라(Lajadira)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번 일정 중 돌로미티 지역에서의 마지막 숙박지이다. 호텔은 코티나 중심가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한적한 곳에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4성급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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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나 담페초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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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디라 호텔]


       예정된 저녁식사 시각인 7시 반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혼자 걸어서 시내 중심가로 갔다. 코티나 담페초는 돌로미티의 중심지로 가장 큰 도시이다. 일찍이 1956년에 동계올림픽도 열렸다. 그런 만큼 시내 중심가는 엄청 번화하다. 마치 서울의 명동거리를 연상케 할 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대형 쇼핑센타를 비롯하여 각종 명품가게, 호텔, 음식점, 카페 등이 즐비하다. 그 한복판에 성당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관광도시에서 기념품가게를 찾기가 힘드니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한 군데서 코티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구입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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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나 담페초의 중심가]


      호텔의 저녁식사는 4성급답게 푸짐했다. 부실했던 점심에 비해 대조적이다. 샐러드바에는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주식으로는 갈비살 스테이크와 송아지찜 중 택일이 가능했는데, 촌부와 담허가 하나씩 시켜 골고루 맛을 보았다.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걸까.  


2018. 8. 6.(라가주오이 트레킹)


      처음으로 아침 6시에 모닝콜이 되는 호텔에 묵었지만, 이날도 그 전에 일어났다. 이제는 시차에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였지만, 아침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면 출발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라가주오이(Lagazuoi) 트레킹(총 거리 5.8km) 외에 친케토리(Cinque Tori)와 파소 지아우(Passo Giau)도 가는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호텔에서 전날처럼 밴을 타고 출발하여 아침 8시 40분 파소 발파롤라(Passo Valparola. 2,168m)에 도착했다. 이곳 자체가 높은 고개인지라 전망이 좋았지만, 이날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라가주오이 산장(2,752m)에 도착하면 360도의 파노라마 경치가 펼쳐진다고 하여 가슴이 설렜다. 오늘은 또 어떤 장관을 대하려나...


      간단히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전에 없이 시작부터 가파른 깔딱고개이다. 지그재그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올랐다. 도중에 만발한 야생화들 중에서 에델바이스가 한 무더기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었다면 이 꽃을 과연 알아보기나 했을까.

       세상 만물 중에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어찌 이 꽃뿐이랴. 하나하나에 각기 주어진 운명이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촌부가 지금 이곳을 오르는 것조차도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표를 따라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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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


      숨이 차게 한 시간을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인다. 1단계 고갯마루에 도착한 것이다. 푸른 초원지대 너머로 토파네(Tofane) 산군의 바위산들과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단체 사진도 찍으면서 이곳에서 30여분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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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고갯마루. 뒤는 토파네 산군]


      갈 길이 머니 마냥 쉴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산을 오른다. 라가주오이 산장까지는 내리막은 없이 계속 오르막일 뿐이다. 물론 그늘도 없다. 이제는 초원도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전면과 좌우로 바위산뿐이다. 그나마 1단계 고갯마루까지보다는 경사가 완만해 다행이다. 한 쪽은 올라가야 할 밋밋한 산인 데 비하여 반대쪽의 줄 서 있는 암봉들은 근육질의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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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고갯마루 가는 길(되돌아서서 촬영)과 고갯마루]


       풀도 안 자라는 삭막한 산길인데도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가족 단위 산객들을 종종 마주쳤다. 파소 팔자레고(Passo Falzarego. 2,109m)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라가주오이 산장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일정을 짰으면 땀 흘리지 않고 편할 텐데... 아니다, 편한 것을 찾기로만 한다면야 굳이 멀리 동방에서 여기까지 올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고개를 저어 순간의 망상을 떨쳐 버렸다.


       다시 한 시간 걸려 2단계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고도가 높아졌으니 시야가 먼저보다 더 트였지만, 초원지대는 없다. 고갯마루 저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보이는 것은 바위산뿐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향했다. 다시 경사가 급해지고 길에 모래가 깔려 미끄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길에서는 이제까지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군대가 바위에 파 놓은 참호들이다. 사실 돌로미티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오스트리아 땅이었다. 전후에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진 대가로 이 땅을 승전국 이탈리아에 넘겨주어야 했다. 그 영향으로 돌로미티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어 외에 독일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곳의 지도나 각종 표지판에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심지어 독일어로만 되어 있는 표지판도 종종 눈에 띈다. 당시 전쟁을 위해 만들었던 군사도로가 지금은 트레킹 루트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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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군이 파 놓은 참호]


      섣불리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돌로미티를 이탈리아에 넘겨 준 오스트리아가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성황인 지금의 돌로미티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돌로미티는 겨울 스키시즌인 12월부터 4월까지는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사람들이 스키를 타러 많이 오고, 여름에는 독일 사람들이 트레킹, 산악자건거 등 각종 레포츠나 휴가를 즐기러 많이 온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러시아와 패전국 독일에서 온 사람들이 돌로미티에서 돈을 제일 많이 쓴다는 게 흥미롭다. 제1차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와 싸운 이탈리아는 사실 그 전까지 독일, 오스트리아와 3국 동맹을 맺었던 사이였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낮 12시 10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침내 라가주오이 산장(2,752m)에 도착했다. 산장 주위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절벽 위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는데 오금이 저린다. 그렇지만 이 또한 돌로미티 트레킹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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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서]


      산장에서는 360도 돌아가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제까지 올라오며 보았던 토파네 산군, 전날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던 마르몰라다는 물론이고, 피츠 보에를 비롯한 셀라 산군도 보인다. 또 곧 이어서 갈 친케토리(Cinque Tori)도 가까이 보인다. 그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산들은 그 정상에 올라서면 주위에 온통 산밖에 안 보이는데, 이곳 돌로미티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 것일까. 


      라가주오이 산장은 돌로미티에 있는 수많은 산장들 중에서 전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등산객들 외에 일반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은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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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주오이 산장과 주변 풍광]


      사람들로 시장바닥처럼 붐비는 이곳 산장의 바깥 테라스에 내놓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했다.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주길 기다리는 것은 식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지라 인솔자 손지혜씨와 현지 가이드 로렌조가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양고기 구이와 스파게티, 샐러드가 나왔는데, 백두산(2,744m)보다도 높은 해발 2,752m나 되는 높은 돌산 위의 산장에서 기대 이상의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높은 곳에서 식사를 하느라 이동을 하지 않고 머물다 보니 산을 오르며 흘렸던 땀이 식어 추위를 느껴 거위털 패딩을 꺼내 입었다.


       점식사를 마치고 잠시 더 머물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파소 팔자레고로 하산했다. 이곳에서부터 친케토리 행 리프트를 타는 바이 데 도네스(Bai de Dones. 1,889m)까지 2.5km는 숲길이다. 출발하려니 빗방울이 뿌린다. 얼른 비옷을 꺼내 입었는데 금방 그친다. 돌로미티 특유의 날씨가 또 요술을 부리는 것이다. 비옷을 벗어 도로 배낭에 넣고 본격적으로 걸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완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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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데 도네스 가는 숲길]


      걷다 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얕은 계곡이 나와 모두들 탁족(濯足)을 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물이 매우 차다. 발을 물에 담그고 1분을 견디기 힘들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 탁하면 발을 씻으라(濁兮 可以濯我足<탁혜 가이탁아족>)’고 했는데, 이 맑은 물에 갓 대신 발을 씻어도 되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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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


      탁족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굴원(屈原)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되새겨 본다. 중국의 전국시대 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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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나라의 대부이었던 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나 하릴없이 멱라수(汨羅水) 강가를 거닐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마침 고기 잡는 어부가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까닭을 물었다. 이에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 홀로 맑았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었소(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거세개탁아독청 중인개탁아독성>). 그래서 관직에서 쫓겨났다오.”


굴원은 또,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몸을 새로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터는 법이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신목자필탄관 신욕자필진의>). 차라리 강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망정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는 없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부가 그런 굴원을 오히려 탓하며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으면(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됩니다.”


어부의 말은 한마디로 세상이 맑으면 맑게 맞춰 살고, 세상이 흐리면 흐리게 맞춰 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굴원은 끝내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BC 278년 5월 5일의 일이다.   


       남쪽으로 난 숲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 바이 데 도네스에 도착했다. 리프트를 타고 친케토리로 올라가는데,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손지혜씨 말이 그리 멀지 않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는 우리 일행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친케토리(Cinque Tori. 2,137m. 친케는 다섯, 토리는 탑이라는 뜻)는 다섯 개의 탑 모양 바위가 산 위에 모여 있는 곳이다. 직벽의 바위들이라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아찔한 암벽을 잘도 기어오른다.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다. 알프스에서도 유명한 임벽등반지 중 하나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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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케토리]


      바위들이 워낙 거대하여 다섯 개 전부를 한 바퀴 돌려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래도 처음에는 한 바퀴 들러볼 요량이었으나 결국 중간에 회군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놀라운(?) 광경을 하나 접했다. 한 어린이가 언덕 위의 벤치에 혼자 앉아 공부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모나 선생님 등 인솔자로 생각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너무 기특해서 한참동안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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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삼매경의 어린이]


    그 밖에 친케토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라가주오이와 달리 이탈리아군들이 구축해 놓은 참호들을 볼 수 있다. 오전에 지나온 라가주오이를 비롯한 토파네 산군을 되돌아보며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별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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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군이 파 놓은 참호]


       친케토리에서 다음 행선지인 파소 지아우(Passo Giau. 2,236m)까지는 걸어서 2 시간 걸린다. 실제로 다섯 개의 바위 앞길에 지아우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손지혜씨더러 예정대로 차로 이동하지 말고 걸어가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 한다. 늦어도 5시까지는 파소 지아우에 도착해야 그 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는데, 지금 사람들이 지쳐 있어 두 시간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촌부 혼자라도 걸어서 5시까지 지아우로 가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안 될 일이다. 단체로 트레킹을 왔는데, 멋대로 개별행동을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쩔 것인가. 피츠 보에에서처럼 혼자 아쉬움을 달랬다.


       리프트를 타고 바이 데 도네스로 다시 내려가 대기 중이던 밴에 몸을 실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그만큼 올라가니 파소 지아우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라 구셀라(Ra Gusela. 2,595m)의 남벽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벌어졌다. 돌로미티를 소개하는 명장면 중의 하나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냥 ‘멋있다’는 말 외에 달리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그 암벽의 좌우로 날개처럼 이어지는 산군들이 훌륭한 조연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암벽 앞의 넓은 초원에서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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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소 지아우에서 본 라 구셀라 남벽]


      경치가 아무리 좋은들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맬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아침에 떠나온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도중에 촌부를 포함하여 희망자들(총 7명)은 코티나의 중심가에서 내렸다. 시내 구경도 하고 필요한 사람들은 쇼핑도 할 겸 겸사겸사였다. 호텔에서의 저녁식사가 7시 반에 예정되어 있는 만큼 그 전에만 돌아가면 되었다.


      담허가 쇼핑센터에서 우산을 하나 산 것 외에는 달리 살 만한 게 없어 촌부와 담허는 여기 저기 시내 구경을 하다 한 노천카페에 들렀다. 콜라와 함께 주문한 작은 피자도 맛이 좋았지만(그러고 보니 이번에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먹어본 피자이다), 야외에 놓인 의자에 기대어 주변 거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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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나 담페초의 노천카페]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6시 50분이다. 잠시 쉬었다가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훌륭한 만찬이었다. 별 4개짜리 호텔다웠다. 전채로 수프와 새우샐러드, 주식으로 연어스테이크와 칠면조스테이크(둘 중에서 택일), 후식으로 딸기와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정식코스의 만찬이다. 해외여행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어찌 빼놓으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준비해 준 여행사측에 감사를 표한다.   


2018. 8. 9.(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트레킹)   


      마지막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트레킹이 끝나면 베네치아로 간다. 그래서 아침 6시 모닝콜에 상관없이 일찍 일어나 짐을 다 정리하여 여행가방에 넣었다. 전날처럼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했다.    

      이날은 베네치아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이동수단이 대형버스이다. 목적지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코티나 담페초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중간에 미주리나(Misurina) 호수(1,752m)를 지나는데, 돌아갈 때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다.


      정식 명칭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보다는 약칭 ‘트레치메’로 더 많이 불리는 트레치메는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풍광이 그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등산객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로 매우 붐비고, 트레치메의 주차장은 마치 성수기 설악산의 설악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들로 꽉 찬다. 이날도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일본인, 중국인 깃발부대 관광객들이 길을 점령하는 통에 정작 등산객들은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현지 이탈리아인들도 가족단위로 많이 보였는데, 반려견까지 데리고 온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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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치메의 주차장과 인파]


       트레 치메의 트레(tre)는 셋을 뜻하고, 치메(cime)는 봉우리를 뜻하는 치마(cima)의 복수이다. 트레치메는 결국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곳이라는 뜻인데, 그 봉우리들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유명해졌다.

       가운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치마 그란데(Cima Grande. 2,999m)이고, 서쪽의 두 번째 높은 봉우리가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3m), 동쪽의 가장 낮은 봉우리가 치마 피콜라(Cima Piccola. 2,857m)인바, 치마 그란데는 직벽의 높이만 350m에 이르러 암벽등반 장소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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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50.jpg [트레치메의 앞뒤 모습]


      사실 돌로미티를 처음 오면서 이 트레치메를 먼저(또는 이곳만)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경이로움 그 자체이고 입이 벌어질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 5일 동안 돌로미티의 하이라이트를 보아온 촌부의 눈에는 또 하나의 아름답고 웅장하고 멋진 풍광일 뿐, 유난히 더 감흥을 주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세 봉우리 자체보다는 주변의 계곡과 산들이 연출하는 풍광에 눈이 더 갔다. 5일 동안 한계효용이 그만큼 체감한 것이다.    


      세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도는 총거리 9.5km 트레킹의 시작지점인 아우론조(Auronzo) 산장(2,320m)에서 오전 8시 50분에 시계 반대방향으로 출발하였는데, 다음에 나오는 라바레도(Lavaredo) 산장(2,344m)까지 한 시간 정도는 인파로 인해 빨리 걸을 생각을 아예 포기해야 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면 제법 경사가 심한 길(모래가 깔려 미끄럽기도 하다)을 치마 피콜라 바로 밑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를테면 고개를 하나 넘는 셈이다. 그래서 일반 관광객들은 라바레도 산장에서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힘들더라도 이곳을 통과해야 세 봉우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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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피콜라 밑으로 올라가는 고개]


      이 고갯마루를 향해 오르다 유난히 파란 하늘을 보면서 문득 ‘高無高天還返底(고무고천환반저)'라는 선시(禪詩)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랬다, 그 파란 하늘보다 더 높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하늘이 정작 토레치메의 바위와 고개에 닿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높고 낮음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별하는 마음의 산물일 따름이다. 이 싯구의 이어지는 구절인 '淡無淡水深還墨(담무담수심환묵)' 또한 이를 다시 확인한다. 물보다 더 맑은 것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물이 정작 깊이 들어가면 검게 되는 것이다.


      치마 피콜라 바로 밑의 고갯마루에 서면 멀리 로카텔리(Locatelli) 산장(2,405m)이 보인다. 알페 디 시우시 트레킹 때 들렀던 알페 디 티레스 산장만큼이나 白雲深處有人家(백운심처유인가)이다. 양자의 해발고도도 비슷하다. 이 로카텔리 산장은 무엇보다도 트레치메의 세 봉우리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인기가 높다.
      당연히 사람들로 붐빌 수밖에 없는데, 가장 붐빌 점심시간대인 낮 12시 10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지혜씨가 용의주도하게 미리 확보해 놓은 좌석에서 여유 있게 점심을 포식할 수 있었다. 양고기구이, 돼지고기 슈니첼, 소세지, 샐러드 등으로 돌로미티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푸짐하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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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텔리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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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본 세 봉우리]


      식사가 끝나갈 즈음 혜초여행사가 주관하는 돌로미티 알타비아(Alta Via) NO 1. 종주팀이 산장으로 들이닥쳤다(알타 비아는 돌로미티의 산악종주길을 의미하는데, 그 길이 여러 개여서 번호를 붙여 구별한다). 인솔자 정연수씨는 구면이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우리 일행은 이 종주팀에게 자리를 내 주고 산장을 나섰다. 산장 뒤에 제법 큰 호수가 두 개 자리 잡고 있었다. 자칫 놓칠 뻔한 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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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텔리 산장 뒤의 호수]


       세 봉우리를 오전의 반대편에서 보고 걷는 길은 로카텔리 산장에서 경사가 제법 되는 내리막으로 시작하여 초원지대를 잠깐 지났다가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오르막길에서 세 봉우리의 맞은편으로 보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근육질의 바위산과 깊은 계곡! 돌로미티의 어디를 가도 만나는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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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봉우리의 맞은편 모습]


       오르막길에 있는 두 개의 작은 호수를 보느라 잠깐 지체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날도 돌로미티에서 오후가 되면 통과의례로 으레 오는 비려니 하고 전과 마찬가지로 배낭에서 비옷 웃옷만 꺼내 입었다. 이내 도로 배낭에 넣을 텐데 비옷 바지까지 꺼내 입느라 수고를 할 게 무엇이냐는 심사였다. 


      그런데 이게 큰 오산이었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내렸고, 이 비는 아침에 버스로 이곳에 왔을 때 도착했던 주차장에 다다르기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줄기차게 내렸다. 비옷을 안 입은 아랫도리가 다 젖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옷을 입은 팔의 어깨부분까지 다 젖었다. 그 좋은 날씨 속에서 6일을 보내더니 대미를 장대비로 장식할 줄이야.  돌로미티 산신령이 무엇이 서운했길래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돌로미티를 오려면 이 정도의 비는 늘 각오하고 오라는 뜻일까.
 
      트레치메에서 하산하기 위해 버스를 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로 돌아왔다. 거 참 한 시간만 참아주지... 덕분에 산 밑에 있는 미주리나 호수는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으나, 산신령의 심술이 새삼 떠올라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없어 미주리나 호수의 수면이 잔잔하여 호수 위의 산 모습이 물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는데, 몇몇 물오리가 떠다니며 물결을 일으켜 방해를 한다. 그 오리들은 생존의 문제이고 인간은 단순히 구경의 문제이니 그들을 어찌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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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나 호수]

 

      미주리나 호숫가에 잠시 머물며 기념사진을 남기고 베네치아 행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3시간 후면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이제는 그때까지 잠이나 잘 일이다.

     이날 베네치아에 도착하여 숙박을 한 후 다음날 오후에 인천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짧게 베네치아 관광을 하였는바, 이 글의 성격상 그 부분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만 베네치아에서 서기 1720년에 문을 연 플로리안(Florian) 카페(괴테, 바그너, 바이런 등이 단골로 찾았다는 곳이다)에 들러 차 한 잔 한 사실은 부기하여야겠다. 지난번에 갔을 때 수리 중이어서 못 들어간 아쉬움의 여진이 그동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외우(畏友) 담허를 비롯하여 이번 일정을 함께 하여 주신 모든 분들과 혜초여행사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글을 맺는다.(2018.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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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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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이명규

2018.08.23 19:05:20
*.70.14.30

범의거사님,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비록 땅은 이태리 땅이었지만, 두목 득통 굴원이 같이 걸었던 선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소생들도 한번 데려가 주십시오.

우민거사

2018.08.24 00:01:09
*.178.175.190

인왕산 둘레길조차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데불고

어이 가리나~?

돌로미티 천리를 어이를 갈거나....

우민거사

2018.10.16 10:26:05
*.178.175.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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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그 일부를 인용한 두목의 싯귀를 쓴 성종임금의 어필이다.

명성에 걸맞게 명필이다.

우연히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이곳에 올린다.

시의 전문을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멀리 가을산을 오르니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인가가 있네.
       수레를 멈추고 느긋하게 늦 단풍을 즐기노라니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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