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대신 으악새(오서산)

2020.11.28 22:46

우민거사 조회 수:316

 

                  까마귀 대신 으악새

 

   오서산,

 

   이름을 풀이하면 까마귀()가 서식한다()는 산()이다. 대한민국 산하에 까마귀 없는 곳이 없을진대, 까마귀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살길래 산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충남 홍성에 있는 이 산을 찾았다. 2020. 11. 21.의 일이다.

    그러나 이 산을 오른 후의 결론은 실체와 이름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은 적어도 이 산과는 거리가 멀다. 까마귀가 다른 산들에 비하여 오히려 훨씬 적었다. 산행 내내 겨우 한 마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꿩 대신 봉황이라고 했던가, 까마귀보다 더 나은 새(?)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니, 바로 으악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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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깃든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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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서산은 충남에서 금산의 서대산(905m), 공주의 계룡산(847m)에 이어서 세 번째로 높은 산(해발 791m)이다. 금북정맥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그만큼 높은 산(적어도 이 일대에서는)이기에 예로부터 천수만 일대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나침반 혹은 등대 구실을 하였다. 그래서 서해의 등대로 불려왔다.

 

    2020. 11. 21. 아침 640분에 박재송님이 운전하는 차로 방배동을 출발하여, 부천 송내역에서 오강원님과 복사골산악회(부천지역의 산악회로 오강원님이 그 회원이다) 회원 두 명을 태운 후,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홍성군 광천읍 상담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1040분이다.

    서울에서 4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건만 교통체증으로 인해 그렇게 걸린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너나없이 길을 나서기 때문인지 요새 주말의 고속도로는 어디를 가든 종일 밀린다.

 

    이 날 등산코스는, 오서산 북쪽의 상담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정암사를 거쳐 홍성쪽 정상에 오른 후,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서 보령쪽 정상을 거쳐 시루봉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서쪽의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였다.

    당초 계획은 이처럼 상담리 주차장을 기점으로 하여 등산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길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아 정암사 밑까지는 차로 올라갔다(2.3Km). 걸어서 가는 것보다 30분 정도 시간이 절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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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사(淨岩寺) 400m 떨어진 곳에 있는 주차장에서 절로 향하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는데 제법 가파르다. 좌우로 고목의 느티나무가 늘어서 있어 운치가 있다. 

 

     정암사는 본래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한 고찰이었으나, 그 후 폐사되었다가 1976년에 중창한 절이다. 경사진 계곡에 위치하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암자이다

     절로 올라가며 아래쪽에서 위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종루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에 비하면 주법당인 극락전은 소박하다(전면 3, 측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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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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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극락전]

 

     정암사 부처님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정암사 해우소 옆에서 시작되어 정상까지 2.6Km 이어지는 등산로는 처음부터 경사가 제법 급하고, 곧이어 공포의 1,600 계단이 등장한다

     본래 통상의 등산로가 있었는데, 그 옆으로 홍성군에서 인공계단 등산로를 추가로 조성한 것이다. 그래서 친절하게도 구 등산로로 갈 사람은 이쪽으로 가라면서 이정표가 안내한다. 그리고 대략 500계단 정도 오르면 얼마나 올랐는지를 또한 친절하게 알려 준다.

 

    그러나 오강원님이 시험 삼아 구 등산로로 가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겉으로 보기에도 이미 길의 형태가 희미해져 있는데, 그마저도 거칠어서 쉽게 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자고로 잘못 디딘 발걸음이 길을 만들고, 가지 않은 발걸음이 길을 지우는 법이다. 정암사쪽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택한 이상은 결국 이 공포의 1,600계단을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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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1,600 계단]

 

    공포의 계단을 쉬엄쉬엄 다 오르면 그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산 아래로 널찍한 평야와 올망졸망한 야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분명 천수만이 이어질 텐데, 아쉽게도 미세먼지(안개인지도 모르겠다)로 인하여 하늘이 맑지 못해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천평선만 선명할 뿐이었다.

    나중에 하산하여 택시운전사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봄에 와야 맑은 하늘 아래 서해바다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내년 봄에 다시 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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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중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전망대를 지나면 드디어 주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능선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억새의 향연! 비록 시기가 지나(10월 중하순이 절정기) 많이 지기는 했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던가, 아직 남아 있는 억새들이 객을 반긴다. 전국의 산객들이 애써 발품을 팔며 오서산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이 억새를 보기 위함이다.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어디선가 고복수 선생의 노래 짝사랑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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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능선 밑의 억새 군락지]

 

 

    정오가 지난 1240분에 오서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홍성군 광천읍의 청년회의소(JC)에서 세운 표지석이 객을 맞이한다. 높이가 해발 791m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 표지석 말고 잠시 후에 또 다른 정상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이 두 표지석 사이의 주능선 구간이 바로 억새의 군락지이고, 경향각지의 등산객을 끌어모으는 매력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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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쪽 오서산 정상의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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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전망대. 자료 사진]

 

     오서산 정상 표지석 부근에는 꽤나 넓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전망대에 서면 북쪽으로 홍성, 서쪽으로 천수만, 동쪽으로 청양, 남쪽으로 보령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양나그네가 보기에 이 전망대는 과욕의 산물로 옥에 티. 이 자리에는 본래 오서정(烏棲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것이 20109월 서해안 일대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로 인해 파손된 후 그 자리에 쉼터로 전망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망대도 좋고, 쉼터도 좋지만, 그 규모가 너무 크다. 가뜩이나 인공미로 점철된 1,600 계단을 오른 후에 또다시 이런 인공 구조물을 대한다는 것은 결코 반갑지 않다

      전술한 대로 비록 충남에서는 세 번째로 높다고 하나, 오서산은 높이가 791m인 산이다. 우리나라(남한에 국한)에는 1,000m가 넘는 산만 해도 48개이다. 오서산 정도 높이의 산은 부지기수이다. 그런 산에 이처럼 인공구조물을 많이 설치해 놓은 곳이 또 있을까. 촌부가 과문한 탓에 언뜻 떠오르는 산이 없다.

 

     오서산 전망대에서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200m 가면 아래와 같은 묘한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아니 분명 오대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인증사진까지 찍고 왔는데, 앞으로 800m를 더 가야 정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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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이정표]

 

     전술한 바와 같이 오서산은 홍성군과 보령시에 걸쳐 있다. 그리고 억새 천지인 주능선의 대략 중간 지점에서 두 자치단체의 경계가 갈린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자치단체의 구역에 같은 높이의 붕우리가 각각 하나씩 있다. 그러다 보니 홍성군에도 정상이 있고, 보령시에도 정상이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확히 측량을 하여 1cm라도 더 높은 곳을 정상이라고 하여야겠지만[표지석에 쓰인 높이만 놓고 보면 홍성쪽(791m)이 보령쪽(790.7m)보다 30cm 높다], 추측건대 홍성군과 보령시의 어느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지도상으로는 보령쪽 봉우리를 오서산 정상으로 표시하고, 홍성쪽은 오서정으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쌍봉낙타도 아니고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정상이라니, 곳곳에서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고 있는 목하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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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오서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보령쪽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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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쪽 방향의 주능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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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쪽 정상의 표지석]

 

    하긴, 정상이 두 개이면 어떻고 세 개이면 어떠랴. 오서산은 오서산일 따름이다. 탐욕에 젖은 인간들이 찧고 까불지라도, 산은 예나 지금이나 오롯이 산인 채로 있으면서 길손을 맞고 보낸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게 바로 산이다. 내가 높다 네가 높다 다투지도 않는다.

 

    이 두 번째 정상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보령쪽 풍경은 첫 번째 정상에서 본 천수만쪽 경치와는 전혀 다르다. 서해바다 대신 겹겹이 포개지는 산들이 보이고, 보령댐으로 인하여 그 산들 사이에 만들어진 호수가 보인다. 이 경치 또한 장관일 터인데, 안타깝게도 하늘이 뿌연 탓에 느낌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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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보령쪽을 바라본 풍경]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자랑하면 뭐하나,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걸...’

 

     혼자서 속으로 투덜거려 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그나저나 보령쪽 하늘이 유난히 더 뿌연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국내 최대 면적의 화력발전소인 보령화력발전소가 있어서인가. 막연한 추측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예전처럼 맑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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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정상 부근의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두 번째 정상의 표지석에서 시루봉을 거쳐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정암사에서 올라온 길과는 달리 대부분 흙길이다. 그런 면에서 인공의 나무데크 계단길보다는 등산로 답다고 할 만하니, 산을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이 길로 하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올라간 길로 내려가는 것은 등산객의 도리가 아니라는 면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찌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랴. 이 길은 내리막 경사가 심하고, 계속 숲속으로 내려가는 까닭에 아무런 경치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면 올라오면서 본 경치와 내려가면서 보는 경치도 비교하고, 오전의 모습과 오후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도 살필 수 있었건만, 괜한 고집에 이 길로 하산하느라 애꿎은 무릎만 고생시켰다.

      더구나 그리하면 바로 차를 주차한 곳으로 하산하게 되는데, 성연리 쪽으로 하산하는 바람에 정암사까지 다시 택시를 타고 가는(택시비 4만원) 수고까지 해야 했다. ‘()하면 변()해야 하고, ()하면 통()한다는 이치를 무시한 업보이다.

 

     5시간 걸린 산행을 마치고 하산한 후, 택시운전사가 가르쳐 준 홍성읍의 맛집('소담'. 생갈비 전문이다)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운전은 이번에도 박재송님의 몫이다. 늘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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