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산채(薄酒山菜)를 벗삼아

2022.04.23 23:15

우민거사 조회 수:384

 

사흘 전이 곡우(穀雨)였다.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날이다.

이 즈음 농촌에서는 모내기를 위해 못자리를 만들고

논에 물을 대고갈고써레질을 하느라 바쁘다.

 

예전에는 논을 갈고 써레질하는 일을 소를 이용하여 했지만

농기계가 널리 보급된 지금은 트랙터가 그 일을 대신한다

소를 이용하여 하던 때와는 달리 트랙터를 운전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노인뿐인 농촌에서도 써레질이 가능하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트랙터를 운전하고 계신 분도 고희를 진즉에 넘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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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가 지난주에 울안에 심은 상추고추가지토마토의 모종들이 

곡우의 시절답게 눈에 띄게 자랐다

상추는 조만간 첫 수확을 해도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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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壬寅年)도 어느새 1/3이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계절의 빠른 변화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거기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흰 머리만 늘어가는 촌노(村老)의 처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하여도

이 후나 늙지 말고 매양 이만 하였고자

백발아 너나 짐작하여 더디 늙게 하여라.

 

이 시조에서 읊은 대로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때가 되면 꽃이 피었다 지고

곡물이 움을 틔우고 자라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 섭리는 변함이 없기에 농부는 24절기에 맞추어 그때그때 적합한 일을 한다

서둘러 미리 할 일도 아니고게으름피우며 나중으로 미룰 일도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니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억지를 부릴 일도 없다

말 그대로 순천자(順天者)의 삶이다.

 

세상만사가 다 이처럼 순천자(順天者)이면 얼마나 좋을까.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소위 검수완박의 입법을 한다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더니, 느닷없이 여야가 합의했다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중에서 경제·부패 사건만 남기고 박탈하며그마저도 중대범죄수사청을 새로 설치하면 완전 폐지한다고 한다

 

검수완박을 안 하면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이 서둘러대던 여당이나이와 반대로 검수완박을 하면 역시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이 외쳐대던 야당이나 모두 하나같이, 나라의 형사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을 깊은 검토도 없이 밀실에서 후다닥 해치우고는 의기양양해한다이를 바라보는 국민만 어이없어 하는 모습이다

 

정녕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은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순천자(順天者)는 흥()하지만 역천자(逆天者)는 망()하는 게 고금의 이치임을 모르는 것일까.

 

뒷메에 뭉킨 구름 앞들에 퍼지거다

바람 불지 비 올지 눈이 올지 서리 칠지

우리는 뜻 모르니 아무럴 줄 모르노라

 

조선 중기의 시인 정훈(鄭勳. 1563-1640)이 지은 시조이다

광해군 말기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지러운 시국을 개탄한 노래다.

그 후 400년 넘은 이 시점에 이 시조가 실감나게 다가올 것은 뭐람,

 

목하 3월 10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앞으로 불과 보름여 남은 5월 10일이면 새 정권이 들어선다'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지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할 일이 아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서도 힘없는 백성들은 또다시 바람이 불지비가 올지눈이 올지서리가 칠지 아무럴 줄 몰라 전전긍긍해야 하는 걸까.

 

우거(寓居)의 뒤꼍에 꽃이 만발했다.

그래, 이 풍진 세상에 비가 오든바람이 불든한낱 촌노(村老)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그 꽃이나 바라보며 타임머신으로 한석봉(韓濩, 1543-1605)을 불러낸다그와 더불어 박주산채(薄酒山菜)를 벗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하자꾸나.

 

짚 방석 내지 마라 낙옆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솟아 온다

아이야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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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보석상자-해바라기 [Live].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