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시간여행(이집트)

조회 수 205 추천 수 0 2019.01.27 23:29:13


                  시간 여행


    남산골 한옥마을에 한양 정도 600년을 맞아 타임캡슐광장을 만들고 1994. 11. 29. 서울을 상징하는 문물 600점을 담은 타임캡슐을 지하 15m에 묻었다. 묻은 때로부터 400년 후인 2394. 11. 29.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 개봉은 물론 후손들에게 맡겨진 일이다. 당시에 그 행사를 전하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한양을 수도로 정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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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 후 후손들이 타임캡슐을 개봉하여 그 내용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조선시대에 세워진 한양도성의 궁궐, 성문, 성곽 등 건축물과 조선왕조실록 등 서책들을 통하여 한양올 수도로 정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지금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듯이, 400년 후의 후손들은 타임캡슐을 통하여 현재의 서울 모습을 짐작할 것이다.  ‘아하, 4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하려나.

그런데, 세상이 하도 급변하는지라 막상 400년 후 서울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고, 따라서  후손들의 모습이나 생각도 쉽게 추측할 수가 없다. 과거든 미래든 타임머신을 타고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촌부는 무술년이 저물어가는 지난 연말에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오는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5,000년 전의 세계로 돌아갔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나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인 BC 3000년 무렵에 발달했던 이집트문명, 역사책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그 문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것이 2018. 12. 26.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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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이집트로 가려면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아랍에미레이트연합(United Arab Emirates. 줄여서 UAE)의 아부다비 아니면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 가야 한다. 작년 10월에 터키 여행을 하면서 이스탄불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부다비를 거쳐서 가기로 했다. 이왕 힘든 길을 나서는 마당이니 하나라도 새로운 문물을 접해 보자는 생각에서이다.

    다만 아부다비 행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새벽 0시 15분에 출발하는 까닭에 그에 따르는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세상사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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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타보는 아랍에미레이트 국영 에티하드(ETIHAD)항공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국적기에 익숙한 촌부에게는 다소 불편했다. 승무원들 중에 한국인 여승무원이 한 명 있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기내식이 아무래도 입에 안 맞았다. 좌석에 부착되어 있는 모니터의 운항정보도 내용이 부실했다. 그래도 이집트는 물론 중동지방을 처음 가본다는 설렘으로 그런 불편함을 이겨냈다.


2018. 12. 26. (아부다비와 두바이)


   10시간 35분의 비행 끝에 2018. 12. 26. 아침 5시 50분에 아부다비공항에 도착했다. 이곳과 한국의 시차는 5시간이다(이곳이 늦다).

   공항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데, 전 세계를 두렵게 하는 테러의 공포 때문인지 입국절차가 까다롭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진촬영을 해야 한다. 수정체를 등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해외여행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중동의 사막지대에 위치하여 무더울 줄 알았는데, 아침 7시의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공항을 나서려니 쌀쌀하다. 입고 있는 오리털파커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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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공항]


    공항에서 나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공항을 벗어나면 바로 사막이고, 그 위로 난 포장도로를 달려야 시내로 들어간다. 본래 넓은 사막이 있었고,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가운데 인간이 살 만한 곳에 거주지가 생기고 도시가 발달한 까닭이다.

    아부다비는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탄생한 아랍에미레이트연합(아부다비, 두바이 등 7개 토후국이 연합한 연방국가. 연방에는 대통령이 있고, 각 토후국에는 저마다 국왕이 따로 있다)의 수도이자 아부다비 토후국의 수도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아부다비 토후국은 페르시아만의 앞바다에서 석유(매장량 5억톤)가 발견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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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가이드 김민관씨의 안내로 제밀 먼저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 박물관을 보러 갔다. 2017년 11월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프랑스의 전문가가 파견되어 무려 1조 2천억 원을 들여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지은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중 마네, 모네, 다비드, 고호,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등의 작품을 거액을 지불하고 대여받아 전시한다. 석유를 수출하여 주체할 수 없게 많이 번 돈으로 문화국가임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박물관 앞에는 야자수를 줄지어 심은 공원을 조성하여 놓았다. 상전벽해 그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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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과 야자수 정원의 모습]


    아부다비 시내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도시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녹지가 조성되어 있고, 고층빌딩도 즐비하다. 거리도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다.

   이유가 간단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깨끗한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음식물을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며, 단속에 걸리면 거액의 벌금을 문다고 한다. 서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 아웃(Take Out) 커피는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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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의 거리 모습]


    아랍에미레이트는 인구가 약 1,000만 명이다. 그 중 200만 명이 원주민이고, 650만 명이 외국인 노동자(주로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출신. 줄여서 ‘인스방파’라고 한다. 북한 노동자들도 있다), 150만 명이 관광객이다.

   원주민 200만 명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 불이다. 그들은 땀 흘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라에서 주는 돈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 기업을 하려면 원주민의 이름(바지사장이다)이 필요하고, 그 대가(로열티)로 거액을 지불해야 한다. 궂은일은 인스방파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으니 치안이 염려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소한 잘못만 해도 곧바로 추방당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절차는 애당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깨끗하고 화려한 모습 뒤에는 이처럼 애환이 서려 있다.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에 이어서 간 곳은 에미레이트 팰리스(Emirate Palace) 호텔이다. 7성급 호텔로 부지가 축구장 1,400개 크기이다. 건설비만 무려 4조원이 들었다고 한다. 돈 잔치의 또 다른 극치이다.

     이곳에서는 한 잔에 7만 원 짜리 금가루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 김민관씨는 커피 값이 아니라 마치 궁전 같은 4조원짜리 7성급 호텔의 입장료라고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덜 들 거라고 한다.

     그나저나 애당초 안에까지 들어갈 예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구경이나 하려고 했더니, 보안요원들이 주위에 관광버스가 주정차하는 것을 금하고 있어, 버스를 탄 채 주위를 둘러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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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 팰리스 호텔]
  
    호텔을 뒤로 한 채 세이크 자예드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로 향했다. 아랍에미레티트의 초대 대통령인 세이크 자예드(유명한 아랍 부호 만수르가 그의 아들이다)의 지시로 이슬람국가들의 화합을 기원하여 지은 이 모스크는 전 세계의 회교사원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인데(4만 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고, 부지가 축구장 5개 크기이다), 1996년 착공하여 38개국 3천 여 명의 인력이 투입돼 2007년에 완공된 것이다. 사각형의 광장을 가운데 두고 ‘ㅁ’자 형태로 회랑과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9개의 대형 돔(가장 큰 것은 높이 82m, 지름 32m)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돔 83개와 107m 높이의 첨탑(미나렛) 4개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돔의 중앙 주 기도실에는 높이 12.2m, 폭 7m, 무게 12톤의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데, 실내조명에 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외관이 온통 흰 색이어서 ‘화이트 모스크’라고도 불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와 대비되는 이 모스크는, 건물의 앞과 옆으로 대형 수조를 만들어 놓아 건물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 같은 고색창연한 분위기는 아니다. 아무래도 지은 지 10년 이 겨우 넘은 탓이리라. 그렇지만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아마도 더 각광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특이한 것은 이 모스크에 들어가려면 건물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입구에 설치된 유리돔 같은 건물로 일단 들어가 그곳에서 연결된 지하통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교사원의 특성상 입장객들의 복장을 제한하는데, 반바지, 슬리퍼, 미니스커트 등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복장은 금지된다. 입장료는 없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가 채 안 된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인파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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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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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이드 모스크의 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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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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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주 기도실이 있는 중앙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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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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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건물 외부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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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크 자예드 모스크 주 기도실의 샹들리에]


    세이크 자예드 모스크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페라리 월드(Ferrari World)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할 이태리식당(Buca di Beppo)이 있는 곳이다. 페라리 월드는 페라리를 모티브로 한 실내 테마파크이다. 실내 테마파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영화관, 옷가게, 어린이동산, 롤러코스터, 식당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어 사람들로 붐빈다. 외국인 관광객도 꽤 많아 보였다.

   아부다비에는 페라리 월드 외에도 워너 브러더스(WB), 야스(YAS) 등의 테마파크가 더 있고, 대형 워터파크도 있다. 언젠가는 석유가 고갈될 것을 대비해 관광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 듯했다. 

 

   점심식사 메뉴는 스파게티였는데, 맛이 별로였다. 식당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아랍에미레이트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가격은 17디르함(Dirham. 한화로 5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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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월드와 이테리 식당]


    점심식사 후 버스로 두바이로 이동했다. 사막 위로 난 고속도로로 두바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사실 한국의 고속도로라면 그렇게 걸릴 거리(140km이다)는 아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엄격히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차가 빨리 달릴 수 없다고 한다.


   사막이 끝나는가 싶을 무렵 차창에 어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동방 나그네를 맞이한다.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중에서도 부자인 두바이의 부(富)를 한마디로 상징하는 듯하다. 대신 아부다비에 비해서는 녹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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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거리 모습]


     두바이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인공섬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이다. 2001년에 인공섬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어 2006년 처음으로 거주단지가 들어서고, 2010년에 섬이 완성되었다. 10.5m 깊이의 바다를 모래와 바위로 매립하여 해수면 위로 3m까지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섬의 크기는 가로세로 5×5km이고 총면적이 560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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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주메이라]


     섬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야자나무 모양이어서 섬 이름에 ‘팜(Palm)’이라는 말이 들어간 이곳은 하나의 굵은 나무줄기와 17개의 가지로 구성되었으며, 11km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긴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다. 나무줄기 부분에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섰고, 가지 부분에는 고급 주택과 빌라 등의 거주단지, 초승달 부분에는 초호화 호텔과 휴양시설이 들어섰다. 


   고급 빌라를 분양할 때는 매우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몰려들어 매진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처음 분양가는 10억 원 정도였고, 한 때 100억 원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80억 원 정도 한다고 한다. 크기는 70-80평 정도인데, 집집마다 자신의 해변이 있다. 


   초승달 부분에 있는 아틀란티스 호텔(Atlantis The Palm)은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의 이름을 본뜬 호텔로 건설비만 1조 7천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2008년 9월에 개장한 이 호텔은 1박 비용이 최소 80만원, 최대 2,000만원이다. 이 호텔 근처에 있는 역에서 모노레일을 타면 섬 전체를 조망하면서 다리를 건너 육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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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주메이라의 고급 빌라촌과 아틀란티스 호텔]
  
    팜 주메이라 섬에서 육지로 나와 바로 수크 매디나트 주메이라(Souk Madinat Jumeira)로 갔다.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아랍 스타일의 물건을 파는 재래시장을 현대식으로 꾸민 시장이다. 그래서인지 재래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했다. 매디나트 주메이라 리조트의 일부이다.

    향수, 조명기구, 향신료, 각종 수공예품 들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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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 매디나트 주메이라의 내부 모습]


   이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끝나는 곳에서 버즈 알 아랍호텔(Burj Al Arab Jumeirah)을 볼 수 있다. 돛단배 형상의 7성급 이 호텔은 1박 비용이 최소 300만원, 최대 3,000만 원이다. 그래서 투숙객을 공항에서 헬기로 모셔온다고 할 정도이다. 두바이에서 돈 잔치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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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 돛단배 모양의 건물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이다]
 
    전통시장에서 나와 이와 비교되는 현대식 쇼핑센터인 두바이몰(Dubai Mall)로 갔다. 두바이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로 두바이의 중심가(다운타운)에 있다. 각종 명품가게를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상점들뿐만 아니라 대형수족관, 스케이트장, 식당, 야간에 분수쇼를 하는 호수에 이르기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다(석촌호숫가의 잠실롯데를 연상하면 된다). 워낙 넓어서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중앙 홀에서는 이벤트행사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이날은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전사들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면세품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아 할인판매하고 있음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광고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가히 쇼핑천국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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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몰의 내부]


    두바이몰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또 있으니, 유명한 버즈 칼리파(Burj Kalifa)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60층짜리 건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829.84m)이다(2004년 착공하여 2009년에 준공하고 2010년에 개장).

    이 건물 앞에 서서 꼭대기를 바라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한다. 한국의 삼성물산이 골조공사를 맡아 우리에겐 더욱 알려진 건물이다. 두바이몰 안에서 이 건물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으로 바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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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즈 칼리파]


    두바이몰과 버즈칼리파를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일단 숙소인 호텔(Grand Excelsior Hotel Bur Dubai)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바로 나왔다. 두바이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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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엑셀시오르 부르 두바이 호텔}


    두바이의 중심가(다운타운)와 북쪽의 데이라(Deira) 지역을 가로지르는 인공 운하인 두바이 크리크(Dubai Creek)로 가서 수상택시인 아브라(abra)를 탔다. 이 배는 두바이 크리크의 양안을 오가는 20인승의 작은 목선이다. 데이라 지역은 서민들의 주거지(구시가지)로 자가용을 몰 형편이 안 되는 그곳 사람들(주로 인스방파사람들이다)이 중심가(신시가지)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대기 중이던 아브라를 20분 정도 타면서 두바이의 고층빌딩이 즐비한 중심가(신시가지)의 휘황찬란한 야경을 감상했다.

   두바이 역사지구인 알 파히디(Al Fahidi)에서 내려 두바이몰과 대비되는 재래시장과 바스타키아 민속촌(19세기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던 60여 개 의 건물들이 있는데, 지금은 문화시설, 호텔, 카페,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을 둘러보고, 유명한 전통식당 ‘아라비안 티하우스(Arabian Tea House)’로 갔다. 이곳에서 양고기구이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직화로 구웠는지 너무 태우기는 했지만 맛은 좋았다. 곁들여 나온 아보카도 쥬스도 먹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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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에서 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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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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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티하우스의 양고기구이 정식]

  

     저녁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이용하여 다시 두바이몰로 갔다. 버즈 칼리파 전망대도 올라가고 분수쇼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교통체증이 심하여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두바이몰에 도착하였을 뿐만 아니라, 버즈 칼리파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125층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니 이곳도 인산인해다. 말 그대로 연말대목이다.


   125층의 전망대는 실내뿐이라 답답한데, 한 층 아래 124층의 전망대로 내려가니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숨통이 트였다. 고개를 치켜들면 160층 꼭대기가 아득하게 보이고, 눈길을 아래로 돌리면 저 아래로 불빛 찬란한 시가지의 밤 모습과 두바이몰에서 한창 진행 중인 분수쇼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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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즈 칼리파의 124층에서 바라본 위, 아래]


      버즈 칼리파는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내려가기도 힘들다. 또 다시 1시간을 기다려 겨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두바이몰의 분수쇼를 볼 수 있는 호숫가에 겨우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다 되었다. 일행들이 이왕 늦은 바이니 분수쇼를 보고 가자고 하여 15분 정도 구경을 하였다. 이 분수쇼는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분수를 연상하면 된다. 단지 규모가 클 뿐이다. 분수쇼보다는 불빛이 빛나는 버즈 칼리파의 전경이 이방인의 눈길을 더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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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즈 칼리파의 야경 전경]


     밤 12시가 다 되어 마침내 하루 일정이 끝났다. 인천공항에서 새벽 0시 15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하여 시차 5시간을 더한 참으로 길고 긴 하루였다.

    무엇이든 최신, 최고를 자랑하려고 하는 두바이에서 4성급 호텔의 욕실 수압이 약하고 더운 물이 잘 안 나오는 것은 무엇이람. 적어도 1박에 300만원은 내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일까.


2018. 12. 27.(두바이, 카이로)


   아침 6시에 일어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5시 40분에 기도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다. 기도내용을 알 길이 없는 이방인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이 들린다.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호텔을 나섰다. 아부다비를 거쳐 카이로로 이동하는 날이라 일정이 바쁘다.


   먼저 두바이 프레임(Dubai Frame)을 보러 갔다. 두바이2020 엑스포를 기념하고 관광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두바이 한복판에 가로 93m, 세로 150m로 액자 모양의 건축물을 만들어 2018년 1월에 개장하였다. 액자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

   건물 1층에는 두바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이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가면 두바이의 대비되는 두 가지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돛단배가 떠다니는 두바이 크리크와 전통시장, 서민들의 주거지 등 두바이 구시가지가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넓고 시원하게 뻗은 도로, 화려한 모습의 고층빌딩과 현대적인 건축기술이 돋보이는 다양한 랜드마크로 이뤄진 신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타깝게도 시간관계상 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아무튼 이런 구조물을 세울 수 있는 발상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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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 프레임]  


   두바이 프레임에서 두바이 크리크로 이동하여 다시 아브라를 탔다. 운하를 건너 두바이 전통의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을 보러 간 것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중계무역지로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이곳의 금시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시장 안이 썰렁했다.

   시장 입구 금 가게에 무려 64Kg(금 무게만은 59Kg)짜리 금반지가 진열되어 있다. 그 옆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반지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증명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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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에 오른 금반지]


    전통시장을 끝으로 두바이, 아니 아랍에미레이트 관광을 끝내고 아부다비 공항으로 갔다. 입국할 때 얼굴 사진을 찍는 등 까다롭게 굴더니 출국심사대에서도 구두까지 벗으라고 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로웠다.

   뭐랄까 촌부에게 이 나라를  다시 찾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 같다. 전통이나 역사는 없이 모든 것을 돈으로 싸바른 곳, 이를테면 사막 위의 한낱 신기루 같은 곳이라는 인상이 남을 뿐이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오후 2시 35분에 출발하는 카이로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으로 점심을 주겠지만, 인천에서 오면서 에티하드 항공의 기내식을 이미 경험했는바, 그 기내식이 내키지 않았던 까닭이다.

    카이로까지는 4시간 걸린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영화를 보려니,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을 다 보지도 못하고 내려야 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 30분(서울보다 7시간 늦다)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고, 직전에 떠나온 아부다비 공항에 비해서도 시설이 너무 열악한데다 춥기까지 하다. 만일 대비해 준비하여 온 오리털 패딩을 꺼내 입었다.


    대기하고 있던 현지가이드 에즈딘(Ezzeldin)은 공교롭게도 집사람이 19년 전인 1999년 12월에 두 아들과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의 가이드였다. 실로 우연한 재회였다. 두 사람의 반가운 마음을 어찌 필설로 그려내랴.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그대로  '언불진혜(言不盡兮)요 서불진혜(書不盡兮)'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고 한국 역사를 훤히 꿰고 있는 가이드 에즈딘은 이집트 여행 내내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서울대학에 해당하는 카이로대학(학생 수가 무려 26만 명이다. 서울대학의 10배)의 상대를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한국어를 배워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이드를 하면서, 이제는 이집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통역, 번역 업무도 하는 그의 삶은 이집트의 굴곡진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5,000년의 찬란한 문명과 역사를 자랑하던 이집트가 1952년 나세르의 군사쿠데타 이후 사회주의체제를 도입하면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몇 십 년 동안 빈곤에 시달리는 모습이 타산지석으로 다가왔다. 에즈딘은 한국과 이집트를 비교하면서 한 나라는 군사혁명 후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되었는데, 다른 한 나라는 그 반대로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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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현지가이드 에즈딘과 함께]


   공항을 나서니 춥기도 하거니와 탁한 공기에 숨이 막힌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다. 곧바로 카이로 중앙역으로 이동하는 차창에 어린 시내의 모습은 처연하기만 했다.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인 낡은 차량들, 무너지고 쇠락한 집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거리와 곳곳에 버려진 망가진 차들(폐차장이 없는 것인지 곳곳에 이런 차들이 팽개쳐져 있다), 최악의 대기질, 남루한 차림의 주민과 행인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인구가 1,700만 명이나 된다는 그 유명한 카이로의 모습이 이렇단 말인가.


   저녁 7시 30분 카이로역에 도착했다. 9시 30분에 출발하는 아스완행 기차를 타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역사가 워낙 낡고 협소하여 기다릴 곳이 마땅치 않다.

    식당이 없어 식사할 곳도 없다. 역사에 조그만 카페가 겨우 하나 있는데 이미 만원이다. 추위에 떨며 선로 가에서 한참 서성이는데 카페에 있던 사람 몇이 기차를 타러 나온 덕에 자리가 나 들어가 앉았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고역이다. 역사에는 1불을 내면 8명이 이용할 수 있는 간이화장실이 있는데, 가능하면 이용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이곳이 도대체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중앙역이 맞나 싶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나타난 기차는 한국의 6-70년 대 비둘기호를 연상케 한다. 30년 전에 스페인에서 수입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굴러가는 게 용하다. 이 기차를 14시간 30분이나 타고 가야 한다니... 


   침대칸은 침대가 2층으로 놓여 있는 2인실인데, 마음을 비우니까 그나마 지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시설이 되어 있어 좋아했더니 물이 병아리 오줌처럼 쫄쫄거리며 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각 객실칸을 연결하는 부위에 있는 공용화장실은 역시 가능하면 이용하고 싶지 않은데, 14시간을 타고 가야 하니 고역이다.

    이 기차에서 그래도 나은 것은 식사이다. 여객전무가 각 객실로 늦은 저녁을 가져다주었는데, 시장한 탓도 있었지만, 고기, 빵, 밥, 과일, 야채를 적절히 조합하여 먹을 만했다.


   집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고 촌부는 1층에서 잠을 청했다. 이불을 덮으니까 춥지는 않았다. 이 밤을 보내고 나면 내일부터 드디어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할 것이라는 설렘에 뒤척였다. 그러고 보면 이 기차가 동방에서 온 나그네를 옛날 옛적으로 인도하는 타임머신인 셈이니, 잔뜩 낡은 게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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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아스완 가는 기차의 외관, 복도, 침대칸 내부]



2018. 12. 28(아스완, 아부심벨)


  아침 7시 여객전무가 가져다 준 빵 3개와 과일로 아침식사를 했다. 별도로 돈을 내고 주문을 하면 커피나 콜라도 가져다준다. 식당칸이 따로 없어서 필요한 건 여객전무에게 일일이 주문해야 한다.

 

  촌부가 잠이 든 사이 기차는 남으로 남으로 계속 달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복도의 창문을 통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겨울인데도 사탕수수가 푸르게 자라고 있는 풍경이 평화롭다. 반면 이따금 나타나는 이름 모를 역의 주위풍경은 너무 궁기가 흘러 민망하다.  


   낮 12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아스완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30분 연착했다. 아스완(Aswan)은 인구가 100만 명 되는 큰 도시이다. 우리에게는 아스완댐으로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고대 이집트왕국 때부터 주변국가인 수단, 에티오피아와 교역을 하던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일까 역사가 제법 컸다. 언뜻 보기에 카이로역사보다 나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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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역]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바로 과거로의 시간여행 첫발을 내디뎠다. 그 첫 대상은 미완성의 오벨리스크이다. 아스완은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화강암이 나오는 지역이다. 결국 화강암으로 된 오벨리스크는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그것을 나일강을 통해 운반해 곳곳의 신전에 설치하였다. 


   화강암 채석장 지역으로 가자 후술하는 카르낙 신전에 사용할 오벨리스크를 만들다가 중간이 갈라지는 바람에 그만둔 미완성의 오벨리스크가 그대로 누워 있었다. 길이가 무려 42m나 되는 그 거대함이라니... 완성되었으면 정말 걸작이 되었을 듯하다. 무게가 몇 백 톤이 족히 된다는 저것을 완성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운반하여 어떻게 세워 설치하였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의 토목기술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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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를 보고 아스완 하이댐으로 이동했다. 당초 아스완댐은 1898년-1912년에 영국인들이 건설하였다. 관개와 홍수 조절을 위하여 건설한 것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능력이 떨어지자 7Km 상류에 다시 새로운 댐을 만들었다(1960년 착공, 1971년 완공). 그것이 높이 111m, 길이 3.6Km, 저수량 1,570억톤, 호수(저수지) 길이 500km의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이다. 댐에 설치한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이집트 전기 수요의 10%를 충당한다.

    5,000년 전부터 거대한 토목공사를 능숙하게 한 나라의 후손답게 나일강에 거대한 공사판을 벌인 것이다. 댐 건설에는 구 소련이 경비를 지원하고 기술자도 파견하였다고 한다.

   댐 위에 서면 댐으로 생긴 호수(댐을 건설한 나세르 대통령의 이름을 따 ‘나세르호수’라고 부른다)가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이 호수는 멀리 수단의 북부지역까지 이어진다.


   공사비 조달을 위하여 당시 나세르 대통령이 1956년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였고, 그 바람에 당시 수에즈운하의 소유권을 반반씩 가지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합세하여 이집트와 전쟁을 벌였으니, 그것이 바로 2차 중동전쟁이다.

   전쟁에서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다 소련의 미사일 공격 위협까지 가해지자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나세르 대통령은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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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하이댐으로 생긴 나세르호수]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생긴 호수로 인해 많은 유적과 농경지들이 침수되었다. 이 댐으로 인해 나일강은 더 이상 홍수로 인하여 범람하는 일이 없게 되었는데,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대로부터 나일강은 매년 홍수로 범람하는 대신 상류에서 비옥한 흙을 운반하여 와 강 주변의 토지를 비옥하게 하였고(나일삼각주는 바로 그 산물이다), 그 토지에서 곡물을 많은 생산하였다. 로마시대 이집트가 로마의 곡창 역할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연유이다.

   그러던 것이 아스완 댐으로 인하여 상류의 비옥한 흙이 더 이상 하류로 전해질 수 없게 됨에 따라 토지가 점점 척박해지고 있다. 이제는 비료를 써야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일강 유역의 농민들은 차라리 홍수가 나 나일강이 범람하기를 바란다고 하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아스완 하이댐을 보고 아부심벨(Abu Simbel)로 이동했다. 진짜 고대 이집트의 유적인 람세스 2세의 신전을 보기 위해서이다. 바야흐로 시계바늘을 20세기(아스완댐)에서 BC 13세기로 돌리는 순간이다. 가는 도중에 가이드 에즈딘이 나누어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빵, 과일, 음료수가 전부였지만, 집사람이 서울에서 챙겨온 간식거리를 더하여 배고픔은 면할 수 있었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의 남쪽으로 280km를 가야 나온다. 사막 가운데 일직선으로 난 포장도로(왕복 2차선으로 통행량이 워낙 적어 고속도로나 다름없다)를 3시간 달려야 한다. 길이 끝이 안 보이게 이어지는 일직선이라 운전사는 핸들을 조작할 일도 없다. 운전사가 졸리지 않을까 싶다.  


   이 사막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몇 군데에서 신기루를 보게 된다. 차창 밖으로 사막 가운데 호수가 보이는 것이다.

사막 가운데 하얀 물이 넘실대는 넓은 호수!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호수가 아니라 신기루라고 한다.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 것도 없고 여전히 사막일 뿐이라고 한다. 대기의 기온 차이가 연출해 내는 기이한 현상이다.

    그런가 하면 끝없는 사막 중간에 풀 한 모기 없는 산들이 가끔 나타나기도 하는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풍경,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습과 유사한 산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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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사막 가운데 호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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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형상의 산]
         
     3시간을 달려 아부심벨의 람세스 2세 신전에 도착하였다. 이미 시계가 5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각이라 어느덧 해가 석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스완에서 280km 떨어진 이 곳의 신전 앞에도 거대한 호수가 펼쳐져 있고 커다란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앞서 말한 나세르 호수가 여기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호수로 인하여 신전이 수몰 위기에 처하는 바람에 유네스코가 기금을 조성해서 1963년부터 1966년 까지 전 세계의 전문가를 동원하여 70m 위로 옮겼다고 한다. 단순히 신전 하나를 옮긴 것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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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이전의 개념도]


    BC 1257년 이집트의 왕(=파라오) 람세스 2세(재위 BC 1301-BC 1235)는 자신의 절대 권력과 신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이곳의 바위산에 통째로 2개의 신전을 만들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대(大)신전이고, 다른 하나는 왕비 네페르테리를 위한 소(小)신전(하토르 신전)이다.  


    대신전은 정면 높이 32m, 너비 38m, 안쪽 길이 63m이며, 입구에 높이 22m의 람세스2세의 좌상(坐像) 4개가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좌상은 지진으로 훼손되었다. 대신전은 태양신을 숭배하여 동쪽을 향해 지었고, 1년에 두 번(2월 22일, 10월 22일) 햇빛이 신전 안으로 들어와 그곳의 신상들을 비추게 만들었다.
    소신전은 정면 높이 12m, 너비 26m, 안쪽 길이 20m이며, 입구에 6개의 입상이 세워져 있다(높이 10m).  4개는 람세스 2세 왕을, 2개는 왕비를 나타낸다.
  
   그 옛날에 바위산(사암이다)을 통째로 깎고 뚫어 이런 거대한 신전을 만들다니... 왕이 곧 신과 같은 존재였기에 그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왕, 곧 신에 대한 경배의 마음으로 그 노역을 감내한 것일까. 나중에 보게 되는 피라미드를 만든 정성도 바로 그런 것일까. 아마추어의 눈에도 단순히 노예들을 강제로 동원해서는 안 될 일로 보였다.


   신전 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워했는데, 알고 보니 무지의 소치였다. 나중에 안 것인데, 이집트의 관광지에서는 신전이든 박물관이든 실내의 경우 입장료 외에 별도로 추가요금을 내고 사진 촬영권을 따로 사면 촬영이 가능하다. 신전이라도 트인 공간에서는 제한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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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전 전경과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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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전]

 

     아부심벨로 갈 때와 달리 아스완으로 복귀할 때는 야간이라 30분 더 걸렸다. 아스완의 나일강에 떠 있는 유람선 M/S ROYAL RUBY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다 되었다. 앞으로 이 배를 타고 사흘 밤을 자면서 나일강 크루즈를 하게 된다.

    배 안의 뷔페식당에 들어가니 먹을 게 풍성했다. 전날 저녁부터 만 24시간 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못한지라 늦은 시각임에도 배를 잔뜩 불렸다. 


   유람선은 총 4층으로, 1층은 식당 겸 로비, 2,3층은 객실, 4층은 객실과 바, 그리고 옥상에는 수영장과 간이 바(Bar)가 있다. 나일강에는 크루즈를 하는 유람선이 많은데 대개 이와 크기 및 구조가 비슷하다. 2인 기준의 객실에는 침대와 욕실 겸 화장실, TV 등이 구비되어 있다.

   낮에는 여행객들이 하선하여 인근의 유적지를 돌아보기 때문에 대개 정박해 있고, 밤에 여행객들이 자는 동안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강 위를 다니는 만큼 파도가 칠 일이 없어 배멀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식당은 아침, 저녁 다 뷔페식인데, 음식이 다양한 편이기는 하나, 사흘 동안 아침, 저녁으로 먹으려니 나중에는 다소 질리게 된다.

   로비에서는 와이파이가 되는데 하루에 6불씩 내야 한다. 그렇다고 잘 터지는 것도 아닌지라 이용자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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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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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뷔페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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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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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의 옥상 수영장]


2018. 12. 29. (콤 옴보, 에드푸)


   밤새 선객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배는 아스완에서 북쪽으로 48Km를 거슬러 올라가 콤 옴보(Kôm Ombo)에 도착해 있었다. 급할 것도 없건만 새벽 5시 반에 기상하여 6시 30분에 하선하였다. 콤 옴보 신전을 보러 가는 것이다. 


   이 신전은 BC 332년에서 395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Horus) 신(선신)과 악어 머리를 한 소벡(Sobek) 신(악신)에게 바쳐졌다. 선신과 악신이 공존하는 게 특이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신전이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석조건물이라 그래도 많은 부분 남아 있어 웅장했을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신전의 벽마다 그림과 상형문자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는 선신과 악신이 맺은 평화조약을 문서화한 벽화도 있다.

 

    신전 옆에는 악어박물관이 있어, 악어 미라와 악어상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악어를 물의 신으로 숭배하여 미라로 만들었고, 이곳에 크고 작은 악어들이 미라가 된 채로 전시되어 있다. 신전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악어박물관에서는 촬영권이 없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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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 옴보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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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 옴보 신전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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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박물관]
 
    콤 옴보 신전을 둘러보고 유람선으로 돌아오니 아침 8시다. 아침식사를 하고 배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배는 에드푸로 이동했다.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옥상에 올라가 주위 풍광을 둘러보았다. 수량이 풍부한 나일강은 푸르기 그지없는데, 그 위로 다른 유람선, 화물선, 고기잡이배 들이 지나가고, 강가에는 사탕수수나 야자수가 우거진 곳이 많다. 동물들이 뛰노는 곳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이름 모를 도시를 지나기도 한다. 마냥 평화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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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푸로 가는 도중 유람선에서 본 나일강의 모습]


   낮 12시에 에드푸(Edfu)에 도착했다. 배는 정박하고 우리는 하선했다. 이곳에 있는 호루스(Horus) 신전을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하선하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호루스 신전까지는 마차로 30분 걸린다. 마차 한 대에 두 명씩 탄다. 그런데 마부가 팁을 계속 달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이는 이곳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툭하면 팁(1불 내지 2불)을 달라는 바람에 관광지의 인상을 흐리게 한다. 친절을 베푸는 양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주면 곧바로 손을 내민다. 이집트의 낮은 국민소득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심지어 룩소르에서 시내투어를 위해 마차를 탈 때는 가이드 딘이 마부들에게 팁을 선불로 주었으니 우리는 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마차에서 내릴 때 마부들이 여전히 팁을 요구했다. 안면몰수 그 자체였다. 그런가 하면 자기들 마음대로 사진을 찍고는 즉석 인화한 것을 돈을 받고 판다(한 장에 1불).
     그런가 하면, 전체 여행 일정이 끝날 때까지 안전을 이유로 경찰관이 관광버스에 동승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가이드 딘이 매번 팁을 주었다. 그걸 보면서 그들은 진정 관광객의 안전을 이유로 동승하는 것이 아니라 팁을 바라고 동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에서 내려 호루스 신전까지 가려면 에드푸 시내를 관통하게 되는데, 룩소르의 남쪽 110km 지점에 있는 이 도시는 곡물, 목화, 대추야자의 교역중심지라고 하는데, 정작 시내는 혼돈의 극치였다. 각종 낡은 차와 마차, 당나귀가 끄는 달구지가 얽히고설키는가 하면, 소음과 먼지에 귀와 눈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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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 신전까지 가는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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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푸의 시내]


   호루스 신에게 바쳐진 신전인 호루스 신전은 이집트에 있는 많은 신전 중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신전으로,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 다음으로 큰 신전이다. 


   . '하늘의 주인'인 호루스 신이 고대 이집트에서 주요 신의 하나가 된 이후 이집트의 왕(파라오)들은 자신을 '살아 있는 호루스', 지상 만물의 올바른 질서의 수호자와 동일시했다.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와 어머니 이시스 사이의 아들인데, 종종 매의 머리를 한 인간, 매의 머리를 한 동물, 혹은 매 그 자체로 묘사된다.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의 안뜰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거대한 조각상에서 호루스는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있는 위풍당당한 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적'이라 할 호루스 신전에 있는 벽화들은 고대 이집트의 의식과 축제, 사제들, 그리고 신화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BC 237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이 신전은 180년이 지나 BC 57년에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입구 관문에는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와 다른 신들, 그리고 적을 무찌르는 모습의 파라오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관문 위에는 태양의 원반이 있는데, 양쪽으로 뱀이 둘러싸고 있다.

   신전의 내부 성소에는 안에 황금으로 된 호루스 상을 감추어 두었으며 연마한 돌로 만든 사당이 남아 있다. 천상으로 인도하는 나룻배도 있다. 신전 내부의 기둥과 벽면에는 다른 신전들과 마찬가지로 온통 그림과 상형문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 벽화의 곳곳에서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신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신전에는 또한 방대한 도서관과 향수 제조소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벽에 향수와 향(香)의 제조법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이집트 전통복장을 한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와 자신이 사제라고 하면서 사진을 계속 찍어 주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그 친절에 고마워했는데, 사진을 찍어준 대가로 팁을 요구하는 통에 실망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사제가 아니라 신전에서 관광객들이 혹시 신전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지 않나 살피는 직원이었다. 눈 뜨고도 코 베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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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 신전의 정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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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 신전의 이모저모]


    호루스 신전 관광을 마치고 배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넘었다. 2시 30분에 점심식사를 하고 4시에 옥상에서 단체로 차 모임(Tea Time)을 가졌다. 그런데 바람이 강하게 부러 추운지라 오래 있지 못하고 4층의 바로 내려가 일행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저녁식사를 한 후 저녁 9시에 이집트 전통의상인 갈라베야(Galabeya)를 입고 벌이는 파티에 참석하러 4층의 바(Bar)로 갔다. 먼저 2층 기념품점에 들러 전통 복장을 3불에 빌렸다. 선객들이 많았는데, 우리 일행은 적었다.

   이집트나 아랍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은 의외로 적은 바람에 내 복장이 두드러졌다. 중앙무대에서 하는 빈 플라스텍 물병 돌리기 게임에 참여하였는데,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외국인들과 어울려 하는 게임이었지만 규칙이 간단하여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 함께 어울리다 피곤하여 객실로 내려가 꿈나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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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베야 파티]


2018. 12. 30.(룩소르)


     밤새 배가 이동하여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룩소르(Luxor)에 도착하여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아침을 먹고 7시에 하선하여 하루 종일 룩소르 일대를 돌아보는 날이다. 버스로 이동하든 유람선을 타고 크루즈 여행을 하든 새벽별 보기 운동은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크루즈 여행은 매일 짐을 싸서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이로 남쪽 660km 지점에 있는 룩소르는 세계 최대의 야외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유적이 많은 곳이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인 테베(Thebes)의 남쪽 일부였다. 전성기인 BC 1500년 무렵에는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대로 믿어야 하나(현재 인구가 45만 명이다)... 


   룩소르는 나일강의 동서 양쪽에 걸쳐 있다. 마치 서울의 강북과 강남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동쪽은 산 자들의 땅으로 여겨 삶의 터전과 신전을 짓고, 태양이 지는 서쪽은 죽은 자의 땅으로 여겨 묘지나 제전을 지었다.


    이렇듯 좌우 양안에서 인간들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문명을 발달시켜 왔지만, 나일강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이든 상관 않고 유장하게 흘러왔고 흐르고 있다. 그 강의 한 모퉁이에서 동방의 한낱 촌부가 3천여 년 전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데, 유구한 역사의 가운데서 룩소르는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강 양쪽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배를 타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경계를 쉴 새 없이 오간다.


   아침 7시 전날 빌린 아랍인 전통복장을 하고 배의 로비로 내려가자 나서자 일행들이 환호한다. 가이드 에즈딘이 로비에 붙여 놓은 일정표가 눈길을 끈다. 가이드로서의 철저한 직업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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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이 나일강의 동쪽에 접안해 있었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서안으로 이동했다. 배에서 내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이다.

    이것은 BC 1411-1375에 아멘호텝(Amenhotep) 3세의 신전에 세워진 좌상으로,  의자에 앉은 모습을 한 거대한 스핑크스(sphinx)이다. 좌상인데도 높이가 19.5m에 달한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훼손되었다. 본래 거상 뒤에 있었다는 신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신전을 지키는 이 두 개의 거상만 남아 있다. 


   멤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누스(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 왕을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한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거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를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두 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을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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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논의 거상]


   멤논의 거상을 본 후 버스로 왕가의 계곡으로 이동했다. 앞서 기술한 대로 나일강 서쪽은 죽은 자의 땅으로 이곳에 왕과 왕비,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이집트 고왕국을 다스렸던 왕들이 자신들의 안식처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었다면, 중왕국 말기와 신왕국 시대의 왕들은 룩소르 서쪽 계곡의 동굴에 무덤을 마련했다. 잘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계곡에 무덤을 만든 것은 도굴을 막기 위해서였다.


   계곡 입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려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가면 방울기차가 기다린다. 그 기차를 타고 계곡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왕들의 무덤이 나온다.

   이곳에는 신왕국 시대인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BC 1580-1085)의 왕들인 람세스 2세, 3세, 4세, 7세, 11세, 아멘호텝 2세, 핫셉수트 여왕, 투탕카멘 등의 왕들이 묻혀 있다. 이를테면 왕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고왕국시대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지하에 묘지를 설치하고 미라를 보관하였다. 도굴 방지를 위한 조치였으나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의 마수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현재까지 왕의 묘는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유일하게 도굴꾼의 손이 미치지 않아 완벽한 상태로 1922년 영국인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Tutankhamen) 왕의 묘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그 유물들은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나중에 그곳에서 보게 된다. 투탕카멘 왕 무덤의 발굴 모습은 입구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무덤 중 3 개를 둘러보았다. 무덤 안의 벽에는 예외 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색채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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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 모형도 및 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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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무덤 : 산 가운데 있는 검은 구멍들]


    왕가의 계곡에서 나와 핫셉수트 장제전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귀족들의 무덤을 보았다. 계곡 너머에 있는 왕비와 장인(匠人)들의 무덤은 건너뛰었다.

   핫셉수트(Hatshepsut) 장제전은 BC 15세기에 핫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거대한 석회암 절벽 바로 아래에 3개의 단으로 지은 장례신전(장례의식을 행하는 신전)이다. 


   핫셉수트(Hatshepsut)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자 처음에는 나이 어린 아들 투트모스 3세를 섭정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스스로 왕(파라오)이 되었다. 이 장제전은 여왕의 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원하며 건립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장제전 중 하나이다.  여왕의 총애를 받은 신하이자 연인인 건축가 센무트가 설계하였다고 한다.

 

    벽에는 여왕의 탄생 이야기, 여왕이 통상에 주력하여 향료를 찾아 분트(현재의 소말리아)와 무역했다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15-16세기에는 기독교도들의 교회로 사용되었다는 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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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셉수트 장제전]


   핫셉수트 장제전을 끝으로 룩소르의 서쪽 관광을 마치고 나일강으로 돌아와 펠루카(felucca)를 탔다. 팰루카는 본래 고대에 지중해에서 돛이나 노를 사용해 움직였던 배인데, 지금은 나일강에서 돛을 사용해 바람을 이용하여 운항하고 있다.

   이 배를 타고 45분 동안 룩소르의 나일강을 오르내리며 양쪽 강변을 구경하였다. 가이드 딘이 휴대폰으로 유튜브에서 다운받은 이문세의 노래를 틀어 주어 흥을 돋우었다. 노래에 맞추어 선상에서 즉석 춤 잔치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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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카의 모습과 선상 춤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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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카에서 본 나일강의 룩소르 동안 모습]


    유람선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3시에 나일강 동쪽에 있는 카르낙(Karnak)  신전으로 출발했다. 카르낙 신전은 신들 중에서 최고신인 아몬(Amon) 신을 기리는 신전이라 아몬 대신전으로도 불리며, 현재 남아 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BC 1990년부터 시작하여 건립과 개축에 천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된 이 신전은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배경이 되어 더 유명해졌다. 


   관람객은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입구에서부터 기가 질린다. 특히 입구를 통과하면 나오는 대열주실(大列柱室)의 압도적인 크기에 입이 벌어진다.

   높이 23m(12개로 중심기둥이다)와 15m(122개) 두 종류의 기둥이 134개나 세워져 있어 당시의 웅장했던 신전의 위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신전이 워낙 높고 커서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젖혀야 하고, 한 바퀴 다 돌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신전의 기둥과 벽에는 예외 없이 벽화와 상형문자가 조각되어 있다. 이 신전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도 두 개 있다. 이 두 개의 오벨리리스크 외에도 AD 390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옮겨진 것도 있다. 지난 번에 이스탄불에 갔을 때 히포드롬 광장에서 바로 그 오벨리스크를 본 기억이 새롭다.  


   이 신전은 비록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고 현재 10%만 발굴된 상태이긴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찬란했던 문명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 멀고 먼 옛날에 이런 건물을 정말 어떻게 세웠을까. 거듭 감탄할 뿐이다. 그런 조상을 둔 현재의 이집트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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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신전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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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신전의 이모저모]


   카르낙 신전 구경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나일강 동안쪽의 룩소르 시내투어를 했다. 옛날 건물과 현대의 건물이 섞여 있는 시내는 그 자체 구경거리였는데, 특히 20여 대의 마차가 시장골목을 줄지어 지날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 마디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남대문시장 안을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관광을 한 셈이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져 촌부가 오히려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정작 이곳의 상인이나 행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아마도 마차 시내투어의 코스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어 있어서 이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아무튼 멀리 동방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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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골목에서의 마차 투어]


   마차를 이용한 시내투어를 마치고 전통시장에서 40여 분 동안 자유롭게 노닐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람선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룩소르 신전을 지났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에는 많은 제전이 있었다. 대부분은 아멘호텝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세워졌고, 룩소르 신전도 그 중 하나로서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제전은 통치자이자 신성한 존재인 왕(파라오)과 백성들의 친목 도모에 목적이 있었다. 이곳은 그러한 제전의식을 준비하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이 신전에는 본래 오벨리스크가 두 개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개뿐이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였을 때 가져가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세워져 있다.   


   룩소르 신전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겉모습만 모았다. 시간도 없었지만, 사실 내부는 들어가 봐야 이제껏 보아온 신전들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안 들어가도 그만이었다. 특이하게도 지금은 신전의 일부가 기독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이집트는 비록 회교국가이긴 하지만 기독교에 대하여 별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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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신전]


    유람선으로 돌아와 저녁 7시 30분에 식사를 하고 4층 바에서 9시부터 하는 벨리댄스(Belly Dance, 배꼽춤)를 보러 갔다. 전에 터키 여행 때 한 번 본 적이 있어 호기심은 덜했지만, 크루즈 여행을 하는 선상에서 하는 공연인 만큼 보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애써 가서 보았다.


   터키에서와는 달리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여자 댄서가 반나 차림으로 혼자 벨리댄스를 추웠고, 이어서 남대 댄서가 나와 위와 아래에서 각각 삿갓처럼 펼쳐지는 옷을 입고 나와 몸을 돌리며 춤을 추웠다. 춤의 이름은 모르겠으나 역시 전통춤의 하나인 듯했다. 다음날 저녁에 후루가다 휴양지에서도 같은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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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댄스]


2018. 12. 31.(후르가다)


   2018년 무술년의 마지막 날이다. 연초에 해가 시작할 때는 무슨 일이든 술술 풀리는 해가 되기를 바랐던 무술년이었는데, 그러기는커녕 1년 내내 대부분의 국민이 편치 못했던 한 해였다. 그 해가 마침내 종언을 고하는 날이다. 그런 날을 머나먼 이국땅에서 보내고 다음 날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감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날도 전날처럼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 일정이 반복되었다. 이제까지 타고 왔던 유람선에서 완전히 하선하여 버스로 후르가다로 이동했다. 당초 4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보다 40분 정도 더 걸렸다.

    도중에 휴게소를 한 군데 들렀는데, 눈만 내놓고 얼굴을 전부 덮는 아랍 전통복장을 한 여인네들이 당나귀 등에 새끼염소를 태워서 나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 모델이 되어 주고 1달러를 받았다. 돈 버는 아이디어가 놀라운데, 이왕 그럴 거면 당나귀와 염소를 좀 깨끗하게 씻겨서 데리고 나오면 좋으련만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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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새끼염소]
  
    후르가다(Hurghada)는 홍해 연안에 위치한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해양레포츠의 메카로서, 특히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이 인기를 끈다. 굳이 이런 해양스포츠를 즐기지 않더라도 이집트에서는 드물게 그야말로 안락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이다. 


    전 세계의 휴양객을 끌어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홍해 바닷가에 줄지어 자리 잡은 리조트들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리조트 하나하나가 독립된 왕국 같은 분위기이다. 건물들은 한껏 멋을 내서 새로 지은 듯 깔끔하고, 단지 안에는 각종 레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리조트마다 자기만의 해변(비치)을 가지고 있다.

    촌부가 하루 머문 리조트(Hilton Hurghada Long Beach)만 해도 긴 해변을 가지고 있는데, 본관 건물에서 그 해변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고, 많은 숙소동(고층이 아니라 3-4층이 고작이다) 사이사이에는 야자수 정원과 수영장(3개나 있다. 하나는 물이 온수이다)이 있다. 각종 오락시설과 스파도 구비되어 있다.


   나중에 카이로에서도 보았는데, 이집트의 부자들이 사는 부촌은 넓디넓은 대지를 확보하여 먼저 담장을 쌓고 그 안에 고급주택과 상가, 병원은 물론 심지어 학교까지 지어서 따로 모여 산다. 그 단지로 들어가는 문은 마치 무슨 성문 같다. 물론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후루가다의 리조트들도 그와 같은 개념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앞으로 리조트를 건설하려고 담장부터 쌓아놓은 곳을 지났는데, 그 담장의 끝이 안 보여 버스로도 한참을 갔다. 


   이런 리조트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후르가다의 길거리는 이집트의 거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다. 참으로 빈부격차가 심하여 극과 극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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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후르가다 롱비치 리조트의 이모저모]


    12시 30분 리조트 안의 넓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집트에 도착하여 이제까지 먹었던 음식들과는 양과 질이 다르다.

    배불리 먹고 오후 2시에 글래스보트(Glass Boat)를 타러 갔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하여 대기 중이던 배에 올랐다. 글래스보트는 배 밑부분의 창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닷속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산호와 물고기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선객들을 위하여 잠수부가 물속에 들어가 먹이를 가지고 물고기들을 유리창으로 유인함으로써 떼를 지어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나저나 홍해는 본래 붉은 산호가 많아 바다가 붉다고 해서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글래스보트에서 보는 산호들은 붉지 않았다. 유리창이 푸른색인 까닭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바다는 잉크를 뿌려 놓은 듯 푸르디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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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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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보트의 갑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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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보트에서 본 홍해의 푸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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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보트 밑부분 창을 통해서 본 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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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유인하는 잠수부]


    바닷속을 구경한 후 갑판으로 올라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안전조끼를 걸친 후 홍해바다에 뛰어들었다. 12월 31일의 바다였지만 물이 그다지 차지 않았다.

홍해바다에서의 수영이라!

그것도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날에...

쉽게 겪어보기 어려운 멋진 경험이었다.

바다에서의 수영은 예전에 동해바다에서 해본 적이 있는지라 어려움이 없었다. 함께 바닷물에 뛰어든 사람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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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바다에서의 수영]


    수영을 마치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가는 차창의 밖으로 무술년의 마지막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연출하는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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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가다의 석양]


   오후 6시 30분에 리조트 본관 로비에서 주스파티가 열렸다. 7시부터 시작되는 송년 저녁행사에 앞서 리조트측에서 투숙객들에게 갖가지 종류의 주스를 제공했다. 일종의 칵테일파티인 셈이다.  


   그리고 7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 입이 벌어졌다. 송년의 밤을 위하여 리조트 측에서 차린 음식의 종류가 하도 다양하고 멋져서 손을 대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세계 각국에서 온 투숙객들에게 그야말로 멋진 송년잔치를 베풀어 준 것이다.

   촌부가 이제까지 6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차려진 송년잔치는 본 적이 없다. 그냥 감탄, 또 감탄이었다. 음식만 그렇게 차린 것이 아니라 입장객 모두에게 고깔모자, 안경, 나팔 등등 각종 장식품 세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말 그대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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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의 송년 축제와 음식들]


      12월 31일은 집사람 생일이다. 머나먼 이국땅 이집트에서 한 해를 보냄과 동시에 63회 생일을 맞이한 집사람을 위해 우리 일행 중 몇 분이 함께 축배를 들었다. 마침 이곳에서는 돈을 따로 내면 포도주와 샴페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술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잔돈 5불을 곧 가져오겠다고 하고는 끝내 가져오지 않았다. 아무리 시설을 잘 갖춘 리조트라 하더라도 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그때까지 보아온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어 다소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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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 건배]


    상당히 오랜 시간 이어진 송년만찬에 이어서 식당 중앙무대에서 벨리댄스 등 몇 가지 공연이 이어졌지만 피로가 몰려와 방으로 올라가 꿈나라로 직행했다.


2019. 1. 1.(카이로)


    기해년의 새해가 밝았다. 황금돼지의 해답게 올 한 해는 제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침 일찍 리조트의 해변으로 나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기다려서 일출을 끝까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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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가다 리조트의 기해년 해돋이]


    아침 6시 50분, 식사도 못 한 채 리조트를 출발했다. 카이로까지 가야 하는 여정이 멀기 때문이다. 대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새해 첫날의 아침식사를 어찌 이렇게...

   허나 어쩌랴, 시간은 없고 이제까지와는 달리 리조트 측에서 아침식사를 일찍 제공하지는 않으니...


   버스는 홍해를 오른쪽으로 끼고 계속 북상했다. 홍해에서 석유를 채굴하는 시설들이 보인다. 이집트에서는 하루에 70만 배럴을 생산하여 50만 배럴은 국내에서 사용하고 20만 배럴은 수출한다고 한다. 인구는 우리나라의 2배인데, 석유 사용량은 우리나라의 1/5 수준이다(우리나라는 하루에 250만 배럴을 사용한다). 그게 이집트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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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의 유전]


    사막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일망무제로 탁 트였다. 산을 깎을 일도 없고, 다리를 놓을 일도 없이 포장만 하면 되니 도로 건설하기가 참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국도를 달리다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무려 왕복 10차선이다. 차는 어쩌다 한 대 지나가는 게 보일 정도로 교통량이 적은데 말이다. 사막이라 방치된 땅은 넓고 훗날을 대비해 미리 넓은 고속도로를 만들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 나라가 지금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돈을 쓸 형편은 아닌 것 같은데...

    가이드 딘의 말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회사가 군대 소유란다. 이거야 원, 군대에 공병단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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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로 난 왕복 10차선 고속도로]
 
   워낙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휴게소를 한 군데 들렀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집트에는 도로변에 휴게소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튼 이 휴게소의 커피 매장에 써 붙인 글귀가 나그네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하였다. 아이디어가 참으로 그럴싸하다. 이집트인들의 숨겨진 재능을 보는 듯했다. 이집트는 노벨문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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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의 커피 매장 내부 글귀]


      12시 20분 카이로의 구 시가지에 도착했다. 아부다비에서 처음 카이로에 도착했을 때처럼 카이로의 쇠락할 대로 쇠락한 구 시가지를 보면 이방인조차도 마음이 착잡해진다.

     비둘기를 잡기 위하여 집집마다 설치한 나무상자(앞뒷면에 구멍을 뚫고 안에 먹이를 놓아 비둘기를 유인한 후 잡는다)의 사연이 애처롭다. 그 비둘기를 잡아서 먹는다고 한다. 영양 만점이란다.

    가이드 딘이 한국에 처음 유학 왔을 때 여의도 한강 둔치에 있는 살찐 비둘기들을 보고 아까워했다는 말에 웃음을 금치 못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이 유서 깊은 도시의 옛 영화를 되살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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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구시가지의 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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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식당 Soiree]


    우선 간이 뷔페식당(상호 : Soiree)으로 가 허기를 달랜 후 찾은 곳은 유태인교회와 아기예수 피난교회이다.

    카이로에는 유태인이 거의 다 떠났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소수의 유태인들을 위한 옛 교회가 여전히 있다. 각종 그림과 관광안내 책자를 파는 길거리서점을 지나 꼬불꼬불 골목길을 들어가면 소박한 건물의 유태인교회가 나온다.

    입구의 전면 벽에 “Property of The Jewis Community Cario”라고 글이 써진 동판을 보고 유태인교회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 정도로 특징이 없고 소박하다.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이 교회의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소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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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교회 가는 골목의 길거리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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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교회의 모습과 입구 동판]


    유태교회의 부근에 아기예수피난교회(The Church of Saints Sergius and Bacchus)가 있다. 요셉, 마리아, 아기예수 세 식구가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하던 중 머물던 곳이다. 이들은 요셉이 이 지역 요새에서 일할 때 이곳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교회는 당초 AD 303년 시리아에서 로마 황제 막시밀란(Maximilan)의 손에 순교당한 성자이자 군인인 Sergius와 Bacchus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재건축이 지속되었으나 아직도 초기 콥틱 교회(Coptic Church. 이집트 원주민의 기독교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중앙홀은 두 줄의 기둥들에 의해서 세 개의 본당으로 나뉘어 있고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는 12개의 독특한 기둥이 있다. 가장 중요한 명소는 예배당 바로 아래 있는 세 칸으로 된 지하실이다. 이곳은 요셉, 마리아와 아기예수 가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초기 교회의 잔재가 있다. 그래서 성지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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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피난교회의 중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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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피난교회의 세 칸으로 된 지하실]


    아기예수피난교회에서 나와 나일강 동쪽의 신시가지에 있는 이집트박물관으로 갔다. 이집트의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와 달리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거리가 번듯하다. 나일강을 떠다니는 유람선과 더불어 일견하여 멋진 도시라고 할 만하다. 사정을 모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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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과 카이로의 신시가지 전경]
   
    오후 3시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은 인산인해의 인파로 붐볐다. 여기서는 아예 사진촬영권(4불)을 구입했다. 이집트 역사에 관한 생생한 자료들의 보고인 이집트 박물관은 1897년에 착공하여 1902. 11. 15.에 개관하였다. 


   총 107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위층에는 소규모의 조각상과 보석류, 미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왕족 미라 전시실에서는 열한 명의 왕과 왕비의 미라를 볼 수 있다.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품은 별도의 전시공간에서 전시한다.

   해마다 1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한다. 소장품의 수는 10만 점에 이르는데, 현재의 박물관이 비좁아 그 많은 유물들을 다 전시할 수 없는 끼딝에, 알렉산드리아 쪽으로 가는 외곽에 새로 현 박물관의 40배 크기에 달하는 박물관을 짓고 있다.
 
   아부심벨부터 룩소르까지 시간 여행을 떠나 고대 시대에 살다가 후르가다에서 21세기로 돌아왔는데, 이집트 박물관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5,00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는 문서로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사자(死者)의 서(書), 수많은 조각상과 생생한 벽화, 미라, 심지어 금으로 만든 관, 의자, 침대, 모기장 등에 이르기까지 그 옛날에 만든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전시물들을 보면서,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와 있는 듯했다.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명한 황금마스크(투탕카멘왕의 미라 얼굴에 씌어 있었다. 순금 11Kg으로 만들었다 등 유물들은 너무도 생생하였는데, 아쉽게도 이것들은 사진촬영권이 있어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 반출되어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베를린박물관 등에 가 있는 고대 유물들이 모두 이집트로 반환되어 체계적으로 분류 전시된다면 이집트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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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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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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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를 넣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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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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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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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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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死者)의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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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600년 무렵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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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왕의 황그마스크.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자료사진]

    

     박물관에서 나오자 5시가 넘어 이미 사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위하여 간 곳은 ‘미나(MINA)’라는 한식당이다. 이집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른 한식당이다.

    쌀밥에 고등어구이, 김치볶음, 마파두부, 빈대떡 등이 나오고, 무엇보다도 새해 첫날이라고 떡국이 곁들여져 모두들 환호했다.

    외국의 한식당이 여간해서는 한식의 맛을 제대로 못 내는데, 이 식당은 음식들이 하나 같이 한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였다. 카이로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한식이 먹고 싶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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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 미나]


    숙소인 그랜드 피라미드(Grand Pyramids) 호텔에 도착하니 밤이 깊었다. 호텔은 이름에 걸맞게 크긴(grand) 한데, 소프트웨어가 엉망이다.

    우선 방 출입을 위한 카드열쇠가 말썽을 피워 카드를 두 번 교체하다가 끝내는 방을 바꿔야 했고, 샤워기도 성능이 안 좋아 물이 쫄쫄거렸다. 게다가 호텔 옆으로 카이로 순환 고가도로가 지나가 소음도 컸다.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 이 호텔에서 두 밤을 자야 한다는 게 끔찍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금방 꿈속으로 묻혀 버렸다. 새벽에 일어나 장거리를 이동한 후 공기가 탁해 숨이 막힐 지경인 카이로 시내를 쏘다닌 피로가 몰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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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피라미드 호텔]


2019. 1. 2.(알렉산드리아)


     이 날도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의 정통(?)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목적지는 알렉산드리아. 카이로에서 버스로 3시간 걸린다. 카이로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외곽에서 앞서 기술한 대로 새로 짓고 있는 이집트 박물관의 모습을 일부 볼 수 있었다. 완성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외관이 5천년 역사와는 다소 안 어울리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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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짓고 있는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무려 편도 6차선(왕복 12차선)이다. 4개 차로는 승용차나 버스가 다니고, 옆에 따로 있는 2개 차로는 화물차가 다닌다. 두 가지 차로 사이에는 분리대를 별도로 설치했다(중앙분리대는 물론 따로 있다). 이런 형태의 고속도로는 처음 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적어도 고속도로가 화물차로 인해 사고가 나거나 정체를 겪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이 고속도로변에서는 나일강물을 끌어다 올리브, 포도, 야자수 등을 키우는 농장들을 볼 수 있고, 비둘기를 잡는 집들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카이로 시내의 그것과는  달리 탑 모양으로 크게 만들어 놓았다. 비둘기 포획도 기업형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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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고속도로와 고속도로변의 비둘기집]  
  
   이 고속도로에는 휴게소다운 휴게소가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의 카페가 있고, 갖가지 상품점들도 있다. 이런 휴게소는 이집트에서 처음 보았다.

   카이로로 돌아갈 때 들른 휴게소는 한술 더 떴다. 이집트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화장실이라며 벽에 여러 가지 그림을 걸어 미술관처럼 꾸며 놓았다. 그 대신 화장실 이용료로 무려 1인당 2불을 받았다(이집트의 유료화장실은 대개 1불만 내면 8명이 이용할 수 있으니 16배나 비싼 셈이다). 역시 돈을 벌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나일강 삼각주의 북서쪽(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180km)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지중해를 따라 백사장이 이어지는 해변의 아름다움 때문에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기에 더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도시라 ‘지중해의 빛나는 진주’로 불린다. 인구는 약 220만 명으로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본래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정복한 후 건설을 명한 도시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지었고(정작 알렉산더 대왕은 도시가 완성되기 전에 죽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급격히 번창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왕국인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이 왕조의 마지막 왕이 ‘클레오파트라’이다)의 수도였고, BC 30년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망한 후 AD 642년 이슬람세력이 점령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아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간 곳은 몬타자 궁전(Montazah Palace)이다. 1892년에 세워진 이 궁전은 알렉산드리아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진 해안 기슭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있다. 이집트왕국의 마지막 궁전으로 왕가의 여름별장이었다고 한다.

    궁전을 둘러싼 1.4㎢ 면적의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정원에는 수백 그루의 야자수가 소나무와 어울려 있고, 스포츠 시설과 레스토랑, 매점 등도 있다. 정원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데 궁전 내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궁전 건물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바로 옆에 지중해의 해안가를 따라 들어선 콘도들이 너무 부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운 궁전의 전체 구도를 그만 망쳐 놓았다. 군대가 그렇게 해 놓았다고 가이드가 흥분해서 말한다. 그러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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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자 궁전과 해변의 콘도]


   몬타자 궁전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난 길로 카이트베이 요새로 이동했다. 이 해안도로가 알렉산드리아의 주도로이고 도시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파도가 넘실대는 푸른 지중해, 그 바닷가의 하얀 모래밭, 해안도로 건너편으로 늘어서 있는 고층빌딩들, 만일 사진만 놓고 본다면 누구나 알렉산드리아를 아름다운 미항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100m 미인이다.


    해안도로는 하루 종일 교통체증으로 시달리고, 바닷가의 백사장은 늘 세찬 파도가 쳐서 바다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해안도로변의 제방에 앉아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바다 쪽의 전면만 번지르르할 뿐 옆과 뒤로 가면 대부분 삭을 대로 삭아 곳곳이 허물어지고 있다. 바닷바람의 소금성분 때문이라고 하지만, 바닷가의 도시치고 바닷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어디 있으랴. 건물들이 유지보수를 할 엄두를 못 내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마침 법원도 해안가에 있어 차창을 통해 볼 수 있었는데, 대리석으로 지은 멋진 건물인데도 얼마나 손을 안 보았으면 너무 낡아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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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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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건물들의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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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법원]


    흥미롭게도 이 해안도로의 중앙선에 압둘팟타흐 시시 현 대통령의 사진을 담은 입간판이 50-100m 간격으로 죽 세워져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다만 카이로 공항 안에서도 볼 수 있다). 대통령선거라도 곧 실시해서 유세하는 간판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대통령의 보건의료정책을 홍보하는 간판이라고 한다.

    북한 같은 1인 독재의 전제국가도 아닌데 그런 간판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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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진을 담은 입간판이 세워진 거리 모습]  


   바닷바람에 모래먼지가 날리는 가운데 카이트베이(Qaitbay) 요새에 도착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Pharos) 등대(BC 3세기에 건설되었다가 수 차례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서 있던 자리에 1480년 해안선 방어의 목적으로 세워진 요새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요새의 성곽길을 걸을 수 있고, 요새 주위는 만(灣)의 형태라 어선이 드나들고 낚시꾼들도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식당(Al Kalea)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닷가에 접해 있는 이 식당은 음식(바닷가의 식당이라 해산물을 기대했는데 닭고기구이가 나왔다)도 괜찮았지만, 바깥에 식탁과 파라솔을 많이 설치하여 놓아 정오를 갓 넘긴 한낮의 알렉산드리아로 불어오는 지중해 훈풍을 즐기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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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트베이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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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칼레아 식당과 바깥]


    점심식사 후 해변에서 잠깐 망중한을 즐긴 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이슬람의 정복자들이 카이로를 수도를 정하기 전까지 천 년 동안 이집트의 중심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도서관이 도드라진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본래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의 위업을 담아내는 도서관이 있었다. 프톨레메우스 왕조의 적극적인 도서 수집로 이렇게 하여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헬레니즘 문화의 개화에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클레오파트라 치세 때는 무려 70만 권 가량의 두루마리 책을 보유하였다고 한다.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연인인 클레오파트라의 요청으로 페르가몬에 있던 20만 권의 두루마리 책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옮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도서관이 그 후 화재로 소실되고, 대신 옛 흔적을 되살리고자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2002년 새로운 도서관이 지어졌다.

    이집트의 태양을 형상화한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외관뿐만 아니라 거대 기둥이 들어선 내부 열람실과 박물관 컬렉션도 수준급이다. 도서관 광장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을 만들어 놓았다. 이 도서관의 바깥벽에는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들을 새겨 놓았는데, 한글도 다섯 개 있다(름, 강, 관, 월, 세).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기 나라 글자를 찾는 것도 하나의 이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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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원 안에  한글 "강"자가 보인다]
      
   도서관 구경을 하고 알렉산드리아, 아니 이집트에서 제일 크고 화려하다는 쇼핑센터에 들렀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심이 아닌 외곽에 있다.

   이집트에서 이제껏 보아온 시장이나 상점들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하도 넓어 일부만 둘러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안에 있는 슈퍼마켓도 마찬가지로 규모가 방대했다.

   그 옛날 어마어마한 신전이나 피라미드를 건설한 선조들의 DNA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 오늘날에도 무엇이든 마음먹고 지었다 하면 거대하게 짓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를 왕복 12차선으로 만든 것도 같은 차원이 아닌지 모르겠다. 


   카이로로 돌아오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피라미드 거리에 있는 뷔페식당(상호 : Sunz)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피라미드 거리가 흥미롭다.

   한 마디로 카이로의 나이트클럽 거리이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술 마시고 놀 수 있는 나이트클럽이 늘어선 곳이다.

   이슬람교 때문에 음주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다른 아랍국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두바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돈이 있어도 못하니까 돈을 싸 들고 이곳으로 와 즐기는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이집트 택시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났다. 마이크로버스 비슷한 이 택시들이 대중교통의 일익을 담당하는데, 마치 노선버스처럼 일정한 방향으로만 간다. 정류장은 따로 없고 누구든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면 중간에 아무 곳에서나 세워서 타고 내릴 수 있다. 버스와 택시의 장점을 결합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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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택시] 


2019. 1. 3.(카이로, 아부다비)


   이집트 여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다.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를 보고 파피루스 쇼핑점을 들러 공항으로 가는 일정만 남았다. 그래도 여전히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이다. 


   호텔에서 피라미드까지는 20분이 채 안 걸렸다. 피라미드 바로 옆에 있는 호텔(Marriott Mena House Cairo)을 들렀다. 일행 중에 두바이에서 합류한 가족이 있는데, 그들과 이곳에서 작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호텔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대한민국의 독립을 인정한 카이로선언(1943. 11. 27.)이 채택된 곳으로서, 그 기념비가 호텔의 뒤뜰에 세워져 있었다(한국과 이집트의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런 인연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앞마당에는 16개국의 국기가 계양되어 있는데 그 중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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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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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선언 기념비. 뒤에 피라미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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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마당의 태극기]


   아침 7시 30분인 이른 시각에 도착했건만 피라미드에는 벌써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도 사람들이 몰려 늦어질수록 관람이 힘들기 때문이다. 기온이 높을 때에는 구경하다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오히려 추위를 조심해야 할 판이었다.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기자 지역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Giza)는 카이로 중심부에서 나일강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진 변두리로 사막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하는 피라미드가 세 개 우뚝 솟아 있다. 그 세 개의 피라미드를 보노라면 과연 외계인이 세운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서는 사진에 그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5,000년 전 당시에는 아무리 왕이 태양신과 동격으로 추앙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무덤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 실제로 만들어 낸 과학기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피라미드를 축조하느라 백성들이 흘렸을 피와 땀이 눈에 선하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든, 강제로 동원되었든, 그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대역사가 가능하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5,000년 후의 후손들은 편안히 앉아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것(가장 오른쪽에 있다)이 쿠푸(Khufu. BC  2589 년부터 2566년까지 재위) 왕의 피라미드이다.

    BC 2560년 경에 축조된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기저부의 한 변이 230m, 높이는 본래 146.7m였는데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 지금은 137.2m, 부피는 2,594,914㎥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이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50만 개 정도 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단이다.

   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무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는데,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북쪽으로 난 도굴구멍으로 들어가면 내부관람이 가능하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에 중앙에 위치한 것은 카프라(Khafra. 쿠푸 왕의 아들) 왕의 피라미드이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보다 좀 작은 듯 보이지만, 지금은 높이 143m로 가장 높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관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 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곳도 내부관람이 가능하다.
    맨 왼쪽에 있는 피라미드는 멘카우라(Menkaura. 카프라 왕의 아들) 왕의 피라미드이다. 기저부의 한 변이 105m, 높이 65m로 세 개 피라미드 중에서는 가장 작다. 


   이곳 세 개 피라미드의 석재인 석회암은 기자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에서 가져온 것이고,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암은 남쪽으로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해 온 것이다.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그 앞의 아안 신전을 통해 가까이 갈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얼굴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자연의 바위에 그대로 조각을 한 것인데, 길이 70m, 높이 20m, 얼굴 너비 4m나 되는 거상(巨像)이다. 아안 신전은 비록 일부 유적만이 남아 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열주 배열이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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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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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안 신전의 열주]


   가이드 딘으로부터 피라미드의 축조이유, 시기, 방법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대형 피라미드보다 먼저 축조된 왕비 피라미드(Pyramid of Queen Henutsen. BC 2552-2528)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이 피라미드는 쿠푸 왕의 피미라미드 동쪽 앞에 있는데, 지하로 난 통로는 허리를 굽혀야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하지만 일단 관이 놓였던 곳에 도달하면 공간이 제법 넓어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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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로 들어가는 통로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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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관이 놓였던 자리]


     피라미드를 끝으로 유적지 관광을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파피루스 쇼핑점을 들렀다. 파피루스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그림들은 주로 신전이나 무덤의 벽화들을 모사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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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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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에 그린 사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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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에 그린 피라미드]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이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에 정말 보기 드물게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한 에즈딘과 작별을 고하고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1시 35분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에 오후 6시 50분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밤 10시 10분에 출발하여 다음 날인 2019. 1. 4. 오전 11시 4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이번 여정의 막을 내렸다.

   한 마디로 타임머신을 타고 5,000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되돌아온 시간여행이었다. (끝)  


{追記} 이번 여행을 가능케 해 준 하나투어여행사의 박미연 차장님, 황인애 인솔자님, 일정 내내 상세한 설명과 세심한 안내를 해 준 현지가이드 김민관님, 에즈딘님, 그리고 함께 여행하면서 여러가지로 편의를 보아 주신 동행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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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0 어이 가리나, 어이를 갈거나(덕유산 종주) file 우민거사 2019-07-14 23
159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파타고니아) file [2] 우민거사 2019-04-25 266
158 도솔천에서 수도(修道)를 해 볼거나(수도암과 수도산) file 우민거사 2019-03-07 170
» 시간여행(이집트) file 우민거사 2019-01-27 205
156 동서고금을 넘나들고(터키) file 범의거사 2018-11-18 458
155 흥망이 유수하니(적상산) file 우민거사 2018-09-21 142
154 동화 속으로 들어가다(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file [3] 우민거사 2018-08-22 697
153 장가계가 별건가요(만경대) file 우민거사 2018-07-23 163
152 콩밭 매는 아낙네야(칠갑산) file 우민거사 2018-06-20 231
151 쉬는 것도 잊고 가는 것도 잊는다(忘坐忘行)(히말라야 랑탕 체르코리) file [4] 우민거사 2018-05-25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