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동 보시게


  벗이여, 안녕하신가?


   평생을 훈장님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지적 갈등에 목말라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에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그대의 모습에서 경외심을 느낀다면 너무 거창한가? 중국어 자격시험은 잘 치르셨는지?

    주유천하하며 세월을 낚고 있는 운수납자는 그대가 중국어와 씨름하고 있었을 지난 3·1절 연휴 기간에 수도산(修道山. 1,317m)에 다녀왔네. 아니 수도산이 품고 있는 암자인 수도암(修道庵)에 다녀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네. 

  
    촌부가 수도암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시고 현재 안국선원장으로 계신 수불스님으로부터 이 암자에서 새벽에 바라보는 가야산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일세.

   내년이면 지공(地空)선사가 될 나이가 되도록 호기심이 한 번 발동하면 기어이 찾아나서는 치기를 못 이겨 벼르던 끝에 이번에 길을 나선 것이라네. 도반으로 담허(김춘수)와 예산대사(홍경식. 경복고 44회 선배)께서 동행하셨네. 아래는 다녀온 이야기일세.

     

    수도산에 있는 수도암은 통상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까지 가서 그곳에서 국도를 이용하여 접근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사흘간의 연휴로 인해 경부고속도로가 대전을 지날 때까지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다. 요새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어려운 경제도, 연휴를 맞아 봄나들이에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힘겹게 대전을 지나자 T맵이 김천이 아닌 무주를 거쳐 가라고 안내를 하여 그 쪽으로 갔더니 다행히 더 이상은 차가 밀리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수도암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6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방배동에서 고작 200km 떨어진 곳인데 말이다. 담허가 장시간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수도암은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암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민족문화대백과에 실린 이 절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워 이를 중심으로 해서 여기에 정리·인용한다. 


    수도암은 서기 859년(신라 헌안왕 3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국사는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이래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전소된 후 근래에 법전스님(조계종 제11,12대 종정 역임)이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약광전(藥光殿), 선원(禪院), 관음전(觀音殿), 나한전(羅漢殿) 등이 있고, 보물로 약광전의 석조약사여래불좌상(제296호), 3층 석탑(제297호), 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제307호)이 있다.  


    보물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放光)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주목을 받는데, 이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서 흔하지 않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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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광전의 석조약사여래불좌상]


     대적광전에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그 크기가 거의 석굴암의 그것만큼 되는 커다란 불상으로(석굴암 불상보다 80㎝ 작다) 9세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무엇보다도 지권인(智拳印.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의미)을 한 채 은은하게 짓고 있는 미소가 압권이다. 돌에 그런 조각을 한 장인의 솜씨가 실로 대단하다.

     이 불상은 본래 경남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 이 커다란 불상이 완성된 후 그 운반에 고심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등에 짊어지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그만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이에 노승이 수도산의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넝쿨을 모두 없애라고 하였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넝쿨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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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3층 석탑은 도선국사가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대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동탑과 서탑)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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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중 동탑]


    도선국사가 이 절터를 발견하고 춤을 추었을 정도의 명당이라는 이야기에 걸맞게 한낱 촌자의 눈에도 참으로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산(主山)인 수도산은 해발 1,317m나 되는 높은 산이고, 그 산의 7부 능선 쯤 되는 곳(해발 950m)의 양지바른 곳에 좌청룡 우백호가 균형을 이뤄 좌우에서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전면의 안산(案山) 뒤로 보이는 조산(祖山)인 가야산은 피어나는 연꽃 모양을 하고 있으니(그래서 연화봉<蓮花峰>이라 부른다), 이 어찌 명당이 아니며 도솔천이 따로 있으랴.  촌부도 세상 인연 끊고 이곳에서 수도나 해 볼거나. 하지만 그렇게 해서 득도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온갖 번뇌와 탐진치(貪瞋癡)의 노예가 되어 있는 무지렁이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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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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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삼층석탑, 대적광전, 약광전]


   주지 원직스님(법전스님의 상좌였다)은 소탈하신 분이다. 초면이었지만 저녁 공양 후 꾸지뽕(구찌뽕)차, 보이차, 녹차를 번갈아 타 주면서 덕담을 하시는 모습에 꾸밈이 없었다. 계율을 지키며 참선하랴, 선방에서 수도중인 십여 명의 수좌들(동안거가 끝났음에도 이곳 선원에는 여전히 수도승들이 머물며 도를 닦고 있다) 뒷바라지 하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밭을 갈고 한 해 농사 준비하랴, 영일이 없으신 듯하였다. ‘출가하면 일 안 하고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일이 너무 많아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시는 바람에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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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과 함께]


    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 아니면 기가 센 천하 명당에 들어와서인가, 밤이 깊도록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세상모르고 자는 담허가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에 나오는 그대로 ‘전전반측에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꿀 수 있나’였다. 하기야 촌부가 호접몽을 꿀 일이 있으랴만... 나중에 들으니 옆방의 예산대사도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잠이 설핏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 예불시간(새벽 3시)임을 알리는 도량석 목탁소리에 눈이 떠졌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얼마 만에 보는 별이던가.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머리 위에서 또렷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법당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은은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전각과 석탑이 그 별들과 어울려 나그네의 소매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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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불시간의 대적광전]


     봄이 오는 길목이긴 하지만, 해발 950m의 깊은 산중이라 기온이 차다. 대적광전에서 진행된 새벽예불에 참여한 사람은 주지스님을 비롯한 스님 두 분, 재가자인 예산대사와 촌부, 이렇게 네 명이 전부였다. 예불 끝부분에 낭송하는 반야심경의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이 바로 이런 것일까. 법당이 꽉 차야만 찬 것이 아니고 비었다 해서 빈 것이 아니리라. 아무튼 그야말로 심심산골의 도량, 그 자체였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잠깐 허리를 펴나 싶었는데, 아침 공양 시간(아침 6시 20분)이다. 여명이 희미하여 아직은 사위(四圍)가 어두운 하늘에 잔월이 남아 객을 반긴다. 간밤에 잘 잤냐고 인사하는 것 같다. 그 달 주위의 남은 별들도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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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동녘 하늘의 잔월]


    수도암의 여러 가지 매력 중 하나가 세끼 공양이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공양주보살의 음식솜씨가 대단하여 오신채를 하나도 안 쓰고도 천연재료를 이용하여 갖가지 반찬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제공한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열댓 가지에 이른다. 거의 채식 뷔페 수준이다. 이에 더하여 가마솥에 직접 달인 쌍화탕을 내 주시는데, 그 손길이 마치 관세음보살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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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의 아침 공양 식단]


    아침 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대적광전 앞으로 갔다. 아침 7시가 되자 가야산 왼쪽으로 하늘이 붉어지면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필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어 해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떠오르는 해의 옆에 있는 가야산 정상의 아스라한 모습이 정말 멋지다. ‘연화봉’(蓮花峰)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그 앞에 있는 산 위로 마치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오르듯 머리를 내밀고 있다. 다만 새벽예불 시간 때의 별이 쏟아지던 청명한 하늘이 그 사이 다시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뿌옇게 되는 바람에 실루엣처럼 흐리게 보여 몹시 아쉬웠다.
     주지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계절이 바뀜에 따라 해가 뜨는 방향이 조금씩 이동하기 때문에 머지 많아 그 연화봉의 바로 위로 해가 뜰 것이라고 한다.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이 수도암 달력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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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에서 본 가야산 일출. 사진 가운데 연화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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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 위로 뜨는 해] 


   그렇게 가야산 일출을 본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절의 뒷산인 수도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수도산은 경북 김천시와 경남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동쪽으로 가야산 국립공원이 있고, 서쪽으로 덕유산 국립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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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암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걸렸다. 곳곳에서 잘생긴 멋진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 등산로는 정상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흙길인 육산(肉山)이어서 무릎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해발 1,317m나 되는 높은 산이다 보니 음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얼음이 언 곳도 있어 다소간 조심해야 했지만,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달리 찾는 이가 없어 호젓하기 그지없는 산길을 달랑 세 사람이 마치 전세 낸 듯 걸으려니 그야말로 미음완보(微吟緩步)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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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가는 능선의 소나무 앞에서]  


    수도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뭇 중생의 손길이 모아져 만들어졌을 돌탑이 하나 조성되어 있다. 산신령께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곳일까, 아니면 한걸음 더 나아가 국태민안을 비는 기도터일까? 멀리 한양에서 온 길손이 그 조성 내막을 어찌 알랴마는, 촌부는 평소 습관대로 그 앞에서 국태민안과 무사 산행을 함께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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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정상]


     벌써 며칠 째 전국토를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가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본래 정상에서 잘 조망할 수 있다는 가야산이나 덕유산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서울보다는 상태가 나은지라 정상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산들과 그 능선은 어느 정도 보였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미세먼지 주의보니 경보니 하는 문자만 휴대폰에 계속 뜬다. 그런 문자 안 보내도 국민은 이미 너나 없이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판국인데, 그런 문자만 보내고 나면 할 일을 다한 양 손 놓고 있는 당국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할 거나.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를 위정자들에게 기대하는 게 정녕 연목구어(緣木求魚)이런가.



     수도암까지의 하산길은 1시간 걸렸다. 올라갈 때는 등산객을 한 명도 못 만났고, 하산길에서는 단지 네 명을 보았다. 유서 깊은 절을 품고 있고 등산로도 평이한 이 높은 산에 연휴기간임에도 이처럼 찾는 이가  없는 것은 왜일까. 산마저도 수도권에 있어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작금의 미세먼지 탓일까.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수도암 부처님들께 작별인사를 고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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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서]

  
   김교수,


   이상이 수도암 이야기이네. 귀경길에 직지사 삼성암과 직지사를 들렀지만 그 내용은 생략하네.
  10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신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는 60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갈파하셨지만, 그거야 당신 같은 비범한 분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우리네 같은 범부들에게는 60대는 분명 노년기 아니겠나. 그런 시기에 중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대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네.
     공부도 좋지만, 올 봄에는 함께 ‘이 산 저 산’으로 꽃구경 가보는 게 어떤가. 그대와 월출산과 오대산 산행을 함께 한 지도 꽤나 오래 되었네그려.
    모쪼록 건강하시게.


  기해년 경칩지제에 우민이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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