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남도 사찰 순례기


  이제까지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매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미리 휴가 계획을 세워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게 일상이 되다시피 했고, 촌부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법원을 떠난 후에는 여름 휴가철이 되면 해외로 여행 또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런데 올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Covid-19)가 이런 생활 양상을 바꿔놓았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은 물론이고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예 꿈도 못 꾸고, 제주도라도 가볼까 마음먹다가도 관광객이 몰려든다는 소식에 더하여 이 역시 비행기를 타야 해서 꺼림칙해 단념했다.
 
  이래저래 여름휴가는 포기하고 주말마다 여주에 다니면서 꽃밭을 가꾸고 붓글씨를 쓰면서 세월을 낚고 있던 차에,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는 방편의 하나로 정부에서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 15일부터 사흘 연휴가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외우(畏友) 백동(白冬) 선생이 제주도와 동해안을 다녀온 이야기를 한 게 계기가 되어 설왕설래 끝에 사흘의 연휴 동안 50년 지기 죽마고우 넷이 남도 사찰 순례를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백동(白冬. 태준), 담허(淡虛, 춘수), 금오(金鰲, 문규), 그리고 촌부가 도반(道伴)이 되어 2020. 8. 15. 길을 나섰다. 담허와는 전에도 함께 사찰기행을 여러 번 했지만, 백동이나 금오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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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고로 긴 장마(중부지방 6.24.-8.16. 54일)의 뒤끝이라 아침 8시 서울을 출발해서 한동안은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그래도 9인승 카니발을 빌린 덕분에 승용차보다 안락하고 운전도 수월했다. 언제나처럼 운전은 담허의 몫이다(그는 명실공히 ‘운전 명장 Best Driver’이다).  그런데 평택을 지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아졌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폭염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큰 나라였던가. 작금에는 날씨가 춤을 춘다.


금둔사(金芚寺)


   첫날의 목적지는 여수 향일암이다. 도중에 구례 화엄사를 들를까 했는데, 주지 스님(덕문 스님)이 섬진강의 범람으로 큰 수해를 당한 구례읍내로 복구사업 지원차 나가 계시는 까닭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 대신 순천의 금둔사(金芚寺)를 찾기로 했다. 마침 주지이신 지허 스님이 지난 8. 3.에 태고종 종정에 취임하셨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바, 그 사실을 안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리상 잠깐이라도 뵙고 축하 인사를 드릴 일이다. 지허 스님은 선암사 주지로 계시던 2004. 7.에 임권택 감독님의 소개로 처음 찾아뵙고 차담을 나눈 게 계기가 되어, 그 이래 이따금 찾아뵙거나 연락을 취하던 터였다.
 
   오랜만에 뵌 지허 스님은 갑자기 찾아온 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에 일부러 주차장까지 나와 계셔 송구스러웠다. 더구나 건강도 안 좋아 보이시는 터라 더욱 그랬다. 스님은 종정이 되셔 태고종의 총본산인 선암사로 거처를 옮기실 마당인데, 선암사에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당분간 금둔사에 계속 머무실 거라고 한다.


   평소 전통차를 보존하는 데 힘을 쓰시는 스님이 타 주시는 차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일품이다. 그윽하면서도 구수한 차 맛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절을 나서기 전에 경내에 있는 3층 석탑과 석불입상(石佛立像)을 둘러보았다. 둘 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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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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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 스님과의 차담] 


남도2.jpg  [금둔사 3층 석탑과 석불입상] 


향일암(向日庵)


   순천에서 여수는 멀지 않다. 그래서 향일암까지 금방 갈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사흘 연휴가 시작된 첫날, 그것도 토요일인 것을 간과한 것이다. 여수 시내의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오래전에 들렀을 때 느꼈던 여수의 인상(어수선하고 낙후된 모습)은 그야말로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여수 시내와 돌산도를 연결하는 돌산대교의 옆으로는 해상케이블카가 다니는데, 여수의 명물로서 손색이 없다. 2012년에 세계박람회(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이제 여수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미항(美港)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인 돌산도는 여수 시민의 휴식처이자 외부 관광객이 여수에 오면 꼭 찾는 명소이다. 그 역할의 중심에 향일암이 있다. 대신 그만큼 교통체증이 심한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담허의 현란한 운전 솜씨 덕분에 오후 5시 조금 넘어 돌산도의 남쪽 끝에 있는 향일암에 도착했다. 아울러 주지 스님(지인 스님)의 배려로 절 마당까지 차가 올라간 덕도 보았다. 절 주차장에서 걸어가려면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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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의 위치]


   ‘해를 향해 있다’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은 여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출 풍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암자이다. 전국 4대 관음기도도량(낙산사 홍련암, 남해 보리암, 강화 석모도 보문사, 향일암) 중의 한 곳으로 644년 원효대사가 창건했을 때는 원통암이라 불렸다. 그 후 고려 시대에는 금오암으로 불렸고,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비로소 향일암이라 개칭했다고 한다. 2009. 12. 20.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원통보전) 등이 소실되었다가 2012. 5.에 복원되었다.


   절이 위치한 산의 이름조차 금오산(金鰲山)인 향일암은 풍수지리상 경전을 등에 모시고 바닷속으로 막 잠수해 들어가는 금거북이의 형상이다.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머리(하필이면 바로 이 머리 위에 군부대생활관이 들어서 있다. 꼭 그래야만 했는지 안타깝다), 향일암이 들어선 곳이 거북의 몸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한때 ‘거북구(龜)'자를 써서 영구암(靈龜庵)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뒷받침해 주는 것이 이 일대 바위의 무늬이다. 바위마다 하나 같이 거북의 등 모양을 닮은 문양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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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전경. 맨 왼쪽 아래가 객이 묵는 곳이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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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거북이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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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의 거북등 무늬]


   절에 도착하여 주지 스님과 인사를 나눈 후 저녁 공양에 앞서 뒷산인 금오산의 전망대에 올랐다. 절에서 20분 걸린다. 저녁 공양 시각을 7시로 늦춰놓았으니 먼저 일몰을 보고 오라는 스님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절의 저녁 공양 시각은 보통 5시 30분 전후인데, 이 또한 스님이 특별히 배려해 주신 것이다. 향일암은 일출 장면이 멋진 곳이지만, 뒷산에 올라가면 낙조 또한 볼만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다. 나무데크가 이어지는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자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다도해 위로 연출하는 풍경에 입이 벌어진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망외의 소득이다. 역시 큰맘 먹고 다리품을 팔면 얻는 게 있다. 역마살이 낀 촌부의 평소 지론이다.   


   이런 선경(仙境)을 보며 시 한 수 없어서야 되겠는가.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竹杖芒鞋) 짚고 신고

현금(玄琴)을 둘러메고 동천(洞天)으로 들어가니

어디서 짝 잃은 학려성(鶴唳聲)이 구름 밖에 들린다.


조선 숙종 때 가인(歌人) 김성기가 지은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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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전망대에서 본 일몰 풍경]


   산에서 내려와 특별히 마련된 저녁 공양(공양주 노보살의 솜씨가 훌륭했다)을 마치고 주지 스님 방으로 갔다. 주지 지인 스님은 세계 54개국을 다니신 여행 마니아(mania)시다. 더구나 오토바이를 즐겨 타서 남미 일주를 오토바이(125cc)로 하셨다고 한다. 우유니 사막에서 오토바이를 탔고, 안데스산맥도 오토바이로 넘으셨다는 무용담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스님 표현대로 평소 할머니 보살들을 상대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마침 스님 못지않게 세상이 좁다고 돌아다니는 촌부가 찾아와 이야기가 통하니 스님도 반가웠던 것이다. 이를 일러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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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스님의 처소 앞에서]


   대화가 무르익어 가는 중에 아호(雅號)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나그네 네 사람 중 문규가 유일하게 호가 없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스님이 향일암 뒷산의 이름을 따 ’금오(金鰲)‘라는 호를 지어 주셨다.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멋진 호이다.


    2020. 8. 16. 새벽, 향일암에 온 주된 목적의 하나인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촌부는 새벽 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 4시 20분에 기상했지만, 다른 도반들은 일출 시각에 맞춰 그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났다.

    비구니 스님 한 분과 한양 나그네 하나, 이렇게 둘이 대웅전에서 예불을 마치고 문 밖으로 나서자 어느새 마당에 인파가 가득하다. 향일암의 일출이 유명하다 보니 여수 시내에서 새벽부터 몰려온 사람들이다. 이날따라 날씨가 청명하여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주지 스님의 설명이다. 이곳도 기나긴 장마로 인해 사흘 전에야 비로소 하늘이 맑아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곳의 일출 장면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동해안도 아닌 남해안에서 이런 장면을 보다니....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3대에 걸쳐서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는데, 향일암에서 일출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얼마나 복을 지어야 하는 걸까. 장엄한 광경에 그동안 코로나로 우울했던 마음이 일거에 밝아지는 느낌이다. 서울에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꼭 한번 경험해 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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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의 일출]

 

   향일암에서 나그네가 묵은 숙소는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당연히 일출 장면도 한 눈에 들어온다. ’사찰에서 머물기(템플스테이)‘를 시행하는 여느 절들처럼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갖춰진 방에 TV, 냉장고, 에어컨까지 구비되어 있어 불편함을 모른다.

    이처럼 절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공연한 선입견으로 가보지도 않고 멀리하는 우(愚)를 범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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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仙巖寺)와 운수암(雲水庵)


   당초 계획했던 일정은 향일암에서 미황사로 바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날(2020. 8. 15.) 지허 스님을 뵌 후 자연스레 선암사가 도반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데다 풍수지리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선암사를 전국 최고의 명당으로 꼽았다는 말을 듣자 다들 가보자고 하여 자연스레 선암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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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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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대웅전]


   태고종의 총본산인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조계산은 특이하게도 동쪽 기슭에는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가 있고, 서쪽 기슭에는 조계종의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하루에 산을 넘어 두 절을 오갈 수 있다)는 절도 절이지만, 그 입구의 계곡에 있는 승선교(昇仙橋)가 참으로 아름답다.

   보물 제400호인 이 돌다리는 자연 암반 위에 한 개의 홍예(虹霓)로 이루어졌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중심으로 계곡을 가로질러 화강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만들었는데, 윗면은 평평하게 정지하여 사람이 왕래한다(차량 통행은 금지). 무엇보다도 시멘트에 의한 보강이 전혀 없이 화강암으로 무지개 모양의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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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교]


   선암사는 통일신라 시대 도선(道詵)이 창건하여(875) 고려 시대 의천(義天)이 중건했으나(1088)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래서 1660년(현종 1)에 중창했지만 영조(英祖) 때 화재로 또 불에 탔고, 1824년(순조 24)에 다시 중건하였다.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사찰을 중창할 때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세음보살을 만나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으나 뜻을 이룰 수 없어 자살하려 하자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구했는데, 대사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이름대로라면 이 다리는 신선(仙)이 하늘로 승천(昇)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승천한 신선이 다시 내려오는 곳이 바로 다리 위쪽에 있는 강선루(降仙樓)이다. 조계산 선암사의 문루(門樓)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이다. 우리나라 사찰은 대개 문루를 일주문 안쪽에 두고 있는데, 선암사는 문루를 일주문 밖에 두어 계곡과 어울리도록 하고 있다. 결국 선암사의 실질적인 영역은 이 강선루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2002년에 개봉한 영화 ‘동승(童僧)’에도 나오는 승선교를 사진에 아름답게 담으려면 계곡 아래로 내려가 홍예를 올려다보며 찍어야 한다. 그러면 계곡물은 물론 뒤편에 있는 강선루도 홍예 속으로 들어온다. 촌부는 이미 경험이 있는지라 도반들을 다리 아래 계곡으로 이끌었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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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교. 홍예 뒤로 강선루가 보인다]


   선암사를 가거든 산내암자인 운수암(雲水庵)을 꼭 들러 현오 스님의 차를 마시고 가라는 지허 스님의 말씀에 따라 선암사 경내를 지나 산 위쪽의 운수암으로 향했다. 폭염경보가 내린 날답게 찌는 날씨였지만 운수암 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 덜 더웠다. 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는 서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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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암 가는 길]

 

   운수암은 현오 스님이 혼자 계신 소박하기 그지없는 작은 토굴이다. 3시간에 걸친 오전 기도를 마치고 나오신 스님이 런닝셔츠 차림으로 불청객들을 맞이하셨다. 복지경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손님이라는데, 싫은 내색은커녕 선풍기를 켜 주시면서 더운데 오느라 수고했다는 덕담을 하셨다.

   무엇보다도 노스님이 손수 타 주시는 녹차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지허 스님이 찾아뵈라고 굳이 권하신 이유를 알겠다. 무더위에 발품을 판 보람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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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美黃寺)


   촌부에게 해남 미황사는 이미 모든 게 익숙한 절이다. 주지 금강 스님과의 오랜 친분도 그렇고, 더 바랄 데 없이 정갈한 사찰분위기, 거기에 더하여 뒷산인 달마산의 빼어난 자태 등등... 하나 같이 정겨우면서 편안하다. 비록 연중행사일망정 한양에서 멀고도 먼 이 절을 촌부가 찾아가는 이유이다.
 
   촌부 외에 담허나 금오도 한두 번은 이 절을 방문한 적이 있는 반면, 백동은 처음이다. 그래서 첫인상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너무 좋단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고색창연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잘 정비된 당우(堂宇)들, 7박 8일의 일정으로 ‘사찰에서 머물기(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참선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4-50 명에 이르는데도 ‘절간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것이 마음에 쏙 든다고 한다.
   그렇다, 미황사는 바로 그런 절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머물기(템플 스테이)‘의 원조라 할 미황사인 만큼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객사는 새삼 언급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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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전경과 일몰 풍경]


   이번 미황사 방문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주지 스님이 타 주신 가루차(末茶, 말차)이다. 촌부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경산 반룡사의 혜해 스님, 영천 백흥암의 영운 스님이 가루차의 명인이라 할 만한 분들인데, 미황사 주지 스님 또한 같은 반열에 계심을 이번에 알았다. 전에는 미황사에서 보이차나 녹차만 마신지라 그 사실을 미처 몰랐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주지 스님 방에서 차담을 나누는데, 스님이 녹차, 침향차, 보이차 등 각종 차를 타 주시더니 가루차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셨다. 그 색깔, 향기, 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루차의 거품을 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도구(=다선 茶筅)를 젓는 스님의 솜씨는 말 그대로 장인(匠人)의 그것이다. 그 가루차를 다음날 아침 공양 후에도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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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19.jpg     [금강 스님과의 차담, 가루차]   


  가루차 외에도 주지 스님이 백동이 가지고 갔던 부채에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 한 소리 새 울음에 나뭇가지에 꽃 피었네)’라는 휘호를 써 주셨고, 금오에게는 아예 스님 처소에 있던 새 부채에 ‘선풍(禪風)’이라는 휘호를 써서 주셨다. 앞으로 두 사람을 보려면 절로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머리를 깎기는 남들의 반만 깎으면 되는 담허가 더 쉬운데...   


   2020. 8. 17. 아침에 달마산의 둘레길인 달마고도를 걸었다. 이 길은 주지스님이 발원하여 관계 당국의 지원을 받아 2017. 11.에 개통하였다. 달마산 일원 정상 489m 능선기준으로 7부 능선을 따라 외부 자재나 장비 없이 순수한 인력만으로 완성하였다. 총길이는 17.74km로 완주에 6시간 30분 걸린다.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어 걷기가 편하고, 대부분 숲이 우거진 가운데로 길이 나 한여름에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훗날 완주할 것을 기약하고, 이날은 시간 관계상 아침 공양 후 8시에 출발하여 그중 1구간인 큰바람재까지 2.7km를 왕복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담허는 달마산 정상을 올라가고 싶어 했으나 역시 다음 기회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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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 안내도와 중간의 너덜지대]
          
대흥사(大興寺)


   미황사를 나서서 귀경하는 길에 대흥사를 들렀다. 월우스님이 지난해 8월 주지에서 회주(會主)로 직책이 바뀌기는 했지만, 언제나 한 식구처럼 맞아주시는 곳이다. 백동은 이곳 또한 처음 방문한다고 한다.
   그런데 절 공양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까닭에 절 안을 다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동국선원(東國禪院)에 들어가 문재인 대통령이 8개월 동안 고시공부했던 7번 방을 둘러본 후 바로 절을 벗어났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문화재와 그에 얽힌 사연들이 많은 절이지만(촌부와 달리 백동과 금오의 입장에서는 처음 접할 이야기), 이 역시 훗날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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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동국선원과 7번 방]
 
    산문 밖의 음식점에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스님과 헤어졌다. 이제 남은 일은 서울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새벽 예불에 참여하느라 못다 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꿈속을 헤매는 동안 ’운전 명장‘이 모는 차는 서울로 서울로 달리고 있었다. 모처럼 죽마고우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낸 사흘간의 여정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차창에 어렸다가 사라지곤 한다. 지공선사(地空禪師)의 반열에 접어들었으면서도 그런 길을 다시 나서보고 싶은 것은 촌부의 욕심인가. 이 또한 한여름 밤의 꿈이런가. (끝)