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절로 수 절로(용문산)

2020.06.06 23:56

우민거사 조회 수:864


                       산 절로 수 절로

 

    얼마 전에 용문산 정상이 개방되어 오를 수 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런데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졌던 히말라야산악회의 봄 산행을 하게 되어 위 기사가 생각나 목적지를 용문산으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2020. 5. 30.의 일이다.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간 미뤄졌던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전국의 절에서 열리는 날이기도 해 교통이 복잡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모처럼 히말라야산악회 회원 전원이 참가하는 산행이라 그냥 등산화끈을 맸다.

 

     용문산(龍門山)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1,157m)이다. 그만큼 산세가 웅장하고, 바위산이라 등산로도 험하다. 남서쪽 능선으로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이 이어진다.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춘 까닭에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렸다. 본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었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왕으로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산의 이름과 조선의 개국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용문산1.jpg

 

     전술한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이 모두 경기의 북부에 위치한 데 비하여, 용문산은 경기의 중부 한가운데에 있어 접근이 용이한 데다 우리나라 최대(동양 최대라고도 한다)의 거대한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를 품고 있어, 산객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곳이다(100대 명산 중 28위).

 

    촌부 또한 오래 전부터 이 산을 몇 번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꼭대기에 있는 공군부대 방공관재센터(1966년 설치)로 인하여 정상을 밟을 수 없는 아쉬움이 늘 따랐다. 그런 용문산의 정상을 오를 수 있다니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2007년 11월에 정상을 개방하였다고 한다. 명색이 산을 즐겨 찾는다는 촌부의 무지(無知)를 한탄할 따름이다.        
 
   용문산을 가려면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용문역까지 가는 게 교통체증을 걱정 안 해도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용문역에서 용문산(용문사나 상원사)까지는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 일행도 이 방법을 택하였다. 다만 촌부는 산행 후 여주로 가야 해서 차를 가지고 갔다. 대략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흥미로운 것은 용문역 앞 광장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산행 후에 자기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봉고차로 용문산 산행기점까지 왕복을 시켜 준다며 접근한다. 귀가 솔깃하긴 한데, 우리 일행은 촌부가 차를 가져간지라 그런 호객에 응할 일이 없었다.

  

   용문산의 산행기점은 용문사와 상원사가 주종을 이룬다. 우리는 산을 오르고 내릴 때의 경사도를 감안하여, 상원사에서 출발하여 장군봉을 거쳐 정상인 가섭봉에 오른 후(이쪽이 경사가 더 가파르고 바위가 많아 험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내리막길을 택하는 것은 권할 바가 못 된다) 용문사 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상원사로 돌아가는 원점회귀형 코스를 택하였다. 차를 가지고 가지 않을 경우에는 용문사로 바로 하산하는 것이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상원사는 용문산의 중턱 제법 높은 곳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데, 절 마당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고 주차장도 완비되어 있어, 자동차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오전 9시 30분 경에 상원사에 도착하였다.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에는 스님들이 참선하는 선방 외에 시민선방이 별도로 있어 눈길을 끈다. 이곳도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대웅전에서 무사 산행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종무소에 들러 1만 원짜리 연등 시주를 했다. 대웅전 앞의 마당에 등을 달고 돌아 나오는데 종무소의 보살이 부른다. 떡과 음료수를 가져가란다. 나무관세음보살~~.

 

용문산2.jpg

[상원사 대웅전과 연등을 단 앞마당]

 

   아침 10시 마침내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절 옆 계곡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자 바로 숲속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정상인 가섭봉(迦葉峰)까지 거리는 3.3Km. 그리 먼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단 중간지점에 있는 장군봉까지 1.8km를 올라가야 비로소 능선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 1.8km 구간이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라는 것이다. 용문산을 멀리서 보면 산이 경사가 거의 없는 게 매우 완만해 보인다. 그래서 정상 등정이 별로 힘들지 않겠구나 하는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는 장군봉까지 올라가는 길을 미처 생각지 못한 데서 오는 착각이다. 


   이미 더위가 시작된 여름 산행에서 오르막 내리막이 없이 계속 오르막만 있는 길을 1.8km 올라가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거친 암릉길이 많아 땀깨나 흘려야 했다. 그래도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산 정상이 보여 정상 정복의 투지를 불태웠다.

 

용문산10.jpg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용문산 정상]

 

    이처럼 힘든 산길이다 보니 우리 일행 말고는 등산객이 거의 없다. 마치 산을 전세 낸 기분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강백년(年 1603-1681)이 이런 산길을 걸으며 읊은 시(제목 : 山行)가 떠오른다. 마침 절에서 출발하여 절로 돌아오는 노정인데다, 산 정상 봉우리의 이름조차 염화시중(拈華衆)의 미소로 유명한 가섭존자의 이름을 딴 가섭봉(迦葉峰) 아닌가. 도중에 스님을 만날 것만 같다. 그러면 시인처럼 필히 길을 물어보리라.

 

    十里無人響(십리무인향)

    山空春鳥啼( 산공춘조제)

    逢僧問前路 (봉승문전로)

    僧去路還迷 (승거로환미)

 

    산길 십리를 가도 인기척 하나 없이

    텅 빈 산에 봄새 소리만 들리누나

    도중에 스님을 만나 길을 물었지만

    그 스님 가고 나니 길이 또 헷갈리네

 

 

   장군봉(해발 1,065m)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11시 50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베테랑 산꾼들이 고작 1.8km 오르는 데 1시간 50분이나 걸렸으니 그 난이도가 상당함을 말해 준다. 그나마 등산로가 우거진 숲속에 있어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답게 용문산에도 정상인 가섭봉 외에 봉우리가 여럿 있고, 그중의 하나가 장군봉이다. 그런데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이 장군봉은 지도에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고, 표지석도 버젓이 세워져 있어 봉우리라고 해야겠지만, 막상 가 보면 이게 봉우리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산에서 봉우리라고 하면 꼭대기가 우뚝 솟아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게 일반적인데(실제로 용문산의 백운봉이나 용문봉 등 다른 봉우리들은 그러하다), 장군봉은 상원사에서 가섭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능선을 만나 백운봉 가는 길과 가섭봉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즉 상원사에서 시작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중간지점일 뿐, 우뚝 솟은 말 그대로의 봉우리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장군봉’이라니... 이래저래 궁금증만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스님을 만나거든 길을 물으려 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장군봉의 유래를 물어봐야겠다.  

 

용문산4.jpg

용문산3.jpg

  [장군봉]
  
    장군봉에서 가섭봉까지 1.5km 능선길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한다. 게다가 장군봉과 가섭봉의 표고차가 90m 정도에 불과하여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중간에 너덜지대를 통과하지만 크게 어렵지 않다. 능선길이다 보니 주위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철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고도가 높은 탓일까 아직도 피어 있는 산철쭉이 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용문산6.jpg

[산철쭉]

 

    가섭봉의 정상 바로 밑에서 정상까지 110m는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야 한다. 철제 출입문이 있어 낮 시간에만 개방한다. 야간에는 군부대 보안문제로 폐쇄하는 모양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허위허위 올라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오후 1시 10분이다. 암봉의 꼭대기에 인공데크를 설치한 정상은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제는 웬만큼 알려진 산의 정상에서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하는 게 다반사(茶飯事)이다. 


   정상의 표지석 옆에 나무를 형상화한 것 같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정상이 열리면서 이재훈이라는 조각가(양평군민이다)가 군민의 염원을 담아 양평군의 발전적인 미래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높은 산의 정상에 설치한 게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촌부의 상념일 뿐이다.

 

용문산5.jpg

[가섭봉 정상과 조형물]

 

   황사도 찾아오지 않고 코로나19 덕분(?)에 미세먼지도 없는 보기 드문 날씨가 봄철 내내 이어진 까닭에 정상에서 바라보는 맑은 하늘과 초록색 사위(四圍)의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비록 아침부터 끼었던 옅은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었지만,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산하를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우리라고 언제나 뿌연 하늘 밑에서 살란 법은 없으리라.

멀리 보이는 청계산(양평 청계산임)과 한강의 물줄기가 다정하기만 하다.

 

   이럴 때 시 한 수가 없을쏘냐.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조선 중기의 문신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지은 시조이다.

 

   그렇다. 코로나19나 뿌연 하늘은 알고 보면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맞게 자연대로 살아간다면 코로나19를 걱정할 일이 무에 있으랴. 또한 하늘이 뿌옇게 될 일도 없다. 그냥 절로 자라서 자연과 더불어 절로 늙다가 때가 되면 절로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방하착(放下着)!

쉬운 둣하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용문산7.jpg

[가섭봉에서 본 용문산 줄기. 맨 앞의 봉우리가 용문봉]

 

 

용문산9.jpg

[가섭봉에서 본 청계산과 한강]

 

 

    정상 바로 밑에는 전망대를 겸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인공구조물이 있다. 바위 절벽에 쇠기둥을 여러 개 박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넓은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옆에 정자 형태의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의 정상 부근에 이런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드문 일인데,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객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어 감사하다. 뿐만 아니라 시야가 탁 트여 사진 촬영을 하기에도 좋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각이라 이곳저곳 사람들이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 일행도 정자 쉼터에서 허기를 달래고 하산길에 들어섰다.

 

용문산11.jpg

[용문산 정상 밑의 쉼터: 자료사진]

 

    어느 산이건 간에 산행하면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것은 실로 맥빠지고 싱거운 일이다. 그래서 하산길은 용문사 쪽을 택하였다. 이 길 역시 상원사에서 올라온 길만큼이나 경사가 급한 구간이 많지만, 곳곳에 철제 계단(계단 위의 고무판은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한다)이 설치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든다. 그렇다고 '절로절로' 내려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으랴만...

 

용문산8.jpg

[용문사 쪽으로 가는 급경사의 하산길]

 

    등산객이 별로 없던 상원사 쪽 등산로와는 달리 이 길은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용문사가 아무래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이다 보니 용문사 탐방을 겸해서 정상 등정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산객 중에는 10대 내지 20대로 보이는 청소년들도 많은데, 그 나이에 PC방을 안 가고 산을 찾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들이 대개 등산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배낭은 고사하고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높은 산, 그것도 용문산처럼 바위가 많은 험한 산에서는 배낭은 뒤로 넘어졌을 때 쿠션 같은 완충작용을 하며, 등산화는 이를 안 신으면 자칫 발목을 삘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준들 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젊음이 만용(蠻勇)에 대한 면죄부(免罪符)는 아닌데.... 아서라, 삶의 지혜가 어디 하루아침에 생기던가. 저들도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절로 알게 되겠지.

 

   상원사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에는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더구나 한 곳에는 평상도 있다. 아마도 산객들로 하여금 편하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듯하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꼭 밥만 먹으라는 법은 없다. 평상 위에 올라앉아 다리를 뻗으니 피로가 몰려오고 눈이 절로 스르르 감긴다. 에라 모르겠다, 배낭을 베고 대(大)자로 누워 30여 분 꿈나라를 헤맸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 피톤치드로 목욕을 하면서 달게 한잠 잔 덕분인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마침내 용문사로 곧장 내려가는 길과 상원사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촌부가 서울에서 몰고 와 산행이 끝나고 여주로 운전해 갈 자동차가 상원사 주차장에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대오에서 이탈해야 한다. 설왕설래 끝에 차주인 촌부와 김용안, 박재송 세 사람이 상원사로 가고, 나머지 세 사람(박영극, 오강원, 최동진)은 용문사로 가기로 했다. 나중에 용문역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나저나 이곳 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보고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가 막히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이정표가 두 개 세워져 있는데, 하나에는 ‘상원사까지 1,150m, 용문사까지 950m’로 되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상원사까지 1.25km, 용문사까지 1.1km’로 되어 있다. 대관절 무엇하러 이정표를 두 개나 세워 놓았으며, 거리는 제멋대로 다르게 써 놓는단 말인가. 이정표에 의지하는 산객은 도대체 어느 말을 믿어야 하나.

   우리나라 산악행정의 적나라한 현주소이다.

 

용문산12.jpg

[두 개의 이정표]   

 

    삼거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은 용문산의 산복(山腹)을 횡으로 가로지른다. 따라서 작은 계곡을 여러 번 통과하고, 그에 맞추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산복인 만큼 대부분의 길이 짙은 녹음에 덮여 있는데, 산객은 거의 없다.

    마음 같아서는 계곡물에 알몸을 담그고 거풍(擧風)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쩌랴, 용문사 쪽으로 간 일행도 있고, 만에 하나 여자 등산객이라도 지나가게 되면 낭패이니, 마음은 어디까지나 마음으로 그칠 일이다.    
             
  도중에 스님은 한 분도 만나지 못한 채 상원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총 7시간 산행을 한 셈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고, 장군봉, 가섭봉의 급경사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땀도 많이 흘린 여정이었는데, 김용안, 박재송 두 도반은 지친 기색도 없이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나중에 목욕탕에서 다시 합류한 다른 세 도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모두들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울인 결과가 아닐는지.
        
   산객들 사이에는 ‘여름 산행은 산행이 끝난 후에 목욕하는 재미로 한다’ 는 말이 있다. 산행 내내 비 오듯 흘린 땀을 씻어내고 목욕탕 문을 나설 때의 상쾌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자 축복이다. 이날의 용문산 등산도 그래서 더없이 행복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으니까(Ende Gut, Alles Gut).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