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 소춘(小春)?

2022.11.20 16:10

우민거사 조회 수:350

 

모레면 소설(小雪)이다.

바야흐로 눈이 내리는 때가 왔음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곧 추위가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은 대개 음력 10월 하순에 드는데,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기온이 내려가고 추위가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까지 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설은 곧 겨울 추위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무렵이 되면 서둘러 겨울 채비를 한다.

김장을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작금에는 김장을 하는 집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김치 소비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굳이 많은 양의 김장을 해서 저장해 놓지 않더라도 수퍼마켓에서 1년 내내 싱싱한 김치를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식문화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래도 촌부는 김장을 한다.

이를 위해 비록 소량일망정 금당천변 우거의 뜰에서 배추와 무를 직접 기른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시장의 그것처럼 잘 생기고 실하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더 고소하고 단맛이 난다.

요새의 소위 MZ 세대들이 그 맛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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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소설이 코 앞인데도 날씨가 영 춥지 않다.

아침, 저녁으로 다소 쌀쌀하기는 하지만,

한낮에는 마치 겨울이 다 가고 난 후의 봄날 같다.

사흘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때도,

입시 날이면 으레 찾아왔던 한파가 없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하느님도 이젠 노쇠하여 건망증이 생겨 수능 날 추위를 보내는 것을 깜빡하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소설(小雪)을 역설적으로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그 이유를 알 만하다.

소설이라고 바로 한겨울에 드는 것이 아니고,

아직은 햇살이 따듯하여 그렇게 부르기도 한 것이다.

요새야말로 이 소춘(小春)이라는 표현이 말 그대로 딱 어울린다. 

 

그 소춘(小春)의 금당천변은 언제나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제 황금벌판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대신 하얀 억새풀이 촌노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금당천에서 밤을 보낸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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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들을 보며 무명씨(無名氏)의 시 한 수를 떠올린다.

 

衆鳥同枝宿(중조동지숙)

天明各自飛(천명각자비)

人生亦如此(인생역여차)

何必淚沾衣(하필루첨의)

 

   뭇 새들 한 가지서 잠을 자고는

   날 밝자 제각각 날아가누나

   인생도 또한 이와 같은데

   어이해 눈물로 옷깃 적시나

 

이수광(李睟光. 1563-1628)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전해오는 시이다.

 

겨울 문턱의 금당천,

간밤에 모여있던 오리들이 날이 밝아 햇살이 비치니까 하늘로 날아올라 뿔뿔이 흩어진다.

그래,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아니던가.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직장동료든... 

누구나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이별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별의 순간에 아쉬움과 슬픔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나날에 충실하는 게 보다 현명하지 않을까.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일 따름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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