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흥망이 유수하니(적상산)

조회 수 142 추천 수 0 2018.09.21 00:22:06


                          흥망이 유수하니
                           
      붉은 치마를 두른 듯한 산, 이름하여 적상산(赤裳山)이다. 무주구천동 덕유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가 1,034m이니 제법 높은 산이다.


      덕유산을 등반하거나 무주리조트를 가려면 이 산 앞으로 난 길을 지나기 때문에 진즉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발길이 이곳으로 향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히말라야 산악회원들과 가을 등산을 계획하다 문득 이 산이 떠올라 길을 나섰다. 2018. 9. 15.의 일이다.


      한동안 맑은 날씨가 이어지더니 13일부터 흐려지다가 14일이 되니까 급기야 비가 내렸다. 15일에 적상산 등산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최종 결론은 15일 아침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그쳐 야외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방배동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그 예보가 맞았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그친 것이다. 덕분에 근심을 덜었다. 그러나 그건 잠시의 일장추몽(一場秋夢)이었다.


     주말에는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너도나도 길을 나선 때문인가, 추석을 1주일 앞두고 벌초를 해야 해서인가, 비교적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가 매우 붐볐다.

    하지만 이는 익히 예견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고속도로에 접어들자마자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일기예보에서 아침에는 갠다고 했으니 곧 그칠 거야’ 하고 자위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비가 안 그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정체가 심하니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르기로 했는데, 신갈IC에서 호법IC까지의 영동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여서 ‘그냥 경부고속도로로 갈 걸’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적상산 등산로 입구의 서창공원까지 당초 3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무려 5시간 걸려 도착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저 비는 무어란 말인가. 이제는 낮12시도 넘었으니 일기예보대로라면 비가 벌써 그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상산3.jpg

[적상산 등산 개념도]


     비가 계속 내리기는 하였으나 양이 많지 않았고, 도반들 모두 비옷이나 우산을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에 산행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가 때로는 물안개로 변해 숲을 감싸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동화 속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어 오히려 운치를 더했다.

    서창공원에서 적상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갈지(之) 자 형태로 매우 완만하게 나 있어 마치 산책로를 걷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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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적상산이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여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것 같으려면 가을이 깊어야 하는데, 올 여름 유난히 찌는 더위가 맹위를 떨친 게 얼마 되지 않은지라 아직은 철이 일러 단풍이 들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비까지 와서 그런지 우리 일행 말고는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덕분에 적상산을 마치 전세 낸 것 같은 호사를 누렸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칼로 벤 듯한 바위가 길을 막는다. 안내판에 장도(長刀)바위라고 씌어 있다.

    고려 말에 최영 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하던 길에 적상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끌려 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절벽 같은 큰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긴 칼(長刀)로 내려치자 바위가 두 쪽으로 쪼개지며 길이 열렸다 하여 장도바위라고 불린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촌부가 그 쪼개진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가보니, 아뿔싸! 아득한 절벽이 나타난다. 길을 내신 최영 장군은 어디로 가셨을까.


적상산8.jpg 적상산8-1.jpg
[장도바위]


     장도바위를 지나 발걸음을 재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상산성(赤裳山城)이 기다렸다는 듯이 객을 반긴다.

     당초 삼국시대 백제에서 처음 성을 쌓았으나 백제의 멸망과 더불어 방치되었다가 고려시대 거란과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로 다시 축성되었고, 조선시대에 북방 후금(後金)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이 산성을 정비한 후 사고(史庫)를 지어 묘향산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악랄한 일제가 한국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사고를 폐지함에 따라 산성도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산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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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산성. 가운데 사진이 서문지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원천석(元天錫)의 흉내를 내 본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적성산도 추초(秋草)로다 

믄 해 산성이 발끝에 채이나니
우중(雨中)에 지나는 객이 시름겨워 하노라.  


     산성을 지나면 정상 못 미쳐서 향로봉(해발 1,029m)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700m 떨어져 있다고 이정표가 알려 준다. 왕복 1.4km이니 한 달음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이미 시간이 한참 지체된 데다 무엇보다도 구름이 산을 뒤덮고 있어 향로봉 꼭대기에 선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해 단념하고, 바로 적상산 정상으로 향했다.


      2시간 30분 걸려 도착한 적상산의 정상은 다소 허망하다. 통신탑이 있는 낮은 둔덕(아마도 이곳이 진정한 의미의 정상이 아닐까 싶다)을 옆에 두고 나오는 삼거리 한복판의 평지에 이정표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 이정표가 이곳이 적상산 정상임을 알리고 있다.

    이정표는 향로봉 방향의 이제까지 온 길, 안국사 가는 길, 안렴대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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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이정표]


     사실 정상이라고 하니까 정상인가 보다 하지, 그냥 숲속의 평지에 불과한 이곳에서는 주변의 산들을 전혀 조망할 수 없다. 오히려 200m 떨어진 안렴대(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해 왔을 때 3도의 안렴사가 진을 친 곳)를 가면 절벽 아래로 희미하나마 구름에 싸인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다.


     안렴대에서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하고 안국사(安國寺)로 내려갔다.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창건한 이 절은 규모가 제법 크다.

     본래 지금의 자리보다 아래쪽에 있었는데, 적상산에 양수발전소(1992년 착공, 1994년 완공)를 짓기 위하여 댐을 쌓고 만든 상부 저수지인 적상호(赤裳湖) 속으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는 바람에 당시 주지이던 원행스님(현 조계종 총무원장)이 산 정상부근으로 옮긴 것이다.

     법당 중 천불전은 적상산 사고의 선원전 건물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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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사 경내 및 극락전]


      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절 전체가 구름 속에 잠겨 있어 경내를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나라(國)의 안녕(安)을 기원하는 절 이름에 걸맞게 짜임새가 있어 보였다.

     주 법당인 극락전에 들어가 작금의 사법부를 생각하며 부처님 전에 엎드렸다.

     “부처님, 법원을 부디 제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안국사 바로 밑에 앞서 언급한 적상산 사고가 있다. 실록을 보관하던 건물이 쇠락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유구(遺構)마저 적상호에 수몰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이곳으로 옮긴 후, 1997-1998년에 건물을 복원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실록전(實錄殿)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전(璿源殿) 두 채가 나란히 있는데, 둘 다 내부에는 실록과 족보의 영인본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이왕 건물을 복원한 마당이라면 실록과 족보의 영인본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전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한낱 범부의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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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11-1.jpg [사고. 위가 실록전이고 아래가 선원전]


     적상산 사고에 있던 실록은 일제가 사고를 폐지함에 따라 장서각(藏書閣)으로 옮겨졌고, 6.25 전쟁 당시인 1950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가져가 지금은 김일성대학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본래 묘향산에 있던 것이 이곳 남쪽으로 내려 왔다가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갔으니, 이를 두고 그 실록의 운명이라고 하려나. 


     적상산 사고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적상호(赤裳湖. 저수용량 348만톤)가 나타난다. 심야에 하부 저수지(무주호. 저수용량 600만톤)에서 끌어올린 물을 이곳에 저장하였다가 낮에 하부 저수지로 흘려보내(상하 저수지 간 낙차가 589m) 수력발전을 한다. 발전용량은 60만KW로 전라북도 전체가 3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수몰을 피하기 위하여 안국사와 사고 유구 등 문화유적을 위로 옮겨야 하는 애환이 따르긴 했지만, 그 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에 더하여 적상산의 새로운 명물 볼거리로 탄생한 적상호가 비구름 속에 잠긴 모습을 바라보며, 한양나그네는 이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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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호]


     적상호에서 양수발전소의 하부 저수지(무주호)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로여서 더 이상 산행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이 길이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만큼이나 꼬불꼬불한데다, 길의 양옆으로 단풍나무가 줄을 지어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그런 까닭에 단풍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택시 운전사의 이런 저런 친절한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서창공원 입구로 회귀했다. 종일토록 오락가락하는 이슬비가 동행한 산행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호젓하고 운치가 있는 여정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 바로 등산의 묘미이고, 그것이 또한 촌부가 산을 즐겨 찾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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